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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기도문
진리 안에 자유를 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고
영적인 지혜가 넘쳐나게 하시어서
진리의 자유함을 느끼도록 하시옵소서
우리를 항상 자유롭게 하여 주시고
이 험한 세상에서도 진리 안에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 기도드리옵나이다
성경말씀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설교문: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믿으면 진리가 너희에게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우리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 진정으로 변화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께서는 자신은 세상의 빛이며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메시야라고 하면서 자신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였습니다.이 본문에서의 핵심적인 말씀은 예수님을믿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되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유대인들을 자유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31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진정한 제자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이를 꼭 붙들고 순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따르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오랜 기간동안 자주 만나면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메시아로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 하에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즉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시는 선지자요, 메시야요, 왕으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있을 수도 없는 사건 중에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의 빛으로,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제자도의 조건과 삶의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믿음의 고백을 넘어서서 삶의 진정한 변화와 영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적인 측면을 넘어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헌신적인 삶이 되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진실된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32절을 보십시요! ‘진리를 알고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자신을 믿고 있는,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하는 유대인들에게 한정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그들에게 그 믿음을 검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인데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죄의 매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에 그 말씀은 사람들에게 죄의 매임으로부터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통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가난과 피박으로부터 자유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우신 진리의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바로 죄에 얶매어 고통받고 있는 인간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붙들고 순종함으로써 죄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고, 그렇게 받은 구원은 주님을 향한 새로운 삶으로 이어가게 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 냉철한 판단을 하게 하옵소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대부분의 유대인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자신들이 이미 자유롭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왕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포로생활도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그냥 부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세상에 대해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지배와 억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지금도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이와같은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 세상에 퍼뜨린 것은 이 세상의 만민을 구원하고 만민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세상의 빛으로 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 빛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죄와 사망의 어둠에 빠져 타락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주변 강대국에게 함락당하게 하여 비참한 종노릇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통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비참하게 포로생활을 하였던 것은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여, 그들에게 새 영을 붓게 하고 새 마음을 주리라고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왔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으로 여호와의 성전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약속하신 새 언약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비참한 포로생활에서 되돌아왔지만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혹독하게 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종살이한 적이 없다고 우기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3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전히 종살이를 하고 있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살이에 대한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표면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종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을....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그들이 종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죄의 종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5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종이며 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종이기에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면 그들이 참으로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포로생활로부터의 해방인 것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예수님이 그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인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종노릇하는 그들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와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켰던 것입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대화 중에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서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대해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누구에게도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설명하신 다음에, 이 구절을 통해 참된 자유의 본질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그 분의 신성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아들'은 노예생활에서 자유를 주는 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한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아닙니다. 이는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즉 영적인 자유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자유를 주시는 분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또한 '참으로'라는 표현은 이러한 자유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자유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자유가 진정하고 영속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이라는 조건부 표현은 이 자유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인간이 영적으로 속박된 상태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죄와 율법주의, 거짓된 가치관 등 다양한 형태의 영적인 속박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단순히 죄 용서를 받는 것을 넘어서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포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된 자유의 본질과 중요성을 강력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적 삶과 영적 면에 큰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 자유 안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와같은 자유로움은 아직 영적인 속박 가운데 해매고 있는 자들에게 꼭 전해 주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함를 깊이 감사하며, 그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예수님은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의 진리로 우리가 자유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 영생의 진리이며 자유는 세상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을 벗어나는 자유인 것입니다. 따라서 영생의 진리는 죽음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자도의 삶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우리들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끝맺음의 기도문
언제나 자유함을 누리게 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아무리 척박하고 어려울 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누리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언제나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