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행운(幸運)이 오는 길
이자겸 일당을 소탕하고 나니 이제 남은 문제는
이자겸의 딸인 두 왕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공적으로 볼 때 역적의 딸을 왕비로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경한 신하들은 두 왕비를 폐출할 것을 진언했다.
그러나 사적으로 따진다면 두 왕비는
이모가 될 뿐만 아니라 이자겸의 독수에서 생명까지 보호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가혹하게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애처로웠다.
그러나 결국 강경파의 주장이 관철되어 마침내 이자겸의 두 딸을 폐출시키게 되었다.
그렇다고 실질적인 어떤 형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왕비란 명칭만 박탈했을 뿐 물심양면으로 전과 다름없는 후한 대접을 해주었으며
신하들도 거기에 대해서는 더 무어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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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왕비를 폐출했으니 새로 왕비를 간택해야 한다.
그래서 마땅한 후보자를 물색하고 있을 무렵 왕은 한 꿈을 얻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왕에게 깨 닷되와 아욱씨 석되를 주고 간 꿈이었다.
왕은 하도 이상해서 그 꿈의 해몽을 최사전에게 분부했다.
최사전은 즉시 척준경을 찾아 왕의 꿈 이야기를 하고 그 의견을 물었다.
워낙 무식한 척준경에게 물어보았자 별로 신통한 의견이 있을 리 없지만
꾀가 많은 최사전은 그렇게 함으로써
무력을 장악하고 있는 척준경의 환심을 사려는 뜻에서였다.
척준경이 지껄이는 소리를 대강 듣고 난 최사전은 임금 앞에 나아가 해몽을 했다.
"깨는 곧 임자(荏子)이오니 임자를 얻으셨음은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을 왕비로 맞으실 징조이오며,
다섯 되를 얻으신 것은 왕자 다섯 분을 낳으실 징조이옵니다.
또 아욱은 황규(黃葵)이오니 황규는 황규(皇揆)와 통하므로
황왕도규(皇王道揆), 즉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옵니다.
이로써 보건대 임씨 성을 가진 분을 왕후로 모시게 되오면
왕자 다섯 분을 낳으시고 그 중 세분이 임금이 되신다는 뜻도 되옵니다."
"그래? 그러면 임씨를 반드시 왕비로 간택해야 하겠구먼."
왕은 이렇게 말하며 흡족한 웃음을 띠었다.
☆☆☆
그 후 여러 왕비 후보자 중에
임원후(任元厚)라는 사람의 딸이 물망에 올랐다.
임원후는 일찍이 등제하여 인종 초에는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 있다가
이자겸과 뜻이 맞지 않아서 불우한 나날을 보냈으나
이자겸이 실각하자 다시 조정의 요직으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 그런데 왕비 후보자로 물망에 오른 임원후의 딸에 대해서는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임처녀는 일찍이 평장사 김인규(金仁揆)의 아들 김지효(金之孝)와 정혼을 한 일이 있었다.
김지효는 소년등과하여
벼슬이 종사랑(從仕郞)에 이른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다.
마침내 혼인날이 되었다.
한낮이 지나자 신랑 김지효는
친영할 수레와 납폐할 물건을 가지고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신부인 임처녀의 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신랑이 들어서자 갑자기 신부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아침까지도 아무 일 없이 신부차림을 하느라고 바쁜 던 임처녀가
오정 때부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더니
신랑이 들어서기 조금 전부터는 배를 부등켜안고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실신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신부의 아버지 임원후는 직접 신랑측 어른들과 만나서 혼사를 며칠 연기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신랑측은 여러 가지 준비도 했고,
귀한 손님들도 초청해 놓았으니 웬만하면 그냥 식을 올리자고 맞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참 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신랑되는 김지효는
(도대체 신부의 병이 얼마나 심하기에 이렇게들 야단일까?) 생각하고
직접 안에 들어가서 신부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했다.
기막힌 일이었다.
신부의 병은 심할 정도를 지나서 정신을 잃고 인사불성이었다.
혼사는 고사하고 이러다가는 당장 숨이 넘어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신랑은 더럭 겁이 났다.(이런 처녀와 억지로 혼인을 했다가 혼인하자마자 송장 치르기 꼭 알맞겠군!)
그리고 정이 떨어졌다.
그는 집안 어른들과 의논한 다음
오늘 혼사를 올리지 못하게 된 것을 트집 삼아 마침내 파혼을 하고 말았다.
☆☆☆
이때 신부집에는 신부의 외조부 되는 이위(李瑋)라는 노인이 와 있었다.
이위는 수주(樹州)사람으로 문하시중 정공(靖恭)의 아들이었다.
일찍이 등제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이 되었으며,
예조 때는 형부상서 문하시랑 평장사를 거쳐 좌리공신( 理功臣)이란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예종 11년에는 문하시중이 된 역대의 공신이다.
이 때 이위는 나이 이미 팔십이었지만 그 탁월한 식견만은 여전했으므로
임원후는 딸의 파혼이란 뜻밖의 불상사를 당하자 누구보다도 먼저 장인 되는 이위에게 의논해 보았다.
"과히 염려 말게. 실은 그 애가 처음 났을 때 내가 좋은 꿈을 꾼 일이 있네."
"어떤 꿈이십니까?"
"그러니까 바로 그 애를 순산하기 조금 전이었네,
내가 잠깐 잠이 들어 있었는데
꿈속에 웬 초라한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글세 그 애를 데리고 가려고 덤벼드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 애는 무엇을 느꼈던지 막 죽어 가는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더군."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
임원후는 장인의 꿈 얘기에 당장 흥미가 쏠렸다.
"아 그래서 내가 호통을 치며 그 사나이를 쫓아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자욱이 내려오더니
그 구름 속에서 큰 용이 나타나 감싸주는 게 아닌가.
그런즉 그 초라한 사나이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버리고
그렇게 울부짖던 어린애도 이내 잠잠해지더군.
바로 그런 꿈이었네."
"그러면 그 꿈은 무슨 징조인가요?"
"나도 잘 알 수가 없었지.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 뜻을 알고 싶어서 남문밖에 사는 한 도사를 찾아가서 해몽을 부탁해 보았다네."
"그 도사가 무어라고 해몽을 합디까?"
"그 도사의 말이 실로 보기 드문 길몽이지만
그 애가 성장해서 좋은 일을 당하기에 앞서서 한 번 반드시 괴상한 일이 일어날 테니
그때 다시 찾아와서 의논해 보라고 하더군.
그러니 자네가 찾아가서 다시 한 번 물어보게."
임원후는 장인의 말을 듣자 대단히 신기하게 여겼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신랑이 물러가자마자
그때까지 그렇게 괴로워하며 실신까지 했던 신부가
다시 소생했을 뿐만 아니라, 아픔도 말짱히 가시었다는 점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인걸."
그 날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임원후는 이튿날 일찍 장인이 말한 도사를 찾아갔다.
임원후는 도사에게 자기 성명을 밝히고
장인이 하던 꿈 얘기와 딸에게 일어난 변을 이야기한 다음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예, 문하시중의 외손녀 되시는 분 말씀이군요."
언뜻 보기에도 높은 도를 쌓은 듯한 그 도사는 빛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 생각을 더듬더니
"그러니 벌써 십칠년 전 일인데,
그 때 문하시중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해몽을 청한 일이 있으셨죠.
그런데 따님의 병세가 어떠십니까?"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몹시 괴로워하다가 실신까지 했었는데
신랑이 돌아가자 씻은 듯이 나아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파혼하기 위해 생긴 병 같아 몹시 유감이외다."
"웬걸! 조금도 유감스러워 하실 건 없소이다."
"아니 유감스럽지 않다니요? 문벌 좋은 댁 외아들이겠다.
장래 유망한 청년과 정혼을 했다가 파혼을 했는데 어찌 유감스럽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유망한 청년이라도 장차 임금이 되지는 못할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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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후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도사는 임원후의 귀에 입을 갖다 대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건 입밖에 내면 큰일날 소리지만 댁의 따님은 장차 국모가 될 분이요."
임원후는 더욱 놀랐다.
"지금 이자겸이 득세하고 한참 판을 치지만
그가 실각하는 날에는 댁의 따님은 틀림없이 왕비로 간택될 거요.
부디 거동을 삼가시고 때를 기다리시오."
그 도사의 말대로 인종 역시 이상한 꿈을 꾸고
마침내 임원후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여 연덕궁주(延德宮主)를 봉했으니
그 분이 후에 공예태후(恭睿太后)가 된 분이다.
그리고 최사전이 해몽한 바와 같이
왕자 오 형제를 낳았으며 그중 삼 형제는 모두 왕위에 올랐으니
곧 제 18대 의종(毅宗), 19대 명종(明宗), 20대 신종(神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