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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4: The lunar eclipse tablet LBAT 1421
C-4: 월식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21
The preserved part of LBAT 1421 records two eclipses observed in Babylonia in the sixth and twelfth month of year “42”, evidently of the reign of Nebuchadnezzar: 점토판 LBAT 1421에는 바빌로니아에서 네부갓네살의 치세 "42"년의 6번째와 12번째 달에 관측된 두번의 월식이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Year) 42, (month) Ululu, (day) 14. It rose eclipsed [. . .] and became bright. 6 (USH) to become bright. At 35° [before sunset] . 42(년), 울룰루 (월), 14 (일) 달이 떠 월식이 일어나고[. . . ] 밝아졌다. 6(USH)이 밝아짐. [일몰 전] 35도에서. (Month) Addaru, (day) 15, 1,30° after sunset [. . .]. 25° duration of maximal phase. In 18° it [became bright.] West(wind) went. 2 cubits below γ Virginis eclipsed [. . . . . .] 아다루 (월), 15 (일), 일몰 후 [. . . ]. 1,30° 최대 위상(=개기 월식)이 지속되는 시간 25°. 18도가 되자 [날이 밝아졌다.] 서(풍)이 지나갔다. 처녀자리 2 큐빗 아래서 월식이 일어났다 [. . . . . .] Provided that these eclipses occurred in the forty-second year of Nebuchadnezzar—and there was no other Babylonian king ruling that long in the sixth, seventh, or eighth centuries B.C.E.—they should be looked for in 563/62 B .C.E. And there is no difficulty in identifying them: The first, dated in the sixth month, occurred on September 5, 563 B.C.E., and the second one, dated in the twelfth month, occurred on March 2–3, 562 B.C.E. 이 월식이 느부갓네살 42년에 발생했다면ㅡ 기원전 6세기, 7세기나 8세기를 통털어서 그렇게 오랜 기간을 통치한 다른 바빌로니아 왕은 없었다 ㅡ 기원전 563년/62년에 그 월식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63년 9월 5일에, 두 번째는 기원전 562년 3월 2-3일에 발생했다. The first eclipse “rose eclipsed”, meaning that it began some time before sunset, so that when the moon rose (at about 18:30 at that time of the year), it was already eclipsed. This agrees with modern calculations, which show that the eclipse began about 17:00 and lasted until about 19:00.58 첫 월식이 "월식이 일어난 채 달이 뜨고"라는 말은 해가 지기 얼마 전에 월식이 시작되어 달이 떳을 때 이미 월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월식이 약 17:00에 시작되어 약 19:00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현대의 계산과 일치한다.5 |
The tablet records two lunar eclipses dated to months six and twelve of year "42," evidently of Nebuchadnezzar. The details given help to identify them with eclipses that occurred on September 5, 563 and March 2-3, 562 B.C.E. respectively. — From A. J. Sachs, Late Babylonian Astronomical and Related Texts (Providence, Rhode Island: Brown University Press, 1955), p. 223. 이 점토판은 네부갓네살 치세 42년 6월과 12월로 날짜가 적힌 두 번의 월식을 기록하고 있다. 세부사항들은 기원전 563년 9월 5일과 기원전 562년 3월 2-3일에 각각 월식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 A. J. 삭스, 후기 바빌로니아 천문학 및 관련 문헌(신의 섭리, 로데 섬: 브라운 대학 출판부, 1955년), 223면. |
The canon of Liu and Fiala confirms that the second eclipse was total. “1,30° [six hours] after sunset” probably refers to the beginning of the total phase, which began after midnight, at 0:19, and lasted until 2:03, i.e. it lasted for 104 minutes.59 This is in good agreement with our text, which gives the duration of the maximal phase as 25 USH, that is, 100 minutes. 류와 피알라의 목록을 보면 두 번째 월식이 개기월식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몰 후 1,30°[6시간]"은 아마도 자정 이후 0:19에 시작하여 2:03까지 지속된 월식 전체 과정 중 시작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104분 동안 지속되었다.59 이것은 개기 월식의 지속시간을 25 USH, 즉 100분으로 나타낸 본 문서의 내용과 잘 일치한다. In the chronology of the Watch Tower Society, Nebuchadnezzar’s forty-second year is dated to 583/82 B .C.E. But no eclipses of the type described in our text occurred in that year.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기에는 네부카드네자르의 마흔 두 번째 해가 기원전 583년/82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해에 우리가 지금 살펴 본 문서에 기술된 유형의 월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A possible alternative to the first one might have been that of October 16, 583 B.C.E., had it not began too late—at 19:45 according to Liu and Fiala—to be observed at moonrise (which occurred at about 17:30). And as for the second eclipse, there were no eclipses at all that could be observed in Babylonia in 582 B.C.E.60 첫 번째 월식의 가능한 대안은 기원전 583년 10월 16일인데, 류와 피알라의 목록에 따르면 19:45에 있었다ㅡ, 월출이 약 17:30에 있었으므로 월식이 너무 늦게 시작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것이다(월출보다 2시간 이상이 지나 시작된 것은 문서의 내용과 맞지 않음). 그리고 두 번째 관측되어야 할 월식은 기원전 582년 바빌로니아에서는 전혀 없었다.60 The lunar eclipse texts presented above provide four additional independent evidences for the length of the Neo-Babylonian period. 위에 제시된 월식 문서는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길이를 나타내는 4개의 독립된 증거를 추가적으로 제공한다. The first text (LBAT 1417) records lunar eclipses from the accession year and eighteenth year of Shamash-shum-ukin and the sixteenth year of Kandalanu, turning these years into absolute dates that effectively block any attempt to add even one year to the NeoBabylonian period, far less twenty. 첫 번째 문서(LBAT 1417)는 샤마시-슈무-우킨(Shamash-shum-ukin) 즉위년과 18년 그리고 칸달라누 치세 16년 이후의 월식을 기록하고 있다 이 연도들은, 절대 연대로 고정되어 신 바빌로니아 시대에 20년은 커녕 그에 훨씬 못 미치는 1년이라도 더해보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시킨다. The other three texts (LBAT 1419, 1420, and 1421) records dozens of lunar eclipses dated to various years within the reign of Nebuchadnezzar, thus time and again turning his reign into an absolute chronology. It is like fastening a painting to a wall with dozens of nails all over it, although but one would suffice. 나머지 세 문서(LBAT 1419, 1420, 1421년)는 느부갓네살 치세 내의 여러 해에 걸쳐 수십 차례의 월식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치세가 절대 연대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벽에 그림을 고정하는 데에 못 하나면 충분하지만, 수십 개의 못이 박혀 있어 그림을 고정시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과 같다. Similarly, it would have sufficed to establish only one of Nebuchadnezzar’s regnal years as an absolute date to overthrow the idea that his eighteenth year began in 607 B.C.E. 비슷하게도, 그것은 기원전 607년에 느부갓네살의 통치 18년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느부갓네살의 통치 기간 중 하나의 증거만으로 절대 연대를 설정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Before concluding this section on the lunar eclipse texts, it seems necessary to forestall an anticipated objection to the evidence provided by these texts. As the Babylonian astronomers as early as in the seventh century B.C.E. were able to compute in advance certain astronomical events such as eclipses, could it be that they also, in the later Seleucid era, were able to retrocalculate lunar eclipses and attach them to the chronology established for the earlier centuries? Could the lunar eclipse texts simply be the results of such a procedure?61 월식 기록에 대한 본 섹션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러한 문서가 제공하는 증거에 대해 예상되는 반박을 사전에 차단시킬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7세기 바빌로니아 천문관측자들은 일찍부터 월식과 같은 특정한 천문학적 사건들을 미리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후기 셀레우코스 시대에, 그들이 월식을 재계산하여 셀레우코스 왕조 초기 기간 동안 확립된 연대기에 첨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월식 기록에 대한 문서가 단순히 그런 절차의 결과일 수도 있었을까?61 It is certainly true that the various cycles used by the Babylonians for predicting eclipses just as well could be used for retrocalculating eclipses, and there is a particular small group of tablets showing that Seleucid astronomers did extrapolate such cycles backwards in time.62 바빌로니아인들이 월식을 예측하기 위해 사용한 다양한 주기가 월식을 역산(逆算)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셀레우코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주기를 이용하여 과거를 추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별한 작은 표들이 있다.62 However, the observational texts record a number of phenomena that were impossible for the Babylonians to predict or retrocalculate. Of the records in the diaries and planetary texts Professor N. M. Swerdlow points out that, although the distances of planets from normal stars could be predicted, “Conjunctions of planets with the moon and other planets, with their distances, could neither be calculated by the ephemerides nor predicted by periodicities.”63 With respect to lunar eclipses, the Babylonians could predict and retrocalculate their occurrences, “but none of the Babylonian methods could have allowed them to calculate circumstances such as the direction of the eclipse shadow and the visibility of planets during the eclipse.”64 그러나 관측 기록이 담긴 문서에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예측하거나 역산할 수 없었던 많은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스워들로 교수는 천문일지와 행성의 관찰 문서에 실린 기록들 중 "일반 별과의 거리는 예측할 수 있지만, 달과 다른 행성과의 거리는, 그들의 책력으로 계산될 수 없고 주기율로도 예측할 수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63 달의 월식과 관련하여, 바빌로니아인들은 그 발생을 예측하고 역산할 수 있었지만, 바빌로니아인들이 사용한 어떤 방식도 월식 그림자의 방향과 월식이 일어나는 동안 행성의 가시성과 같은 상황을 계산할 수는 없었다."64 Thus, although the Babylonians were able to calculate certain astronomical phenomena, the observational texts record a number of details connected with the observations that they were unable to predict or retrocalculate. This disproves conclusively the idea proposed by some that the data may have been calculated backwards from a later period. 따라서, 바빌로니아인들이 특정한 천문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를 계산할 수 있었지만, 관측 문서들은 그들이 예측하거나 역산할 수 없었던 관측과 관련된 많은 세부사항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기록된 정보가 이후 시기로부터 거꾸로 역산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릇됨을 단정적으로 입증한다. |
SUMMARY AND CONCLUSION
요약과 결론
In the previous chapter the length of the Neo-Babylonian era was firmly established by seven different lines of evidence. All of them were based upon ancient Babylonian cuneiform texts such as chronicles, kinglists, royal inscriptions, and tens of thousands of economic, administrative, and legal documents from the NeoBabylonian period. 앞 장에서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길이는 일곱 가지의 증거들에 의해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이 모두는 고대 바빌로니아 설형문자로 기록된 문서(연대기, 왕들의 명부, 왕실 비문과 신 바벨로니아 시기의 것으로 출토된 수만개의 경제, 행정 그리고 법적 문서에 근거한 것이다. In this chapter another seven independent evidences have been presented. All of these are based on ancient Babylonian astronomical texts, which provide a whole string of absolute dates from the sixth and seventh centuries B.C.E. These tablets establish—over and over again—the absolute chronology of the Neo-Babylonian era: 이 장에서는 또 다른 7개의 독립된 증거들이 제시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고대 바빌로니아 천문관측 문서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문서들은 기원전 6세기와 7세기 사이의 완전한 연대를 제공한다. 이러한 점토판들은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절대 연대를 잇달아 확정시키고 있다. |
1) The Astronomical diary VAT 4956 1) 천문일지 VAT 4956 The diary VAT 4956 contains about thirty completely verified observed astronomical positions from Nebuchadnezzar’s thirtyseventh regnal year. VAT 4956 천문일지에는 느부갓네살 통치 37년에 천문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관찰 위치가 약 30군데 포함되어 있다. Such a combination of astronomical positions is not duplicated again in thousands of years. Consequently, there is only one year which fits this situation: 568/67 B.C.E. 이러한 천문학적 위치의 조합은 수천년이 지나더라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에 맞는 해는 기원전 568년/67년밖에 없다. If this was Nebuchadnezzar’s thirty-seventh regnal year, as is twice stated on this tablet, then 587/86 B.C.E. must have been his eighteenth year, in which he desolated Jerusalem. 만일 이것이 이 점토판에 두 번이나 언급된 바와 같이 느부갓네살의 서른 일곱 번째 통치 연도였다면,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만든 그의 열여덟 번째 통치년은 기원전 587년/86년이 되는 것이다. (2) The astronomical diary B.M. 32312 (2) 천문일지 B.M. 32312 B.M. 32312 is the oldest preserved astronomical diary. It records astronomical observations that enable scholars to date this tablet to 652/51 B.C.E. B.M. 32312는 보존된 가장 오래된 천문일지이다. 여기에는 학자들이 이 점토판의 연대를 기원전 652/51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천문관측이 기록되어 있다. A historical remark in the text, repeated in the Babylonian chronicle B.M. 86379 (the “Akitu Chronicle”) shows this to have been the sixteenth year of Shamashshumukin. The diary, then, fixes his twenty-year reign to 667–648 B.C.E., his successor Kandalanu’s twenty-two-year reign to 647–626, Nabopolassar’s twenty-one-year reign to 625–605, and Nebuchadnezzar’s forty-three-year reign to 604–562 B.C.E. 바빌로니아 연대기 B.M. 86379 ("아키투 연대기")에서도 나오지만 이 문서의 역사적 내용은 이것이 샤마시-슈무-우킨의 16번째 통치년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일지는 그의 20년 통치 기간을 기원전 667~648년으로, 그의 후계자 칸달라노의 22년 재위 기간을 기원전 647~626년으로, 나보폴라사르의 21년 재위 기간을 기원전 625~605년으로, 그리고 네부카드네자르의 43년 재위 기간을 기원전 604~562년으로 확정하고 있다. This, again, sets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and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t 587/86 B.C.E. 이것은 느부갓네살의 18번째 해와 예루살렘의 멸망 연도를 기원전 587/86년으로 또다시 고정시킨다. (3) The Saturn tablet B.M. 76738+76813 (3) 토성 관찰 점토판 B.M. 76738+76813 The Saturn tablet records a successive series of positions of the planet Saturn at its first and last appearances , dated to the first fourteen years of Kandalanu. 토성 관찰 기록이 담긴 점토판은 칸달라노의 첫 14년 동안의 기록으로서, 토성이 처음 나타난 때부터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일련의 위치들이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Such a pattern of positions, fixed to specific dates in the Babylonian lunar calendar, is not repeated again in more than seventeen centuries. 바빌로니아 음력으로 특정 시기에 나타난 이러한 토성 위치의 패턴은 적어도 1,700년 동안은 두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This text, then, again fixes Kandalanu’s twenty-two-year reign to 647–626 B.C.E., Nabopolassar’s twenty-one-year reign to 625–605, and Nebuchadnezzar’s reign to 604–562 B.C.E. 따라서, 이 문서는 칸달라누의 22년 재위를 기원전 647–626년, 나보폴라사르의 21년 재위 기간을 기원전 625–605년, 느부카드네자르의 재위 기간인 기원전 604–562년으로 또다시 고정시킨다. (4) The lunar eclipse tablet LBAT 1417 (4) 월식 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17 LBAT 1417 records four lunar eclipses, each succeeding the other at intervals of 18 years and nearly 11 days, an eclipse period known as the Saros cycle. LBAT 1417은 사로스 주기로 알려진 약 18년 11일의 간격으로 4번의 월식이 기록되어 있다. The eclipses are dated to the third year of Sennacherib’s reign in Babylonia, to the accession year and the eighteenth year of Shamashshumukin, and to the sixteenth year of Kandalanu, respectively. 기록된 월식의 시기는 바빌로니아의 센나케리브 통치 3년, 샤마시-슈무-우킨 즉위년과 재위 18년, 칸달라노 1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The four interrelated eclipses may be clearly identified with a series of eclipses that occurred in 686, 668, 650 and 632 B.C.E. This tablet, therefore, once again fixes the absolute chronology for the reigns of Shamashshumukin and Kandalanu, and also— indirectly for the reigns of Nabopolassar and Nebuchadnezzar. 이 4개의 서로 연관된 월식은 기원전 686, 668, 650, 632년에 발생한 일련의 월식으로 명확하게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점토판은 샤마슈무킨과 칸달라누의 치세를 확정시키며 간접적으로는 나보폴라사르와 느부갓네자르의 치세에 대한 절대 연대를 다시 한번 고정시킨다. (5) The lunar eclipse tablet LBAT 1419 (5) 월식 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19 LBAT 1419 contains reports of an uninterrupted series of lunar eclipses at 18-year intervals directly from the Neo-Babylonian era itself. LBAT 1419는 신바빌로니아 시대부터 18년 간격으로 연속해서 월식이 발생한 관찰 기록을 담고 있다. Two of the eclipses are dated to the fourteenth and thirtysecond years of Nebuchadnezzar. They may be identified with eclipses that occurred in 591 and 573 B.C.E., respectively, confirming again at these points the chronology established for the reign of this king. 이 월식 중 두 가지는 느부갓네살 통치14년과 32년에 발생한 기록이다. 그것들은 각각 기원전 591년과 573년에 일어난 월식으로 확인될 수 있으며, 그 시점을 기준으로 왕의 치세에 대해 연대기가 정확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Although the royal name and year number are missing in the report on the next eclipse in the 18-year series, the very detailed information makes it easy to identify it with the eclipse that occurred on October 6–7, 555 B.C.E. This date, therefore, confirms and adds further strength to the two earlier dates in the 18-year series, 573 and 591 B.C.E. 비록 18년 후의 다음 월식에 대한 보도에는 왕실 이름과 연도 번호가 누락되어 있지만, 매우 상세한 정보를 통해 기원전 555년 10월 6일부터 7일까지 일어난 월식으로 쉽게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날짜는 기원전 573년과 기원전 591년이라는 두 개의 연대를 확인하고 더욱 보강시켜준다. As these years correspond to Nebuchadnezzar’s thirty-second and fourteenth years, respectively, his eighteenth year is, of course, once again fixed to 587/86 B.C.E. by this tablet. 이 해가 느부갓네살의 서른 두 번째와 열네 번째 해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그의 열여덟 번째 해는 이 점토판에 의해 또 한번 기원전 587/86년을 확인시켜준다. (6) The lunar eclipse tablet LBAT 1420 (6) 월식 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20 LBAT 1420 gives an annual record of lunar eclipses from the first to the twenty-ninth years of Nebuchadnezzar, except for a gap between his eighteenth and twenty-third years. The entries in which regnal year numbers are preserved—about a dozen—give details on some two dozens of eclipses, all of which are found exactly in the B.C.E. years that has been established earlier for the regnal years mentioned in the text. LBAT 1420은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 18년과 23년 사이의 간격을 제외하고 첫 번째 해부터 29년까지의 월식에 대한 기록을 매년 제공한다. 십여 개의 연도가 보존되어 있는 항목에는 약 20여 개의 월식에 대한 세부 정보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모든 월식은 문서에 언급된 연도가, 이미 확립된 기원전 연도와 정확히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As this specific compound of dated lunar eclipses does not tally with any corresponding series of eclipses that occurred in the immediate preceding decades, this tablet alone suffices to establish the absolute chronology of Nebuchadnezzar’s reign.65 날짜가 적힌 이 월식의 특정 조합은 바로 앞서 일어난 수십 년 동안의 일련의 월식과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점토판만으로도 느부갓네살 치세의 절대 연대를 확립하기에 충분하다.65 (7) The lunar eclipse tablet LBAT 1421 (7) 월식 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21 LBAT 1421 records two eclipses dated in the sixth and twelfth months of year “42”, evidently of Nebuchadnezzar, generally dated to 563/62 B.CE. And both eclipses are also actually found in these months of that year. But no eclipses of the type recorded in the text occurred in 583/82 B.CE.―the date of Nebuchadnezzar’s forty-second year in the chronology of the Watch Tower Society. This tablet, therefore, provides an additional proof of the falsity of that chronology. LBAT 1421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원전 563/62년인 느부갓네살 통치 "42"년 6번째 달과 12번째 달에 각각 월식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고 두 월식은 실제로 그해의 이러한 달들에 있었던 것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문서에 기록된 유형의 월식이, 워치타워 협회의 느부갓네살 42년인 기원전 583/82년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점토판은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기가 거짓임을 입증하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8-11) Another four astronomical tablets (8-11) 다른 네개의 천문 기록이 담긴 점토판 The seven astronomical texts discussed above provide more than enough evidence against the Watch Tower Society’s 607 B .C.E. date. And yet this is not all. Another four texts have recently been published that will be described only briefly here. Translations of three of these are published in Hunger, ADT V (2001). 앞서 논의된 7개의 천문관측의 문서들은 워치타워 협회의 기원전 607년이 아니라는 증거를 충분히 제공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겠지만, 또 다른 4개의 추가 문서가 최근에 발간되었다. 이 중 3개의 번역본이 헝거의 ADT V(2001)에 실렸다. The first is LBAT 1415 which, as mentioned on page 174 above, is part of the same tablet as LBAT 1417. It records lunar eclipses dated to year 1 of Bel-ibni (702 B.C.E.), year 5, evidently of Sennacherib (684 B.C.E.), and year 2, evidently of Shamash-shumukin (666 B.C.E). 첫 번째는 LBAT 1415로, 앞부분 174면에서 언급했듯이, LBAT 1417과 같은 점토판의 일부이다. 그것은 분명히 벨이브니 통치 1년, 센나케리브의 통치 5년, 그리고 샤마슈무킨의 통치 2년의 월식들을 기록하고 있다. The second is lunar eclipse text no. 5 in Hunger, ADT V. It is badly damaged and the royal name is missing, but some historical remarks in the text shows it is from the reign of Nabopolassar. One of the eclipses described is dated to year 16 and may be identified with the eclipse of September 15, 610 B.C.E. 두 번째는 헝거의 ADT V 에 나오는 월식 문서 5호이다. 훼손이 심하고 왕명이 누락되었지만, 일부 역사적 사실의 언급은 나보폴라사르 치세의 것임을 보여준다. 기술된 월식들 중 하나는 통치16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원전 610년 9월 15일의 월식으로 확인될 수 있다. The third is text no. 52 in Hunger, ADT V. This is a planetary text containing over a dozen legible records of the positions of Saturn, Mars, and Mercury dated to years 14, 17, and 19 of Shamash-shum-ukin (654, 651, and 649 B.C.E), years 1, 12, and 16 of Kandalanu (647, 636, and 632 B.C.E.), and years 7, 12, 13, and 14 of Nabopolassar (619, 614, 613, and 612 B.C.E.). Like some of the previous texts discussed above, these three texts effectively prevent all attempts at lengthening the chronology of the NeoBabylonian period. 세 번째는 헝거의 52호 문서이다. 이것은 샤마시-슈무-우킨의 14년, 17년, 19년(기원전 654, 651, 649년), 칸달라누 치세 1년, 12년 그리고 16년(기원전 647, 636 그리고 632년)과 나보폴라사르 치세 7년, 12년, 13년, 그리고 14년(기원전 619, 614, 613, 612년)에 기록된 토성, 화성, 수성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12개 이상의 기록을 담은 행성 관찰기록에 관한 문서이다. 앞서 언급한 일부 문서와 마찬가지로 이 세 문서는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통치기간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시킨다. The fourth is a planetary tablet, SBTU IV 171, which records first and last appearances and stationary points of Saturn in years 28, 29, 30, and 31 of an unknown king.66 However, as Professor Hermann Hunger has demonstrated, the year numbers combined with the position of Saturn in the constellation of Pabilsag (roughly Sagittarius) exclude all alternatives in the first millennium B.C.E. except years 28–31 of Nebuchadnezzar, fixing these to 577/76– 574/73 B.C.E. Again, this establishes his 18th year as 587/86 B.C.E. 네 번째는 SBTU IV 171로 명명된 행성에 관한 관찰기록이 담긴 점토판인데,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왕의 통치 28년, 29년, 30년, 31년 동안 토성의 처음과 마지막 출현과 정체 위치을 기록하고 있다.66 그러나 헤르만 헝거 교수가 증명한 바와 같이, 파.빌.사그 자리(궁수자리 근처)의 토성 위치와 결부된 연도 수는 느부갓네살 28~31년을 제외하면 기원전 첫 번째 천년 내에 다른 대안이 전혀 없으므로 기원전 577/76–574/73년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As has been clearly seen, the Watch Tower Society’s interpretation of the “Gentile Times” requires that these have a starting date of 607 B.C.E., their claimed date for the fall of Jerusalem. Since that event took place in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that regnal year must also be dated as of 607 B.C.E. This creates a gap of twenty years when compared with all existing ancient historical records, since these place the start of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in 587 B.C.E. How can this twenty-year gap possibly be explained?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워치타워 협회의 '이방인의 때' 해석은 예루살렘 함락의 해를 기원전 607년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건이 느부갓네살 열여덟 번째 해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 왕의 통치년도가 기원전 607년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존하는 모든 고대 역사 기록과 비교했을 때 20년의 격차를 발생시키는데, 그것은 기원전 587년이 느부갓네살 18년이 시작된 해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가? In this chapter it has been demonstrated that the ten astronomical texts presented establish the absolute chronology of the Neo-Babylonian period at a number of points, especially within the 43-year-reign of Nebuchadnezzar. Their combined witness proves beyond all reasonable doubt that his reign cannot be moved backwards in time even one year, far less twenty. 이 장에서 제시된 10개의 천문 문서들이, 특히 느부갓네살 43년 통치 기간 동안에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절대 연대가 여러 시점에서 입증되었다. 이들의 증거를 모두 고려할 때 그의 치세는 20년은 커녕 단 1년이라도 기간을 되돌려 늘릴 수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Together with the evidence presented in Chapter 3, therefore, we now have seventeen different evidences, each of which in its own way overthrows the Watch Tower Society’s dating of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to 607 B.C.E., showing it to have begun twenty years later, that is, in 587 B.C.E. 그러므로 제3장에서 제시된 증거와 함께, 우리는 이제 17가지의 다른 증거들을 가지게 되었다. 각각의 증거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기원전 607년이 아니라 그로부터 20년 후인 기원전 587년에 시작되었음을 그 자체의 방식으로 뒤엎어 증명했다. Indeed, few reigns in ancient history may be dated with such conclusiveness as that of the Neo-Babylonian king Nebuchadnezzar. 사실, 고대 역사에서 신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대처럼 확정적인 연대를 결정시키는 시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Suppose for a moment that Berossus’ figures for the reigns of the Neo-Babylonian kings contain an error of twenty years, as is required by the chronology of the Watch Tower Society. Then the compiler(s) of the Royal Canon must have made exactly the same mistake, evidently independently of Berossus! 잠시 동안 신 바빌로니아 왕들의 치세에 대한 베로수스의 기록수치들이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기에서 주장하는 20년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왕실 명부의 편집자도 베로수스와는 별개로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결론에 이른다! It might be argued, though, that both simply repeated an error contained in the sources they used, namely the Neo-Babylonian chronicles. Then the scribes of Nabonidus, too, who possibly used the same sources, would have had to have dropped twenty years from the reign of the same king (or kings) when they made the inscriptions of the Hillah stele and the Adad-guppi’ stele. 그러나 둘 다 단순히 그들이 사용한 출처, 즉 신 바빌로니아 연대기에 포함된 오류를 반복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출처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나보니더스의 서기들도 힐라 비석과 아닷-구피^의 비문을 만들 때 같은 왕(또는 왕들)의 치세로부터 20년의 기간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Is it really likely, however, that those scribes, who wrote right during the Neo-Babylonian era, did not know the lengths of the reigns of the kings under whom they lived, especially since those reigns also functioned as calendar years by which they dated different events? 그러나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글을 제대로 쓴 서기들이, 그 왕들의 시대들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사업, 행정 그리고 법적인 사건들을 기록하는 달력 연대로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왕들의 통치기간의 길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있겠는가? If they really made such a strange mistake, how is it possible that contemporary scribes in Egypt also made the same mistake, dropping the same period of twenty years when making inscriptions on death stelae and other documents? 그들이 정말로 그런 이상한 실수를 했다면, 이집트의 동시대의 서기들도 어떻게 같은 실수를 했을까, 사망 비석과 다른 문서의 비문을 만들 때 20년이라는 같은 기간을 떨어뜨렸겠는가? Curiously then, the Babylonian astronomers must also have regularly made similar “mistakes” when dating the observations recorded in VAT 4956, LBAT 1420, SBTU IV 171, and also other tablets from which later astronomers abstracted their Saros cycle eclipse records — unless of course changes were purposely made by copyists in the Seleucid era, as the Watch Tower Society posits.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우연히도, 바빌로니아 천문 관측자들은 VAT 4956, LBAT 1420, SBTU IV 171 그리고 이후의 천문 관측자들이 정신이 딴데로 팔려, 사로스 주기를 적용한 다른 문서 기록에 반복적으로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워치타워의 주장과 같이 셀레우코스 시대의 필사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Still more incredible is the idea that scribes and astronomers could remove twenty years from the Neo-Babylonian era several years prior to that era—as is shown by the oldest diary, BM. 32312, the lunar eclipse tablets LBAT 1415+1416+1417 and ADTV, no. 5, the Saturn tablet B.M.76738+76813 , and the planetary tablet ADT V, no.52—all the five of which inexorably block all attempts at lengthening the Neo-Babylonian period. 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은 서기들과 천문관측자들이 그 시대가 도래하기 수십년 전에, 가장 오래된 일지인 BM.32312, 월식 관측기록이 담긴 점토판 LBAT 1415+1416+1417, ADT V 5호, 토성기록이 담긴 점토판 B.76738+76813, 그리고 행성 관측의 기록이 담긴 점토판에서 확인될 수 있는 바빌로니아 시대의 길이에서 20년을 제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토판의 증거들은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통치기간을 연장하려는 모든 시도를 가차없이 막아버리는 것들이다. But the most remarkable “coincidence” is this: Tens of thousands of dated economic, administrative and legal documents have been excavated from the Neo-Babylonian period, covering every year of this period—except, as the Watch Tower Society would have it, for a period of twenty years from which not one tablet has been found. 그러나 "우연히 일어날 수"있다는 가장 주목할 만한 억지 주장은 신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지금까지 발굴된 경제, 행정, 법률 문서 수만 건이 발견된 중에서, 단 한 개의 점토판도 발견되지 않는 20년의 기간에 대해 워치타워 협회가 그것을 예외적으로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Again, most curiously, according to this logic, that period happens to be exactly the same as that lost through a series of other “mistakes” by scribes in Babylon and Egypt, and by later copyists and historians. 다시 한 번, 가장 신기한 것은, 이 논리에 따르면, 그 시기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그리고 이후의 필사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한 별개의 "실수"를 통해 잃어버린 기간이 정확히 같은 기간이라는 점이다. Either there was an international agreement during several centuries to erase this twenty-year period from the recorded history of the world—or it never existed! If such an international “plot” ever took place it was so successful that of all the tens of thousands of documents unearthed from the Neo-Babylonian era there is not one, not even a line in any of them, that indicates that such a twenty-year period ever existed. We can safely conclude, then, that the Watch Tower Society’s chronology is unquestionably in error. 수 세기 동안 세계의 기록된 역사에서 이 20년을 지우기로 한 국제 협정이 있었거나 아니면 유령의 20년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국제적인 '공모'가 일어났다면, 신 바빌로니아 시대에 속한, 발굴된 수만 건의 문서들 중에 그러한 20년의 기간이 존재하였음을 나타내는 단 한 줄의 증거라도 존재해야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들이 전혀 나타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증거들은 워치타워 협회의 연대기가 의심의 여지없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But if this is the conclusion of our study, how are we to harmonize this fact with the Biblical prophecy of the seventy years, during which the land of Judah and Jerusalem would lay desolate according to the Watch Tower Society? And how are we to view the year 1914, the supposed terminal date for the times of the Gentiles according to the prophetic time scale of the Watch Tower Society? Do not world events clearly show that Bible prophecies have been fulfilled since that year? These questions will be dealt with in the following chapters. 그러나 이것이 우리 연구의 결론이라면, 이 사실을 어떻게 예레미아의 70년의 성서 예언과 조화시킬 것인가? 그 기간 동안 유다와 예루살렘 땅은 워치타워 협회에 따라 황폐된 상태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워치타워 협회의 예언적 연대계산에 따라 1914년, 즉 이방인 시대가 끝나는 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해 이후로 성경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세계의 사건들이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을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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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Liu & Fiala, op. cit., p. 70, no. 2281.
58 류 & 피알라의 목록 70면 2281호
59 Ibid., p. 70, no. 2282. Sunset began ca. 18:00.
59 앞서 인용한 글 70면 2282호 일몰이 ca. 18시에 시작되었다.
60 In 582 B.C.E. there were four lunar eclipses, but all of them were penumbral. — Liu & Fiala, op. cit., p.69, nos. 2231–34.
60 기원전 582년에 4번의 월식이 있었지만 모두 반영식(半影式)이었다 — 류 & 피알라의 같은 목록 69면, 2231–34호.
61 This idea was held by A. T. Olmstead, who in an article published back in 1937 (in Classical Philology, Vol. XXXII, pp. 5f.) criticized Kugler’s use of some of the eclipse texts. As explained later by A. J. Sachs, Olmstead “completely misunderstood the nature of a group of Babylonian astronomical texts which Kugler used. He was under the misapprehension that they were computed at a later date and hence of dubious historical value; in reality, they are compilations of extracts taken directly from authentic, contemporary Astronomical Diaries and must therefore be handled with great respect”—A. J. Sachs & D. J. Wiseman, “A Babylonian King List of the Hellenistic Period,” Iraq, Vol. XVI (1954), p. 207, note 1.
61 이 아이디어는 A. T. 옴스테드에 의해 지지되었다. 그는 1937년에 발행된 글(고전 언어학 XXXII권, 5f면 )에서 쿠글러가 월식 문서의 사용한 내용의 일부를 비판했다. 나중에 A. J. 삭스가 설명했듯이, 옴스테드는 "쿠글러가 사용한 바빌로니아 천문 문서들의 성격을 완전히 오해했다. 그는 이 자료들이 나중에 역산된 것이어서 역사적 가치가 의심스럽다고 오해했다. 실제로는 당대의 정통 천문관측일지에서 직접 뽑은 추출물들의 모음이며, 따라서 매우 존중심을 가지고 취급되어야 한다."—A. J. 삭스 & D. J. 와이즈먼, "헬레니즘 시대의 바빌로니아 왕들의 목록", 이라크, 제16권(1954년), 207면, 각주 1.
62 These texts do not record any observations at all and are, therefore, classified as theoretical texts. They are quite different from the diaries and the eclipse texts discussed above. Five such theoretical texts are known, four of which were published by Aaboe et al in 1991 (see note 41 above). Two of these are known as the “Saros Canon” (LBAT 1428) and the “Solar Saros” (LBAT 1430). The fifth tablet is LBAT 1418, described in note 42 above.—See J. M. Steele in Hunger, ADT V (2001),p. 390.
62 이러한 문서들은 관찰 결과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이론상으로만 문서로 분류된다. 그것들은 위에서 설명한 일지나 월식의 관찰이 기록된 문서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한 다섯 가지의 이론적인 지문이 알려져 있으며, 그 중 네 가지는 1991년에 아보에 외 다수에 의해 발간되었다(위의 각주 41 참조). 이 중 두 개는 "사로스 캐논"(LBAT 1428)과 "태양 사로스"(LBAT 1430)로 알려져 있다. 다섯 번째 태블릿은 LBAT 1418이며 위의 각주 42에 설명되어 있다.—헝거의 ADT V(2001), 390면의 J. M. 스틸레 참조.
63 N. M. Swerdlow, The Babylonian Theory of the Plane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pp. 23, 173.—The diaries also record a number of other phenomena that could not be calculated, such as solar halos, river levels, and bad weather—clouds, rain, fog, mist, hail, lightning, winds, etc. Some data in the diaries were computed because of bad weather, but most are observations. This is also evident from the Akkadian name of the diaries engraved at the end of their edges: natsaru sha ginê, ‘regular watching”.
63 N. M. 스워덜로우의 <바빌로니아의 행성 이론> (프린스톤 대학 출판부, 1998년), 23, 173면.—일지는 또한 구름, 비, 안개, 안개, 우박, 번개, 바람 등 태양 흑점, 하천 수위 및 악천후와 같이 계산할 수 없는 여러 다른 현상도 기록하고 있다. 일지의 일부 자료는 기상 악화로 인해 계산된 것이지만 대부분은 관측치이다. 이것은 또한 아카디아어로 가장자리에 새겨진 낫사루 샤기네, "정기 관측"이라는 일지구분을 나타내는 이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64 Communication J. M. Steele-Jonsson, dated March 27, 2003. As pointed out in footnote 45 above, there is also a clear difference of accuracy in the timings given for observed and predicted eclipses.
64 2003년 3월 27일자로 된 J. M. 스틸-존슨의 대화. 위의 각주 45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관측과 예측된 계산으로 주어진 시간의 정확도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65 This tablet “was probably compiled shortly after –575 [576 BCE].”—J. M. Steele in Hunger, ADT V, p. 391.
65 이 점토판은 아마도 –575[기원전 576년] 직후에 편집되었을 것이다."—J. M. 스틸레 in Hunger, ADT V, 391면.
66 Hermann Hunger, “Saturn beobachtungen aus der Zeit Nebukadnezars II.,” Assyriologica et Semitica (=AOAT, Band 252), (Munster: Ugarit-Verlag, 2000), pp. 189–192.
66 헤르만 헝거의 "Saturn Beobachtungenaus der Zeit Nebukadnezars II", 아시리아어 외 셈티카 (=AOAT, 밴드 252), (먼스터: Ugarit-Verlag, 2000), 189–19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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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장에 나올 예레미아의 70년 예언의 적용은 하나의 해석적 관점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인 신 바벨론의 세계 패권 기간이라는 관점도 강력히 지지 받기는 하지만 역시 하나의 해석이므로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https://cafe.daum.net/a.o.w/hFOo/11?svc=cafea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