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토시 예찬(禮讚)
홍 성 자
“세상에 온몸이 따뜻하고 뭔지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도 안정되는 것 같고 편안해지네요, 나이 90먹도록 이런 건 처음이에요, 얼마나 좋은지 이 고마움을 어떻게 해요?”
어느 할머니께 무릎보호대를 해 보셨느냐고 하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신다. 무릎이 시리지 않으세요? 재차 물어보니, 나이가 이런데 무릎이 왜 안 시리겠느냐며 오히려 나에게 되묻는다. 연세가 높은데 요양원에 안 들어가신 것만 보아도 건강관리는 잘 하신 듯하다.
“이거 무릎토시라고 제가 이름붙인 것인데요, 무릎보호대라고도 해요. 다리 좀 제 쪽으로 뻗어보세요.”
내가 할머니의 바지를 발목에서부터 무릎 위로 올리고, 발에서부터 양쪽무릎을 포옥 싸게 신겨드리니 이게 뭐냐고 하신다. 한 30분만 있어 보시라고 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이 뭐예요?” 할머니는 신기하시다는 듯 따뜻함에 빠져 드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나이가 아래인 나에게 존댓말도 잊지 않으신다. 배울 점이다.
10여 년 전, 환갑이 지나 운동 삼아 남편과 댄스를 배우고자 하는데, 몇 번 하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댄스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이 일을 어쩌나?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로 운동선수들을 상대로 하는 무릎전문 의사를 찾아갔다. 사진 찍어 보니 나이 들어서 오는 현상인데 심한 상태는 아니고, 댄스 할 때는 무릎을 꽉 조여 주는 신축성이 강한 무릎보호대를 하라며, 맞는 것을 골라 보라고 하는데 샘플들도 다양하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서 해보았으나 무릎의 통증은 완화되지 않았다.
나 나름대로 연구하던 중, 샤워하면서 무릎에 뜨거운 물을 계속 부어대니, 무릎이 좋아 진 것 같아 두세 시간 안에 잠깐은 댄스를 할 수 있었다. 핫 파스를 붙여도 잘 낫지 않던데....... 뜨거운 물 혹은 따끈하게! 무릎을 따뜻하게 해 줄 무엇을 명심하며 찾고 찾았다.
늦가을 날 긴 부츠 신기는 좀 그렇고, 짧은 스커트를 입으면 종아리가 춥다. 그런 날을 위해 종아리만 따뜻하게 하는 종아리 토시가 있었다.
토시가 기억나는 것은, 어릴 적에 동네 할아버지들을 얼핏 보면 여름에 더울 때, 대나무인지 등나무인지 그런 것으로 가늘고 둥근 올로 잘 다듬어 엮어서 손이 들어 갈수 있도록, 앞뒤가 뚫린 통처럼 만든 것을 손목에 끼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을 토시라 하였다.
종아리 토시를 신고 위로 잡아당겨 무릎을 감싸게 하니 따뜻하고 좋았다. 샤워 할 때만 빼놓았다가 계속 하고 있었다. 그걸 하고 댄스를 하니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찾고 찾으면 만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무릎 토시가 좀 두껍고 자꾸 내려와 불편할 때도 있었다. 좀 얇고 더 따뜻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종아리토시가 눈에 들어왔다. 무릎토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인터넷에 나오는 한국의 무릎보호대 종류와는 다르다. 요즘 아래 내복을 보면 무릎 쪽에 두 겹을 대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내복하고도 다르다. 내가 말하는 무릎토시, 즉 무릎보호대는 피부에 부드럽게 딱 달라붙게 되어 또 하나의 스킨처럼 된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다. 어느 분은 헌 스웨터의 팔뚝을 잘라서 무릎에 끼운다고 하고, 어느 분은 털실로 짜서 내복 위에 한다고 했다. 도움은 될 것이다.
후배 하나가 허리 무릎 아프다고 늘 징징 댄다. 무릎토시를 주면서 해보라 하니 무릎은 두꺼운 걸로 싸는 것이 있고, 팔이 긴 잠옷을 입고 자도 두 팔이 시려서 늘 잠을 설치게 되었는데, 언니가 준 무릎토시를 팔뚝에 끼우고 자니 어찌나 따뜻하고 좋은지 진짜 좋다고 한다. 팔뚝에 끼고 잔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이 겨울에 낮에나 밤에나 하루 24시간 팔에다 하고 있으니 양 팔이 어찌나 포근하고 좋은지, 선배님 최고라고 입이 무성하다.
알고 보니 토시는 팔 토시도 있고, 목 토시, 종아리 토시 등, 이와 같이 무릎토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허리에 하면 허리토시가 될까?
무릎이 좀 아픈 분은 그곳에 핫 파스를 붙이고 그 위에 하면 더 효과적임을 알 수 있었다. 몰라서 못 사서 그렇지 원 달러 숍에 있는데, 별것도 아닌 것이 나에겐 참으로 별것이 되었다.
물론 무릎토시 가지고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무릎보호대 만이 능사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골프를 몇 십 년 치다 보니 너무 많이 걸어서 연골이 닳았다거나, 혹은 나이가 드니 스스로 연골이 닳아서 걸을 수가 없어 무릎수술하신 분들을 보았다. 그런 분들께는 이 무릎토시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겨울 옷 만드는 훌리스(Fleece)라는 소재의 실로 짜 나온 것인데, 주로 할머니나 나이 드신 여자분 들한테는 좋지만, 싸이즈가 한가지여서 보통 남자 분들이나 체격이 좋은 남자 분들한테는 너무 타이트하여 안 맞을 것이다. 왜소한 남자분이라면 맞겠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은 무릎이 훈훈하니 온 몸이 훈훈하다는 현상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무릎 건강을 위한 각자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나에겐 이런 스토리로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어찌 무릎토시 예찬을 하지 않으랴!
두 눈을 감고 무릎토시의 포근함 속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 엄마 냄새가 나는 듯, 산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의 별이 보이고, 울타리 섶에 피어있는 구슬 같은 이슬 꽃, 복사꽃 살구꽃이 아른아른, 흙냄새 풀냄새 향기로운 고향의 봄이 눈두덩을 간질인다.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 무릎토시는 아무리 극찬을 해도 넘치지 않으며, 나의 소중한 것 목록 중에 1번으로 꼽는다. 요단강 건너 갈 때도 꼭 하고 갈 것이다.
(202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