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꽃 1
송수권
동백의 눈 푸른 눈을 아시는지요
동백의 연푸른 열매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 민대가리 동자승의 푸르슴한 정수리 같은······
그러고 보니 꽃다지의 꽃이 진 다음
이 동백숲길을 걸어보신 이라면
아기 동자승이 떼로 몰려 낭랑한 경經 읽는 소리
그 목탁 치는 소리까지도 들었겠군요
마음의 경經 한 구절로 당신도 어느새
큰 절 한 채를 짓고 있었음을 알았겠군요
그렇다면 불화로를 뒤집어쓰고 숯이 된
등신불等身佛이야기도 들어 보셨나요
육보시✽ 중에서도 그 살보시가 으뜸이라는데
동백꽃 피어 산문山門 밖 저 구강포의 바닷길까지
등燈을 밝힌다면, 보시 중에서도 그 꽃보시가 으뜸인
오늘 이 동백 숲을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겠군요!
한 세월 앞서
초당 선비가 갔던 길
뒷숲을 질러 백련사 법당까지 그 소롯길 걸어보셨나요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함부로 밟을 수 없었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조심히 접어 목민심서 책갈피에 꽂았더니
누구의 울음인지 한 획 한 글자마다 낭자한 선혈
애절양 애절양으로 우는
동박새 울음이 유난히 슬픈 봄날이었지요
동안거冬安居✽✽도 끝나고 구강포 겨울 바람이 설치면
어는 큰 손이 부싯돌을 긋는지
팍팍 날리는 불티 몇 점도 보셨나요
그 불길 동백 숲에 옮아 붙어 아련한 모닥불로 번질 때
그 불기운으로 저 정수사 앞 뜰 흙가마 속
청자수병靑磁水餠이 솟고, 그 수병 속 물길 휘둘러
바다도 쪽빛으로 물들고 있었음을.
✽육보시 : 원래는 육바라밀六波羅蜜. 불가에서 말하는 생사生死의 고해를 건너 이상향인 열반涅槃의 피안에 이르는 여섯가지 덕목
✽✽동안거 : 불교에서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기간.
『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 송수권』 (주)문학사상 2005 p2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