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장 1-2절『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을 누구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태복음 25장은 24장의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연결하여 말씀하신 내용이다. 성경의 원문은 장과 절이 없지만, 16세기 경에 들어와서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장과 절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원문의 입장에서는 24장과 25장은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25장에는 열처녀의 비유 뿐만 아니라,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도 함께 등장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처녀의 비유에서 그 대상은 달란트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의 대상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므나의 비유에서와 같이 열(10)이라는 숫자는『완성, 충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열처녀는 모든 처녀를 의미한다. 처녀는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그래서 처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는 교회 신도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신부에게 주는 포도주를 마시는 자가 신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혼인 전통에서도 등장한다. 예비 신랑이 예비 신부 집에 방문해서, 포도주를 잔에 따르고 예비신부에게 주는데, 그녀가 마시지 않으면, 혼인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이 예수님이 주는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에 해당한다. 즉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죽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열처녀는 모두가 예수님을 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포도주를 마신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자는 마태복음 7장 25절에서 지혜로운 자에 대한 말씀이 있다.『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슬기로운 열처녀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는 말씀이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미련한 자는 7장 26절에서『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어리섞은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은 자들이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들을 대신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고 부활하셨는데, 오늘날 교회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완전히 믿지 않은 자가 많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악에 대해서 대속의 죽음 통해 다 이루셨는데, 여전히 신자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행하여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 역시 현재적으로 부활이 이루어지는데, 신자들이 육체가 죽어서 부활한다고 믿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은 자는 죄를 멀리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생명을 가지고 있다. 요한1서 5장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부활생명을 가진 자는 사탄이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은 자가 아닐 것이다. 또한 육체가 죽어서 부활한다고 믿는 자는 여전히 율법에 갇혀 있는 자인 것이다.
열처녀가 가지고 있는 등불에 대해서 잘 이해하여야만 한다. 등불에서 나오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빛(부활생명)이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그리고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도『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착한 행실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서 착한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영을 깨우는 일(부활)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행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영광을 받는다.
요한복음 5장 35절에서『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즉 요한은 빛(부활생명)을 받아서 그 빛(부활)을 비춘다는 의미다. 에베소서 5장 8절에서『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부활)이라 빛(부활)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예수님이 성도에게 부활생명을 주고, 성도가 부활생명을 받았으므로, 부활생명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즉 부활생명을 전하는 것이다.
열처녀는 모두 등불을 가졌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다른 기름통을 가진 것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고 받아드린 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처녀는 말씀을 통해서 부활을 믿지만,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된다는 것을 믿으므로, 결국 어둠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4절에서『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그릇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할 때 표현하기도 한다. 고린도후서 4장 6-7절에서『어두운 데에 빛(부활)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부활)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여기서,『어두운 데에 빛(부활)이 비치라』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보배는 그리스이시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인간을 의미한다. 보배가 질그릇에 담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다.『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성령께서 성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게 부활생명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부활생명을 가질 수 있다.
기름은 감람유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하는 감람유이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성령이 임한 것을 기름부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1서 2장 20절에서『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2장 27절에서『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성도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께서 들어오신 것(성령세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생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는 부활생명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빛(부활)이 되어 빛의 생명(부활)을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자가 된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육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완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택적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다. 부활이 육체가 죽어서 이루오 지는 것으로 믿기 때문에 현재적으로 부활생명이 없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자들이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허ㅏㄹ생명이 없는 자는 율법 아래 있으므로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지 않았으며, 성령이 없으며, 부활생명이 없으며, 미련한 다섯처녀에 해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