사람은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우선 언제 어디서나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말은 없으면서도 온갖 요상스런 형태로 인간에게 자애로운 환경을 제공하면서도, 때로는 세상을 뒤집을 듯한 행패로 괴롭히기도 한다.
인간은 이에 재난(災難)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과 대화로 해결이 가능한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은 가장 많이, 가까이, 밀접하고 세밀하게 접하며 알게 혹은 모르게 말로 눈치로 행동으로 이해하며 살면서도 그 사이의 관계는 예측하기가 자연보다 더 어렵고 까다롭다.
중국 유학(儒學)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도구로 ‘혈연(血緣)’을 사용했다. 혈연 이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로든 각가지 위계(位階)가 생겨나고 그에 따라야 한다. 이 위계질서가 인간사회에서 서로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등 수많은 갈등을 빚어냈다.
교직 당시의 일이다. 내 능력이 자기의 마음에 든다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지시한 상사가 있었다. “이만한 공간에 이런 내용으로 채워라” 하면 될 것을, 길이는 얼마로 색깔은 이렇게 내용은 요렇게 …. 하나부터 열까지를 나열했다.
그러면 나는 뭐냐? 오직 나만이 가진 고유한 창의적 사고(思考)는 낄 자리는 없다. 모든 일에는 하는 사람의 재량이나 여유가 없으면 성의도 의욕도 없을 뿐만이 아니고 심하면 반발이 생긴다.
직책상의 조그만 이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심뽀, 그리고 그에 따른 권의주의적 의식, 이것이 후진국 사람들일수록 많은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그런 일이 없을까? 망망대해 위에서야… 하는 좁고 모자라는 소견이 솔깃하기도 했었다. 이 얘기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의 한 부분이다.
수 십만톤의 거선들, 이들도 땅위에 올리면 한갖 쇳덩이에 불과할 뿐이다(빌려온 사진)
세상에는 항상 윗길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위로 올라가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옛날 동화(童話)에, 동물들이 누가 더 높이 올라갔는가를 시합할 때, 꾀 많은 여우가 ‘하늘까지 올라 갔다’는 말로 거의 일등이 매듭지어질 즈음, 영리한 토끼가 나섰다.
“하늘 만져봤냐?”
“만져봤지”
“어떻데?”
“말랑말랑 했지”
“그게 내 불알이야”.
밑에서 위의 있는 놈의 불알을 만졌으니 누가 위고 아래인지는 분명해진 것이다.
1973년이면 반세기도 더 된 시절이다. 어선(漁船) 선장(船長)에서 상선「Eastern Prosperity」호의 2등항해사로 처음 승선했을 때이다. 요즘 같이 변화가 빠른 세태로 보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적 일이다. 동남아 보르네오(Borneo) 섬에서 합판 제조의 원자재인 원목(原木)을 싣고 주로 일본을 드나들 때이다. 이미 일본은 원시림에서 나는 각종 나무를 덩어리로 실어와 온갖 생활에 필요한 자재로 재생산하여 수출함으로 짭짤한 재미를 본 것을 따라 한국도 시작했다. 합판이었다. 부산의 ‘동명목재’가 그 표본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한국의 부산이나 인천에 입항하는 행운이 떨어지기도 했다.
출국(出國)한지 6개월만에 “양하항(揚荷港)이 부산”이란 텔렉스를 받고 만세를 부른 그날부터 모두의 마음이 들떴다. 그 얼마나 그리던 고국이던가! 잠 못 이루는 밤이 있기도 했다. 상상해 보시라. 반년 동안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그리던 가족과 가정이 있는 고국으로 간다는데 그 벅찬 기대감과 심정을…. .
입항일이 가까워 오면 평소에 없던 일이 생긴다. 늘 물밑이 생활터인 기관장(機關長)이 한낮에 높은 Bridge(船橋)까지 올라와 알지도 못하는 해도(海圖)를 보며 “어이! 2항사, 지금 어디쯤이요?” 한다. 역시 조급증이 난다는 의미이다.
‘부산 접근증’이란 병명(病名)을 붙여줬다. “이 병은 부산까지 남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증세가 심해지며…, 입항하면 즉시 자연치유가 되는 병이나, 특효약으로는 ‘말 오줌에 갠 밀가루 환(丸)’인데, 한 알 자셔 볼라요?” 했더니 모두가 웃는다. 그래야지. 그래서라도 시간을 잊고 보내야지.
큰 바람을 피해 조업을 중단하고 항구에 정박중인 작은 어선들(빌려온 사진)
당일 해거름 때 부산 외항에 닻을 내렸다. 수속(手續) 담당 기관인 C · I · Q(세관·출입국관리소·겸역) 등이 퇴근 시간이라 입항이 불가, 몸만 나가게 되었다. 그날 밤 당직자들은 먼 육상의 휘황찬란한 불빛만 보며 끓는 속으로 밤새 선박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이런 경우는 어디나 그렇듯이 상(上)도 하(下)도 아닌 중간 간부가 맡는다. 2등항해사인 내 책임하에 2등기관사와 몇몇 부원들이 쑥 나온 입을 물고는 상륙하는 다른 선원들을 태우고 떠나는 통선(通船)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음날은 밝았고 출근하는 선원들과 관계기관들이 함께 올라왔다. 일은 여기서 터졌다. 출입국관리와 검역은 서류만 확인하면 되지만 세관은 달랐다. 선내를 서치(Search:검색)하며 불법으로 들여오는 물품의 유무를 조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시절이 그랬다. 소위 밀수(密輸) 문제 때문이다. 볼펜 심 하나 제데로 만들지 못해 몰래 들여와 이익을 남겼으며, 양담배, 양주(洋酒)는 대표적인 단속품 대상이었다.
개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고 그들의 눈에는 외제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 외제들이 단속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 가장 만만한 상대가 선원들이었다. 만년필 한 개라도 이것 “외제? 안 돼” 하면 못 가지고 나갔다. 와이로(뇌물)가 있어야 했다. 물론 정식으로 하면 세금을 물면 되지만…. 당시로는 세관에게 선원은 모두가 ‘밀수범’으로만 보이던 시대였다. 실지로 그랬다. 관세를 물어도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서류 없이 되는 수가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외항선이 입항하면 선원은 세관에게 고양이 앞의 쥐였다.
그 쥐가 고양이에게 대들다 한바탕 싸움이 터진 것이다. 선내를 쭉 둘러본 세관원 우두머리가 내 방에 있는 목각(木刻) 코끼리가 좋다고 했다나? 그 소리를 들은 부하가 내게 와서 ‘상관이 관심 있어 하니’ 달라고 했다. 태국에서 많이 생산했던 목각 제품 가운데 다소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라 첫 항차 때 일부터 비싼 돈을 주고 사 책상머리에 두고 뭐 보듯 해 온 것이다. 그걸 빼앗듯 하려 하다니… . 그렇지 않아도 밤새 심기가 편치 못한 데다 원래 그런 것은 눈 뜨고 못 보는 내 성미에 불이 붙은 것이다.
원목을 실어나르던 화물선(빌려온 사진). 어떤 외항선이던 항구에 입항하면 세관의 감시를 받는다.
“왜 내가 그걸 줘야 하요? 이 배에 있는 것이 전부 당신들 꺼요?” 하고 시작된 것이 온갖 소리들이 나왔다. 가뜩이나 입항 첫날밤 집에도 못 가 쌓인 울분에 속이 끓는 판인데-. 욕설이 튀고 삿대질도 나왔다.
옛말에 ‘싸우는 시에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듯이 당사자인 세관원 보다 “아, 2항사, 그냥 줘버려, 또 사면 될거 아냐” 하고 중간에서 염장 지르는 동료 사관(士官)들이 더 밉고 못 마땅했다.
암튼 세관들에게 잘 보여야 외국에서 산 장난감 하나라도 들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세상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런 꼬락서니를 보지 못해 사표 던지고 나온 내가 아닌가.
나는 이 세상을 요령으로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누구의 힘을 입고 빌려서 얻어 낸 것이 아니다. 그저 내 한 몸과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이 현세(現世)를 사는 데는 가장 고루하고 나약하고 우둔한 짓일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결코 전부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어딘가는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의 기반 위에 하나의 동화된 상태로 끌려가는 것이리라. 또한 이 세상은 강하고 유능한 자만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살길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신념, 자신의 목표를 따르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두고 보자”는 말들이 양쪽에서 나왔다. “그래 나야 배 내리면 그뿐이지만, 당신은 옷 벗어야 한다. 씨발넘아 해보자. x 같은 거”. 멱살만 안 잡았지 그야말로 막말인 셈이었다. 시쳇말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애들이나 마누라를 위해 장만한 작은 선물 하나라도 들고 나가야 할 텐데, 그게 불가능해진 판이다. 결국 맨 몸뚱이로 아침 통선을 탔다.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생각마져 했다.
진화론 학자 찰스 R. 다윈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적응하는 자가 살아 남는다고 했다. 어쩌면 나 같은 자는 적자생존(適者生存) 시스템에서는 도태의 대상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런데 또 다른 기막힌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인생 2막을 이것으로 끝내자고 결심한 참인데, 세관 출입구 통선장에 거의 다 왔을 때다. 그 세관원이 내 앞에 와서 사과를 했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뭘 잘못했다는 것인가? 분명히 잘못이 있기에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진작 그랬으면 일찌감치 끝났을 일 아닌가. 쥑일 놈이다. 조금 전 배 위에서 삿대질하며 싸우던 때보다 내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결국 내가 졌다. 완전히 묵사발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진 것이 아니고 내 자신에게 진 것이다. 휴게실 나무의자에 앉아 그가 산 떱뜨름한 콜라 한 병 마시고 악수 한 번하고 헤어졌다. 선뜻 의자에서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더니 땅 위에 올라서자 ‘허허허~’ 허파에 김빠지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사건 이후 내 자신에 대한 깊은 자성(自省)과 성찰(省察)이 있었다. 이 세상은 바다와 땅만 넓은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수 많은 인간들이 모양이나 색깔은 달라도 그 작은 머리와 가슴 속에 숨은 보이지도 않은 깊고, 얕고, 넓고 좁은 생각과 감정은 어쩌면 자연보다 더 많고 크다는 것을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겪고 보았다.
그리고 긴 시간을 두고 많은 변화도 뒤따랐다. 고시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보잘 것 없는 능력만을 믿고 세상 모르고 기고만장(氣高萬丈) 한 채 깨춤을 추었다는 각성이었다. 이것이 그 후의 내 삶에 음으로 양으로 큰 도움을 주었음도 사실이다.
지금에야 그런 일은 전혀 없으리라 믿지만, 아직도 가끔은 ‘청렴(淸廉)’이란 큼직한 글씨가 든 간판이나 영상이 가끔 보이는 걸 보면 그렇지 만은 아닌 모양이다. 세상이 아직도 덜 변했다는 소리인가? 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