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저는 보통 밤 10시에 잡니다. 그런데 어제는 11시가 넘어 잠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연히 필이 꽂힌 TV 드라마를 보느라 그랬습니다. 그 제목은 <빅마우스>입니다. 책이나 노래나 영화나 그 제목은 내용을 함축합니다. 기획 의도에 두 영어 즉 왕쥐 big mouse와 떠벌이 bigmouth가 오버랩 된 드라마입니다. 웹스터 영어 사전은 ‘bigmouth’를 ‘a loudmouthed’, ‘talkative’, ‘and often maliciously gossipy person’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목소리가 큰 사람’, ‘수다스러운 사람’, 종종 ‘악의적으로 험담하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속어로서 '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는 사람'의 뜻으로서도 사용됩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언론 기자들은 ‘세간에 여론의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 혹은 '영향력이 큰 발언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종종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요즈음 돋보이는 한 정치인이 바로 빅마우스 아닌가 싶습니다.
각설하고 이 드라마는 픽션입니다. 픽션(fiction)은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실제가 아닌 작가의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허구(虛構)요 가상(假想)의 이야기입니다. 반대말은 논픽션, 팩트입니다. 픽션은 때로 소설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진리의 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버리라고 권고하십니다. 바울은 “꾸며낸 신화와 우화를 피하라”고 말했습니다(디모데전서 1:4).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했습니다(디모데전서 4:7).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디모데후서 4:4).”고도 했습니다. 디도에게는 유대인들이 허탄한 이야기를 명령처럼 따르고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디도서 1:14).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베드로후서 1:16).”고 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픽션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픽션이 없을까요? 사실 성경에는 많은 픽션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때때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픽션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스토리텔링의 예가 들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4절을 읽노라면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유일한 어린 양을 훔쳤다 죽임을 당한 사람에 대한 허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이갸기를 들은 다윗이 분노를 일으키자, 나단은 그 이야기가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에 대한 비유임을 드러냅니다.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가 나오는 요담의 우화(사사기 9:7-15)와 에스겔의 수수께끼 비유(에스겔 17:1-8)도 일종의 픽션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은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는 모두 사실 같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비유의 이야기가 영적인 진리를 담고있지만 형식적으로는 픽션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허구의 사용을 허용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선한 말을 때에 따라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합니다(에베소서 4:29).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은 “추잡한 짓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유치한 농담을 버리라”고 훈계합니다(에베소서 5:4).
요사이 뜨는 영화 ‘한산’은 사실(팩트)를 기반으로 픽션의 스토리를 섞어 만든 소위 ‘팩션’ 영화입니다. 기독교의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대부분 성경에 나름대로의 픽션을 가미하여 만든 팩션을 진리처럼 파수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통일교는 방대한 팩션 ‘원리강론’을 만들어 포교하고 있습니다. 그 팩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재림주로 문선명을 보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픽션이나 팩션을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러면 진리인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합니다. 코람 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