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토요일 딱 두 시간,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온다 *제주=양지호 기자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사진=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조선일보> 2015년 11월 5일
한적했던 제주도 포구 마을 방파제에 장이 섰다. 이름도 낯선 '벨롱장'. '벨롱'은 제주 말로 '작은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을 뜻한다. *제주토박이 출신인 내가 보기론 '벨롱'은
'베롱'으로 쓰는게 맞을 것 같다. 이 '베롱'이란 제주말은 위에서 말한 의미 말고도 여러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앓다가 좀 나은 듯한 사람의 표정을 보면 '호꼼 베롱했저이!(쬐끔 나은듯 하구나!)'하고 인사한다. '배롱헌거 있수강?' 하면 '특별한 것 있습니까?' 라는
뜻이다. 형편이 어렵다가 경제 사정이 좀 나아진 걸 두고 '베롱해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늘에서 본 '벨롱장' 상단 배경음악은 잠시 꺼주세요.
제주도 벨롱장 10월 24일 오전 9시 30분 제주시 구좌읍 세화포구 방파제 길 초입에 좌판과 돗자리를 들고 나타난 '벨롱다리(벨롱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딴 판매자)' 수십 명이 늘어섰다. 장이 열리는 오전 11시가 가까워져 오자 줄은 더 길어졌다. 이들은 참가비 5000원을 낸 뒤 각자 '명당'을 찾아 판을 벌였다.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150m의 시장에 어디서 듣고 왔는지 사람들이 몰려왔다.
△지난 24일 벨롱장의 한 셀러(왼쪽)가 히말라야 산맥에서 가져왔다는 돌을 남미산(産) 실에 꿰어 팔찌를 만들고 있다. 돗자리에는 이렇게 만든 수제 팔찌와 발찌를 진열해 뒀다.
방파제를 따라 늘어선 좌판들에는 직접 만든 팔찌와 목걸이, 가방, 목공예품 등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즐비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허니버터 문어구이, 떡볶이, 제주 감귤 주스 등 먹을거리도 한가득 자리를 차지했다. 한 판매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가져왔다는 돌을 남미 산(産) 실에 꿰어 팔찌와 발찌를 만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500원짜리 마시멜로를 나무막대에 꽂아 구워먹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111팀의 판매자들도 수백명에 달하던 손님들도 모두 사라졌다. 방파제 길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서.
△바닷속 풍경을 담은 인기 상품 ‘제주바당’ 캔들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모이는 아트장터 이날 만난 벨롱장 운영진은 "자신이 직접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있다면 벨롱장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벨롱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품목은 '제주바당'이란 이름의 향초다. 유리컵 안에 모래를 깔고 드라이플라워와 조개껍데기를 놓은 뒤 투명한 젤을 부어 만든다. 개당 2만원 정도 하는 제주바당 캔들을 4개 집어 든 여행객 이원선(35)씨는 "방 안에 두고 불을 피울 때마다 제주도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며 "손안에 제주 바다를 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장이 열린 지 1시간 만에 동나 뒤늦게 벨롱장을 찾은 손님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할 정도다. 3000~5000원 하는 손글씨 엽서도 인기.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하면 어디든지 꽃길' '그대처럼 빛나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문구 앞에 오래 머물렀다. 제주도에서 나는 조가비로 만든 귀걸이와 반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벨롱장은 2012년 세화리 인근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공방 등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자신들이 갖고 온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조그만 벼룩시장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판매하는 물품도 늘어나면서 운영진은 아트마켓 성격을 강화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플리마켓이 늘어나면서 벨롱장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한 판단이었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라고 소개한 김세은(36)씨는 "벨롱장 말고 다른 플리마켓에는 판매자로 등록했는데 벨롱장에서는 반려당하고 있다"며 "질 좋은 물건들이 팔리다 보니 사람들이 계속 벨롱장으로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참가하는 판매자는 100~130팀 정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시멜로를 굽는 데 여념이 없다.
◇가기 전 '장서는 날' 꼭 문의해야 벨롱장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화포구에서 열린다. 하지만 변수가 많다. 인근 재래시장인 세화5일장과 겹치면 열리지 않고, 비가 내려도 취소된다. 겨울에는 열지 않는다. 당일 오전에 우천으로 취소가 되다 보니 공식 홈페이지를 수시로 체크해보는 게 허탕치지 않는 길이다. 올해 마지막 벨롱장은 다음달 7일에 열린다. 31일 장까지 치면 올해 벨롱장에 갈 기회는 단 두 번 남은 셈이다.
제주도 최초의 플리마켓은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서 열리는 '서귀포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다. 2007년 작가 4~5명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 커져 이제는 1년 내내 주말과 공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이효리가 콩을 팔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하루하나 카페의 '반짝반짝 착한가게'도 유명하다. 매주말이면 제주도는 플리마켓으로 들썩인다.
제주 플리마켓의 성장을 이끈 것은 제주도로 이주한 30~40대 문화예술인들. 이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또는 소일거리로 만든 작품을 플리마켓을 통해 내다팔았고 이 문화가 제주도민에게도 퍼져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