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로
“시 쓰기에 소질이 있다 싶어 문예창작과에 갔는데 정말 잘 쓰는 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더군요. 그런데 동아리 활동으로 농악을 하면서 뭔가 나를 표현하는 언어가 되겠구나 싶었죠.”
▲이명훈 고창농악보존회장
88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이명훈(42) 고창농악 보존회장은 전공보다 민요패 동아리에 들어가 농악과 관련된 악기들을 배우면서 그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 고향인 고창에서 만난 전북 무형문화재 제7-8호 황규언씨로부터 쇠와 장구를 사사받으면서 우리의 전통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고창농악을 알게 되었다. 고창에선 40여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의 실력에 놀라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90년도에 이르러선 혼자 배우는 게 아까워 몇 명은 서울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자신은 전북대 국악과에 입학해 공부했다. 97년도엔 고창에 정착하여 동리국악당에서 농악을 가르치는 강사로 10여 년간 재직하며 옛날 자료를 복원하는데 매진했다.
고창농악과 그 종류
고창농악은 논에서 하는 풍장굿을 비롯하여 정월 대보름 전날 지난해 묵은 액을 몰아내고 새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하는 매굿,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하는 문굿과 함께 마을의 가장 큰 수호신인 당산에 가서 치는 당산굿, 마을 공동우물에 가서 치는 샘굿 등이 있다. 또 이러한 당산굿이나 매굿, 풍장굿, 문굿 등이 끝나고 판을 벌여놓고 치는 판굿도 있다.
▲2008년 고창농악경연대회
“어르신들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는데 다음 세대로 이어주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다 화려하고 멋 들어진 몸짓이나 가락에 매료되었다. 또한 사람한테만 이어지는 재산이라 그런 자료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획일화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별로였고, 다양한 굿의 패턴이 곳곳에 있음에도 대표적인 것만 부각된다는 게 싫었다. 굿의 특성이나 맛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그런 자료를 모아보려고 노력했으나 개인이 하기엔 한계를 느껴 농악을 배우러 온 학생 10여명과 함께 조사를 했다. 그걸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고창농악]이다.” 오랜 시간 조사하고 작성한 자료가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나온 이 회장의 감회가 남다르다.
“고창농악은 호남 우도 아래(목포 지방) 농악은 좀 느리고 위로(익산 지방) 갈수록 점점 빨라져 차이가 난다. 그 중간 지역인 영광, 무장(고창) 지방은 느리거나 빠르지도 않다. 이 세 지방의 지명을 따서 영·무·장 농악의 전통적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굿의 색깔들이 지역적으로 다 드러나게 해야 되는데 고창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굿의 특징은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맛과 멋이 다르기 때문에 10년 이상 된 친구들처럼 그 느낌이라는 게 있다. 여럿이 같이 모여야 할 수 있는 것이라 굿의 힘은 사람이다.”
고창농악의 발전사
이 회장은 “과거엔 일직선의 시스템으로 전수되었던 농악이 현재 조직적으로 전수되는 것도 큰 힘이다. 젊었을 땐 힘든 줄 모르고 했고, 30대엔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으나 경제적으로 시달렸다. 샤워할 곳도 마련하지 못해 선배 집을 전전하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좋아진 편이다.”라며 과거 힘들었던 시절들을 회상했다. 그렇게 어렵고 치열하게 사는 순간에도 계속했던 건 굿치는 순간 모든 사심이 없어지고 그저 "잘 한다!" 또는 박수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소리에 흥이 절로 겨워 무아지경에 빠지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한때 12시간 굿을 친 적도 있다고.
▲ 2007년 고창굿 한마당 행사
▲ 해외교포 초청으로 과테말라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던 모습
최근엔 풍물 동아리를 비롯해 초중고 특기적성교육이나 방과 후 수업으로도 인기가 많은 고창농악. 이전부터 고창읍면에는 7개 정도 농악단이 있었는데 2001년도에 고창군에서 도민체전 개막행사로 500명을 동원한 15분 공연을 의뢰해와 걱정을 크게 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각 읍면마다 30명씩 뽑아 14개 읍면 농악단을 만들고 4~5개월 동안 3개면씩 모아 작품을 가르친 후, 전체 읍면을 다시 모아 가르치고 전체 리허설을 거쳐 개막식 날 완벽하게 공연을 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농악단은 이후 고창농악 경연대회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올해 9월 6일엔 서울에서 고창굿 한마당 행사도 치렀다. 이렇듯 고창농악 보존회에서는 전수 뿐만 아니라 고창농악 문화재 발표회, 고창농악 경연대회 그리고 고창농악 정리사업과 더불어 각종 초청공연에도 참가한다. 현재 고창농악 보존회는 연간 50~60회의 행사를 하며 2007년에는 해외 교포 초청으로 과테말라에 가서 공연하고 온 적도 있다. 내년 하반기에는 이 회장 개인의 발표회도 가질 예정.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이 회장은 “편히 살아도 되는데 왜 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더 그렇다. 후회는 안 하나 돈은 못 벌고 힘도 든다. 그렇지만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을 때 정말 이 일이 좋다는 걸 실감한다. 뭔가 하나의 일에 소신을 갖고 매진하면 언젠가는 이뤄진다. 그렇게 하기까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끈기와 인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농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면서 굿치는 마을을 이루는 게 그녀의 꿈이다.
글&사진 위민기자 유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