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슬기로운 꼬마 양양은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소년을 사로잡은 주제는 사람들의 뒷모습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어른들에게 어린 예술가가 밝히는 의도는 명쾌하다. “사람들은 항상 절반밖에 못 보잖아요. 나머지 반을 보여주고 싶어요.”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도 비슷한 소망을 내비친다. 얼굴의 반대편에 있기에 타인은 유심한 시선을 보내지 않고 본인은 아예 잊고 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인어공주>에는 돌아앉은 남녀의 등을 응시하는 숏이 유난히도 많다. 티셔츠를 훌렁 벗고 탕에 들어가는 때밀이 어머니의 등, TV 앞에 멍하니 앉은 아버지의 등, 받아쓰기에 열중한 스무살 처녀의 웅크린 등, 마음 끌리는 처녀의 자맥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집배원의 등. 그리고 이 모든 뒷모습들은 못나고 가난한 부모에게 절망한 딸이 엄마의 놀라운 ‘뒷모습’과 마주치는 여행 속에 흩어져 있다.
불행한 딸의 이름은 김나영(전도연)이다. 빚보증 잘 서는 무능한 아버지 김진국(김봉근)은 딸의 대학등록금까지 날렸고, 대중탕에서 때를 밀며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 조연순(고두심)은 궁상맞고 이악스럽다. 젊고 자존심 센 그녀는 아버지 때문에 곤궁하고 어머니 때문에 초라하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원망하다가도 아버지를 구박하는 어머니가 얄밉고, 부모에게 화를 냈다가도 화낸 자기가 싫어지는 나영은 흔들릴 뿐 갈 데가 없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듣지 못할 곳이기에 남자친구의 오토바이 뒷자리에서나 눈물을 씻는 나영의 모습에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 혜주, 지영의 몇년 뒤가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직장에서 떠나는 뉴질랜드 연수만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가출하고, 아버지의 지병이 깊어졌음을 발견한 나영은 그가 있을 법한 섬 마을 하리를 찾는다. 그리고 자전거를 탄 하리의 우체부가 나영을 돌아보는 순간 놀랍게도 시간이 뒤틀린다. 나영은 스무살의 해녀 연순(전도연)의 손님이 되어, 잘생긴 우체부 진국(박해일)을 향한 그녀의 첫사랑을 목격한다.
몇번의 개입은 하지만 <인어공주>의 나영은 <백 투 더 퓨처>의 마이클 J. 폭스만큼 부모를 연결시키기 위해 활약하지 않는다. 과거의 인물들이 나영을 <식스 센스>의 브루스 윌리스마냥 본 듯 만 듯 대하는 모습은, 이것이 나영이 뉴질랜드행 비행기에서 꾸는 꿈이나 아버지가 머문 마을 언덕에서 상상한 과거이리라 짐작하게 한다. 현재-과거-현재의 구성을 취한 <인어공주>의 2장이며 몸통인 연순과 진국의 러브스토리는- 둘의 미래를 예고한 1장의 현실이 멀리서 그늘을 드리울 뿐 -햇빛 찬란한 동화다. 1장의 착잡한 침묵 대신 웃음과 탄식이 빈틈없이 이어지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뛴 계절에 화면은 색채로 약동한다. 2장이 주는 재미의 큰 부분은, 고두심의 연기 매너까지 습득한 노력이 엿보이는 전도연의 다부진 1인2역을 포함한 연기의 복선들이다. 모두가 타박하는 엄마의 침 뱉는 버릇은 과거로 돌아가면 해녀의 싱그러운 호흡법이 된다. “죽고 잡은 년은 나”라고 악쓰던 엄마가 이곳에서는 삶에 대한 환희를 가누지 못해 나영을 꽉 껴안는다. 보증 선 아버지를 쥐잡듯 다그치던 엄마가 이곳에서는 “사람이 우선 착허고 봐야지”라고 힘주어 말한다. 불행의 상류로 찾아갔더니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인어공주>가 흥미롭다면, 모녀 관계를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에 다시 포용하고 시민권을 수여해서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 그리고 가족을 바라보는 방식이 참신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또는 투쟁의 구조를 지닌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따라잡아야 할 영웅 아니면 무찔러야 할 괴물이었다. 그러나 <인어공주>의 딸은 어머니를 닮거나 버림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극복한다. 그녀는 어머니를 이해했기에 어머니로 인해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또한 ‘아들’을 주체로 삼은 영화가 어머니를 거의 배제한 반면 딸의 영화 <인어공주>는 어머니를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재발견하는 차이도 눈길을 끈다. <인어공주>는 결말에 이르러 엄마의 스무살 시절을 다시 방문한다. 하지만 영화는 오직 희망만 가득한 과거의 정지된 순간에 잠들지 않고, 살 냄새 자욱한 현실의 목욕탕으로 구태여 돌아온다. 목욕탕 속 숨겨진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순간 고두심의 ‘1인2역’처럼 보인다. 거칠 것 없이 물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건강한 여인의 팔다리는 어머니 연순의 것인 동시에 딸 나영의 것이기 때문이다.
1인2역은 <인어공주>가 던진 승부수 가운데 하나다. 박흥식 감독은 이 아이디어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김태용 감독이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인어공주>가 1인2역을 처음 선보인 한국영화는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 가운데 1인2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쉬리>일 것이다. <쉬리>는 특수요원 이방희와 평범한 여성 이명현의 두 얼굴을 북한의 본모습이라고 암시했다. 오승욱 감독의 <킬리만자로>도 1인2역이 인상적인 영화다. 깡패와 형사로 상반된 삶을 살았던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 여기서 1인2역을 소화한 박신양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비슷한 연기를 다시 시도했다. 복수를 위해 형의 얼굴로 거듭난 인물로 등장한 박신양은 대조적인 성격의 두 인물을 그려냈다.
흔히 1인2역 혹은 1인다역은 배우의 재능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사용되곤 했다. <오스틴 파워> 같은 영화는 대표적이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주인공 오스틴 파워와 악당 닥터 이블과 팻 배스터드를 동시에 연기했다. 이런 1인다역의 원조로 손꼽히는 인물은 피터 셀러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 맨드레이크 대위, 나치 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등 1인3역을 소화했고 이외에도 몇편의 영화에서 1인다역을 보여줬다. 원작 <너티 프로페서>의 제리 루이스, 리메이크판 <너티 프로페서>의 에디 머피도 피터 셀러스의 계보에 놓인 배우로 볼 수 있다. 화장실 유머의 대가 패럴리 형제와 황당한 상상력의 소유자 찰리 카우프만, 스파이크 존즈 콤비도 1인2역을 선호하는 창작자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의 짐 캐리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의 기네스 팰트로, <어댑테이션>의 니콜라스 케이지 등은 그들의 분신으로 기억에 각인된 바 있다. 물론 이런 장치가 코미디의 전유물은 아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데드 링거>는 쌍둥이 의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작품이며,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불가해한 삶의 형상을 눈부신 형식미로 표현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