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요일에 '과학과 온생명'을 강의하는 함양 온배움터 유상균입니다.
김용휘선생님의 첫 강의원고, 특히 제목인 '지금은 제2의 축의 시대'란 제목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답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올해초 온배움터 소식지에 거의 같은 제목의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김용휘선생님과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단 이 글은 시간에 쫓겨 그냥 뚝딱 쓰다보니 선생님의 글처럼 정리된 게 아니라 두서도 없고 완결된 내용도 아닙니다. 혹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께 혼란을 드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소개해 드립니다.
두 번째 ‘축의 시대(axial age)’의 선구자들
유상균(온배움터 생명문화연구소장)
길고도 힘들었던 2024년이 지나갔다.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기후에 있어서 그렇게 우려했던 ‘티핑 포인트’ 1.5도를 처음으로 넘긴 해로 기록된 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탄핵이야 우리나라만의 문제이지만 기후의 문제는 전 인류가 멸종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절박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을 휩쓴 가공할만한 AI의 발전은 결코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예견해주는 것 같지 않다.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많은 위기들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체제가 결합하면서 초래한 결과들이다. 17세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근대과학이 제공한 기계론적 자연관은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됨으로써 칼 맑스가 주장한대로 인간과 자연의 심각한 ‘신진대사의 균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처럼 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우리 모두는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으며, 설령 누군가 여러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자본이라는 벽을 넘어서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인류 전체의 총체적 사고 체계가 바뀌지 않고서는 어떠한 노력도 소용없어 보인다.
약 2,500년 전, 철기문명권에 접어든 시기 막강한 지배세력이 등장했을 때 피지배 세력인 민중들의 삶은 엄청난 고통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중국의 노자와 공자를 포함한 제자백가가, 인도에는 부처가, 그리스에는 현대과학의 뿌리가 된 자연철학자들이 등장하여 인류 사고의 축을 세웠다.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대로 이른바 ‘축의 시대(axial age)’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지금까지도 과학과 철학, 종교 등 인간의 전반적인 삶의 영역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기술문명과 자본주의에 찌든 인류가 브레이크 없이 절벽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 속에서 2,500년 전의 사건과 같은 거대한 전환이 필요로 하는 시대라 생각한다. 과거 축의 시대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되 그 이후로 인류가 누적해온 역사 및 지식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축의 시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축을 세울 수 있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듯이 미래의 어느 누가 나타나 모든 것을 정리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까운 우리의 역사 안에서 우리를 안내해줄 인물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생각을 토대로 축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미래를 밝혀줄 토대가 되어줄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각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본격적인 테크놀로지 시대라 할 수 있는 20세기 바로 직전, 즉 19세기의 인물들이 새로운 축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고 지구를 뒤바꿔놓을 정도의 과학기술이 등장한 것은 20세기이지만 이미 기계론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의 모순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그렸던 19세기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양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하에 있었던 서양의 경우에 해당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시 위대한 철학과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실현에 있어서 많은 모순을 드러낸 데다 19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힘에 굴복함으로써 오랫동안 쌓아온 전통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19세기는 동서양 모두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 19세기를 대표하면서 고대의 축의 시대를 아우르고 새로운 시대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서양에서는 생물학자로서 진화의 원리를 확립한 찰스 다윈, 자본주의를 비판한 철학자인 칼 맑스이며,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그리고 당대 최고의 신지식인인 혜강 최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선택은 내가 한국인이며 과학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제한된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누가 됐든 이는 그 출발점일 뿐이며 이들을 기반으로 보편적인 영역으로 확장함으로써 ‘또 하나의 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음 원고에서는 이들이 왜 새로운 시대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기술해보고자 한다.
첫댓글 와 거의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신기하고...'동시성'을 느끼게 하네요. 저도 너무 반갑고,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