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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26.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 눈 내린 날 너 보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여. | ||
李奎報(이규보 1,168∼1,241) | ||
雪色白於紙 | 설색백어지 | 쌓인 눈빛이 종이보다 더 희길래 |
擧鞭書姓字 | 거편서성자 | 채찍으로 내 이름을 써놓고 가니 |
莫敎風掃地 | 막교풍소지 | 바람이 눈 위에 쓴 글씨 지우지 말아 |
好待主人至 | 호대주인지 | 주인이 올 때까지 남았으면 좋으련만 |
* 遇(우): 만나다, 우연히 만나다. * 於(어): ~보다 더 * 姓字(성자): 姓과 字, 姓名(성명)을 소중히 여겨 평소에 名(명) 대신 號(호)나 字(자)를 썼다. * 莫敎(막교): ~ 못하게 하다, 莫은 없다, 말다, 敎는 ~를 하게 하다. | ||
* 李奎報(이규보, 1,168-1,241):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고려 시대에 문신이었다. 字는 春卿(춘경), 號는 白雲居士(백운거사)이다. 성품과 시풍이 모두 호탕하며 활달하여 당대를 풍미했다. 현대 서양 서사시의 대표적인 작품이 제임스 조이스(James Aloysiu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라면, 우리나라에서 이에 匹敵(필적)할 만한 작품으로는 李奎報(이규보)의 《東明王編(동명왕편)》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고구려 시조(時調)인 《東明王編(동명왕편)》의 역사를 기록한 작품인데, 오언절구로 282구, 그러니까 4천 자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작품인 대서사이다. 과거에는 《東明王編(동명왕편)》을 읽고 싶어도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서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했으나, 이제는 한글로 모두 번역이 되어 있어서 한번 一讀하실 것을 권한다. * 訪友不遇(방우불우): 친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뜻으로 漢詩에 자주 나오는 주제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한 세상이 아니어서 편지 한 통을 보내는 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지라 미리 약속을 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큰마음 먹고 찾아갔어도 만나지 못하는 일이 간혹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려니 안타까운 일, 집 마당에 쌓인 눈 위에 채찍을 들어 큼직하게 이름을 써놓고 발길을 돌렸다. 친구가 집에 돌아와서 그 이름을 보면 얼마나 반가워할까. 그러나 눈이 녹아버리거나 바람이 눈밭을 쓸고 지나가면 지워질 터이니 이 또한 씁쓸한 일 아닌가. 친구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殘雪(잔설)처럼 남는 시다. 출처 : 양돈타임스(http://www.pigtimes.co.kr) |
27. 途中(도중) 길 가던 중에 | ||
松江(송강) 鄭澈(정철, 1,536 ~1,593) | ||
行役豈非苦 | 행역기비고 | 여행 어찌 괴로움이 아닐까? |
別離良亦難 | 별리양역난 | 이별도 또한 정말로 어려워라. |
同心幸同伴 | 동심행동반 | 마음 맞아 다행히 친구가 되고 |
聊以解愁顔 | 료이해수안 | 부족하나마 근심스러운 얼굴 펴리라 |
*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 중종 31∼1,593 선조 26): |
조선시대 선조 때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 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字는 계함(季涵), 號는 송강(松江). 諡號는 문청(文淸)이다. 서울 장의동(藏義洞: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 아버지는 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 정유침(鄭惟沈)이다.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大家)로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한국시가(韓國詩歌)의 쌍벽으로 일컬어졌던 송강(松江) 철(澈)은 유침(惟沈)의 막내아들이다. |
1536년(중종 31)에 판관 정유심(鄭惟沈)의 아들로 서울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던 송강(松江)은, 그의 맏누이가 인종(仁宗)의 후궁인 숙의(淑儀)로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 동궁(東宮)에 자주 드나들면서 나이가 비슷한 명종(明宗)과 정답게 지냈으며, 그의 둘째 누이는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되었으나 을사사화에 매부인 계림군이 연루되어 화를 당했고, 송강(松江)의 아버지 유침도 관북(關北) 정평(定平)으로 유배되었다가 송강(松江)이 16세 때 풀려났다. |
석방된 송강(松江)의 아버지 유침(惟沈)은 가족을 데리고 송강(松江)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남 담양부 창평(昌平)으로 내려갔다. 창평에 내려온 송강(松江)은 을사사화의 화를 피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順天)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고 있던 둘째 형인 소(沼)를 찾아가던 도중, 부호인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에게 그의 재질을 인정받아 지곡(芝谷: 지실) 성산(星山: 별뫼)에 정주하면서 김윤제(金允悌)의 사위인 류강항(柳强項)의 딸과 혼인하고 윤제(允悌)의 조카인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과 동문수학(同門修學)했으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
송강(松江)은 그로부터 10년 동안 성산에서 글공부를 하였고, 송강(松江)이라는 호(號)도 성산 앞을 남북으로 흐르는 시내 죽계천(竹溪川)의 다른 이름인 송강(松江)에서 딴 것이다. |
어려서부터 김린후(金麟厚)·기대승(奇大升)에게 배우고 1561년(명종 16) 26세 때 진사시(進士試)에 1등이 되었던 송강(松江)은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자, 명종(明宗)이 방목(榜目)을 보고 어린 시절의 우정을 생각하여 기뻐하면서 "정철(鄭澈)이 급제(及第)하였구나."하고 따로 주찬(酒饌)을 내리어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어주었다. 1567년(명종 22)에는 율곡과 같이 호당에 들어갔다. |
일찍부터 청백하고 곧은 성품으로〈총마어사(驄馬御史: 한나라 때 어사 환전이 매우 엄정하였고 항상 총마(驄馬)를 타고 다니므로 사람들이 총마어사驄馬御史라 불렀다)〉라 불리어졌던 송강(松江)이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에 올랐을 때, 명종(明宗)의 사촌 형인 경양군(景陽君)이 그 처가의 재산을 약탈하고자 그의 처조카를 죽인 罪로 獄에 갇혀 있었다. 이에 명종(明宗)은 송강(松江)에게 관대하게 처리할 것을 부탁하였으나 성격이 결백하고 강직한 송강(松江)이 법을 고집하여 경양군(景陽君) 부자(父子)를 處刑하고 말았다. |
이 獄事의 판결로 명종(明宗)의 뜻을 거슬린 송강(松江)은 오랫동안 청선(淸選)이 막히었다가 31세 때 정랑(正郞)·직강(直講)을 거쳐 부승지(副承旨)에 올라 당시 격렬했던 당쟁 속에서 서인(西人)의 영수(領袖)로 동인(東人)과 대결하며 예조(禮曹)와 형조(刑曹)의 판서(判書)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오르는 동안 파란만장한 벼슬길을 걸었다. |
송강(松江)이 45세 때인 1580년(선조 13) 강원도(江原道) 관찰사(觀察使)로 나가 금강산(金剛山)과 관동팔경(關東八景)을 답사하며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었고, 「훈민가(訓民歌)」를 지어 도민의 교화에 힘썼다. 1597년(선조 18) 치열한 당쟁으로 양사(兩司)로부터 논척을 받았던 송강(松江)은 조정을 물러 나와 한때 고향에 머물러 있다가 이어 창평(昌平)으로 내려가 4년 동안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시상을 가다듬어 「전후미인곡(前後美人曲)」과 「성산별곡(星山別曲)」을 비롯한 수많은 가사(歌辭)와 단가(短歌)를 지어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금자탑(金字塔)을 세웠다. |
1593년(선조 26)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동인(東人)의 모함(謀陷)으로 사직(辭職)하고, 강화(江華)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면서 빈곤과 울분으로 신음하다가 둘째 아들 종명(宗溟)의 단지(斷指)의 효성(孝誠)도 헛되이 12월 18일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이듬해 2월 고양(高陽) 신원(新院)에 장사 지냈다가 현종(顯宗) 때 진천(鎭川) 지장산(地藏山)으로 천장(遷葬)하였다. |
생전에 당쟁으로 반대당인 동인(東人)의 탄핵(彈劾)을 입어 관작(官爵)의 추탈이 빈번하였던 송강은 죽은 후에도 포폄(褒貶)이 번거로워, 1594년(선조 27) 6월에 권유(權愉)·김우옹(金宇顒) 등이 상소하여 삭탈관직(削奪官職) 되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직후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상소로 관직이 복구되었고, 숙종(肅宗) 때 문청(文淸)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
송강(松江)의 아들 4형제 중 차남 종명(宗溟)은 인조(仁祖) 때 강릉 부사(江陵府使)를 지냈으며, 막내 홍명(弘溟)은 부제학(副提學)과 수원 부사(水原府使)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고, 종명의 아들 양(瀁)은「어록해(語錄解)」를 간행했다.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고제(高弟)로 영조(英祖)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내며 시문(詩文)과 글씨로 명망을 떨쳤던 호(澔)는 노론(老論)의 선봉이 되어 격심한 당쟁 속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며, 청빈(淸貧)한 성품으로 의식주가 서민과 같아서 정치에서 물러나 낙향(落鄕)해 사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재상(宰相)을 지낸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한다. |
그는 자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訓戒)하였다. 「의지를 강하게 가지고, 거울같이 항상 올바른 마음을 지니라」 이는 송강(松江)의 생애와 이념을 후손들이 본보기로 삼고자 집안 간에 나눠 가졌다는 가훈이다. 송강(松江)의 훈민가(訓民歌)와 계주문(戒酒文)에 의하면, 첫째, 「부모와 자식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지니라」 둘째, 「노름·도박 등은 삼가라」 셋째, 「스스로 폭음을 경계하라」 |
송강(松江)의 묘소는 현재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어은에 있는데, 송강(松江) 정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강(松江)의 신도비(神道碑)는 1684년에 문정공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관(副管) 김수증(金壽增)이 전서(篆書)하고 글을 썼으며, 비의 높이가 2.5미터이고 폭이 1.5m이며, 신도비각은 15평으로서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
* 추탈하다(追奪--): 죄를 의논하여 생전에 지낸 벼슬의 이름을 깎아 없애다. * 削奪官職(삭탈관직): 죄인(罪人)의 벼슬과 품계(品階)를 빼앗고 사판(仕版)에서 이름을 없애 버림. |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강집(松江集)』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松江歌辭)』가 있다. 전자는 1894년(고종 31)에 간행한 것이다. 후자는 목판본으로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城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의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그중 관북본은 전하지 않고 나머지도 책의 일부만 전한다. |
▣ 송강가사(松江歌辭)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시조(時調) 작품을 모아 엮은 가집(歌集). 목판본 1책으로 여러 이본(異本)이 있으나 그중에서 이선본(李選本), 성주본(星州本), 관서본(關西本)의 세 판본이 전하고, 의주본(義州本)과 관북본(關北本)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밖에 필사본이 가끔 발견되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 ‘이선본(李選本)’은 원래 소장자였던 일사(一加) 방종현(方鍾鉉)이 명명(命名)한 것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의 일가문고(一加文庫)에 들어 있고, 1948년 7월에 발견된 ‘관서본(關西本)’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 송강집(松江集)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문집으로 11권 7책으로 된 목판본이며 규장각(奎章閣) 도서이다. 1894년(고종 31년) 후손인 운학(雲鶴)이 정철(鄭澈)의 유고 가운데 그때까지 펴내지 않은 속집, 별집, 별집부록과 이미 펴낸 원집, 연보를 보완, 개각(改刻)하여 펴냈다. 원집 2권 1책, 속집 2권 1책, 별집 7권 5책(연보 2책 포함)으로, 첫머리에 1622년(광해군 14년) 신흠(申欽)이 쓴 서(序)와 1633년 이정구(李廷龜)가 쓴 서(序)가 붙어 있고, 범례(凡例)가 9개 조항에 걸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본서는 그의 국문학작품(國文學作品)들을 硏究하는 데 가장 貴重한 直接資料가 된다. |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강집(松江集)』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松江歌辭)』가 있다. 전자는 1894년(고종 31)에 간행한 것이다. 후자는 목판본으로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城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의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그중 관북본은 전하지 않고 나머지도 책의 일부만 전한다. |
참고문헌 『송강문학연구(松江文學硏究)』(신경림·이은봉·조규익 편저, 국학자료원, 1993) 『국역(國譯) 송강집(松江集)』(송강유적보존회, 제일문화사, 1988) 『송강정철연구(松江鄭澈硏究)』(김갑기, 이우출판사, 1985) 『송강(松江)·노계(盧溪)·고산(孤山)의 시가문학(詩歌文學)』(박성의, 현암사, 1966) 『이조시대(李朝時代)의 가요연구(歌謠硏究)』(김사엽, 대양출판사, 1956) 「장르론적 관심(關心)과 가사(歌辭)의 문학성(文學性)」(금병국, 『현상과 인식』, 1977 겨울호) 「훈민시조연구(訓民時調硏究)」(윤성근, 『한뫼 금영기선생 고희기념논총』, 1971) |
松江(송강) 鄭澈(정철)의 五言節句(오언절구) | |
00. 번역자 서문 01. 秋日作(추일작, 가을날 짓다) 02. 平湖堂 二首(평호당 2수) 03. 別退陶先生(별퇴도선생, 퇴계선생과 이별하며) 04. 祝堯樓(축요루, 축요루에서) 05. 滌襟軒雜詠 三首(척금헌잡영 3수) 06. 棲霞堂雜詠 四首(서하당잡영 4수) 07. 息影亭雜詠 十首(식영정잡영 십수) 08. 飜曲題霞堂碧梧(별퇴도선생, 번곡을 서하당 벽오동나무에... 09. 遙寄霞堂主人金公...(요기하당주인김공, 멀리 서하당 주인에게...) 10. 贈金君瑛 二首(김군 영에게 주다 2수) 11. 宿松江亭舍 三首(송강정사에서 자면서 3수) 12. 懷河西(회하서, 하서를 그리며) 13. 訪重興寺(방중흥사, 중흥사를 방문하고서) 14. 題三角山龕(제삼각산감, 삼각산 감에 쓰다) 15. 逢僧寄栗谷(봉승기율곡, 스님을 만나 율곡에게 부치다) 16. 紫竹杖送牛溪(자죽장송우계, 자죽장을 우계에게 부내다) 17. 寓居東郊主人不在(우거동교주인부재, 동교에 우거하는데...) 18. 洛下逢金希閔克孝書贈(낙하봉김희민극효서증, 서울에서 극효 김희민을 만나 써서 주다.) 19. 去國(거국, 나라를 떠나와서) 20. 竹林家對月(죽림가대월, 대나무숲 집에서 달을 대하며) 21. 楓嶽道中遇僧(죽림가대월, 금강산 길에서 중을 만나다) 22. 江亭(강정, 강가 정자) 23. 絶句(절구) 24. 月夜(월야, 달밤) 25. 題雪梅詩卷(제설매시권, 설매의 시권에 쓰다) | 26. 統軍亭(통군정, 평안북도 의주군에 위치한 정자) 27. 靈泉窟(영천굴, 백양사 뒤 백학봉 아래에 있는굴) 28. 萬師臺(만사대) 29. 金剛山雜詠(금강산 잡영) 30. 題山僧軸(제산승축, 산승의 시축에 쓰다) 31. 示李敬賓 二首(시리경빈, 이경빈에게 보이다 2수) 32. 聯句(연구) 33. 卽事(즉사) 34. 村居雜興(촌거잡흥, 시골에서의 흥) 35. 竹樓聯句(죽루연구, 죽루에서의 연구) 36. 大岾逢崔希稷棄 二首(대점봉최희직기, 대점에서 최기...2수) 37. 萬日寺獨坐(만일사독좌, 만일사에 홀로 앉아서) 38. 贈成重任輅(증성중임로, 성중임'로'에게 주다) 39. 出城(출성, 성을 나오다) 40. 將適鷗浦舟中有作(장적구포주중유작, 장차 구포로 가려는...) 41. 江亭對酒次柳郞中...(강정대주차류랑중, 강정에서 술을 대하며...) 42. 宜月亭 二首(의월정 2수) 43. 戱李都事期男別妓(희리도사기남별기, 이도사 기남이 기생과...) 44. 珍島舟中奉贈霞翁求和(진도주중봉증하옹구화, 진도의 배 안에서...) 45. 奉呈烟叟(봉정연수, 연수에게 봉증하다) 46. 盧子平新作小...二首(노자평신작소, 노자평이 새로 작은...2수) 47. 題山人詩軸(제산인시축, 산인의 시축에 쓰다) 48. 村居値誕日感懷(촌거치탄일감회, 촌집에 거하면서 임금의...) 49. 霞堂夜坐(하당야좌, 밤에 하당에 앉아서) 50. 次林士久韻(차림사구운, 임사구의 운에 차하다) |
51. 題萬壽洞隣家壁 二首(제만수동인가벽, 만수동 이웃집 벽에...2수) 52. 寄東菴東菴許公震號(기동암동암허공진호, 동암에게 부치다...) 53. 贈四止翁(증사지옹, 사지옹에게 주다) 54. 酒席戱贈竹林守英胤(주석희증죽림수영윤, 술자리에서 죽림수...) 55. 奉贈君會舊契 二首(봉증군회구계, 옛 친구 군회에게...2수) 56. 君會送酒色味俱佳...(군회송주색미구가, 군회가 술을 보냈는데...) 57. 謝使相公來訪 四首(사사상공래방, 사상공이 찾아줌에...4수) 58. 別林婿檜(별림서회, 사위 임회와 작별하며) 59. 琴巖(금암) 60. 淸源棘裏淸源江界...(청원극리청원강계, 청원의 귀양살이 중에...) 61. 詠新月(영신월, 새 달을 읊다) 62. 自江都將下湖南舟...(자강도장하호남주, 강도에서 장차 호남...) 63. 奉贈聽天沈相名守慶(봉증청천침상명수경, 청천 심정승'수경'에게...) 64. 守歲(수세, '섣달 그믐날의 밤샘') 65. 客舘別成重任(객관별성중임, 객관에서 성중임과 이별하며) 66. 夜坐遣懷(야좌견회, 밤에 앉아 회포를 보내다) 67. 偶題(우제, 우연히 읊다) 68. 口號(구호, 읊조림) 69. 贈義州牧(증의주목, 의주 목사에게 주다) 70. 燕京道中(연경도중, 연경 길에) 71. 夜坐感懷(야좌감회, 밤에 앉아 느끼는 감회) 72. 夜坐(야좌, 밤에 앉아서) 73. 途中(도중, 도중에) 74. 寄瀛洲使君(기영주사군, 영주'제주' 사군에게 주다) 75. 詠鶴贈宋仁垂英耈(영학증송인수영구, 학을 읊어 송인수...) 76. 客夜惜別 二首(객야석별, 나그네 밤에 석별의 정 2수) 77. 統軍亭口占癸巳(통군정구점계사, 통군정에서 읊조림...) | 78. 席上口號 三首(석상구호, 석상에서 읊다 3수) 79. 途中(도중) 80. 奉贈君會舊契...三首(봉증군회구계, 옛 친구 윤군회...3수) 81. 謝使相公見訪 三首(사사상공견방, 사상공이 찾아줌에...3수) 82. 醉呈使節案下此詩...(취정사절안하차시, 취하여 사절의 案下에...) 83. 贈林子順悌號白湖(증림자순제호백호, 임자순에게 드리다...) 84. 寄成仲深文濬(기성중심문준, 성중심'문준'에게 부치다) 85. 挽崔嘉運慶昌,以下...(만최가운경창,이하, 최가운'경창'의 만사...) 86. 滌襟軒雜詠 四首(척금헌잡영, 척금헌 잡영 4수) 87. 棲霞堂雜詠金...四首(서하당잡영김, 서하당잡영'김성원...4수) 88. 息影亭雜詠次韻 十首(식영정잡영차운, 식영정잡영'임억령...10수) 90. 遙寄霞堂主人(요기하당주인, 멀리 하당주인에게 보내다) 91. 贈金君瑛(증김군영, 김군 영에게 주다) 92. 止酒謝客(지주사객, 술을 끊고 손님에게 사하다) 93. 寄呈玉谷老仙(기정옥곡로선, 옥곡 노선에게 부치다) 94. 贈別門生(증별문생, 문생과 이별하며 주다) 95. 驪江醉吟(여강취음, 여강에서 취하여 읊다) 96. 題沈公亭壁(제심공정벽, 심공의 정자 벽에 쓰다) 97. 題山僧詩軸(제산승시축, 산 속 스님의 시축에 쓰다) 98. 關東夜酌 二首(관동야작, 관동에서 밤에 술마시다 2수) 99. 思菴訃至己丑..二首(사암부지기축, 사암의 부고가 오다 2수) 100. 挽趙主簿堪字...二首(만조주부감자, 조주부 감의 만사...2수) 101. 贈栗谷時與栗...二首(증율곡시여율, 율곡에게 주다...2수) |
102. 餞席贈任士邵...二首(전석증임사소, 전별하는 자리에서...2수) 103. 悅雲亭亭在伊川,時柳...(열운정정재이천,시류, 열운정 '정자가...) 104. 統軍亭(통군정) 105. 重陽前日偶吟(중양전일우음, 중양절 전날 우연히 읊다) 106. 題雙溪雪雲詩軸(제쌍계설운시축, 쌍계사 설운의 시축에 쓰다) 107. 贈李萬戶義南辛巳(증리만호의남신사, 이만호'의남'에게 주다...) 108. 示李敬賓(시리경빈, 이경빈에게 보이다) 109. 秋思(추사, 가을 생각) 110. 次玄成韻 三首(차현성운, 현성의 운에 차하다 3수) 111. 偶吟(우음, 우연히 읊다) 112. 村居雜興(촌거잡흥, 시골에 사는 여러 흥) 113. 題平湖堂 二首(제평호당, 평호당에 쓰다 2수) 114. 贈崔甥浚(증최생준, 생질 최준에게 주다) 115. 金孺晦家對盆菊(증최생준, 김유회의 집에서 국화...) 116. 余多病○寒,山行衣...(여다병○한,산행의, 나는 병이 많은데다...) 117. 海雲亭口號 二首(해운정구호, 해운정에서 읊다 2수) 118. 對月獨酌(대월독작, 달 벗하며 홀로 술 마시다) 119. 贈別(증별, 이별하며 주다) 120. 次栗谷韻贈山僧(차율곡운증산승, 율곡의 시에 차운하여...) 121. 雪城壁上見圭翁筆...(설성벽상견규옹필, 설성 벽위에 규옹의...) 122. 奉贈君會舊契 四首(봉증군회구계, 옛 친구 군회에게 주다 4수) | 123. 關東有贈妓(관동유증기, 관동에서 기녀에게 주다) 124. 與白玉峯光勳遊邊山(여백옥봉광훈유변산, 옥봉 백광훈과 변산...) 125. 石隅草堂留宿(석우초당유숙, 석우초당에서 유숙하다) 126. 尹時晦昕見訪(윤시회흔견방, 윤시회 흔이 찾아오다) 127. 贈宋德求象賢(증송덕구상현, 송덕구'상현'에게 주다) 128. 與柳西坰根同...二首(여류서경근동, 유서경'근'과 함께...2수) 129. 附西坰詩(부서경시, 서경에 부치는 시) 130. 山寺夜吟(산사야음, 산사에서 밤에 읊다) 131. 贈朱敎官庚辰江原...(증주교관경진강원, 주교관에게 주다...) 132. 贈洪君敍錫(증홍군서석, 홍군서 '석'에게 주다) 133. 絶句 九首(절구 9수) 134. 對花漫吟(대화만음, 꽃을 대하며 읊다) 135. 示栗谷(시율곡, 율곡에게 보이다) 136. 夢中作壬辰五月,適在...(몽중작임진오월,적재, 꿈에 짓다.'임진년...') 137. 失題 二首(실제 2수) 138. 剛叔逢上京訪高陽村居(강숙봉상경방고양촌거, 강숙이 서울로 올라...) 139. 送安君昌國歸龍...五首(송안군창국귀룡, 용성으로 돌아...5수) 140. 瀟灑園書洪澄扇...二首(소쇄원서홍징선, 소쇄원에서 홍징...2수) 141. 翫水亭贈曺敎官...二首(완수정증조교관, 완수정에서 교관...2수) |
http://yuniljung.com/chul/hansi1.htm |
28. 疾止(질지) 병이 낫다. | ||
尹善道(윤선도, 1,585~1,671) | ||
不有疾痛苦 | 불유질통고 | 질병의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
誰識平居樂 | 수식평거락 | 그 누가 평소의 낙을 알겠나. |
鷄聲與晨光 | 계성여진광 | 첫 닭의 울음소리와 찬란한 새벽 햇살까지 |
莫非娛耳目 | 막비오이목 | 귀와 눈이 즐겁지 않음이 없다네. |
보길도윤선도유배지(세연정)(2)#한국화 #문인화 #수묵풍경채색화 #그리기 https://www.youtube.com/watch?v=7st-OVR863o |
* 尹善道(윤선도, 1,585~1,671): 조선시대 공조좌랑(工曹佐郞),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87년(선조 20)에 태어나 1671년(현종 12)에 사망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권신을 규탄하는 소를 올려 유배되기도 했다. 효종의 대군 시절 스승이었다.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집권 세력인 서인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의 확립과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했다.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하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보길도에 별서를 짓고 생활하며 「어부사시사」 등 탁월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 개설: 본관은 해남(海南). 字는 약이(約而), 號는 고산(孤山)·해옹(海翁). 아버지는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윤유심(尹唯深: 윤선도묘비명에는 尹惟深)이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숙부 윤유기(尹唯幾: 윤선도 묘비명에는 尹惟幾)에게 입양됐다. *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금서(禁書)였던 『소학(小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8세에 진사초시(進士初試)에 합격하고, 20세에 승보시(陞補試: 성균관 유생에게 시행하던 시험)에 1등을 했으며 향시(鄕試)와 진사시(進士試)에 연이어 합격했다. 1616년(광해군 8) 성균관 유생으로서 이이첨(李爾瞻)·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 등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렸다. 이로 인해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慶源)으로 유배됐다. 그곳에서 「견회요(遣懷謠)」 5수와 「우후요(雨後謠)」 1수 등 시조(時調) 6수를 지었다. 1년 뒤인 1617년(광해군 9) 경상남도 기장(機張)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된 뒤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제수됐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해남(海南)으로 내려갔다. 그 뒤 찰방(察訪)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했다. 1628년(인조 6)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해 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의 스승이 됐다. 그 당시 법률로 왕의 사부(師傅)는 관직을 겸할 수 없음에도 特命으로 공조좌랑(工曹佐郞)·형조정랑(刑曹正郞)·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등을 5년간 역임했다.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及第한 뒤 예조정랑(禮曹正郞)·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지냈다. 그러나 1634년(인조 12) 강석기(姜碩期)의 모함(謀陷)으로 성산(星山)의 현감(縣監)으로 좌청(左遷)된 뒤, 이듬해 파직(罷職)됐다. |
그 뒤 해남에서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왕이 항복(降伏)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하였다.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격자봉(格紫峰) 아래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齋)라 했다. 그는 조상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으로 십이정각(十二亭閣)·세연정(洗然亭)·회수당(回水堂)·석실(石室) 등을 지어 놓고 마음껏 풍류를 즐겼다. 亂이 평정된 뒤 서울에 돌아와서도 왕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죄로 1638년(인조 16) 다시 경상북도 영덕(盈德)으로 귀양(歸養)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이로부터 10년 동안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과 새로 발견한 금쇄동(金鎖洞)의 자연 속에서 한가(閑暇)한 생활을 즐겼다. 이때 금쇄동(金鎖洞)을 배경으로 「산중신곡(山中新曲)」·「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고금영(古今詠)」·「증반금(贈伴琴)」 등을 지었다. 그 뒤 1651년(효종 2)에는 정신적 안정 속에서 보길도(甫吉島)를 배경으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다. 다음 해 효종(孝宗)의 부름을 받아 예조참의(禮曹參議)가 됐으나 서인의 모략(謀略)으로 사직(辭職)하고 경기도 양주의 고산(孤山)에 은거(隱居)했다. 마지막 작품인 「몽천요(夢天謠)」는 이곳에서 지은 것이다. 1657년(효종 8) 71세에 다시 벼슬길에 올라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르렀으나 송시열(宋時烈)과 맞서다 관직에서 쫓겨났다. 이 무렵 「시무팔조소(時務八條疏)」와 「논원두표소(論元斗杓疏)」를 올려 왕권의 확립을 강력히 주장했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예론문제(禮論問題)로 서인과 맞서다가 삼수에 유배됐다. 1667년(현종 8) 풀려나 부용동(芙蓉洞)에서 살다가 그곳 낙서재(樂書齋)에서 85세로 죽었다. 문집 『고산선생유고(孤山先生遺稿)』에 한시문(漢詩文)이 실려 있으며, 별집(別集)에도 한시문(漢詩文)과 35首의 시조(時調), 40首의 단가(短歌)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가 실려 있다. 또, 친필로 된 가첩(歌帖)으로 『산중신곡山中新曲)』, 『금쇄동집고(金鎖洞集古)』 2책이 전한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의 가문에 태어나 집권 세력인 서인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생활(流配生活)과 19년의 은거생활(隱居生活)을 했다. 그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화려한 은거생활(隱居生活)을 누릴 수 있었고, 그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표출(表出)됐다. 자연을 문학의 제재로 채택한 시조(時調) 작가 가운데 가장 탁월(卓越)한 역량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학적 특징은 자연을 제재로 하되 그것을 사회의 공통적 언어 관습과 결부시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개성적 판단에 의한 어떤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을 임의로 선택하기도 한 데에 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엄격히 유교의 세계관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직접적인 대결을 보인다든가 생활 현장으로서의 생동하는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자연이 주는 시련이나 고통을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조상이 물려준 유산을 토대로 풍족한 삶만을 누렸기 때문이다.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3대 가인(歌人)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가사(歌辭)는 없고 단가(短歌)와 시조(時調)만 75首나 창작한 점이 특이하다. |
* 상훈과 추모: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 참고문헌: 『고산유고기언고산연구』(이재수, 학문사, 1955) 「송강과 고산의 시경」(최진원, 『성균관대학교논문집』3, 1958) 「고려말·이조초의 어부가」(이우성, 『성균관대학교논문집』9, 1964) 「윤고산론」(정병욱, 『월간문학』9, 1969) 「윤선도의 자연관」(윤성근, 『문화비평』7·8, 1970)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崔承熙지식산업사, 1989 「조선시대 임명관련 교지의 문서형식」유지영『古文書硏究』 30, 2007 |
[국립전주박물관/선비의 길 II] 윤선도의 보길도로 고고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dNdhIhzWMPs |
고산 윤선도 유적(보길도, 해남) https://www.youtube.com/watch?v=Mk0i63Id6nA |
[마을을 걷다] 꽃중년 '정보석'의 우리지역 섬마을 이야기 1회 보길도 여행 https://www.youtube.com/watch?v=tzqb1d7LRB0 |
29. 閨情(규정) 규방의 정(여자의 마음) | ||
玉峰(옥봉) 李淑媛(이숙원, 1,550~1,600) | ||
有約何來晩 | 유약하래만 | 약속해 놓으시고 오시는 것이 어찌 이리 늦나요 |
庭梅欲謝時 | 정매욕사시 | 뜰의 매화도 지려고 하는 때에 |
忽聞枝上鵲 | 홀문지상작 | 갑자기 가지 위에서 까치 소리 들리니 |
虛畵鏡中眉 | 허화경중미 | 헛되이 거울 속 눈썹을 그립니다. |
* 欲謝(욕사): 지려고 한다는 뜻이다. 까치 소리는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는 암시로 임을 기다리는 작자의 심정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헛되이 그리는 눈썹은 부질없이 기다리는 작자의 마음을 뜻한다. 이 시는 玉峰(옥봉)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마음을 잘 그린 작품이다. |
* 玉峰(옥봉): 조선시대 「閨情(규정)」, 「贈雲江(증운강)」 등을 저술한 시인. * 개설: 본관은 全州(전주). 號는 玉峰(옥봉). 왕실 종친으로 군수를 지낸 李逢之(이봉지)의 서녀이다.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趙瑗(조원)의 小室(소실)이 됐다. 매화 피는 봄에 다시 만나자 약속하였건만 뜨락의 매화 다 떨어지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님은 아니 오신다. 갑자기 나무에서 우는 까치 소리를 듣고, 속언에 까치는 반가운 손님이 오는 징조라 하였거늘 혹여 반가운 님이 오시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해 본다.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여심이 시 전체에 잘 드러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結句(결구)의 ‘虛’字가 그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대개 玉峰(옥봉)의 시는 이처럼 이별과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 많다. |
* 생애 및 활동 사항 15세에 소실이 돼 40세가 되기 전 임진왜란을 만나 젊은 나이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옛 관습으로 보면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첩을 두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趙瑗(조원)이 문과에 급제한 것은 1572년(선조 5)이다. 趙瑗(조원) 또한 과거에 급제한 후에 玉峰(옥봉) 李氏(이씨)를 맞아들였다면, 소실이 된 나이가 15세이므로 죽은 나이는 대략 35세 안팎이 될 것이다. 임진왜란은 20년 후인 1592년에 일어났다. 玉峰(옥봉) 李氏(이씨)가 남긴 시는 모두 32편인데 1,704년(숙종 30)에 趙瑗(조원)의 후손인 正萬(정만)의 손에 의하여 『嘉林世稿(가림세고)』의 끝에 부록으로 편입돼 오늘날까지 전하게 됐다. 玉峰(옥봉) 李氏(이씨)의 시는 여성으로서 정한을 잘 살렸는데 거의 대부분 이별을 주제로 읊은 시들로 그 가운데에 「閨情(규정)」과 남편에게 보낸 시 「自述(자술)」 등이 대표 작품이다. 「自述(자술)」은 『大東詩選(대동시선)』에는 「贈雲江(증운강)」으로 되어 있다. 許筠(허균)은 『鶴山樵談(학산초담)』에서 玉峰(옥봉)의 시가 매우 밝고 강건하여 자못 부인의 화려하게 꾸민 말이 아니라 했다. 『惺叟詩話(성수시화)』에서도 그녀의 시는 맑고 건장하여 부녀자의 화장 같은 꾸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시상의 전개가 여성답지 않고 뛰어남을 매우 높이 칭찬했다. 申欽(신흠)은 “근래 閨秀(규수)의 작품 중 承旨(승지) 趙瑗(조원)의 첩 玉峰(옥봉) 李氏(이씨)가 제일이다.”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洪萬宗(홍만종)은 『詩評補遺(시평보유)』에서 「春日卽事詩(춘일즉사시)」가 晩唐(만당)의 품격이 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小華詩評(소화시평)』에서는 “(사람들이) 趙瑗(조원)의 첩 玉峰(옥봉) 李氏(이씨)를 조선 제일의 여류 시인이라 일컫는다.”고 했다. 玉峰(옥봉) 李氏(이씨)는 許蘭雪軒(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으로 이미 당대에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참고문헌 『惺叟詩話(성수시화)』, 『鶴山樵談(학산초담)』, 『芝峰類說(지봉유설)』, 『晴窓軟談(청창연담)』 『小華詩評(소화시평)』, 『詩評補遺(시평보유)』 『조선시대여류문학가소고: 한국한문학대계여류편서설』(최근덕, 휘문출판사, 1980) |
30. 詠懷(영회) 마음의 詩 | ||
西山大師(서산대사, 1,520~1,604) | ||
病在肉團心 | 병재육단심 | 모든 병은 마음에 있나니 |
何勞多集字 | 하노다집자 | 어찌 힘들게 글자만 모을 것이냐 |
五言絶句詩 | 오언절구시 | 오언절구 한 수이면 |
可寫平生志 | 가사평생지 | 평생의 마음을 담을 수 |
* 요약: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이끌고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묘향산인 또는 서산대사로 불렸다. 12세 때 성균관에 들어가 글과 무예를 익힌 후 15세 때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 이후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해 5년 동안 <전등록>, <염송>, <화엄경>, <반야경> 등의 교리를 탐구하다가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머리를 깎았다. 休靜(휴정)은 법명이다. 1549년 승과에 합격, 대선을 거쳐 선교양종판사에 올랐고, 1556년 금강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 지도에 전념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부탁을 받고 전국에 격문을 보내어 의숭군의 궐기를 호소했고, 자신은 법흥사에서 문도 1,500명으로 승군을 조직, 평양 탈환 작전에 참가했다.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했다.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아버지는 향관(鄕官)을 지낸 세창(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9세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봄에 아버지마저 죽으니 안주 목사 이사증(李思曾)의 양자로 들어가 서울로 옮겼다. 12세 때 성균관에 들어가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힌 다음 15세 때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의 화엄동(華嚴洞)·청학동(靑鶴洞)·칠불동(七佛洞) 등을 유람하다가 숭인장로(崇仁長老)의 권유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전등록 傳燈錄〉·〈염송 拈頌〉·〈화엄경〉·〈능엄경 楞嚴經〉·〈반야경〉·〈원각경 圓覺經〉 등의 교리를 탐구하다가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머리를 깎았으며, 1540년(중종 35)에 일선(一禪)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뒤 부용영관(芙蓉靈觀)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1549년(명종 4) 승과에 합격했으며,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올랐다. 1556년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를 버리고 금강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수행과 후학지도에 전념했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선조 |
자신은 순안 법흥사(法興寺)에서 문도 1,500명으로 승군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승군을 이끌고 나가 호위한 후 승군장의 직에서 물러나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갔다. 이때 선조는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라는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의 작위를 내렸다.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앉은 채로 입적했다. 당시 불교는 조선왕조의 계속된 억불정책 휴정은 이러한 때에 불교교단의 존립과 국가 전체의 안위를 의식하고 이에 대처했다. 그는 선종 가운데서도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을 가장 중시했으며, 화두로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강조했다. 교학에 대해서는 선 수행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만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러한 사교입선(捨敎入禪)적 입장에서 그는 종래 선종에서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중시해온 〈능엄경〉과 〈반야경〉을 비판했다. 또 휴정은 염불 즉 염불도 선 수행의 일종이었다. 실천으로서 그가 인정한 경전공부와 선 수행 및 염불은 조선 후기에 불교교단의 공통된 수행방법으로 체계화되었다. 유(儒)·불(佛)·도(道)의 3교는 명칭만 다를 뿐 그 가르침의 근본은 같다는 3교일치를 주장하기도 했으며, 성리학의 도통관(道統觀)에 대비되는 불교의 법통관을 새로 제시하여 임제종의 전통을 강조했다. 그의 제자는 1,00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명유정(四溟惟政)·편양언기(鞭羊彦機)·소요태능(逍遙太能)·정관일선(靜觀一禪)의 4대 제자가 조선 후기의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허당집 淸虛堂集〉을 비롯하여 〈선교석 禪敎釋〉·〈선교결 禪敎訣〉·〈심법요초 心法要抄〉·〈삼가귀감 三家龜鑑〉·〈설선의 說禪儀〉·〈운수단 雲水壇〉 등이 있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탑이 세워졌으며, 해남 표충사(表忠祠)와 밀양 표충사 및 묘향산의 수충사(酬忠祠)에 제향되었다. |
[직곡의 역사추적] 서산대사(西山大師) 격문 – 휴정(休靜)! https://www.youtube.com/watch?v=9MVFymzYUbo |
서산대사 - 회심곡🙏 |서산대사 휴정 ep 67 #고승열전 #라디오드라마 #조선의승병장 [자면서 듣는 고승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dIqPtrpgARE |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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