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조현석
허공에 묻다 외
소란스럽게 비바람 몰아친 다음
서녘 한켠으로 잿빛 한숨 번지고
머릿속 헤집던 잡생각 검붉게 터지고
해거름 한 줄기 빛마저 사라진 후
금 간 구름 사이 금 간 바람
깨진 하늘 틈새로
끝 간 데 없이 채워지던 근심들
환갑還甲 지났으니 덜어내며 살라는데
아직 겪지도 맛보지도 못한 것 많은데
검은 하늘 우러르며 무엇을 덜어야 할지
어디로 버려야 할지, 어디에다 숨겨야 할지
언제쯤 검게 금 간 생각 메워질까
반은 하늘로, 반은 땅으로 되돌릴까
별빛 희미해지고
혼잣소리 점점 줄어드는 시간
해 뜨는 풍경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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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몇 가지 방법
1
돌에 부딪혀 반사되기도
호수 수면에서 투영되고 굴절되기도
강물에 튕기는 윤슬이 되기도
백사장 파도에 씻겨 스며들기도
하늘을 비스듬히 날아 구름이 되기도
빙글빙글 맴돌다 잠시 멈추기도
바람 불면 바람의 형태를 벗어나 불기도
말[言]이 쏟아지면 흠뻑 젖기도 하더라
2
빛을 받아야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구석진 곳에 숨어들어 어둠이 되어도
스스로 빛나 침묵이 되기도
서로 몸 부비는 찰나
더 뜨겁게 끓어오르기도 하더라
3
먼 길 돌아오는 길
한 마리 새 띄운 호수가
파다닥
물의 책장을 넘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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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석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불법, …체류자』, 『울다, 염소』, 『검은 눈 자작나무』, 『차마고도 외전外傳』 등을 출간했다. 도서출판 북인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