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1031) 말씀/ 누가복음 15: 22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옷이 날개란 말이 있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틀린 것도 아닙니다. 저는 본래 옷이나 외모에 신경을 안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생각이 좀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옷을 잘 입고 신경쓰는 것은 단지 사치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빌게이츠같은 사람이 청바지 작업복을 털털하게 입으면 근면 검소하고 멋진 사람으로 보이지만, 가난한 노인이 털털하게 입으면 후줄근하게 보입니다. 자기 삶을 잘 꾸려가면서 능력에 맞게 잘 차려 입으면 미적 감각이 띄어나고 매력있다고 평을 받지만, 지나치게 외모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은 사치스런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옷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작업복을 입는 것은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양복을 입는 것은 어디 공식석상에 가겠다는 예절의 표현입니다. 아무렇게나 옷을 입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자유의지의 표현이고, 신경을 좀 쓴다는 것은 똑같은 삶이라도 좀 더 밝고 아름답게, 멋지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옷은 그 사람의 인격이며 철학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외모를 치장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좋고, 삶의 질을 높이고, 유쾌하게 한다고 합니다. 여성의 화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장한 얼굴이 진짜 얼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장을 통해서 여성다운 내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사랑하는 한 여성과 남자가 출연해서 메이크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적 있습니다. 여성의 한 쪽 얼굴은 메이컵 해서 아름다운 모습, 다른 한쪽은 그냥 자연 실물대로 못생긴 얼굴 그대로 두고 사회자가 묻습니다. 이 얼굴이 당신의 사랑하는 여자의 본래 얼굴입니다. 그래도 사랑합니까? Yes! 이미 내적 깊은 아름다움에 빠져있기 때문에 외적인 모습이 더 이상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양로원에서 치매 노인들에게 화장을 해드리니 확실히 치매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울증 증세 중에 차림새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특징은 방이 아무리 어질러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박하지 않는 이상 수염 머리도 깍지 않고 세수도 잘 안 한다는 것입니다. 옷을 깔끔하게 입는 사람 중에 우울증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몇 년 동안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착한 흉내를 냈습니다. 어느 날 이 사실을 안 친구가 저건 가짜다 하고 그의 얼굴의 착한 가면을 벗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속의 얼굴도 가면처럼 진짜 착한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모를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옷차림에 대해서도 지나치지 않다면 신경을 좀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다른 사람 앞에 좋은 이미지로 나서야할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차원에서라도 깨끗하게 단정하게 옷 입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옷을 입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단정함과 조화입니다. 비싸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면을 최대한 표현하고, 삶과 어울어지며, 다른 사람에게도 유쾌함을 줄 수 있으면 good 입니다.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다보면 천영란 권사님이 옷이 자연과 매칭이 잘 되어서 사진이 잘 나옵니다. 포즈도 잘 잡으십니다. 그래서 우주 교회 전속 모델이 되셨습니다. 지홍 집사님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약간 귀티있게 잘 입는 편입니다. 재중 집사님은 미애집사님이 코디를 잘 해주는 것 같고요.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옷은 밝아야 좋습니다. 저는 검정색 곤색들을 좋아했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은 스위스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알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스위스에 가서 찍은 사진을 보니 배경은 환상적인데 옷이 시커멓고 칙칙하게 내가 보기에도 좋지 않았습니다. 옷이 밝으면 보는 이도 좋고 자연히 삶도 밝아지고 업(up)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 에머슨이 젊은 시절 생계가 어려워서 인력시장에 나가서 일자리를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거리는 적고 사람들은 많아 하루 일하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중에 한두 사람은 꼭 뽑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연구해 본 결과 대게가 깔끔하고 밝은 옷을 입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옳거니! 그래서 작전을 짜고 다음부터는 밝은 옷을 입고 밝은 비소로 여유있는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랄까 자기를 뽑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언제나 뽑혀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옷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처음 옷 이야기는 에덴동산에서 시작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무화과 잎은 인간의지의 옷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수치를 가렸지만 영원히 수치를 가릴 수 없는 옷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여자의 몸에서 날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시면서 짐승의 피를 흘려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가죽옷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우리가 입게 될 믿음의 옷을 상징했습니다. 창세기 요셉 편을 보면 야곱이 12아들 중에 요셉을 가장 사랑했는데 채색 옷을 입혔다고 하였습니다. 옷으로 사랑스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레위기로 나아가면 제사장들의 옷에 대해서 자세히 나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의 거룩한 옷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의 옷은 구별되이 지어입어야 함을 섬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직책의 옷입니다. 신약성경에 이르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었다고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배하는 사명인의 검소한 옷차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 아주 유명한 부흥사들이 자주 인용하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갸기 중에도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에게 옷을 입히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이는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처음부터 끝이나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나가 허랑방탕 다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불효자였습니다. 스스로 생각에도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는 나쁜 자식입니다. 호로 자식입니다.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부탁하리라하고 집에 왔습니다. 그동안 못 먹고, 못 입고,,.그 꼴이 얼마나 더럽고 추했겠습니까? 그런데 얼핏 보면 알아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미적미적 오고 있는 아들을 아버지는 이내 동구밖에서부터 알아보고 맞으러 달려나갑니다. 그리고 곧바로 종들을 시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주라고 했습니다. 목욕시키고 갈아입을 옷을 주라고 해도 될 텐데 가장 좋은 옷을 주라고 하고, 또 가락지도 끼우고, 새 신도 신겨주라고 합니다. 여기서 좋은 옷, 가락지 신발은 존귀한 아들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아들은 염치도 없고 자격도 없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무런 조건을 보지 않고 아들로 받아주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행동과 말이 바로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죄책감으로 머리를 들 수 없지만 하나님은 있는 모습그대로 사랑하시고 영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보면 아이들을 교육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존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공부를 잘 하나 못하나 그 존재 자체를 존중히 여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적이 좋으나 나쁘나 너는 내 존귀한 아들이다. 이렇게 존중히 여김을 받을 때 아이들은 일어날 힘을 얻고 자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립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이 존중히 여김을 받을 때 느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바로 조건없이 그 존재를 받아주고 영접하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첫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말아먹고 못된짓 하다 돌아온 동생을 이렇게 잘 해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잘해서 잘 해주고 못해서 못해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아버지의 재산 상속권을 가진 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둘째 아들입니다. 탕자는 자신을 그렇게 인정하고 대해주는 아버지의 사랑에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하였겠습니까? 제가 가난하고 학벌도 짧고, 인맥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서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있는 모습그대로 나를 존귀히 여여겨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가기 전에 일단 취업을 해보고자 하였는데 인맥도 없고, 인간관계도 없는 서울 쪽에 올라와서 너무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신학대학원을 들어가 놓고 군대를 졸업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광주 이 여호수아 목사님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저를 다시 광주로 내려오라고 하였습니다.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는데 주님 안에는 할 일이 많고 언제나 존귀하게 대우해주셨습니다. 저는 기꺼이 광주로 내려와 훈련받고, 믿음의 결혼도 하고, 처음으로 제주도 개척 목자가 되어 제주대학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세상에 존귀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세상에 좋다 나쁘다 그렇게 구별해놓아서 그렇지 하나님 앞에 서 보면 다 별처럼 빛날 자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못난 모습만 바라보며 자책하고 나 스스로도 나를 미워하는 것은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사 자녀삼아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탕자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오면 세상에 찌든 누더기 옷을 다 벗겨내고 가장 좋은 새 옷을 입혀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마태복음을 보면 천국을 비유로 혼인집 손님을 초청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말씀에도 옷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거절합니다. 주인은 잔치가 다 준비되었지만 청함 받은 사람이 오지 않자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혼인집 자리가 꽉 찼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옷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합니다.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 22:11-14) 여기서 옷은 천국 잔치에 청함 받은 사람들의 자격 조건입니다. 이 옷은 바로 그리스도 옷입니다. 로마서 13: 12-14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세상에서도 옷이 중요하지만 천국에 들어갈 때도 자녀들이 입는 옷이 있습니다. 바로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옷이 하나님 자녀의 보증입니다. 여러분, 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셨습니까? 아멘! 이 옷을 입었다면 이보다 빛나는 존재가 있겠습니까? 세상에 명품 옷 명품 가방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명품 옷을 사 입습니다. 명품 가방, 명품 신발, 그리고 외체 차와 화려한 주택을 짓고 구입합니다. 이런 것들도 다 우리가 입는 옷입니다. 세상에는 남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갑질하는 사람도 있고, 고급 집을 몇 십억, 몇 백억을 주고 사서 부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 부러워 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 신세계 정용진이 美구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에서 고가 주택을 매입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매입한 금액은 무려 시가 '225억'입니다. 이런 주택의 내부 모습은 어떨까하고 공개한 사진이 떠서 저도 보았습니다. 대지는 2000㎡(약 600평), 건평은 약 300평 규모로 6개의 침실과 10개의 욕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밖에 대리석 벽난로가 놓인 거실, 거대한 샹들리에가 걸린 주방, 목재로 장식된 사무실 등이 있고, 영화관, 체육관, 수영장, 사우나, 와인 창고 등은 물론이고 6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지하 주차장도 마련돼 있습니다. 둘러보니 좋긴 좋은데 좀 걱정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사는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집을 돌아다니기도 힘들 텐데 청소는 어떻게 하지? 연희석들도 있던데 사람들 초대하면 섬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누가 댓글을 달았습니다. “해봤자, 하루 세끼 밥 더 못 먹고, 살아봐야 100년 못 살고 죽는다. 죽으면 다 똑같다.” 꼬아서 이런 댓글을 달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맞긴 맞는 알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으면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큰 차이 없습니다. 솔로몬의 말처럼 살아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바람을 잡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믿음은 자녀들은 짧은 세상 서로 사랑하며 순간순간을 천국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실소유주택 없는 내가 오히려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회장 집는 대지가 600평, 건편이 300평에 불과하지만 저는 하늘과 땅 바다가 온천지가 다 제 집입니다. 관리는 다른 사람들이 해주고 저는 필요할 때 가고 싶을 때 가면 됩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돌아보지 못한 외달도에 다녀왔습니다. 작은 섬이지만 아담하니 예쁜 섬을 산책하고, 보말도 잡고, 정자에서 책도 읽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소유자가 되면 관리인이 되고, 소유가 없으면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옷은 명품샤넬도 아니고,벤츠 자동차도 아니고 수백억 화려한 주택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아멘!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과 살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사랑하며 살면 이 세상은 영원합니다. 이 한 주간도 주님과 함께 천국을 누리는 행복한 삶 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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