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귀환시대 1- 에스라.
1.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기원전 597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 예루살렘 성읍은 파괴되고, 성전은 기원전 586년 7월 18일에 불탔다(참조, 왕하24장).
2.다니엘및에스겔과 함께 수많은 유다 백성들이 또한 바벨론에 끌려갔다. 다니엘과 에스겔은 모두 거기에서 봉사하며 글을 기록했다. 한 사람은 제사자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총리 대신이었다.
3.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 10월에 고레스대왕이 이끄는 메대와 바사 군대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그 당시 바벨론 왕 벨사살이 살해되었다(참조, 단5장)
4. 그때에 고레스는 자신의 유능한 장군인 메대의 다리오(또한 역사에 있어서 고브리아스)를 바벨론을 통치하는 왕으로 올려놓았다.
5. 고레스는 통치의 첫해 기간 중에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해도 좋다는 칙령을 내렸다.
(1) 예레미야는 포로기의 기간을 예언했다(참조, 렘 25:11,12;렘29:10).
(2) 이사야는 사실상 약 170년전에고레스라고하는 사람의 이름을 일컬었다(참조, 사 44:28;렘45:1).
6. 살아남은 유대인들에 의한 세 가지 구별되는 귀환이 있다.
(1) 스룹바벨은 기원전 536년에 최초로 귀환을 지휘했다.
(2) 에스라은 기원전 455년에 두번째로 귀환을 지휘했다.
(3) 느헤미야는 기원전 445년에 세번째로 귀환을 지휘했다.
7. 기원전 535년에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다. 얼마 동안 그것은 다양한 사탄의 방해 활동에 의해 중단되었다.
8. 이 기간 중에 학개와 스가랴는 의기소침한 남은 자들에게 예언 말씀을 전했다.
9. 기원전 516년 10월에 성전이 완성되어 하나님께 봉헌되었다.
10. 어떤 면에서 귀환 기간과 관련된 바사 왕들은 적어도 6명이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1) 바벨론을 무찌르고 귀환 칙령을 내린(스 1:1-4) 고레스 대왕(기원전 539-530)
(2)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기원전 530-522)
(3) 스메르디스(기원전 522-520)
(4) 다리오 대왕(기원전 520-486)
이 사람은 메대이 다리오와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 다리오 대왕은 캄비세스의 죽음이 가져온 혼란을 수습한 후에 질서를 세우고 바사 제국을 구했다. 그는 성전 축조를 계속하도록 허용했다.
(5) 크세르크세스 1세 (기원전 486-465)
그는 다리오 왕의 아들이었으며 또한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와 동일 인물이다.
(6) 아닥사스다(기원전 465-424)
그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이었으며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환할 때 왕좌에 있었다(스 7:1,8;느 2:1).
I. 스룹바벨이 지휘하던 시대(스 1-6장)
1.공포하는왕
1) 조서(스 1:1-4)
(1)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유대인들의 귀환에 대한 칙령을 내리게 하신다.
(2) 왕은 왕국을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3) 칙령의 언어는 다니엘 자신이 고레스를 위해 기초했음을 시사해 준다.
2) 귀환에 대한 열기가 일어남(단 1:5-11)
(1)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유대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귀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셨다. 비록 세 지파만 언급되지만(유다, 베냐민, 레위), 우리는 다른 구절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열 두 지파 전체에서 나온 의심할 여지없는 대표단이 존재했음을 안다.
주 :
① 역대하 11:13-17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내전 당시에 12지파 모두로부터 온 다양한 개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음을 본다.
② 예수는 이스라엘 온 집을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마 10:6).
③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가 마태복음 4:13,15에서 언급된다.
④ 안나는 아셀 지파 출신이었다(눅 2:36).
⑤ 바울은 "우리 열 두 지파"에 대해 말하고 있다(행 26:7).
이 구절은 오직 '영국의 이스라엘주의'라는 잘못된 교리를 반박한다. 그 교리는 "잃어버린 열 지파"가 사실 미국과 영국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2) 바벨론에서 살아남은 히브리 사람들은 이러한 모험적인 사업에 기여했다.
(3) 고레스 왕은 느부갓네살 왕이 약 60여년전에예루살렘성전에서 노획했던 금 그릇을 돌려 주었다. 금 그릇과 은 그릇은 총 5,400여 개였다.
2. 회복하는 백성
1) 그들의 계보(스 2:1-57)
귀환했던 사람들의 가계가 후손을 위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지도자였다. 이 겸손한 사람은 여호야긴의 손자였다(스 3:2;대상 3:19). 그는 성전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으며, 종종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개인적으로 용기를 붇돋워 주셨다(참조, 학 1:14;스2:4,21,23;슥 4:6,7,9,10). 이렇게 귀환을 한 사람은 전부 42,360명이었다.
2) 그들의 신학(스 3:1-13)
(1)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제단이 세워지고 다시 희생 제물을 바쳤다. 바벨론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마지막 대제사장의 손자인 예수아가 이것을 지휘했다. 이 예수아(학개와 스가랴는 여호수아라고 부름)가 포로 귀환 시대의 첫 대제사장이 되었다.
(2) 최초로 지켜져야 할 신성한 절기는 초막절이었다.
(3) 기원전 535년 6월에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다.
(4) 기초가 놓였을 때 거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 기공식 계획은 이전과 이후의 어떤 다른 것과도 구별되었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에스라 3:10-13에 나오는 이상한 묘사에 유의하라.
3. 중상모략하는 악마
사탄은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해하려 했다.
1) 그는 타협을 시도했다(스 4:1-3). 유다의 적들은 그들이 예배를 위한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모두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제의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거절했다.
2) 그는 중상모략하려고 했다(스 4:4,5). 그들의 적은 그들에 관한 거짓말을 공직에 있는 바사 사람에게 했다. 그들은 왕(캄비세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역의 온상으로 아뢰었다. 그리고 왕이 모든 건축 행위를 중단하도록 해달라고 제안했다. 캄비세스는 이에 찬성하고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 도와 주시는 하나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셨다.!
1) 학개와 스가랴는 모두 이 당시에 백성에게 위안을 주는 사역을 시작한다(스 5:1,2).
2) 새로운 바사 왕인 다리오 대왕은 그 일에 대해 개인적 관심을 갖는다. 우리가 성서를 더듬어 갈 때 고레스가 내린 칙령의 본래 내용이 드러난다. 그는 유대인이 성전을 재건해도 허락했다. 그러므로 다리오는 성전 축조를 계속하라고 명령하고 그 경비를 자신의 공금에서 지불하라는 칙령을 내린다(스 6:19).
Ⅱ. 에스라가 지휘하던 시대(스 7-10장)
에스라6장과7장 사이에는 약 60년의기간이있다.이시간에 일언났던 그러한 사건에 관해 성서에서는 어떠한 기록도 하지 않고 있다. 맥기(J. Vernon McGee)는 에스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는 완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인물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에스라는 요시야가 통치하는 기간 중에(대하 34:14)율법 사본을 발견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후손이었다(스 7:1). 제사장으로서 에스라는 포로 기간 동안 하나님께 봉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에 자기 시간을 쏟았다. 그는 이미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다(스 7:6). 에스라는 부흥사이며 개혁자였다. 에스라에 의한 부흥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시작되었다(참조, 느 8장).또한그는역대상,하와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는 시편 119편의 기자인 것 같다. 그는 회당을 조직했고 서기관의 체계를 세웠으며, 성서의 정경을 정하고 시편을 정리하였다"(「성서를 통해」, p. 117).
1. 왕으로부터 상호 협조(스7장)
바사의 군주인 아닥사스다는 바벨론을 떠나 귀환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에스라의 계획을 상당히 도와주었다. 왕은 세 집단에게 보내는 조서를 내렸다.
1) 바벨론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귀환하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에스라가 모으고 있는 특별한 제물을 자유로이 바치도록 권유했다(스 7:11-20).
2) 유브라데 강 서편 모든 바사 고지기에게 : 그들은 에스라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마련해줘야 했다.
3) 에스라 자신에게 : 그는 공직자들을 선출하고 지명해야 했으며, 유브라데 강 서편에 사는 유대 백성들을 다스려야 했다(스 7:25,26).
2. 귀환 여행을 위한 준비(스 8장)
1)에스라는거의1,500명의 남자 및 그 가족과 함께 기원전 455년 3월 중순에 바벨론을 떠난다.
2) 도중에 무리들은 점호를 위해 아하와 강(유브라네강의 지류)가에 모인다. 에스라는 오기로 지원한 레위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고 놀란다(스 8:15).
3) 그때 그는 대표를 즉시 보내어 귀환길에 오르도록 몇몇 레위인들을 설득한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곧 거의 3백명의 레위 사람이 무리에 가담하기 때문이다(스 8:16-20).
4) 그때 에스라는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여행이 무사할 것을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기에서 그의 고백은 흥미롭다(스 8:22).
5) 그때 에스라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가져왔던 예물을 받은 금, 은 등의 운반을 맡도록 12명의 두목을 지명한다. 이것은 금, 은으로 환산해서 총 오백만 달러가 넘는 상당한 액수였다(스 8:24-29)
6) 기원전 455년 8월에 소수의 무리가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한다.(스 7:9;스8:31,32).
3. 학사 에스라의 탄원(스 9:1-15)
1) 그때 에스라는 유대인이 이교적인 관습을 행하며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이미 성읍에서 말씀의 증거를 더럽혔음을 안다(스 9:1,2).
2) 이 위대한 성서 교사는 즉시 깊은 슬픔에 잠겨 이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쏟는다. 에스라 9:5-15에 나오는 에스라의 기도는 다니엘(단 9장)과느헤미야(느9장)의 기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4. 백성의 성결(에스라 10장)
1) 죄에 대한 인식이 지휘자들의 마음에 즉시 자리잡았으며 그들은 곧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일치한다.
2) 모든 남자들이 12월 4일에 예루살렘에 나타날 것을 명령하는 선포가 유다 전역에 걸쳐 내려진다.
3) 에스라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방 아내들을 버리는 데 동의한다. 에스라는 이와 관련된 합법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도록 여러 지휘자들을 임명한다. 다음해의 3월 15일에 문제가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