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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곡(絶毅)
염 상 섭
1
영탁 영감의 ‘헝거스트’ (헝거 스트라이크ㅡ절식 파업)는 어제부터 또 시작이 되었다. 영탁이의 단식은 툭하면 시작되는 예증이었다. 시초는 대개가 대수롭지 않은 내외 싸움이었다. 말다툼이 손찌검까지 가서, 권투보다는 좀 더 구경거리인 늙은이들의 활극이 벌어져가지고는, 아무래도 체질이 약한 영감이 한두 번이라도 더 쥐어질리고 힘이 부쳐서 헐레벌떡 방에 들어가 누워버리면 그날부터 사날은 곡기를 끊고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영감은 안방 윗목에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서 끼니 때마다 옆에서 밥 먹기가 송구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의 공부하는 아랫방에 들어가 누웠기 때문에 학교 가는 삼 남매가 안방으로 책을 꾸려가지고 올라오고 법석들이었다. 그 옆의 방에는 병자인 둘째딸이 누워서 낑낑 앓는다.
어른 아이, 나갈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안방마님은 머리를 빗는지 식곤증에 한잠 들었는지 또드락 소리도 없고 영감 방에서도 쥐 죽은 듯이 기척이 없으니, 괴괴한 집안 속에 뜸했다가는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거리곤 하는 병자의 신음 소리만 유난히 커닿게 들린다. 1년 짝이나 두고 그저 그 턱으로 끌어오던 긴 병이라 이제는 집안 식구들도 시들히, 다잡아보아주는 사람도 없지마는, 그래도 며칠 전까지도 기동을 해서 부엌일도 거드는 체하고, 우물가에 나와서 제 빨래도 하곤 하였는데, 요새로 몸져누워서는 쪽 빨린 얼굴이 금시로 더 하얗게 세고 뒷간 출입에도 영 기다시피 하는 것이다.
부엌을 치우고 나온 며느리는 안방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아버니께 뭘 들여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가씨두 엊저녁도 안 먹었는데요.”
하고 의논을 하였다.
“뭐 있니! 네 재주껏 해보렴.”
머리를 빗고 있던 시어머니는 돌아앉은 채 핀잔주듯이 대꾸를 한다.
“쌀 한 줌쯤은 남았죠마는…….”
“그럼 흰죽을 쑤구, 기름간장에 먹게 하렴.”
마님은, 병인을 그렇게 먹이란 말이요, 영감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진지를 떠두긴 했습니다만 꾸드러진 보리밥을 빈속에 어떻게 잡수래요?…….”
그러나 며느리는 차마 이밥을 다시 짓겠다고 입을 벌리지는 못하였다. 어제 그 싸움이, 즉 이번 헝거스트의 동기가 밥 사단 때문이었던 까닭에, 오늘 아침 밥을 풀 때도 시아버지 것은 흰 데로 담아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새처럼 값이 한 가마니에 2만 환을 오르내릴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아홉 식구나 되는 대식구인데 몇 달만큼씩 밀려서 나오는 남편의 공무원 배급이라는 것이 태반은 잡곡이고 보니 일 년 열두 달 맨 쌀밥만 생의도 못할 노릇이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술 담배를 모르고 식성에 태가 없으니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잠곡 섞인 것쯤은 예사요 깡보리밥이라도 소리 없이 자시지마는, 시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귀엽게 자라서 그런지 도무지 잡곡은 입에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솥의 밥을 푸는 데도 층이 많아서 가운데의 흰 것으로만 시어머니 것을 먼저 푸고 나서 시아버지 밥이거나 남편의 벤또거나 그대로 섞어서 좀 나은 데로 골라 담으면, 나중에는 깡보리밥에 흰 밥알이 드문드문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며느리가 당장 입고 나갈 남편의 와이셔츠를 부리나케 다리느라고 꾸물거리는 동안에, 회사에 나가는 큰 딸 혜옥이가 제가 급하니까 부엌에 뛰어 들어가서 밥을 대신 펐다. 그나마 쌀이 떨어져서 이날은 반도 못 섞었는데 저 밥을 어떻게 푸나, 하고 걱정이던 판에 시뉘가 푸니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은아가씨, 밥은 흰 데루 조금만 담아두우.”
하고 일렀다.
병인도 그동안 하는 수 없이 보리 섞인 된밥을 그대로 먹여왔지마는, 몸져누운 뒤로는 그래도 인정이 그럴 수가 없어서 흰 데로 담아주어왔던 것이다.
“모자라진 않습니까?”
며느리는 밥을 푸다가 마지막에는 자기의 몫을 풀 수 없게 모자라고 마는 때가 하도 많았기 때문에 다림질을 끝내고 부엌으로 내려온 올케가 묻는 것 이었다.
“뭐, 어떻게 하는 수가 있어야지, 오늘은 어머니 진지에두 보리가 좀 섞였다우. 아이들 점심은 깡보리야, 깡보리.”
하고 혜옥이는 우습지도 않은 웃음을 해죽 웃었다. 실상은 보리 섞은 밥을 늘 벤또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것이 동무 보기에도 창피스러운 생각이 있는지라 오늘은 오라비 것과 제 벤또 밥을 하얀 것으로 살짝 담고 병인의 것 담아놓고 나니, 어쩔 수가 없어서 어머니 것도 섞어서 푼 것이었다.
남매가 후딱 아침을 먹고 벤또를 들고 나간 뒤에 여자중학교에 다니는 셋째년 혜란이가 깡보리야 깡보리야 하는 형의 말을 들은 지라 밥상에 달려들면서 제 벤또갑부터 열어보았다.
“난 싫어, 난 안 가지구 갈 테야.”
깍두기 쪽에 고추장 덩이를 넣은 점심을 동댕이를 치듯이 제각기 밀어놓고 입이 부었다.
“뭘, 언니는 저만 흰밥을 담아가지구 가구! 그래서 제가 앞질러 푼다고 그랬지 .”
혜란이는 본 듯이 쫑알거렸다. 둘째놈 셋째놈도 제각기 열어보고는 덩달아 툴툴대었다.
“왜들 법석이냐! 어디 보자.”
세수를 하고 들어온 어머니의 눈은 아이들 벤또를 훑어보고 자기의 밥사발로 갔다. 마님의 입은 비쭉하였다.
“고년이 제 입만 알어. 얘, 그 혜숙이 밥 떠놓은 것 이리 가져오너라.”
부엌 에다 대고 소리를 쳤다.
“제 입만 알긴! 어린것들이 그렇지, 어른은 별수 있던감?”
영감이 상머리로 다가앉다가 시끄러워서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하였다. 큰딸을 역성을 들자는 것이 아니라 혜옥이가 취직을 갓 했을 때는 그렇게 떠받들던 마누라가, 요새는 집에 들여놓는 것이 얼마 안 되니 틈틈이 야단을 치며 공연히 미워하는 그 변덕과 현금주의가 못마땅해서 그러는 것이요, 오늘은 자기 밥에도 보리가 섞인 것이 못마땅해서 저러거니 싶어서 불쑥 나온 말이었다.
“어른두 별수 없다니? 응, 나한테두 보리밥을 못 먹여 직성이 안 풀려 하는 소리지. 염려 말아요! 영감 덕에 얻어먹는 거 아니니…….”
영감은 모른 척하고 수저를 들었다.
마님은 며느리가 데미는 것을 받아 그 위에 자기 밥을 반이나 덜어가지고 뒤적뒤적 섞으면서,
“잘 먹이지두 못한데다가 먹으면은 꿀꺽거리구 오르내리는 보리밥을 먹구 어서 나두 재처럼 되라는 거야?”
하고 또 푸념을 한다.
“그래 가뜩이나 입맛이 제쳐진 애를 뭘 먹일 작정으루 그거나마 없애는 거야?”
영감은 병인의 밥을 없애는 데 화를 버럭버럭 내며,
“이 자식들 아무거나 싸주면 소리 없이 가지구 가는 게 아니라.”
하고 어린것들을 나무란다.
“어린것들을 나무랜 뮐 해. 밥 한 덩이를 가지고 갈근대는 것이 가엾지! 이게 다 뉘 탓인가 생각을 해봐요.”
마님은 벤또밥을 빈 대접에 푹푹 쏟고, 다시 담으며 영감에게 또 복장을 대다가,
“앓는 애가 먹긴 뭘 먹겠기에. 공연히 부엌 속에서 없애버리니 성한 애들이나 멕여야지.”
하고 혼잣소리를 한다. 부엌 속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결국 며느리가 먹어버린다는 말이다.
“내! 이렇게 먹는데 더러울 수야 있나! 보리밥 한 뎅이 얻어먹는 거나마 제대로 못 삭이겠다.”
영감은 숟가락을 탕 내던지고, 부리만 딴 밥그릇 앞에서 물러나 앉았다.
“차라리 문전걸식이 낫지! 왜 나 같은 놈은 붙들어가지 않누?”
앓는 딸이 불쌍해서도 해신 붙들어가달라는 말이었다.
“누가 아니래!”
마누라가 추근추근히 대꾸를 하니까,
“흥! 그게 말이라구 하는 거야? 그래두 천당 가겠다구 예수를 믿어?”
하고 영감은 코웃음을 치며 일어섰다.
“남은 60, 70에두 자동차만 붕붕 날리며 다닙디다! 당신은 머리가 셌수? 허리가 꼬부라졌수? 입만 살았구려. 왜 예수님은 쳐들우!”
어제는 이만 정도로 영감이 홱 나가버렸기 때문에 손찌검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았었지마는, 보지 않아도 복덕방에나 나가 앉아서 해를 보냈을 영감이, 어디서 걸렸는지 먹을 줄 모르는 술 한 잔에 지척거리며 어슬녘에 들어와서는 아랫방으로 들어가 쓰러진 것이었다.
자기나 딸 대신 붙들어가지를 않는다는 한탄에 “누가 아니래!” 하고 맞장구를 치던 마누라의 한마디가 늙은이 마음에 뼈가 저리게 야속해서 다시는 마누라의 얼굴도 보기 싫은지 안방에를 아니 들어간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나가는 길에 아랫방 딸의 방문을 열고 알은체를 하는 소리가 나기에, 부엌에서 쌀을 씻던 며느리는 쫓아나가서 뒤에서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몸져누운 뒤로는 그 방을 혼자 들여다보기가 실쭉하였기 때문이다.
“인젠 죽을 쑤어다 주거든 먹기 싫어두 좀 먹어라. 병원에 입원할 길을 뚫어보구 일찍 들어오마.”
모친이 병자를 안위시키느라고 이렇게 일러놓고 창문을 닫으려니까, 가슴을 벌렁거리며 눈을 감고 있던 병인이 눈만 반짝 치뜨고 쳐다본다. 걷어질린 눈자위가 대룩대룩하며 흰자위가 커지는 것이 누구를 나무라는 듯이 노기가 등등해 보여서 올케는 찔끔하며 등줄기가 선뜩하였다. 시어머니의 눈치를 넌지시 보았으나 아무렇지도 않고 심상하였다.
마침 풍로에 밥을 놓고 나니까 건넌방에 아이가 깨어서 울기에 며느리는 뛰어들어가 젖을 먹여 업고 나와서 아버지 상을 차렸다.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상을 들고, 아랫방 윗간에 들어가서 돌아누웠는 시아버지를 깨웠다.
“응, 아가냐? 나 안 먹어. 먹구 싶지 않아. 내가라.”
시아버지는 한참 만에 꿈속같이 짜증내는 소리를 하였다.
“어젠 약주를 잡순 것 같데요. 뜨뜻한 국물이라두 마시세요. 해장(해정)을 하셔야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물이 식는 것이 아까웠다. 밥도 갓 지은 것이라 야드르한 하얀 밥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다. 그러나 돌아누운 시아버지는 다시는 대꾸도 없다. 며느리는 언제까지 그러고 기다리고 섰을 수도 없고 풍로에서 끓는 병인의 죽이 탈까 보아서 ,
“어서 조금 잠수세요.”
하고 한마디 남겨놓고는 나왔다.
병인의 죽을 예반¹에 차려가지고 아랫방 앞을 지나려니까,
“예, 금례야, 이 상 내가거라.”
하는 시아버지의 소리에 금례는,
“네.”
하고 대답만 하며 병실로 들어갔다. 어째 마음에 선뜩하고 등에 업힌 어린 것이 있느니만치 덜 좋았다.
작년 이맘 때 동리의 심내과 의사를 데려다 보일 때도 폐병이라 하며, 이러다가는 고비를 못 넘길 테니 주의하라 하였고, 지난봄에는 점점 침중해가는 것 같아서 시립병원에를 데리고 가서 시료실에라도 입원을 시키려 하였으나 퇴짜를 맞고 왔는데, 그래도 시어머니는 여전히,
“폐병이 무슨 놈의 폐병이야. 숨찬증이지. 그깐 놈의 의사들 뭐 안다던!”
하고 우기는 것이었으나, 집안의 젊은 애들은 무어 좋은 일이라고 마주 우길 수도 없어서 그저 그런대로 내버려두고 지내오기는 하지마는 늘 마음에 꺼림 칙 한 것이었다.
“언니, 나까지 누워서 시중을 들게 하구 미안하우.”
병자는 간신히 일어나서 그래도 보얀 죽이 마음에 드는지 반색을 하며 숟가락을 드는 것이었다.
“온 별소리를!”
하며 올케는 마음에 좋기도 하고, 병인이 가엾기도 하였다.
“어머니 병원에 가보신댔지? 난 병원에 안 들어가. 언니나 따라가준대면 모르지만, 나만 갖다 내버려두고 밤낮 나돌아다니시면 난 어쩌라구.”
병인은 입이 써서 첫눈에 볼 때와 다른지 얼굴을 찡그려가며 죽을 간신간신히 조금씩 마지못해 떠 넣으며, 벅찬 숨 새로 떠듬떠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뭘, 그래도 입원만 된다면 들어가야지. 아무려면 어머니께서두 내버려두구 다니실라구.”
한 탕기밖에 안 되는 죽을 간신히 반쯤 먹고 물려놓은 것을 금례가 들고 나오려니까, 옆방 문이 득 열리면서 밥상을 들어 내놓고 문을 딱 닫는다. 밥상이 아니라 원수˙ 같은 모양이다. 건드리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
2
이튿날 아침을 해치우고 나서 병인을 씻기고, 새 옷을 갈아입히고, 병원에 데리고 갈 채비를 차리기에 부산하였다. 지난봄에 퇴짜를 맞은 시립병원에는 다시 가야 별수 없겠기에 이번에는 같은 교인의 소개를 얻어가지고 대학부속병원에 가서 교섭을 하니까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시료(施療) 병실을 청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젯밤에 모친이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병자는 도리질을 하는 것이었다.
“난 싫어. 약만 먹으면 낫겠지. 약이나 얻어다 줘요.”
아까 올케에게 말하듯이 잘 나다니는 어머니가 육장 곁에 붙어 있어줄 리도 없으니 혼자 떨어져 가 있기가 싫다는 생각이지마는, 오늘도 곧 다녀 들어오마던 어머니가 밤늦게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온종일 쓸쓸히 기다렸던 것이 분하다는 듯이 목이 메어서 훌쩍거리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님은 병원 교섭하러 나다니기에 바쁘기도 하였겠지마는 쌀 한 톨 없는 집안에 병인은 이 지경인데, 덧붙이로 영감마저 머리를 싸매고 누웠으니 신산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다가 저녁밥까지 얻어먹고 느지막이 들어온 것이다.
“널 맞붙들고만 있으면 뭘 하니. 그건 고사하구 당장 내일 가자면 자동찻삯이 걱정이다.”
“자동찻삯은 어떻게 되겠죠.”
따라 들어와 섰던 며느리가 얼른 대꾸를 하니까 마님은 반색을 하며 ,
“엉? 얘가 뭘 좀 해왔니? 그래 저녁은 어떻게 했니?”
하고 그제야 묻는 것이었다.
“네, 좀 변통해가지구 들어와서 쌀 한 말 팔구, 아가씨 먹구 싶다는 거 해먹이라구 좀 해놓은 게 있어요. 고깃국을 해놨더니 아가씨도 입이 쓰다구 안 먹구, 아버님께서도 영 마다시구…….”
“얘야 입맛이 제쳐 하는 수 없지만, 늙은이가 고깃국물이 생겼으면 마셔둘 일이지 뭣 때문에 트집이야. 멍석대죄를 들이라시던? 얘, 그 장국 국물 내나 먹자. 그리구 그 돈 얼마 남았니? 이리 다우. 얘 과일이나 좀 사다줘야지.”
하고 마님은 일어섰다. 마님은 며느리가 내놓은 돈을 받아가지고 가게에 나가서 사과를 사다가 아이들부터 하나씩 안기고, 병인에게도 깎아 들여보내게 하고는 영감 대신으로 고깃국에 밤참을 먹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오늘 손쉽게 입원을 시키게 된 것이다.
금례가 아이를 들쳐업고 큰길에 나가셔 자동차를 붙잡아가지고 와서는, 아이를 내려놓고 자리 보따리를 날라 내가고, 발을 가누지를 못하는 병자를 업어 내가고 한참 분주하였다.
“에구! 너만 혼자 애쓴다. 어쩌자구 자식이 이 지경인데 날 잡아잡수 하고 자빠졌단 말이야.”
마님은 영감이 누워 있는 방을 흘겨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영감은 그것을 들은 체 만 체하고 방문을 떡 열고 앉은 채 해쓱히 야윈 얼굴을 내밀고,
“얘, 가니? 아버지두 기동하면 인제 병원으루 보러 가마.”
하고 업혀 나가는 딸의 뒤에다 소리를 치다가 가슴이 막혀서 반은 울음 섞인 소리처럼 헛허허 하고 빈속에서 허청 나오는 소리를 내며,
“금례야, 너 오는 길에 아주 영구차 하나 불러가지구 오너라. 나두 아주 이 길에 담아 내가다우.”
하고 소리를 바락 질렀다.
병인을 업어다가 자동차 속에 뉘고 뛰어 들어온 며느리는,
“아이, 아버니, 어서 드러눠 계세요. 화가 나셔두 참으셔야지 어쩝니까. 저두 병원에 따라갑니다. 주무시지 말구 집 잘 보세요.”
하고 마루에 내려 뉘었던 아이를 냉큼 업고 쏜살같이 나간다.
“허어, 네가 고생이로구나!”
영감은 그래도 연삽삽한² 며느리가 의지가 되니까 그렇지마는 남의 자식 데려다가 미안하다는 생각에 이런 탄식을 하며 미닫이를 딱 닫아버렸다.
“망령이시지, 아버진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자동차는 울리고 병인의 글겅거리는 신음소리는 더 심해져서 정신이 얼떨한 속에서도 금례의 머릿속에는, 영구차를 끌고 오라는 시아버지의 말이 잊혀지지를 않아서 혼잣소리를 가만히 하는 것이었다.
“객기루 괜히 해보는 소리시지 .”
시어머니는 듣기 싫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금례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반 병인이나 다름없는 노인을 빈집에 혼자 두고 나와서 홧김에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고 애가 씌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도 업은 아이는 시어머니가 받아 안고 금례가 짐을 나르며 병인을 업고 들려가랴 혼자서 낑낑대며 땀을 빨빨 흘렸다. 그러나 의사가 첫눈에 진찰 여부 없이, 놀라는 기색으로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한참 환자를 바라보더니,
“언제부터 앓기 시작한 것이오?”
“그동안 의사는 뵈었나요?”
하고 퉁명스럽게 연거푸 묻는 것이었다. 금례는 밖에 놓아둔 짐을 지키느라고 진찰실에는 마님만 들어갔었는데, 의사는 이쪽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그저 겉치레로 청진기를, 저고리를 벗기고 앙상히 뼈만 남은 가슴과 등에 대어보더니,
“당신이 어머니가 되슈?”
하고 또 핀잔을 주듯이 묻고는,
“어쩌면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씀유…….”
하고 환자가 듣거나 말거나 얼굴이 뜨뜻하게 마구 책망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 살기에 얽매여서 약두 제대루 변변히 못 썼습니다만…….”
혜숙이 모친은 아뿔싸 여기서도 퇴짜로구나 하는 생각에 어리둥절하였다. 또 그러나 어차피 살지 못할 바에야 신통치도 않은 무료 병실에 입원을 시켜가지고 오래 끌기나 하면 날은 추워지는데, 성한 사람까지 매달려서 고생하느니보다는 집 속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게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도 생각하는 것이었다. 혜숙이가 몸져눕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어서 입원시키라고 그렇게 졸랐건마는 머뭇머뭇하고 있었던 것도 결국 자기 혼자 메달려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 고생을 당해낼까 무서워서 딱 결단을 못하였던 것이었다.
의사가 쪽지 하나를 써서 간호부를 주니까, 간호부는 이리 데리고 오라고 하여 옆의 방 한구석으로 간신히 끌고 가서 주사 한 대를 맞혔다.
“어서 가세요, 빨리빨리 서두르세요.”
간호부는 하도 딱하다는 기색이면서도 역시 쌀쌀히 핀둥이를 주는 말씨였다. 먼젓번 시립병원에서는 여러 환자가 있는데 이런 환자는 전염될까 보아 못 들이겠다던 것인데 이번에는 다 죽게된 것을 데리고 와서 송장을 치워달라는 것이냐? 병원은 사람을 고치는 데지 송장 치우는 장의소는 아니라고 무언중에 분개를 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래도 간호원이 따라 나오며 또 한 번,
“조심해 얼른 가세요.”
하고 주의를 시키는 것을 보면 가다가 숨이 넘어갈까 보아 염려가 된다는 것이겠지마는 언제 보았다고 그렇게 친절히 일러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기는 하였다.
금례만 죽어났다. 또 아이는 내려서 시어머니한테 맡겨놓고 긴 복도를 짐을 끌어내고, 환자를 업어다가 문간에 놓은 짐에 기대어 앉혀놓고 나서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자동차를 부르러 달음질을 쳐나가면서,
‘아이구 내 팔자두 혼쭐나게 타구났다!’
하고 지친 끝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 둘째시누이는 어머니 편보다는 아버지 편을 닮아서 예쁘장하고 상냥스럽기도 하거니와 자기를 따르더니만치 그저 불쌍한 생각에 괴로운 줄을 몰랐다. 인제야 겨우 열여덟, 중학교만 마치고 병이 든 것이지마는 잘 먹지도 못하고 학교 다니느라고 골병 이 들어버린 것이 가엾고 아깝다.
자동차 소리에 또 동리에서 아낙네들이 우중우중 나와서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어쩐지 창피스러웠다. 아랫방에서 시아버지의 해맑은 얼굴이 내다보는 것을 보고 금례는 헛걱정을 공상으로 하던 것을 속으로 웃었으나, ‘허’ 하고 대통에서 김을 뽑듯이 긴 한숨을 쉬는 것을 들으니 처량하였다.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 으레 한 대 놓아준 것이요, 가다가 숨이 질까 봐서 놓았는지도 모르지만, 그 주사 때문인지 병원에 갔다가 온 뒤로는 숨찬증이 더하고 앓는 소리가 끊일 새 없이 듣기에 애처롭고 송구스러웠다.
“얘, 점심 차려라.”
시어머니는 나들이옷을 입은 채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재촉을 해서 점심을 먹고 어느 틈에 훌쩍 나가버렸다.
“아무튼 팔자는 좋으셔!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건 다 쓸어맡겨놓으시구…….”
마루 끝에 내놓은 밥상을 부엌으로 들고 들어서자 금례는 혼잣 소리를 하였다. 숨이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것을 내버려두고 무사태평으로 돌아다니는 이도 딱하지마는, 정말 급히 서두르게 되면 혼자 어떻게 당하라고 자기에게만 쓸어맡겨놓는 것인가 싶어서 역심도 나는 것이었다.
“오늘은 저 산더미 같은 빨래가 그대로 있는데 아이나 좀 봐주시질 않구.”
누구더러 들어보라는 것은 아니나 저절로 군소리가 나왔다. 아침을 해치우고는 병인의 치다꺼리에 이때까지 매달렸었으니 기저귀도 아직 제대로 빨지를 못하고 아침이면 이 방 저 방에서 몰려나오는 빨래가 그대로였다.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고 아이도 푹 자지를 못해서 한참 찡얼거리다가 인제야 등에서 잠이 들었다. 병인을 네 차례나 업어 나르기에 어지간히 널치가 되기도 하였다.
“아버니, 인젠 무얼 좀 잡수세야죠?”
끼니때마다 문밖에 가서 드리는 문안이었다. 점심을 한술 떠 먹자니 그대로 혼자만 먹을 수가 없다.
“아니다. 내 걱정은 마라. 아주 이 김에 10년 묵은 체증을 끊어버리련다. 어서 빨래나 하려무나.”
금례는 뜰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어서 찔끔하였다. 그러나 영구차를 불러가지고 오라던 이가 체증을 뚫겠다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아가씨, 어떻게 해 가져올까?”
금례는 주문을 맡으러 다니듯이 다음 방으로 가서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언니, 애썼수. 고단할 텐데 내 걱정은 말구, 어서 좀 쉬어야지 않겠수…….”
숨이 턱에 닿으면서 띄엄띄엄 쉬어가며 간신히 모깃소리만큼 하는 인사였다. 말이 고마웠다. 금례는 경험이 없지마는 눈자위가 좀더 이상해진 것 같아서 선뜩하기도 하였다.
“고깃국물이 남았으니, 아무리 싫어두 그거라두 마셔두우.”
금례는 얼른 부엌으로 뛰어가서 풍로에 놓고 나온 장국 국물을 따라가지고 와서, 부축을 해 일으켜 앉히고 후루룩후루룩 마시게 하였다. 병자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도리어 성이 가시지마는 올케가 고맙고 미안해서 마지못해 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3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누이가 입원을 못하고 그저 방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무슨 큰 기대나 어그러진 것처럼 멍하니 실망한 빛이었다. 이제는 병이 절망이라는 데에 낙심이 되어 그러할 만큼 지각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원수지간을 대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어머니는 아니라고 한사코 속이지마는 폐병균이 무서워서 그 불안에서 벗어날 줄 알았더니 하는 가벼운 실망이었다.
회사에서 혜옥이가 돌아오더니 울상이 되어서 ,
“에그 어머니는…….”
하고 이때까지 꾸물꾸물 내버려둔 어머니를 원망하였다.
“그래, 어머닌 어디 가셨수? 난 몰라. 오늘부턴 안방으로 들어가 잘 테야. 앓는 사람은 어머니가 끼고 주무시라지.”
차마 병인의 귀에 들어갈까 보아서 부엌 속에서 올케에게 소곤소곤 짜증을 내었다. 워낙 혜옥이는 동생과 한방을 써왔기 때문에 그대로 병인 옆에서 잤던 것이나 어머니가 바꾸어주지를 않고 밤중에라도 그 시중을 들게 하는 것이 불평이었다. 그러나 모친이 한사코 병을 숨겨주는 것은 당자를 위해서도 그렇지마는, 집안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게 하자는 것과 또 하나는 약도 제대로 쓸 수 없고 먹이는 것도 이루 댈 수가 없으니 그저 쓸어 덮어두자는 것이었다.
혜옥이는 그 앓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심해진 데에 이제는 아주 정이 떨어져서 옷을 벗으러 들어가서도 그 앞에 잠시를 앉았기가 무섭고, 그렇다고 금침 이며 제 세간을 부덩부덩 끌어내오기는 좀 야박스러운 것 같고 하여 바둥바둥 애만 썼다.
그러나 어머니가 들어오고, 오빠가 파사해 나오고 하여 들어가 보고 나오더니 수군수군 의논을 하고 병실의 세간을 모조리 끌어내고 방 안을 말끔히 치웠다.
“아버니, 이젠 저 애가 아주 글렀는데요!…… 어떻게 진지를 좀 잡수세야죠.”
큰아들 경순이는 컴컴한 부친의 방에 들어가서 전등을 켜고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이를 깨웠다. 영감은 잠이 깊이 들었는지 그린 듯이 누워 있다 .
“주무세요? 어서 일어나세서 진지를 잡숫구 기동을 합쇼. 쟤가 이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 애 죽는 것하구 나 밥 먹는 것하구 무슨 아랑곳이 있다던? 언젠 걔 죽을 줄 몰랐던?”
부친은 역정을 바락 내며 돌아누워버린다. 밥 먹으라는 말이 듣기 싫다는 것보다도, 약도 변변히 써주지 않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더냐 하는 마누라와 아들에 대한 꾸지람이요 폭백(暴白)이었다. 경순이는 찔끔해서 묵묵히 부친의 뒤에 섰다가 나왔다.
‘뻔히 보시다시피 성한 사람이나 벌어 먹이려고 허덕허덕해도 굶을 지경인데, 누가 약을 안 써주려 해서 못 썼겠습니까?’
하고 곧 대답이 나오는 것을, 이럴 때가 아니라고 꿀꺽 참고 나온 것이었다.
안방에서는 큰 상에들 둘러앉아서 쩌덕쩌덕 후루룩후루룩 하고 저녁들을 먹기에 부산하였다. 경순이의 귀에서는 조금 전에 들은 ‘나 밥 먹는 것하구 그 애 죽는 것하구 무슨 아랑곳이 있다던?’ 하던 역정난 소리가 또 한 번 찡 울리는 것 같았다.
아랫방 문이 가만히 열리더니 영감의 허연 그림자가 휘청휘청 나와서 비틀거리며 옆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만에 금례가 승늉을 가지러 안방에서 나오다가 보니, 시아버지가 병실에서 영 기듯이 나오더니 자기 방으로 스러졌다. 금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병실에서는 숨을 모는 듯한 재우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몇 시나 되었는지 영감이 깜박 잠이 들었다가 번쩍 눈을 뜨니 흑흑 느껴 우는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기겁을 해 일어나서 미닫이를 열며,
“애들아, 누구 없니?”
하고 소리를 쳤다.
컴컴한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던 셋째년 혜란이가 쪼르르 건너오더니,
“언니 죽었에요.”
하고 생글 웃는다. 어린것이니 그렇거니 하며 귀를 기울이니 잠결에 무심했지마는 옆방은 괴괴하니 그 차마 들을 수 없는 숨찬 글겅 소리가 뚝 끊이고 잠잠하다. 뒤쫓아온 혜옥이가,
“지금 막 운명했에요.”
하고 부친에게 다시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저 심상한 낯빛이었다. 홀쩍거리는 울음소리는 부엌에서 흘러나왔다.
영감은 또다시 지척거리며 옆방으로 건너갔다. 아까는 살아서 마지막 얼굴을 보았으나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영감이 시체방에 들어서려니까 대강 뒷수세를 하고 나오는 마누라와 마주쳤다. 마님은 모른 척하고 안으로 올라갔다.
허허허…… 하고 시체방에서 영감의 대통 속에서 나오는 듯한 곡성이 나니까, 부엌 속에서 자지러가던 금례의 느끼는 울음소리가 다시 높아갔다. 아이들은 멀거니들 앉았으나 모친도 교인이라 그런지 감장할 돈 걱정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울지는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영감은 누가 무어라지도 않았는데 꾸물꾸물 나와서 세수를 하였다. 나흘째 만에 이를 닦는 것이었다.
“혜숙이 혼령이 망령 작작 부리시라고 여쭙고 갔나 보구나.”
부엌에서 시어머니는 고기를 볶으며 며느리 한테 군소리를 한마디 하였다.
그러나 아침 밥상을 들여가니까, 영감은 후루루 끼치는 구수한 냄새에 비위는 동하면서 또 역정을 내었다.
“고기는 웬 고기! 고기 먹자고 빚 얻어왔다던?”
상을 휘휘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기와 지진 두부를 넣은 다시마 국에, 고기볶음이 한 탕기 곁들여 놓였다. 아이들이 법석을 하는 지저분한 밥상 한 귀퉁이에 끼어서, 반찬 없는 보리 섞은 밥덩이나 퍼 넣던 신세로는 칙사 대접이었다. 그러나 영감은 화가 버럭 났다. 어제 저녁에 아이들이 밥을 먹고 나는 길로 나가는 기척이더니 난목으로 수읫감을 끊어가지고 늦게야 돌아온 눈치로 보아서 별 재주 있는 것 아니요, 1할 5부의 고리대금을 얼마간 얻어가지고 왔을 건데 별안간 고기반찬이라니! 하고 영감은 발끈하는 것이었다.
“언제 못 먹어서!…… 발을 뻗혀놓구!…… 소증이 나서 기운을 못 차린다던? 그래 고깃점이 목에 넘어간다던?”
영감은 상을 밀어놓았다.
“아녜요. 속이 비신데 아버니 드리려구 조금 한 거 예요.”
금례는 꾸지람을 혼자 듣기가 억울하였지만, 그런 호령을 들어싸다고 생각하며 얼른 둘러대었다.
“허! 너희들이 웬 효성이 언제부터 그렇게 지극하더냐? 빚내서 고기 사 먹겠거든 진작 혜숙이가 그렇게 먹구 싶어 할 제 한 점만이라두 먹이지!”
늙은 아버지의 눈은 핑 돌며 목이 메었다. 금례는 눈물을 살짝 씻으며 나와버렸다. 영감은 또다시 벽을 향해서 드러누워버렸다.
말이 수의지 난목으로 저고리 치마와 바지를, 밤을 새워서 지어놓고 아침밥을 일찍이 해치우고 곧 염 (殮)을 하였다. 물론 ‘의지’를 썼으나 관 위에는 시늉이나마 조그만 꽃다발도 꽂아놓았다. 목사님이 추도 예배를 보아주러 온대서 일찍 서둔 것이었다. 일고여덟 부인네들이 목사님을 옹위하고 와서 예배를 드릴 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를 부르며 손이나 주인 측이나 목이 메었다. 마님도 눈물을 쥐어짰다˙.
아랫방의 영감도 혼자 일어나 방문을 꼭 닫고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윗목으로 밀어놓은 밥상은 누가 들어가서 내올 수도 없고, 기운 빠진 파리만 두서너 마리 이리 앉고 저리 앉고 하였다. 고기볶음에는 하얗게 기름이 엉겨 덮였다.
경순이는 아침부터 나서서 사망신고와 화장 허가를 내러 다니기에 반나절이나 애를 쓰고 다녔으나 헛걸음을 치고 예배가 끝난 뒤에 돌아왔다. 24시간이 지나도록 기다릴 것 없이 곧 내가자는 것인데, 우선 맡아야 할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내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동리간인 심내과에 가서 사정을 하면 으레 소리 없이 내어주려니 하였더니 언제 보았더냐고 막무가내다.
알고 보니 작년 겨울엔가 한번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하였을 때, 심의사는 폐병이 2기가 넘었으니 급히 서두르라고 친절히 일러주었으나, 마님이 섣불리 펄쩍 뛰며,
“폐병이 무슨 폐병이에요, 숨찬증이죠.”
하고 잡아떼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의사로서는 몹시 모욕이나 당한 것 같아서 꽁하고 속에 치부를 해두었었던지? 지금 와서 그 앙갚음을 받는 것이었다. 그길로, 바로 어제 가본 대학부속병원에를 가보았으나 이번에는 ‘난 현장을 보지 못하였으니 책임지고 진단서를 낼 수 없다’고 거절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딱한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마님이 다시 나섰다. 어제 그 의사한테 하도 핀둥이를 맞고 푸대접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창피스럽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한 번이라도 안면이 있으니 졸라보리라 한 것이다.
사정도 하고 떼도 쓰고 하여 간신히 진단서를 얻어가지고 바로 구청에 들러서 수속을 마치고, 그 길에 아주 영구차까지 끌고 오느라니 하오 2시나 되었다.
“에그 어머니, 애쓰셨에요. 시장하실 텐데 어서 진지부터 잡수세야지.”
금례가 밥상을 차리러 부엌으로 부리나케 뛰어 들어간다.
“응, 얼른 차려라.”
마님은 허구한 날 나다니고 밤늦게 들어와야 자식들에게도 생전 들어보지 못하던 애썼다는 인사가 귀 서툴기도 하고 좋기도 하였다.
“얘, 그 내 두루마기하구 모자 내려오너라. 화장장에는 내 따라나가마.”
아랫방 문이 활짝 열리며 모른 체하고 누웠던 영감이 퀭한 눈으로 내다보며 소리를 친다. 뜰에서 서성대던 젊은 아들과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어딜 나가신단 말씀이에요. 가만히 누워 계십쇼.”
경순이가 다가들며 말렸다.
“아, 너 어머니 대신에 내가 나간다. 아무리 먹는 것두 중하지만, 고작해야 왕복 한 시간이면 금세루 화구(火口)에다 집어넣구 올 터인데 시간을 다투는 차를 문간에다 세워놓구, 명색이라두 발인이랍시고 하는데, 그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더란 말이냐!”
영감은 폭 까부러져서 첫 서슬과는 딴판으로 헉헉 헛숨을 쉬어가며 따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나흘째나 절곡(絶穀)을 하고 앉았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마는 좀 심하다고들 생각하였다.
“저 혼자 갔다 오겠습니다. 나가보시면 뭘 합니까. 어머니두 그만두세요.”
하고 경순이는 운구(運柩)를 하자고 뜰에 우중우중 섰는 젊은 애들에게 눈짓을 하며 시체방으로 올라섰다.
부엌에서는 금례가 밥상을 들고 나온다.
-끝-
2016년 5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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