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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내 편이시라(시 118: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치 앞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 제주 새별오름 일대에서 들불 축제가 시작되었지만, 15일, 강한 돌풍으로 인하여, 행사장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눈까지 올 것이라고 하는 일기예보로, 행사 자체가 전면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어제 청주 날씨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날씨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은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 버린 것처럼, 상당히 추워, 예측이 빗나가버렸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고 할지라도, 마음을 바로 잡고,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은 심각하게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어릴 적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내 편이 아니면, 반대편이 되고, 반대편이 아니면, 무조건 내 편이 되는 그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혼란과 무질서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어느 편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반드시 어느 한 편에 서야만 하는 것일까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 한 나라 안에서의 이념과 종교적인 갈등 등 숱한 문제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 시대에만 다툼과 분쟁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온 세계 역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쟁 이야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끔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주로, 다툼과 분쟁, 전쟁 이야기들입니다. 다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다툼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져 있기에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할까요?
북이스라엘에서, 아합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영적 싸움을 할 때,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왕이 아합이었고, 왕비가 이세벨이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에 반감을 가진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후가 아합을 죽이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성문 위에는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예후가 성문 위를 바라보면서,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왕하 9:32)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세벨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내시가 이세벨을 성문 아래로 내던져버렸습니다. 영원한 내 편이라고 여겼는데, 내 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영원한 내 편은 없다고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같은 편 안에서도 반대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누가 우리 편입니까?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6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편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다 보면, 우리는 이 편에 설 때도 있을 것이고, 저 편에 설 때도 있습니다. 이 편이 좋아서 이 편에 설 때도 있지만, 저 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이 편에 설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편에도 서 보고, 저 편에도 서 보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실망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실망하지 않으려면, 우리를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편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론의 집을 향하여,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영적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일군들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이 자리에 나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큰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미가 선지자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산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는 것,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습니다. 우리가 잘하건 못하건, 한결 같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누군가 잘 하면, 그를 칭찬하기보다는, 조금만 실수를 해도, 그것을 가지고, 그를 끌어내리려고 아우성을 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한결같다고 하는 것을 느낀다고 하는 것, 그것이 조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다고 하는 것, 그것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늘 그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올해는 4월 20일, 4월 셋째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고,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5-7절 말씀입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살다 보면, 행복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고, 갑작스럽게 밀려온 불행에 몸부림칠 때도 있습니다. 행복할 때에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이 밀려올 때에는 감사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행복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가수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이 가사를 들으면, 묘하게,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 택시 기사인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에 있었을까요? 그 한 마디, “양화대교”라는 말이,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손님을 태우고, 양화대교를 쉴새없이 왔다갔다 지나가고 있었을까? 아니면, 손님이 없어서, 양화대교에 멍허니 서 있었을까? “양화대교”라는 말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껴볼 수가 있습니다. 후렴 부분에서,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가사처럼, 주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아프지 말고, 늘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7:14절을 보면, 솔로몬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습니다. 편할 때도 있고,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렵다고, 계속 어려운 일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좋은 일이 계속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하거나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행복할 때에는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라고,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라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넓은 곳에 세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는 들어주시고, 누구의 기도는 안 들어주시는 그런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다 들어주십니다. 특별히 어려움 가운데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더 잘 들어 주십니다. 곤고한 자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 73:25)라고 말했습니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을 어떻게 이루어가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주십니다. 먼 훗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날이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오기 위하여, 충북대 병원 앞 오거리를 지나다 보면,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면, 이것저것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어지럽게 널려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아직 아파트가 완공되지 않고, 공사중이기 때문입니다. 공사가 다 끝난 후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공사가 마무리될 때에는 아주 보기 좋게 정리된 멋진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도 지금 공사중입니다. 미완성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하루하루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시요, 우리를 아름답고 멋지게 다듬어가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이제 주께서 종의 왕조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대상 17:26-27)라고 말했습니다.
욥기를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욥 22:18)라고 말했습니다.
8-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디로 피해야 합니까? 피할 곳이 있습니까?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8-10)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 품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시편 121편을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말했던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5절)라고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5-6)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 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삼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우리의 편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항상 주님께 감사하며, 예배하며 살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옵소서.
우리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