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아이다
Giuseppe Verdi, Aida
베르디의 [아이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화려한 개선장면일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2막의 개선장면이 끝나면 “이제 볼 거 다 봤다”며 집에 가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페라 [아이다]의 진짜 재미는 3막과 4막에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주인공들의 갈등과 긴장은 더욱 팽팽해지고 감동 또한 커진답니다. 그러니 2막 끝난 뒤 절대로 집에 가지 마세요.
그리고 코끼리, 말, 낙타의 행렬은 결코 오페라 [아이다]의 핵심이 아닙니다. 대규모 야외무대의 경우 넓은 무대를 볼거리로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동물들을 등장시키는 것뿐, 스토리나 음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요.
No. 아티스트 & 연주
1라다메스의 아리아 - 정결한 아이다 Celeste Aida / 플라시도 도밍고[테너]
2이집트인의 합창 - 가자! 신성한 나일 강가로 Su! del Nilo al sacro lido
3개선행진곡 - 오라, 승리자들이여 Vieni, guerriero vindice / 제임스 레바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4아이다 & 라다메스 - 지상이여, 안녕히 O terra, addio / 에이프릴 밀로 & 플라시도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동안 이집트 국왕은 운하 개통 기념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오페라를 공연하고 싶어 베르디에게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하가 개통되는 1869년에 맞춰 카이로 오페라 극장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와의 계약을 못 미더워했던 베르디는 일단 의뢰를 거절했다가, 프랑스의 이집트학 연구가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짤막한 소설 초고를 읽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소재로 대본을 써서 오페라를 만들면 대단히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아이다]였답니다.
1수에즈 운하와 이집트 오페라 극장
그러나 이 오페라는 운하가 개통되고 2년이나 지난 18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카이로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될 수 있었습니다. 한 해 전에 오페라 작곡은 끝났지만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는 바람에 파리에서 제작한 무대의상을 실어내 올 수가 없었다는군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파라오가 통치하는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와 나일 강변의 도시 테베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지금도 이집트의 관광상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레이저 빔을 쏘며 현장감 있는 야외공연을 펼치기도 하죠.
콜로세움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에서는 1913년부터 거의 매년 여름 [아이다]를 공연하고 있습니다.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6월 중순에 시작해서 8월 말까지 계속되는데, 올해는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아이다]가 무대에 오릅니다.
이 오페라에서 인물들의 갈등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분쟁이라는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갈등의 핵심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Radames. 테너), 원래는 에티오피아 공주지만 전쟁포로로 끌려와 이집트 왕궁에서 노예로 일하는 여주인공 아이다(Aida. 소프라노), 라다메스를 사랑하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Amneris. 메조소프라노), 이 젊은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입니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무대장면. 암네리스는 라다메스를 사랑하며, 아이다를 질투하는 이집트의 공주이다.
라다메스는 등장하자 곧 ‘정결한 아이다’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신탁에 따라 에티오피아군을 물리칠 이집트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됩니다. 공주 암네리스는 라다메스가 승전해 돌아오면 결혼하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가, 아이다가 라다메스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불같은 질투에 휩싸입니다.
라다메스는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고, 에티오피아 포로 가운데는 신분을 감추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Amonasro. 바리톤)가 섞여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 아이다를 시켜 라다메스에게서 이집트 군대의 기밀을 알아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밀을 누설한 라다메스는 절망에 빠집니다.
아모나스로가 아이다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가자고 라다메스를 설득할 때 암네리스 공주가 나타나 라다메스를 반역죄로 체포하게 하는데, 라다메스는 필사적으로 아이다와 아모나스로를 도망시킵니다.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지만, 라다메스는 신전 사제들의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은 채, 산 채로 돌무덤에 갇히는 사형선고를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라 짐작한 아이다는 미리 돌무덤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다가 라다메스를 맞이해 서로의 굳건한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2침략주의적 색채가 짙은 개선장면의 개선(改善)
[아이다]를 초연했을 때 베르디의 나이는 58세. 이탈리아 국민음악가이자 유럽 최고로 군림하는 오페라 작곡가였지만 베르디는 이미 자신의 시대가 지났다고 느꼈습니다. 온 유럽이 바그너 오페라에 환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한선율,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불협화음, 마치 현대 영화음악처럼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바그너의 음악이 오페라 관객을 매혹했던 것입니다. 베르디 역시 [돈 카를로] 등에서도 꾸준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특히 [아이다]에서는 현대적 화성이 더욱 돋보이게 작곡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까지 했던 베르디는 정치발전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품었습니다. 당대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들의 보수반동적인 태도와 선동정치에 환멸을 느꼈던 베르디는 구체적인 역사로부터 도망쳐 아득한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연출가들은 [아이다]의 개선행진 음악이 뿜어내는 전체주의적, 침략주의적 색채를 혐오해, 개선장면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연출하기도 합니다. 이 장면의 금관악기 소리가 화성적으로 귀에 거슬리는 이유는 편협한 애국주의를 비웃으려는 작곡가 베르디의 본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방과 천장이 밀폐된 돌무덤 속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맞이하는 죽음은 개인을 억압하고 흡수해버리는 거대한 사회에서 개인이 개인으로 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암네리스 공주와 이집트 사제들로 대표되는 무덤 밖 권력자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동시대 오페라 역시 이승에서 불가능한 사랑을 죽음을 통해 이루는 순수하고 강인한 주인공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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