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광고
최원혜
지구 깊은 곳에서는 지금도 뜨거운 마그마가 펄펄 끓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곳이 바로 화산이요, 활화산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통하여 처음 활화산 영상 보았을 때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한순간에 마을을 삼키고 숲을 불태우는 모습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깨닫게 되었다. 현실로 화산폭발을 안 당하여 본 사람은 실감이 하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땅속 불덩어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마치 무쇠솥에서 팥죽 쓰듯 풀럭 거린다. 그것이 화산의 활화산 실재 모습이다. 사람살이에 얼마만큼 당해 보아야 “화산 폭발한 것 같다.”말할 수 있는가?
젊음의 상징인 40대 초반 시절 한창 텔레마케팅(Telemarketing) 판매업체·콜 센터 일할 때이다. 생활정보인 신문으로 “벼룩시장 광고 텔레마케터”이었다. IP에 연결된 전화로 상품 서비스를 소개 권유하여 계약을 유도하는 영업 방식이 한창 성행할 때이다. 많은 통화 수 비례하여 고객 유치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여 실적을 올리어야만 급여가 되었다. 그 시절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나의 열정으로 통화 수 올리어 고객 유치하였을 때 수입은 꽤 나 짭짤하였다.
그 시절 전화로 영업하는 텔레마터가 성행할 때이어서 광고 필요성이 있는 고객들은 웬만하면 전화를 잘 받아주었다. 통화할 때 어떻게 하여야만 광고 유치를 위하여 멘트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여야만 하였다. 고객을 잘 꼬드기어야 하는 일이다. 고객이 전화 받아서 대화를 끌고 가는 시간에 따라 광고 유치 성공률이 높아진다. 물론 이러한 업무로 많은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었다. 상업적으로 전화를 걸면 바로 끊어 버리는 고객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유행하였던 텔레마케터 영업이 성수기이었다. 돌리고 돌린 전화 스트레스 속의 일이지만 거꾸로 나의 적성에 잘 맞는 듯하여 열정적으로 장기간 근무하였다.
오프라인 광고는 지면에 게재하는 광고 사이즈 또한 다양하다. 줄광고, 박스광고, 칼라 박스광고 등을 구두로 일일이 설명해야 하였다. 박스광고는 명함 크기 기준으로 하여 반 사이즈, 두 배등 사이즈 등으로 그 크기별로 금액이 달라진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는 게재일 수에 따라 요금 책정이 달라진다. 가끔 힘들게 광고 수주해 놓으면 취소 전화가 올 때도 있다. 취소사유를 알아보았을 때 경쟁사 광고 지면에 내가 유치하였던 광고가 버젓이 게재되어 있기도 하였다. 유치해 두었던 고객을 단가 하향하여서 뺏어가기도 한다. 상업상 참 얄미운 짓이기도 하다.
오로지 실적을 올려야만 급여가 지금되기에 그때는 무진장 속상한 마음에 활화산 폭발하는 것처럼 스트레스 받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일하였을 때 단가가 큰 광고의 대박 건을 수주하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열받았을 때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화산 폭발하듯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잠잠하여 그때는 광고 수주에 대한 매력을 참맛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 열정적으로 광고 텔레마케터로 장기간 일할 수 있었다.
시대가 인터넷 발달로 인한 온라인 광고가 물밀 듯이 쏟아졌다. 그러나그로 인하여 오프라인 광고 수주율이 차츰 줄어들었다. 그 시절 인터넷 발달은 1969년 ARPANET(군사, 학술 목적의 최초 패킷교환 네트워크)의 시작이다. 1983년 TCP/IP 도입 표준화, 상용화, 모바일·초고속망 확산까지 이어진다. 오늘날은 웹·SNS·IT·스마트폰·초고속·AI 확산 등으로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그리하여 IP 폰 연결하여 전화 헤드셋으로 지면에 유치하였던 오프라인 광고가 차츰 저조하여 사양길로 접어드는 추세이다. 그 이후로 광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어쩔 수 없었다. 사화산으로 변하듯 하였다.
독선기신(獨善其身)이라 하였던가. 남을 돌보지 아니하고 내 몸을 챙기지 못하였다. 활화산 타오르는 듯한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폭발하여 터져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혈압으로 진단되어 오랫동안 신나게 하였던 광고직을 그만두었다.
활화산은 단순히 위험한 존재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화산이 지난 자리에는 비옥한 땅이 남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위험을 알면서도 화산 근처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활화산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파괴와 생성이 함께 존재한 것이다.
일하면서 쌓이었던 스트레스나 분노, 속상하였던 슬픔을 계속 참기만 하면 언젠가는 화산처럼 터져버린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어 정리되기도 한다. 활화산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는듯하다. 터져버리면 위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고 오십 대 접어들 무렵 휴화산 되었던 광고직을 그만두어 새로운 일을 생성하기 위하여 사회복지 방면으로 공부하여 이직하였다.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하였다. 열정적으로 병원 환자들을 돌보며 일하였다. 지금은 생활고와 고독 생활해 나가는 어르신을 돌보아 드리는 일을 한다. 또다시 새로운 제2의 활화산을 터뜨리기 위하여 칠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내게 일 주어져 무척 행복할 뿐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며, 수필 써대며, 열정적인 화산 터뜨리는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활화산은 무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구의 심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 AI 등이 인간 생활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그 시대가 모든 생활을 속전속결 해결해 주는 인프라가 아주 좋을 때도 있다. 더디 가는 아날로그 시대가 때로는 조금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르신에게 시대에 맞춤하여 오프라인 광고 게재하듯 열과 성으로 돌보아 드리고 열심히 내 삶도 살아가고 있다.
오월은 가정의달로 내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르신 보살피고 있다. 화산처럼 폭발하지 않는 차분한 마음으로 성심을 다하여 돌보는 일을 건강 허락되는 날까지 주~욱 해 나가기로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모토로 정하였다.
(20260513.)(20260516.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