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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의 신학사상(2)
"성경 절대무오설을 믿어야 그리스도교가 권위있게 되고 교회도 잘된다
고만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믿어야 구원얻는 줄
로 생각하는 사람은 화석된 바리새인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 축자무오설을 부인하므로 말미암아 신앙에 동요를 일으켜 타락한
사람보다도 이 설을 고집하므로 말미암아 성경의 문턱까지 왔다가 물러
간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 축인민뎔가낡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1950.3)-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나 인간의 게으름과 자
기 만족 때문에 오히려 고정 불면 정체 등을 교회 본연의 자세인 것 같
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병폐다. 특히 한국인의 보수편
중 경향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한국교회는 더욱 고루하게 되어가고 있
다."
- 신학교 교회개혁으로 새 인간상 부활 (1971.1) -
I. 글머리
장공 김재준의 신학을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의 복잡성이널 다양한 관심 영역에 대
한 그의 진술을 파악하는 어려움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사상의 강한
명료성과 동시에 그의 직설법적 진술에 대한 본의를 파악하는 일이 어
렵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도 오랫동안 꺼질 줄 모르는 불같은 정열로글
을 썼다. 그의 문필력은 때로는 감미로운 문학체로, 때로는 단조롭지만
주장이 분명한 명제어로 흘러갔으며, 마치 분화로구부터 솟아나서 넘쳐
흐르는 용암같았다.
그리고 그의 지성은 제자들에 의해 하나씩 한국 기독교계에 정초되었
다. 그는 한국의 신학사상을 기초한 인물들 가왁쟁 한 사람이다. 그는
멈출줄 모르고 끊임없이 자갈밭 사이로, 갈대숲 사이로 때로는 계곡의
바위틈 사이로 흘러 내려 강을 이루며 흘러가는 깊은 강처럼 계속 흐르
고 흘러가는 장구한 연륜의 사상을 한국 교회사에 남겨놓았다.
장공의 인물상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작가의 작업으
로 남겨두기로 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장공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 몇편을 선정하여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그의 신학사상을 이해, 평
가하도록 할 것이다. 한 인물의 사상을 직접 그의 작품에서 찾아내어평
가하는 것 이상으로 정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II. 김재준의 신학사상
1. 행동하는 신학의 효시
1933년 구약신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김재준은 신학자의 시대적 사명
감과 역사의식, 그리고 한국신학의 주체문제와 신학교육 등에 깊은 관
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1930년에 "욥기에 나타난 영혼불멸관"
과 이사야 연구 등을 발표하면서 장로교회에 신학적 물의를 일으키기시
작하였다.1934년 10월 15일 발표한 "실재의 탐구-전도서를 읽고"에서는
"전도서! 이것은체계 선 철리를 말한 것도 아니며 심오한 싸탑담 말한
것도 아니며 심오한 신앙을 말한 것도 아니라 다만 '생의 의의'를 찾아
실재의 세계를 더듬어 빈들에 헤매던 순례자의 피엉킨 속임없는 기록이
라고 봄이 가한 것이다"라고 성서적 진리를 세속적 가치세계로 해석해
주기도 했다.
이런 '문필의 묘' 속에서 우리는 김재준이 성서적- 신앙적 - 신비적세
계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갖고 있었는지 회의하면서, 확증적인 한 가지
는 그 스스로 이미 실증적 과학지식 체계에서 성서를 분해해 실증주의
자였다. 그것은 그가 성서의 깊이 은닉된 진리에 대한 불확실한 사실을
맹목적으로 믿기보다는 논증되고 과학적으로 명증되어지는 사건 사실자
체로부터 모든 신학적 진리를 찾아보려는 점에서 확실히 발견할 수 있
는 것이다.
그는 귀국한 다음 이런 확실한 가치분석과 실증적 체계론을 갖고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 무엇인가 민족에게 고하는 자세를 보이고 싶어했다.
귀국 후에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들은 그가 민족의 소리를 듣고 그들에
게 예언자적 사명감으로 민족역사를 고취시켜주던 구약의 예언자처럼그
자신을 보이려했던 것이다. "전기로 본 예레미야의 내면세계" " 아모스
의 생애와 그 예언" 그리고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연구"등이 그의
야심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어떤 사건이 생겨졌다는 것으로써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름 속
에도 천태만상의 사건이 새겨지고 있으며 바다 속에서도 천변만화의 사
건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역사가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인간이 이 시간, 공간 안에서 어떤 더 높은 질서를 따라 인격적
인 '결단'을 하고 그것을 '공동사회적'인 의식하에서 창조해 나가는 행
동에서만 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존재의장소인 역사는 자연의 규범 안에서 이해할 것이 아
니다.즉 진화, 성장 등 자연적, 합리적 범주로 기술할 과정이 아니다.
목적과 결단에 의하여 구성될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듯이 김재준은 그의 신학함을 역
사의식으로 충만된 의지의 표현에서 출발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구약
의 예언자들을 좋아했으며, 예언자 연구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
다. 아마도 그는 "공동사회적인 의식 하에서"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행
동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를 원하며 살았던 인물인듯하다. 그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역사라는 것은 시간 안에서, 자유하는 인간이 어떤 이상을 실현함으로
써 생의 공허를 메꾸려는 활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자유하는 인간을 빼
놓고 역사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시간 안에서 자유하는 인간의 실천함(praxis)을 역사로
해석하고,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예언으로 그
리고 그 말씀의 구현을 그리스도사건으로 수용한 전통적인 신학적 구속
사관이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역사이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역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러지는 것이 예언이요, 역사 안에 '말씀'
육신을 이루어 들어오신 것이 그리스도시다.
그는 위의 인용에서도 분명히 그의 신학입장을 표명하였듯이,역사의식
과 예언자의식을 겸비한 '시대에 외치는 소리'로서 그의 신학을 세워나
갔다. 이러한 신학사상의 면모는 아모스연구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
는 "하나님의 의" '사람의 죄악' '심판', 이 셋은 아모스 예언의 세가
지 중추이며 서로 연쇄된 고리이다"라고 진술하면서 대지를 인간적 삶
의 실존성과 하나님의 공의의 맥락에서 해석하였다.그 늴영 김재준은
분명히 한국의 아모스임을 은연히 과시하려 했다. 아니 한국의 아모스
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암5:24) 흐
르게 하라는 아모스, 의를 사모하길 주리고 목마름같이 하는 아모스,"
그는 온 세상의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의 모든 관계가 하나님의 의
위에 세워지고 운행하여지기를 바라고 그를 위하여 싸우다가 그를 위하
여 죽은 자이다. 이제 우리는 불의로 가득찬 세대에 있어서 이 의의 예
언자의 용기를 부러워함과 동시에 이 예언자의 의를 이루어 주신 그리
스도의 의만을 선포하며 그를 위하여 분토하며 또 생명을 버림이 마땅
할 것인가 한다."
위에서 우리는 김재준의 신학사상은 철저히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신
앙을 기초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신학의 형이상학적 이론
을 부정하며, 철저한 실천으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의 내용을 찾
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신학을 "삶의 신학"이라고 했다. " 믿
음 소망,사랑이 그 삶 안에 충만하여 사람들의 시달리는 허무와 절망을
채워준다면 그 밖에 또다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부터 신학은 신
앙과 이성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신학이다."
2.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어설에 대하여"(1950)
"삶의 신학"을 이 시대의 참된 신학으로 정립하기를 원하며 민족과 역
사 앞에 의의 예언자처럼 행동하기를 원했던 장공의 신학사상은 사실상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기록자체의 영감적 비의는 부
정하고 있다. 그는 성서의 대의가 이 시대의 불의를 심판하는 것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의미가 중추를 이루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성서
자체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거나 또한 성서를 영감된 기록으로 여기지늴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서가 하나님의 신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된 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영감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함인가 하는데
있어서는 모름지기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최대한으로 활동하
고 사람은 최소한으로 최대한으로 활동하는 경우에 영감은 더 커진다고
믿는것이 보통 민속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영감이란 것은 그영
감을 받는 사람이 아주 기계처럼 되어서 자기 의식까지 잃어버리고 접신
하였다는 무당같이 되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이런 생각왁가 소위 축자영감설이 생겨난 것이니 이것이 과연 성격적인
가 하는 것은 차츰 규명해 보기로 하자.
그의 주장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서는 신의 감동으로 된 책이
다. 둘째, 영감이란 인간이 기계처럼 되어 무의식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
다. 셋째,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감받는 것을 무당처럼 자
기의식없이 접신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재준은 성서의 사실에서 영감의 성질을 결정하려는
바운(Bowne)의 입장에 선 것이다. 성서의 사실이란 무엇인가?
1)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기계처럼 다루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점
은 김재준이 기계적 영감설을 부정한 것이다. 그리고 박형룡신학을 비판
한 것이다. 그리고 박형룡박사도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 점은 단지 첨예한 신학논쟁을 할 때에는 논리적 공격을 위해 극단적
으로 과대해석한데서 기인한 듯하다.
2) "성경 기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기존한 모든 재료를 참고하며 그것
을 비판 정리 취사하는 저술가로서의 정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김재준의
성서기록에 관한 진술은 바로 이점에서 큰 문제를내포하고 있다. 그는
서어라는 경전을 단지 당시 문필가들의 기록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누가가 제 정신없이 복음서를 쓴 것이 아닐 뿐더라 그의 앞에는 예수님
의 행적에 대한 기존 문서들도 많이 수집되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단지 작품일 뿐만 아니라 기록문서 이상의 영
험적 실체는 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김재준에게서 성서는 신화집, 수상
집 찬미집,기록문서, 공상소설 정도의 가치 이상은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 신비적 체험, 혹은 무아경의 영험을 주장하며, 누미노제적
인 요소(nouminose)를 확신하고 있는데 반가치관의 표준자로 파헤쳐 제거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그의 과학적 방법대로 한다면 기독교의 모든 신
비적 요소가 인간적인 것으로 인정되어 제거된 다음 기독교에 남는 것은
우상숭배였다는 것 이상은 없지 않을 까? 한편 김재준은 불가사의하고 초
과학적인 규명불가능한 사건인 그리스도의 사건은 확신하고 있다. 초과학
적 사실을 믿으며 초경험적 영감은 부정하는 그는 너무도 극단적인 모순
으로 그의 신학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성서에 담긴 하나님의 의지만을
하나늴독 말씀이라는 측면에서 인정하고 기록 자체는 인간의 사건사적 기
록으로 보려는 태도와 과학적, 실증적 세계관을 인정하며 초과학적, 신앙
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그의 신학은 철저히 자유주의신학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그는 이 역시 부정하고 있다. 그는 1949년 11월 시민관에서
가졌던 제1회 장로교 청년 전국대회 초청강연에서 " 대전전후 신학사조의
변천"이란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내가 1925년 이래 일본 청산학위엣 공부
할 때는 자유주의신학이 전성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졸업할 때 나 자신은
자유주의신학인 막다른 골목에 이마를 부딪친 것 같은 느낌으로 이것을양
기할 길을 찾아 고민하였습니다. 그 후 곧 프린스톤에 가서 메이첸박사의
강의를 열심으로 들었습니다. 그 심경과 생활태도와 행동규율 등을 보았
습니다. 많은 배움이 있었으나 그곳을 떠날 때 나는 극단의 정통주의신학
이 역시 막다른 골목에서 스스로 발악하는 고민상을 여실히 보았습니다.
그후 만 2년 나는 이 두신학을 양기하면서 둘을 다 살리는 건설적인 참된
정통신학이 수립되기를 소원하여 스스로 노력해 왔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 글의 첫 머리에서김재준의 신학을 규정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밝
힌 바 있다. 그것은 그가 철저히 그의 색깔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
이다. 자유주의도 정통주의도 부정하고 그가 제시하려 한 '참정통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정통주의'인가? 그러나 김재준은 신정통주의도 부정
한다.
(문) "강연자는 '신정통'신학에 관심이 큰 모양인데 그 학파에 속하였
습니까?
(답)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거기에 예속하여 제자될의
도는 없습니다."
3)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주실 때 그는 그의'말씀'을 무슨 기성
품처럼 완성시켜서 그것을 그 사람에게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후닥닥집
어 넣어서 그때부터 그 사람은 그 '말씀'을 외치는 축음기판처럼 되게하
는 것이 아니다." 장공 김재준신학은 수용성이 매우 큰 신학이며, 그의
인간됨은 매우 존경스러운 인격과 결정체로 채워진 것을 부정하는 사람
은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 기독교계의 큰 그릇임에 틀림없다. 그의 신
학사상이 어떤 영향은 한국 신학사상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의 강한 필력 속에는 종종 무지한 주장이나 의도적으로 논적의 사뾔찬뼁
곡하여 비판하려는 태도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그릇됨에 비
해 실망케 하는 것이다. 그가 겨냥하여 비판하는 보수정통주의자들의 성
서 축자영감설이 "기성품처럼 완성시켜서"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
에 후닥닥 집어넣어서" 그때부터 "축음기판처럼"꼭같은 소리만을 기계적
으로 반복한다고 이해하면서 비판한 것은 전혀 그 비판의 본의가 무엇인
지 의심케 한다. 박형룡 박사는 성서 축자영감설과 무오설을 주장하면서
기계음을 말한 적은 없다. 박형룡은 "기독교는 인간을 초월하야 신의 묵
시에 절대권위를 발견하고 신의 묵시의 기록인 성경으로 신앙과 행위의
무오한 법칙을 삼는다."라고 분명히 그의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김재준
의 비판은 근거없는, 오직 계획된 비판을 위한 비판이며, 그렇지 않다고
하면, 박형룡의 신학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 핵심을 벗어난 근거없는비
판을 한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가.
박형룡은 성서를 인간의 주어진 절대무오한 표준임을 강조한 것이지, 성
서자체의 기록이나 인쇄할 때에 잉크가 잘못 묻혀 점이 찍히거나 안찍힌
것까지 무오하다는 것이나 영감된 것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성서가인
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정경이며, 삶의 표준자라는 것이 부정될 수 있다
면, 기독교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기독교는 윤리교훈의 도장
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것을 김재준은 '세계신학'으로 지향하려 한 듯
하다.
4) "영감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하신 주요 내용은 두 가지다. 즉 하나
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그가 사람을 향하여 무엇을 하시려는 것인가 하
는 그것이다." "그는 결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도 김재준은 자기이해의 범주에서정통주인퓔
비판하고 있다. 어느 정통주의 신학자가 하나님이 "지적 호기심을 만족
시키기 위하여 계시하신다"고 주장하겠는가? 어느 신학자가 하나님의 계
시한 하나님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는가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가? 오히려 정통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세속사 안에서의
구속사적 역사를 더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단순한 지적 호기
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이란 진정 하나님이라고 불
려질 수 있는 지고의 존재일까? 김재준의 주장은 박형룡신학에 대한 편
협된 이핑만가 정도를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5) "나는 이제 성경의 문자무오설과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축자영감설
이 사실은 성경 정신에 충실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려 한다." 이러한 주
장을 논증하기 위하여 그는 과학적 세계관과 자연과학적 우주원리를 도
입하여 박형룡의 성서무오설을 비판하고, 축자영감설에 관한 논문에 이
어 "성서비판의 의의와 그 결과"라는 논문에서 성서비평의 방법을 도
입하여 성서영감설과 무오설을 비판하고 있다.
3. "신학의 갈길 "(1962)
60년대의 장공은 세계를 보는 눈이나 민족사의 고통받는 민중을 보
는 눈이 열린 사람이었다. 그는 소아적 교만이나 독선적 비판주의자에
서 좀더 성숙한 인격소유자로서 신학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 그에
게서 신학함이란 성서의 영감설이나 무오설 등 치졸한 논쟁 차원을 벗어
나 세계신학으로 향한 도약과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려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어쩌면 장공이 신학을 시작하며 "삶의 신학" 을
외쳤던 그 본래 신학의 길을 찾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신학의 갈 길" 을 그가 찾아가면서 그는 세가지를 생각하며 고독한 길
을 걸어간 것이다. 첫째, 그는 다음과 같이 "신학의 세기말"적 상황을서
술하였다.
모든 종교는 신뢰의 대상과 구원의 방도와 소망의 목표를 갖고 있다...
종교는 그 신로의 대상에 절대가치를 상정한다. 그런데 그것이 '절대'가
치에 해당할 만한 본질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에 그 종교는 '우상숭배'
로 되는 것이며 이른바 '거짓 절대"에 따르는 몰락과 저주를 가져오게되
는 것이다.
인간의 신앙심에 내재되어 있어야 할 절대 가치를 주장함에 있어 김재
준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조직신학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
다. 틸리히는 인간의 종교적 신앙에 대한 보편성을 (1) 인간이 존재의근
원에로 향하여 나아가려는 지향성 (2) 인간의 실존인 불해방의식 (3) 인
간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역사를 초월한 곳에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인간의 소망과 확신 등이라고 본다. 인간을 '종교적 인
간(homo religiosus)'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종교적 신앙의 보편
성이다. 이 점에서 김재준은 실존주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
고 이으며,그가 수용거부한 신정통주의 신학을 사실상 받아들이고 있음
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하여튼 인간의 보편적인 요구에 속하는 궁극의 문제들에 대하여 역사적
기독교가 대답하고 있는 한, 신학은 없어지거나 그 근본에서 변질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이 시대를 따라 생성 유전하여 조건을 달리하는 한,신
학도 그 생태를 고정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신학함의 본질인 것이다. 신학의 불변성과 동시에 비고정
성,즉 정중동 혹은 불변의 상변신학을 김재준은 역설한 것이다.
둘째, 김재준은 "신학의 방향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교파신학의 지양
교파주의를 지양하고 "하나의 교회"에서 교회 본질과 사명을 찾도록
하자는 주장은 그의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을 나타낸 것이다.
2) 근본주의 대 자유주의 신학논쟁의 지양신학 대결은 신아의 대결로 ,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감정대결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혈전을 벌이게 되어
양대진영이 이로운 것이 업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김재준은 이제 더 이상
신학논쟁,특히 근본주의 대 자유주의의 싸움은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임을
실토하고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역사적 상황 안에서의 신학은 보수와
자유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이 김재준의 관용스런 신학입
장이다. 보수를 파괴의 대상이나, 존립부정의 대상이 아니고 대등한 동
반자로 인정하고 있다.
3) 가톨릭 대 개혁교 신학 논쟁의 지양 김재준의 논지는 "신학적으로볼
때, 어떤 경우에 더 많이 가톨릭적이고 어떤 경우에 더 많이 개혁교적이
라고는 할 수 있으나 그 기독교적 원칙의 일관성에 있어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온전히 제외시키고서 독자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
다. 하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의 신학함이 삶의 신학에서 형성된 것
이며, 행동하는 역동력, 즉 생명력을 추구하는 점에서 김재준은 교파사
이에 연합된 하나의 교회 운동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형제
된 신분을 유지, 보존하면서 하나의 길, 신학의 갈 길을 올바로 가기를
적언할 것이다. 이것이 장공의 이름붙일 수 있는 신학인 것이다.
셋째, 장공은 "신학의 취할 방향"을 신학이 갈 길의 마니막 논제로 제
시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신학구상이며, 그가 당시에 설계한 미래 신
학의 청사진인 것이다.
1) 세계교회적인 신학
"금후 신학이 취할 방향은 이미 이상에서 암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부터의 신학은 어떤 신학자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만족할 성질의 것
이 아니며 어떤 교파의 신앙고백을 변증한 것으로 능사를 삼을 성질의것
도 아니다. 금후의 신학은 '성령의 계통에 의한 세계교회적인 이론과 실
증주의자이며 과학주의자였던 장공, 합리주의신학을 구상했고, 주장했고,
완성하려 했던 젊은 시절의 장공이 후기에 와서 비로소 "성령의 계통"을
요청하며 신학형성에서 역설한 것은 매우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
쨌든 김재준은 성령신학으로 세계신학 형성을 역설한 것은 사실이다.
2) 세계교회적 신학의 '모퉁이돌'
김재준은 매우 의지가 강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그
는 그의 신학이 세계신학의 '모퉁이돌'로 한 몫을 담당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의 용기나 긍지는 단지 그의 신학의 모퉁이돌 구실로 만족할 것
은 아니다. 그는 사실상 세계신학의 주춧돌로서 위치를 갖고자 했던 야심
많은 신학자였다. "세계교회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구원
자시다' 하는 신앙고백을 '모퉁이돌'로 삼고 건축된다." 김재준은 결국여
러해 동안 방황하고 나서 그리스도의 중심신학으로 귀향한 것이다. 이 점
에서 그는 분명히 신정통주의 신학자이기도 하다.
3) "세계교회적 신학의 범위는 인간과 인간 문화 및 역사의 전반에 관여
한다," 김재준은 "어느 것에 속한다는 것은 벌써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
으로서 생명의 정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라고 1949년 선포한 바 있으나
이미 1962년에 그 스스로 틸리히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그리
고 리챠드 니버(Richard Niebuhr) 등의 문한신학과 역사신학의 영향권에
예속되고 말았다. 그는 신학의 이런 경향을 삶에서 해석하려 했다. 여기
에서 그는 우수의 철인 키엘케골(Soren Kierkegaard)의 실존주의를 삶의
정황 자체로 수용하였고 문화, 역사, 사상, 과학, 예술 등등의 모든 인
간적 삶의 현상들을 기독교 신앙의 관계에서 설명하려 했다. 그것은 마
치 박형룡이 "한국의 메이첸"이라고 평가되듯이 김재준이 "한국의 문화
신학자"라고 불려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우리는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게도 각기 스스
로를 자랑할만한 이론과 역사와 규범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신학의 갈길! 이에 대하여 초교파주의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하나의
신학, 세계신학 그리고 더 나아가 기독교 상대주의를 암시하고 있는 종
교신학임을 김재준은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훌륭한 적언에
불구하고 "신학의 갈길"은 개인의 신앙형태만큼이나 갈라져 있는 것이현
실이다.
김재준의 "신학의 갈길"은 사실상 그가 세운 조선신학교(현 한국신학대
학)의 신학의 방향을 다시 간추려 역설한 것이다. 김재준 교수가 송창근
박사와 손을 잡고 신학교육에 힘을 쓰면서 조선신학교를 설립하고 헌신
하게 된 것도 그의 신학이 삶에 기초하여야 하는 행동 신학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재준은 조선신학겨의 신학교육 목표를 다음과 같이 내세웠
다.
(1) 우리는 조선교회로 하여금 복음선포의 실력에 있어서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학적, 사상적으로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게 할 것.
(2) 그러하기 위하여 우리 신학교는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찬을 경하
여 자율적으로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하도록 지도할 것.
(3) 교수는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없이 충분한 동정과 이해를 가
지고 신학의 제학설을 소개하고 다시 그들의 자율적인 결론으로 칼빈신
학의 정당성을 재학인함에 이르도록 할 것.
(4) 성경연구에 있어서는 현 비판학을 소개하되 그것은 셩경연구에 예배
지식으로 이를 채택함이요 신학 수립과는 별개의 것이여야 할 것.
(5) 어디까지나 조선교회의 건설적인 실제면을 고려에 넣는 신학이어야
하며 신앙과 덕에 활력을 주는 신학이어야 할 것. 신학을 위한 분쟁과증
오 모략과 교권이용등은 조선교회의 파멸을 일으키는 악덕이므로 삼가그
런 논쟁을 피할 것.
우리는 여기에서 김재준의 신학목표나 연구 목적이 평양신학교의 교육
목표와 많은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교육은 개방성과 자유
가 보장된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임
을 알 수 있다. 모든 세계관에 대한 개방과 모든 학문탐구의 자유야말
로 학문의 최대 권리이며, 바로 학문발전의 원동력임을 김재준은 인정하
고 이런 이상에 따라 신학교육을 시작하였고, 그것만을 위해 헌신했던것
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열중한 나머지 신앙으로
서의 신학 본래성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는 "아버지하나님"보다는 " 존
재 자체"를 사모했고 동경했으며, 신앙의 깊이 보다는 신앙의 문화적 표
현을 더욱 높이 평가했다.
III. 맺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김재준의 신학을 진술하면서 그의 신학사상을 문
제성에있는 작품중심으로 파헤쳐 보았다.물론 제한된 지면 때문에 그의
전체 작품을 다루지 못한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다룬
몇편의 작품들은 그의 전체 사상의 대표적 표현이며 서술이기 때문에 우
리의 추적.분석.해석.비판 등은 가장 적중한 것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신학을 몇가지로 평가하며 이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첫째, 장공 김재준의 신학과 사상은 너무 많은 내용을 산발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 따라서는 그 한면만을 보고서 그를 모두 이해했다
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어떤 사상을 두리뭉실 포용하려는면
도 갖고 있으므로 그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둘째,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인가? 그의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Nein!)
"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앙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정통주의 신학자인가?
그의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그는 신정통주의 신학자
인가? 이 역시 그는 "아니다!라고 부정한다. 이러한 3중 부정이란 결국
20세기 인물인 김재준은 어떤 신학자로서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
다. 그는 자유주의도 알았으나 배척했고, 보수주의도 맛보았으나 그들
의 발광을 보고 떠났으며, 신정통주의는 문화적이고 합리주의적 지성에
기초한다고 거절하였다. 결국 그의 신학은 모두를 부정한 '부정신학("
Nein" - Theologie)'이었지만 실제로는 모두를 갖고 싶은 '포괄신학(U
mgreifen-Theologic)'이되고 말았다. 그에게서 신학은 '이것이냐 저것
이냐(Entweder Order)'의 '결단신학(Entscheidungs-Theologie)'이 아
니고, '마치 이것인듯한 (Als-Od)'의 신학이며, 합성신학인 것이다.
셋째, 김재준은 분명히 위대한 한국 신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신
학의 큰 봉우리 하나를 한국교회에 보여준 예언자적 인물이며, 예언자
적 역사의식을 갖고 행동하고, 설교하고, 가르치고, 비판하면서 그것
자체를 신학함이라고 하는 현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독
선주의 혹은 비판주의는 한국교회 분열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으며,그
가 주장하는 삶의 신학이 진정 어떤 의미의 삶을 신학함인지 의심케한
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기 때문에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페쇄된
때에 조선 신학교가 개교된 것은 어떤 역사의 장난이 있었는지 아직은
감추어져 있다. 그의 철저한 신사참배 부인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 안
하고 신학교 할 수 있도록 일제의 식민총통의 개교 허가를 했다면 하
나님의 섭리는 평양신학교는 페쇄하고 조선신학교를 개교하게한 것이
란 뜻일텐데, 아직 많은 점에서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
넷째, 그는 조직적인 신학자는아니다. 그릇은 크지만, 체계적으로 신
학을 만들 수는없었다. 그것은 그가 타고난 문학적 재질 때문에 신학
의 논제들이 산문화된 점도 있겠으나, 대체로 그의 신학의 전문적 관
심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실 김재준은 인간의 문화내영 전체를
신학화려 했던 인물이므로, 그의 신학이 체계화되기는 어려웠다. 그리
고 그의 신학 가운데 전공분야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그를 어떤 신학
자로 보아야 할지 망설이게 한다. 그래서 유동식 교수는 김재준을 "순
례자"로 그리고 항상 새로운 관심으로 사물에 접하는 용기를 보면서구
원의 청년으로 규정한 것이다.
김재준! 그는 아호처럼 끝없이 긴 하늘을 향한 신학함을 이땅에서 외
쳤던 시대의소리요, 한국 역사의 예언자적 아니 순교자적, "생의 의의
찾아 실재의 세계를 더듬어 빈들에 헤매던 순래자"의 삶을 실제로 보
여준 산 표본이었다. 여기에 장공 김재준의 참 모습이 있어며, 그의위
대함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