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참판댁,하동평사리,2021夏
▩ 광양 정병욱가(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
* 2021.8.10.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 대하소설 《토지》 줄거리
하동 평사리를 무대로 최참판댁과 소작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의 전반에 동학운동, 갑오개혁 등 우리나라의 역사가 녹아있다.
동학운동과 전염병과 대흉년의 발생, 신분 문제 등으로 대지주였던 최참판댁은 몰락하게 된다.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외동딸 서희는 뜻을 같이하는 농민들과 간도로 이주하여 큰 상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희와 길상은 혼인을 하게 되고 일본의 밀정이 된 김두수와 길상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대립이 펼쳐진다.
이후 진주에 자리잡은 서희는 빼앗겼던 집과 땅을 되찾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게된다. 서희가 별당 연못가를 거닐 때 일본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 소설은 끝이난다.
▣ 토지가 주는 교훈
소설 토지는 박경리 작가의 생명사상이 잘 드러난다. 또한 동학운동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우리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에 대한 찬사이다.
박경리 선생 작가 연보
* 1926년 10.28. 통영 명정리에서 박수영씨 장녀로 출생
*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 1946년 1.30. 김행도 씨와 결혼
* 1950년 12월 남편과 사별
* 1955년 현대문학 8월호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 초회 추천
* 1956년 현대문학 8월호 <흑흑백백> 으로 추천 완료
* 1959년 <표류도> 로 내성문학상 수상
* 1962년 전작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발표
* 1965년 장편 <시장과 전장> 으로 한국여류문학상 수상
* 1969년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 시작
* 1972년 <토지> 로 월탄문학상 수상
* 1980년 원주시 단구동 정착
* 1993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 <파시>, 증보판 펴냄(나남출판사)
* 1994년 8월 15일 새벽 <토지> 탈고,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 선정
한국여성단체협의회로부터 올해의 여성상 수상
* 1995년 연세대 객원 교수 임용
* 1996년 3월 제6회 호암 예술상 수상
* 1996년 《토지》 전 16권 출간(솔출판사)
* 1997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임용
* 1998년 원주 토지문화관 개관
* 2000년 시집 《우리들의 시간》 간행
* 2001년 제1회 토지문화재 즈음 평사리 방문
* 2002년 1월 《토지》 전 21권 간행(나남출판사)
* 2004년 《가설을 위한 망상》 간행(나남출판사)
* 2008년 5월 5일 14:45 별세
▣ 최참판댁 건립 배경에 담긴 숨은 이야기
박경리 소설 토지의 드라마
* 1987년 광복 42주년을 맞아 KBS에서 박경리 선생을 집접 찾아뵙고 집필 중인 《토지》 를 드라미로 제작하고 싶다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탈고되지 않은 작품이라 거절하였는데도 방송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대하드라마 토지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주일청 연출, 최수지 주연, 1987년 10월 24일~1989년 8월 6일)
* 토지 드라마 방영 이후 악양면 평사리에는 많은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지만 지리산과 섬진강, 평사리 들판 외는 정작 평사리에는 최참판댁이 없었다.
하동군의 최참판댁 건립 노력
* 이에 하동군 석민아 공무원이 최참판댁 건립을 제안하였고, IMF구제금융시기라 매우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남 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던 하동출신 윤상기 공무원(현재 하동군수) 의 적극적인 노력 결과, 김혁규 도지사의 특별한 배려로 최참판댁 건립의 종잣돈이라 할 수 있는 도비 1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 이를 바탕으로 초대 민선군수였던 정구용 하동군수는 군비 등 예산 30억원으로 부지 3천평(10,000㎡)을 구입하여 1998년 마침내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이 현실세계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 최참판댁이 건립되고 2001년 하동의 문인들이 박경리 선생의 승낙을 받아 그해 11월 작가를 직접 모시고 <제1회 토지문학제>를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어느덧 20회를 맞는 토지문학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대한민국의 관광 메카, 평사리 최참판댁
* 소설 토지는 TV드라마로 인한 영상매체가 만나서 마술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토지의 완간 이후 첫 드라마인 SBS대하드라마 토지 52부(이종한 연출, 김현주 주연, 2004년 11월 27일~2005년 5월 22일) 방영으로 최참판댁 한옥 14동은 물론 용이네, 칠선내 등 초가 세트장 50여동이 설치되어 평사리는 단순한 문학작품의 배경지는 넘어 대한민국의 관광 메카로 자리 잡았다.
* 특히 민성 6기(윤상기 군수)에 들어 박경리 문하관을 건립하여 박경리 선생의 3대 보물(재봉틀, 국어사전, 소목장)을 비롯한 도서, 사진, 유품 등을 박경리 선생의 따님인 김영주 원주 토지문학관 이사장과 협의하여 상설 전시하게 되었다.
* 뿐만아니라 기존의 평사리문학관은 <문학&생명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최참판댁 바깥마당 확장, 박경리 동상제막, 한옥호텔 4동를 신축함으로써 그야말로 자연을 느끼며 하룻밤 묵어가는 휴양과 힐링 장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2022년 하동 차 엑스포 홍보
이 분은 토지 소설에서는 최치수 참판
최참판댁 누마루에 올라서
최치수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평사리 들판
최치수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평사리 들판
맨드라미
맨드라미
상사화
익어가는 조 이삭
채송화(포체리카종)
채송화(포체리카종)
채송화
천일홍
해바라기
평사리 마을에 있는 봉황대
평사리 들판의 연못공원
평사리 들판의 연못공원
평사리 들판의 연못공원
목수국
목수국
평사리 들판 부부송(겨울)
부부송
부부송(두 나무가 한 나무로 겹쳐서 보이는 지점)
부부송(두 나무가 한 나무로 겹쳐서 보이는 지점)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최참판댁 누마루
광양 정병욱 교수가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 / 망덕포구
정병욱 교수 가옥
* 위치 ;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
(망덕포구 바닷가)
* 서울대학교 교수, 1922~1982
* 고향 남해군 설천면 출생
* 부친 정남섭 선생이 거제시와 남해에서 교편을 잡다가 사직하고 1925년에 현 위치에 가옥 건립, 1934년 부터 양조장 운영.
* 정병욱은 윤동주 시인을 세상에 알린 공로자.
-정병욱 선생이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1941년 윤동주와 벗이 되었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가면서 시의 원고를 정병욱에게 맡겼고,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29세 나이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순절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정병욱은 1944년 1월 일본군에 끌려가면서 윤동주의 시원고를 부모에게 맡겼고,
부모가 이 가옥에서 윤동주의 시고를 보존했다.
-징병에서 살아 돌아온 정병욱은 윤동주 유고 31편을 묶어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1948년에 간행해서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윤동주 시비건립 등 기념사업에도 물신양면으로 앞장섰다.
* 정병욱은 한글과 국문학, 전통예술 판소리연구와 진흥에 힘쓰고, 1974년 판소리학회를 창립했다.
외솔상, 3.1문화상, 은관문화훈장 수상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정병욱은 윤동주 시 <흰그림자> 의 한자말 백영(白影)을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이 부분을 소개하는 이유는
처음 윤동주가 정병욱에게 초고를 보여 주었을 때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로 끝을 맺이은 것이었다.
감상을 묻자 '끝 부분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식으로 조언해 주었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연 '그러니 ~무상할게외다' 가 추가 되어 이 시가 완성됐다고 합니다.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배알도와 망덕포구가 해상보도교로 연결되었다.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
배알도와 망덕포구가 해상보도교로 연결되었다.
혈색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