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 아동부문 (동상) 당선작
< 나는 도둑이 아니다 >
조 용 미
실내화를 잃어버렸다. 분명히 내 사물함에 두었는데 사라졌다. 처음엔 경현이 장난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다그쳐 물어도 아니란다. 꼬박 일주일동안 범인을 찾아다녔지만 알 수가 없었다. 찾아낼 때까지 실내화 없이 버틸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붙여준 ‘맨발의 청춘’ 별명도 싫지 않았다. 양말 바닥이 새까맣다고 엄마가 계속 혼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실내화 도둑 잡는 것을 포기하고 실내화를 사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내 비밀이 시작된다.
그날, 왔다 문방구는 무척 붐볐다.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동찬이가 자기 반 아이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핫도그를 사주고 있었다. 왔다맨은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핫도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학교 정문 앞에는 문방구가 세 개 있는데 왔다 문방구가 가장 장사가 잘 된다. 왔다 문방구의 주인은 젊은 형인데 수퍼맨처럼 쫄쫄이 바지에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우리는 모두 그 형을 ‘왔다맨’이라 부른다. 왔다 문방구에 늘 아이들이 북적이는 데는 그 형의 특이한 옷차림도 한 몫 한다.
나는 왔다맨에게 실내화를 달라고 했더니 벽 쪽 실내화 더미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내 발에 맞는 것을 고르고 돈을 주었다.
“왔다맨, 여기 오천 원이요.”
“어, 어어”
왔다맨은 핫도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핫도그 선반 위에 돈을 올려놓았다. 5천원짜리 지폐를.
그때 어떤 여자 아이의 화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옷에 케첩이 묻은 것 같았다. 계속 신경질 내는 그 아이의 옷을 다른 아이가 닦아 주었다
“아이 몰라. 이거 안 지워지잖아. 새 옷이란 말이야. 책임 져.”
케첩 얼룩이 지워지지 않자 고함을 쳤고 옷을 닦던 아이는 엉거주춤 서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핫도그 빨리 달라는 아이, 케첩 묻었다고 악 쓰는 아이. 허둥지둥 케첩 닦는 아이. 비키라고 밀치는 아이.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난 거스름돈 200원을 받기 위해 묵묵히 기다렸다.
핫도그를 든 아이들이 빠져 나가자 조용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왔다맨은 아이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웠다.
“거스름돈 주세요.”
“무, 무 무슨 돈?”
“실내화 고르고 5000원 드렸잖아요. 200원 주셔야죠.”
“나, 나 난 바 바, 받은 적이 어 없어.”
머릿속으로 열이 확 올라왔다.
“아까 드렸잖아요. 얘기하고 여기 뒀다고요.”
선반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혹시 떨어졌나 싶어 선반 밑도 살폈다. 아이들이 버리고 간 휴지와 사탕 비닐껍데기 뿐이었다. 왔다맨은 돈주머니를 뒤졌다. 오천 원짜리는 한 장도 없었다. 정말 펄쩍 뛸 노릇이다. 난 분명히 줬는데 돈이 없다.
“아, 미치겠네. 내가 분명히 여기 뒀다고요! 봤잖아요.”
“아 아 아 아니 모 모 못 봤어.”
왔다맨은 원래 말을 더듬는다. 흥분하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내가 거짓말 한다는 거예요?”
“바, 봐. 오 오 오천 원짜리가 어 없잖아. 너 너 네 차, 차 착각이야. 자 잘 차 찾아 봐.”
내 주머니를 뒤져도 돈이 없다. 다시 바닥을 찾아봤다. 쭈그리고 앉아 휴지 쓰레기를 뒤졌다.
“미치겠네. 내가 왜 이걸 뒤져야 하냐고.”
“내 내 내가 차 찾아보, 볼게.”
왔다맨이 내 5천원을 받고나서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거스름돈으로 꺼내줬을 지도 모른다. 내 생각은 점점 그쪽으로 굳어졌다.
“잘 생각해 봐요. 혹시 다른 사람한테 거스름돈으로 주고 기억 못하는 거 아니에요?”
왔다맨이 아주 기분 나쁜 얼굴을 했다.
“화화확실해. 나 나 난 안 받, 았, 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고른 실내화를 실내화 더미에 던져버리고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쌓여있던 실내화 더미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말 더듬는 소리가 오늘따라 아주 거슬렸다.
“야, 야! 휴우, 나 나 나 나쁜 녀 녀녀석.”
실내화도 못 사고 돈만 날렸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했다. 왔다맨이 그동안 보여준 건 다 쇼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붙는 쫄쫄이 옷과 빨간 망토로 아이들의 마음을 홀리고 말 더듬으며 착한 척 한 거다.
내가 “5천원이요”라고 말 하면서 돈을 올려뒀는데 그걸 모를 리가 없다. 너무 억울해서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왔다 문방구를 지날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내 돈 5000원을 돌려받아야 화가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딱 5천원어치만 왔다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거다. 이건 도둑질이 아니다. 내 돈 5천 원을 물건으로 돌려받는 것뿐이다.
왔다 문방구에 들어갔다. 왔다맨이 나를 알아봤다.
“너, 너. 어제 실내화. 도, 돈은 찾았어?”
“아뇨.”
길게 말하기 싫었다. 그냥 돌려받으면 끝이니까. 난 아이들이 핫도그를 사러왔을 때 몰래 지우개 하나를 숨겼다. 지우개보다 두근두근 가슴 뛰는 소리를 먼저 들킬 것 같았다. 손에 쥔 지우개가 땀으로 미끌미끌 했다.
왔다 문방구에서 나오자마자 막 달렸다. 집에 와서 주먹을 펴보니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패여 있었다. 누가 볼까봐 지우개를 책상 서랍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수첩에 적었다.
지우개 500원
다음 날 또다시 왔다 문방구로 갔다. 1학년짜리 아이가 물건마다 가격이 얼마냐고 묻는 통에 왔다맨은 다른데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 물건을 가져가는 거라고 몇 번이나 속으로 말했지만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 나올 듯이 쿵쾅거렸다.
‘그만 둘까?’
잠깐 고민했지만 내 손이 이미 미니 책을 주머니에 넣었다. ‘공포의 계곡’이라는 아주 작은 미니 책이다. 무서운 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는데 아이들한테 아주 인기가 좋다.
집에 와서 수첩에 적었다.
미니 책 500원
체한 것 같이 속이 답답했다. 기분도 좋지 않아 친구들을 불러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제일 친한 친구 은태, 준혁이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지우야, 너 오늘 무지하게 달린다.”
친구들이 헐떡거리며 뒤따라 왔다.
“좀 답답해서.”
“엄마한테 혼났냐?”
“아니. 왔다맨 때문에. 왔다맨이 내 돈 5천원을 꿀꺽했어.”
“왔다맨이? 설마.”
“왔다맨이 얼마나 착한데. 누구든지 돈이 모자라면 다음에 가져오라고 해. 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신 형이 있었는데 가난했나 봐. 졸업할 때까지 돈 안 받고 준비물을 다 챙겨 줬대.”
나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문방구보다 왔다에 자주 간다. 꼭 우리 편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화가 풀리지 않는다.
“내 5천원을 꼭 찾고 말거야.”
친구들은 내 얘기를 듣고도 왔다맨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까는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는데 지금은 친구들 때문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세 번째, 네 번째로 가져 온 물건은 나한테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떼룩떼룩 눈알이 구르는 인형 눈알이랑 휴대폰 고리. 그걸 가져올 마음은 없었지만 그날따라 왔다 문방구에 아이들이 없었다. 왔다맨의 눈을 피하려니 구석에 있는 것들을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도 없고 인형 만들 일도 없다. 그냥 책상서랍에 처박아 두었다. 오늘 가져 온 물건을 수첩에 쓰려는데 손이 마구 떨렸다. 수첩을 덮었다.
‘난 절대 도둑이 아니야.’
수 백 번 말한 것 같다. 자꾸자꾸 말해도 기분이 쓰레기통이다. 난 도둑이 아니지만 들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도둑같이 행동해야 한다. 정말 맘에 안 든다. 이 일이 끝나면 왔다 문방구 근처도 안 갈 거다.
왔다 문방구에 들어가니 키가 껑충 크고 비쩍 마른 여자 아이가 머리끈을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이였다. 난 전에 찍어 둔 샤프펜슬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 여자 아이가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쭈뼛 섰다. 들고 있던 샤프펜슬을 떨어뜨렸다.
“뭐, 뭐 찾아?”
왔다맨이 다가와 물었다.
“친구 생일 선물 고르는 거예요.”
거짓말도 늘었다. 왔다맨은 다시 컴퓨터를 봤다. 왔다맨을 살피다가 껑충키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깜짝 놀라더니 내 눈을 피했다. 기분 나쁘다.
‘혹시 내가 물건 가져가는 것을 봤나?’
등에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렸다. 그냥 나올까 하다가 전에 가져갔던 것과 똑같은 지우개를 집었다. “이거요.”
“오, 오, 오백 원. 지, 지, 지우개 선물 최, 최, 최고.”
왔다맨이 친하게 굴었다. 이제 와 친하게 굴어도 소용없다. 지우개를 사갖고 나오는데 그 여자아이가 계속 쳐다보는 게 뒤통수에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가져온 물건을 꺼냈다. 제일 처음 가져온 지우개를 손에 쥐어 봤다. 주먹을 꼭 쥐고 집까지 단숨에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먹에 다시 땀이 났다. 두근두근 쿵쿵. 속이 울렁거렸다. 얼른 물건들을 안 보이게 서랍 안으로 던져 넣었다. 배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다.
그 후로 나흘 동안 왔다 문방구에 가지 못했다. 모둠별 숙제 때문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5천원을 잊을 수 있었다. 책상 속에 물건들이 떠오르면 불안해서 애써 잊었다. 신기하게도 메스꺼운 울렁증이 사라졌다.
월요일. 1교시가 수학이다. 정말 최악의 시간표다. 월요일 1교시부터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은 벌 받는 것과 같다. 원의 둘레와 넓이를 풀어야 하는데 정말 헷갈린다.
‘원의 둘레는 지름 곱하기 3.14’, ‘원의 넓이는 반지름 곱하기 반지름 곱하기 3.14’.
얼마나 외웠는지 잠꼬대까지 할 지경이다. 그런데 계산할 때 자꾸 실수를 한다. 틀리고 또 틀리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얼마나 지웠는지 수학 익힘책이 너덜너덜해졌다. 한번만 더 지웠다가는 찢어질 것 같았다. 종이를 살살 달래가며 지우려니 갑갑증이 났다.
“에이, 짜증나.”
“이거 빌려줄까? 진짜 잘 지워져.”
짝이 지우개를 빌려주었다. 지우개를 받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크기, 감촉. 이건 분명 그 지우개와 똑같은 거다. 가만히 주먹을 펴 보았다.
맞다. 왔다에서 처음 가져왔던 그 지우개!
지우개를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웠다.
“야, 너 왜 그래? 선생님, 지우 아픈가 봐요.”
“얼굴이 창백하네.”
선생님이 걱정스레 내 이마를 짚었다. 선생님의 관심이 불편했다. 그냥 나를 저 구석에 처박아 두었으면 좋겠다. 땅으로 꺼지든가.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보건실에서 좀 쉴래?”
“저, 화장실 좀·······.”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푸다닥 뛰쳐나왔다.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 토해냈다.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머릿속도 텅 비었으면 좋겠는데 지우개가 또 생각났다. 다시 화장실로 갔다. 노란 쓴물이 나왔다. 한동안 사라졌던 울렁증이 지우개를 보자마자 다시 살아났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저 앞에 그 여자 아이가 보였다. 유난히 긴 팔다리로 휘청휘청 걷는 게 꼭 문어 같았다. 그 아이는 힘없이 걸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이 접시만 해졌다. 그리고 허둥지둥 뒤돌아 뛰어갔다.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르기도 전에 내 발이 움직였다. 난 우리 학교에서 달리기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단숨에 그 아이를 잡았다.
“너 날 보고 도망간 거 맞지.”
여자 아이는 숨이 가빠서 답을 못하는 건지, 대답할 말이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너 왔다에서 나 봤지.”
숨을 헐떡거리는데 아주 살짝 고개가 흔들렸다. 끄덕끄덕.
“아후, 나 난…….”
여자 아이 앞에서 발가벗은 것 같다. 이번엔 내가 도망가야겠다.
“난, 난 도둑이 아니야. 도둑이 아니라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눈앞이 흐려서 길이 보이지 않았다. 넘어져 무릎이 심하게 아팠지만 계속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상서랍을 뒤엎었다. 색종이, 딱지, 다 먹은 초콜릿 비닐, 카드, 잡동사니가 수북했다. 그 가운데 왔다에서 훔친 물건들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더 이상한 것은 똑같은 지우개인데 내가 돈을 주고 산 것과 훔친 것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는 거다. 훔친 물건들을 다 챙겼다. 메스껍고 가슴이 아팠다. 종이 가방에 그것들을 넣어가지고 집을 나왔다. 빨리 되돌려 놓고 싶었다. 5천원 사건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왔다 문방구 앞에 오자 물건을 처음 훔쳤을 때보다 더 떨렸다. 오줌이 마려웠다.
‘그냥 돌아갈까? 이제부터 안하면 되잖아.’
메스꺼운 울렁증이 다시 생겼다. 크게 숨을 쉬고 문방구 문을 열었다.
“왔다맨, 할 말이 있어요.”
종이 가방을 먼저 내밀었다. 왔다맨은 종이 가방을 받아서 지우개와 인형 눈알, 미니책을 꺼냈다. 왔다맨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때 껑충키가 들어왔다.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미안해요. 일부러 가져간 건 아니에요. 엉엉엉. 케첩을 닦았는데 훌쩍, 휴지랑 돈이 섞여 있었어요. 훌쩍.”
엉거주춤 서서 친구 옷에 묻은 케첩을 닦아주던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껑충키는 꼬깃꼬깃해진 5천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왔다맨도 이건 몰랐던 모양이다.
껑충키는 계속 울었다.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게, 엉엉엉. 미안해, 미안해요. 엉엉엉.”
왔다맨이 나를 보고 말했다.
“너, 괘 괘 괜찮아?”
“음, 네!”
“너, 너, 너희들, 하, 핫도그 머, 머, 머 먹을래?”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핫도그 만드는 왔다맨이 오늘은 수퍼맨처럼 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