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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설교본문 : 빌립보서 2:1~18(참고, 열왕기하 10~12장, 역대하 2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6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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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큐티하고 있는 열왕기하에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왕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말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 심판 전에 보이신 징조들
하나님께서는 심판 전에 반드시 징조를 보이셨습니다. 때로는 전쟁으로, 때로는 기근이나 질병으로
2) 선지자의 역할
하지만 왕들이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징조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니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 뜻을 밝혀주시고,
더 큰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3) 왕들의 반응에 따른 하나님의 복과 저주
하나님께서 보이신 징조와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각자 그에 맞는 복과 저주가 내려집니다.
4) 우리는 성경말씀으로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선지자 역할을 해야
그때는 성경이 없으니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으나
지금은 성경이 있으니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에게 선지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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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도 각 왕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징조와 경고와 심판의 말씀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예후를 통해 아합 가문에 내려진 심판
1. 아합의 자손들의 죽음
1) 사마리아 성에 남아 있던 아합의 자손 70명(1절)
(1절 성경구절 아래)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합도 죽고 아합의 아내 이세벨도 죽었습니다만,
사마리아 성에는 아직도 아합의 아들(자손)들이 70명이 있었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자손)들을 교육하던 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합은 그 편지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도 있고 병거도 있고 아주 튼튼한 요새도 있으며,
무기도 아주 많이 있으니 아합의 아들들 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
그들의 주인인 아합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했습니다.
2) 자기들을 보호하는 자들에게 죽은 아합의 자손들(1~7절)
1. 아합의 아들(아합의 자손) 70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자손)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주인의 아들(자손)들을 모시고 있고,
또 너희에게 병거와 말이 있고 견고한 요새도 있으며 무기도 넉넉하게 있을 것이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 너희 주인의 아들(자손)들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적합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을 왕으로 세우고,
너희 주인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하였더라.
4. 그러나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저 두 왕도 그를 당해내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무슨 수로 그와 맞설 수 있겠는가?” 하고
5.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인 궁내대신과, 그 성읍을 책임지는 성주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회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무릇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아무쪼록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 그러자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명령을 따르겠다면,
너희 주인의 아들(자손)들의 목을 베어서 내일 이맘때까지
이스르엘에 있는 나에게로 가져오라” 하였더라.
그때 왕자들 70명이 그 성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던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도착하자 그들은 왕자 70명을 잡아다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에 있는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그러자 그들은 예후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두 왕도 이겼는데
자기들이 무슨 수로 예후와 맞서겠느냐며,
예후에게 자기들은 예후의 명령대로 하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자 예후는 만일 자기의 명령에 따르겠다면 아합의 70명의 자손을 죽여서
그 머리를 베어 광주리에 담아 다음 날 아침까지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그들은 그 편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아합의 70명의 자손을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 보냅니다.
3) 측근을 통해 죽은 아합의 자손들 : 세상 권세의 허망함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아합의 자손들이 자기들의 측근에 의해서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양육하고 돌볼 책임이 있는 자들이 도리어 그들을 죽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권세의 허망함을 봅니다.
4) 아합과 관계된 모든 자들을 모두 죽이는 예후(10~11절)
10.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는 그 종 엘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제 모두 이루셨도다”하니라.
11.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예후가 아합 집안에 속한 사람 중에 이스르엘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또 아합의 집안과 관계된 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이어서 예후는 아합 집안에 속한 사람 중에
이스르엘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또 아합의 집안과 관계된 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그야말로 진멸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후의 잔인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지만
일단 심판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고,
그 심판은 아주 두렵고 무서운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5) 예후에게 죽은 유다 왕 아하시야의 친족들(12~14절)
12. 예후가 일어나서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더니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베트 에케트)에 이르러서
13.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들인데,
왕후와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하러 내려왔노라” 하는지라.
14. 그때 예후가 이르되 “저들을 사로잡으라”하매 곧 사로잡아
양털 깎는 집(베트 에케트)에 있는 웅덩이에 곁에서(웅덩이에 넣어) 죽이니
그들 42명의 사람 중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더라.
예후가 아합의 자손 70명을 죽인 후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던 중에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이세벨 왕후와 왕자들과 아합 왕의 친지들에게 문안하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42명이나 되는 그들 모두 예후에게 붙잡혀 그 인근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져서 죽임을 당합니다.
여호사밧이 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아합 왕과 친근하게 지낸 결과로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 묵상 :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간이 2년도 채 안 되는 군대도 가기 싫어서
심지어 손가락도 자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원히 멸망 당하고, 한번 결정된 심판은 다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리 무섭게 해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경외(敬畏)는 공경하는 것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진멸한 예후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을 42명이나 죽인 예후는
길을 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납니다.
예후는 겸손하고 부드럽게 자신과 함께 하겠느냐고 제의합니다.
여호나답이 흔쾌히 승낙하고 예후의 병거에 올라가자
예후는 자기가 여호와의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행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1) 300년 동안 선조 요나답의 분부에 순종한 레갑 족속(렘 35:5~6)
예레미야 35:6을 보면 레갑의 족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5. 내가 레갑 족속의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자
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 얼마 전에 온 나라가 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을 시험하기 위해
예레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술을 마시도록 권하게 합니다.
그러자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성읍에서 살지 말 것을 명하였으므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지난 300년 동안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성읍에서도 살지 않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을 크게 칭찬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 예후의 열심은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
레갑 족속 여호나답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사악한 백성 중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신실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예후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 여호나답을 자기 병거에 태워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하려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후의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데 열심히 행하였으나,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열심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한 열심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바알 숭배자들을 죽이기 위한 예후의 계략(왕하 10:18~20)
18. 그리고 나서 예후가 뭇 백성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아합은 바알을 조금밖에 섬기지 않았으나, 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
19. 그러므로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니,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제사장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 내게로 나아오게 하라.
누구든 오지 아니하는 자는 살려 두지 아니하리라”하니, 이렇게 말한 것은
예후가 바알을 섬기는 자를 진멸하려고 계책을 씀이라(속임수를 쓴 것이라).
20. 예후가 “바알을 위하는(섬기는) 거룩한 대집회를 열라”하매
드디어 공포되었더라(드디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큰 집회가 선포되었더라).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모두 진멸하기 위한 계략을 꾸밉니다.
이제 자기가 왕이 되었으니 바알을 위한 큰 집회를 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역에 사람을 보내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만일 참석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니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3)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바알 신전 안으로 몰아넣고(21절)
21. 예후가 이스라엘 모든 곳에 사람을 두루 보냈더니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르렀고,
그들이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매 바알의 신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였더라.
4) 바알 제사장들을 진멸한 예후(23~27절)
23.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신전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도 너희들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하고
24. 그리고 나서 그들이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바알 신전 안으로 들어간 때에
예후가 80명의 군인을 밖에 세워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생명을 대신하여야 할 것이라”하니라.
25. 번제를 드리는 일이 끝나매 예후가 호위병과 장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하매
호위병들과 장교들이 그들을 칼로 쳐서 죽여 바깥으로 내던지고
26. 바알 신전의 안쪽 방(지성소)까지 들어가서 목상들을 끌어내어 불태우고
27. 바알 목상을 깨뜨리고 바알 신전을 헐어서 변소로 만들었더니
그것이 오늘까지도(열왕기가 기록될 때까지) 그대로 있으니라.
예후는 바알 신전을 부순 후 그곳을 변소로 만듭니다.
변소는 화장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물 구덩이를 뜻합니다.
바알 신전을 그냥 부수기만 하면 후일 다시 세울 수가 있지만,
일단 오물 구덩이로 만든 곳은 그것이 더럽혀졌으므로
다시는 그곳에 바알 신전을 세우지 못하므로 아예 오물 구덩이로 만든 것입니다.
3.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아합의 가문을 처리한 예후(왕하 10:28)
28.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바알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렸으나)
예후는 북왕국 이스라엘 땅에서 바알 숭배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모두 죽였고, 바알의 신전을 변소(오물 구덩이)로 만들어서
다시는 그곳에 바알 신전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합의 가문을 처리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30절).
예후가 아합의 가문을 처리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는지를
신명기 6:5의 말씀으로 비교하여 보겠습니다.
1) 마음을 다하여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마음에 충만하게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예후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아합의 가문을 모두 진멸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명하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2) 뜻을 다하여
뜻을 다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여 주를 섬긴다는 뜻입니다.
예후는 아합의 가문을 진멸하려는 일에 그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습니다.
아합의 가문이 완전히 진멸되기까지는 그의 마음을 놓지 않고
계속 그 일만 궁리하고 또 궁리하였습니다.
3) 힘을 다하여
아합의 가문이 완전히 진멸되기까지 그는 쉬지 않았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아합의 친족이 발견되면 곧바로 공격하고,
또 그다음 공격할 곳을 향하여 가는 식으로
그는 모든 일이 다 마쳐지기까지 쉬지 않았습니다.
4. 명령에 순종은 했으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없는 예후(왕하 10:29)
29. 예후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은 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은 예후
만일 예후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이렇게 열심히 하였다면
그는 다윗 다음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후는 오직 아합의 가문을 진멸하는 일에만 열심히 하였을 뿐,
정작 본인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을 처리하는 것도 아합과 관계된 우상인 바알 신상은 모두 없애버렸으나,
자신과 관계된 우상인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2) 예후로부터 4대까지 이어지는 왕(30절)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가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내 마음에 들도록) 아합의 가문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4대까지는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되리라”하시니라.
예후가 아합의 가문을 진멸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상으로 예후의 자손 4대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십니다.
4대에 걸친 예후의 왕조는 약 100년 가까이 이어졌으며,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가장 장수한 왕조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로보암 2세 때에는
경제 부흥을 이루고 영토도 확장하는 등 제 2의 부흥기를 이루기도 했으나,
4대에 걸쳐 진행된 예후의 왕조로 인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주신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여로보암처럼 죄를 범하는데 사용하여
자기들은 물론 나라까지 망하게 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 묵상 :
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일에만 열심히 하였던 예후
➁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그분을 향한 진정한 사랑 없이 하는
그 어떤 섬김이나 봉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경배하는 자가
그 사랑의 표현으로 주를 위해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제 2 부 : 요아스의 신앙의 허위의식
1. 아달랴의 반역(왕하 11:1)
1. (유다 왕)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서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왕의 자손을 다 죽였으나),
1) 아달랴가 유다의 왕족을 죽인 이유 ➀ : 아달랴의 정권 찬탈의 야욕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곧바로 아하시야의 아들들을 포함한 유다의 왕족을 모두 죽입니다.
아하시야의 아들들은 아달랴의 친손자들입니다.
권력의 욕심이 이처럼 무섭습니다.
권력 앞에는 자식도 없고 손자도 없는 것입니다.
2) 아달랴가 유다의 왕족을 죽인 이유 ➁ : 바알 신앙을 유다에 끌어들이기 위해
유다의 왕족을 죽이는 아달랴의 또 하나의 이유는
다윗의 후손을 모두 멸족을 시키고 자기가 여왕이 되어
그 권세로 유다를 바알을 섬기는 나라로 바꾸기 위해서였습니다.
● 묵상 :
신실한 여호사밧이 어찌하여 사악한 아합과 친근하게 지냈느냐 하는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 장면입니다.
그가 아합의 타락에 함께 참여하고 싶은 욕망에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한 것입니다.
자칫하면 다윗의 후손이 아예 끊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2. 아달랴의 죽음과 유다 왕 요아스(왕하 11:1~27, 성경참조)
아달랴가 자기의 친손자들인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고 나라를 다스리려 할 때에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몰래 숨겨
성전에서 6년간 지내게 합니다.
7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백부장들과 호위병들을 동원하여 아달랴를 죽입니다.
3.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왕하 12:1~8, 성경참조)
7세에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된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자신을 교훈하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합당하게 행하였습니다.
열왕기는 이때의 에피스도 하나를 소개합니다.
요아스가 성전의 부서진 곳을 수리하기 위해
제사장들에게 백성들로부터 직접 예물을 받아 성전 수리에 사용하도록 하였으나
제사장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백성들이 직접 성전을 수리하는 자들에게 드리게 합니다.
4. 여호야다가 교훈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요아스(왕하 12:9~21, 성경 참조)
그러나 요아스는 그를 살려준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자 기다렸다는 듯이 요아스는
말씀대로 사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섬깁니다.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그 일이 잘못이니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형통치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자,
요아스가 스가랴를 죽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요아스가 그의 부하들의 칼에 맞아 죽게 하십니다(역대하 24:17~27).
5. 요아스의 배반과 종말
1)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돌변한 요아스 : 누구를 위한 신앙이었나?(역대하 24:15~19)
15.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나이가 130세라.
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엎드려 절하니
요아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섬겼으므로
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요아스를 죽음의 자리에서 구하여 왕이 되게 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130세로 죽자
요아스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를 책망할 정도로
성전보수에 열심을 내었던 것은 어떤 의미로 한 일이었을까요?
그동안의 요아스의 성전을 향한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아니라,
제사장 여호야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열심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그의 행동이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요아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20~25절)
20. 이에 하나님의 신(성령)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하셨
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그를 없앨 음모를 꾸미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이 일을 감찰하시고 (그 행위대로) 갚아 주옵소서”하니라.
23. 1년 후(해가 바뀔 무렵)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침입하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유다의)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붙이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이 그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을 당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를 인하여 반란을 일으켜
요아스가 잠을 자는 동안에 그 침상에서 그를 쳐 죽인지라.
요아스는 다윗성에 장사 되었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아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요아스가 스가랴를 죽인 일이 있던 그다음 해에
아람(시리아)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에서 아람 군대는 심하요아스에게 심하게 중상을 입히고 떠났고,
침상에 누워 있는 요아스를 그의 심복들이 죽였습니다.
● 묵상 : 당신은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➀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의 위험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요아스의 경우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합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아스 자신도 신앙이 꽤 좋은 자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갑자기 의지할 곳 없는 방랑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갑자기 의지할 곳 없는 방랑자가 되었으므로
요아스는 유다의 지도자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
➁ 당신은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를 의지합니까?
그 누구도 완전한 신앙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서로 도우며
함께 주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신앙의 동반자일 뿐입니다.
당신의 공동체에 속한 자들을 서로 돕되
믿음의 대상은 분명히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제 3 부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장
주께 은혜를 받았다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 마음을 품으라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1.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초(빌 2:1~2)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 우리는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의 이름으로 세우신 교회를
주님 보시기에 좋은 건강한 교회가 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의 시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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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다툰다면
그 교회는 결코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려면 먼저 성도들이 서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가 되는 일은 교회보다 세상이 더 잘합니다.
각종 동호회 모임, 취미 활동 모임들이 더 잘 모이고, 하나가 되는 일도 더 잘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모임은
아무리 잘 모이고 하나가 되는 일을 잘하더라도 그 안에는 영의 생명이 없습니다.
• 교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
그러면 주께서 주신 영광의 생명을 가진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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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는 네 가지 기초를 말합니다.
1)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초 ➀ :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 먼저 우리 각자가 예수께로부터 격려와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기초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려면
날마다 말씀 묵상으로 주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께로부터 위로를 받고 주님의 말씀에서 격려와 훈계와 힘을 받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초 ➁ : 사랑에 무슨 위로나
➠ 주께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기초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 모두가 주께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랑이 사랑의 자극제, 사랑의 촉진제가 됩니다.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의 위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사랑의 능력이 됩니다.
3)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초 ➂ : 성령의 무슨 교제나
➠ 날마다 성령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세 번째 기초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날마다 성령과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성령과 교제하면 성령께서 그 성도들을 통해
그 교회를 주님께 속한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4)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초 ➃ :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주께서 주시는 자비와 긍휼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네 번째 기초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주께서 주시는 자비와 긍휼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께로부터 이런 은혜를 체험하는 자라야
그 힘과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2. 구원을 이루라
1)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말라(빌 2:1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순종했던 것처럼
지금 나 없을 때에도 더욱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개역성경에 ‘구원을 이루라’로 번역된 ‘카테르가제스데’는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으니 계속 충성하여 구원받는 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완성하고 소유한 구원을 상실하지 말고,
그 구원의 백성이 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이미 받은 그 구원의 효력이 발휘되도록
하나님과의 친교를 유지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구원이 나의 현재가 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2) 우리의 현재 :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 상태
우리가 처음 복음을 듣고 성도들 앞에서 주의 이름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성도들 앞에서 행한 의례적인 행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고백으로 진행된 것이고
주께서도 우리의 고백을 참된 것으로 인정하고 받으셨다면
그때 그 믿음의 고백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으니
그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주께서 오실 때,
혹은 우리가 육신의 삶을 마치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우리는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3)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 역시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
우리를 자신의 몸처럼 자신의 눈동자처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살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을 섬기는 일을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누구든 사랑에 빠지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간절한 소망을 가자고 행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뜨개질을 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장갑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우리의 주님을 섬기는 일을
그 마음에 소원을 품고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을 꼭 붙잡으십시오(16절)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생명의 말씀을 꼭 붙들어서, 굳게 잡아서)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이룬 백성들이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이전의 타락한 삶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밥 먹고 씻고 잠자는 일처럼 날마다 하는 일이 되게 하십시오.
3.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며
1) 무슨 일을 하든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14절)
14. 모든 일을(무슨 일을 하든지) 원망과 시비가(불평이나 분쟁이) 없이 하라.
일부러 비난하기 위해 흠을 찾는 행위가 ‘시비’이고,
그 시빗거리를 발견하여 벌레처럼 윙윙하며 불평의 소리를 내는 것이 원망입니다.
비난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흠을
억지로 찾거나 조작까지 하여 시빗거리를 만들었고,
그렇게 억지로 만든 시빗거리로 원망과 비난을 했으니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2)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15절)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뒤틀리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책망받을 것이 없는) 자녀가 되어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려는 것이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는 모든 것이 뒤틀린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 자체가 이렇게 심히 뒤틀리고 구부러져 있으므로
선하고 아름다운 것도 왜곡하여 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런 세상에서 교회가 억지로 시빗거리를 만들어 서로 원망하고 다툰다면
세상은 교회도 세상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말씀도 전파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은 오직 교회뿐인데,
교회 자체가 불평과 원망과 시비에 휩싸여 예수님까지 볼 수 없게 했기 때문입니다.
3)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15절), 생명의 말씀을 꼭 붙잡아서(16절)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생명의 말씀을 꼭 붙들어서, 굳게 잡아서)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
주 안에서 흠이 없고 순전한 사람이 되는 일은
오직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이 말씀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한 사람이 되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결 론 : 주께서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 빌립보 교인들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고달픈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대부분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의 노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고달픈 삶만으로도 힘겨운데 거기에다 끝없이 마음에 분요를 일으킬만한
어그러지고 뒤틀린 말들을 듣게 된다면 더욱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음을 들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바울의 말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2)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13절)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주께서는 이루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힘든지 모르고 합니다.
주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우리가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뒤틀리고 어그러진 세상 사람들 속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면
주께서 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과 평강을 심어 주셔서
그 고달픔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3)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은혜로 된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을 유지하는 것 역시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을 계속 걸으려는 의지와 노력조차도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행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묵상 :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원한다면
성령을 내 안에 넣어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나를 주님의 사람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쁨으로 행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주님
악에 휩쓸려 살다가 멸망 당한
아합의 사람들처럼 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소원을 두고 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오시는 그날에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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