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배우
미국의 배우. 미국 흑인(African-American) 아버지와 미국 백인(Caucasian)[3]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혼혈이다. 본인의 인종 정체성은 흑인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외모로도 유명하며, 젊은 층에겐 엑스맨의 스톰 역할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무명 시절이 꽤 있었고 연기 경력은 생각보다 오래 되었다.
최초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유색인종 수상자이며 흑인 연기 커뮤니티에서 할리 베리의 위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흑인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무려 74년이나 걸렸다. 그녀가 2002년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양자경이 2023년에 같은 상을 수상하기까지 21년이 걸린 것만 봐도 그녀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활동
17세 때 Miss Teen All-American이라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고[5] 이듬해 미스 오하이오 USA 대회에서 우승하며 일찌감치 미모를 인정받았다. 같은 해인 1986년 미스 USA에서 2등, 미스 월드에서 6등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은 이후 모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80년대 말 〈Living Dolls〉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데뷔하였고, TV 드라마를 전전하다 1991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당시 톱스타였던 에디 머피와 함께한 〈부메랑 Boomerang〉(1992), 전설적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The Flintstones〉, 연기파 배우 제시카 랭과 함께한 〈제시카 랭의 모정 Losing Isaiah〉(1995)[6], 할리우드 레전드 워렌 비티의 정치 풍자극 〈불워스 Bulworth〉(1998)등을 통해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주며 여러 시상식의 후보로 오르는 등 미모 뿐 아니라 연기로서도 호평을 받았다. 이 시기 나이가 만 25세~32세였다.
모델 출신의 흑인 여성 배우가 예쁜 얼굴만이 아니라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커리어 초기에 어려운 역을 일부러 골라서 맡기도 했다. 정글 피버 촬영 당시에는 약물중독자를 연기하기 위해 2주간 목욕을 하지 않는가 하면 2010년엔 딸 출산 후 8개월 만에 〈프랭키와 앨리스〉에, 2014년엔 아들을 출산한 지 3개월 만에 TV시리즈 〈액스텐트〉에 촬영장에 복귀하는 등 연기의 열정을 보였다.
할리 베리 연기 인생의 첫 전환점은 HBO의 TV 영화 '도로시 덴드리지'(Introducing Dorothy Dandridge)이다. 할리우드에서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유명했으나 항우울제 과다 복용으로 요절한 배우이자 가수 도로시 댄드리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인데, 주인공인 도로시 댄드리지 역을 맡았다. 할리 베리는 이 작품으로 이듬해인 2000년 에미상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 여자 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 역할로 Screen Actor Guild Award(SAG)에서도 수상하는 등 TV 영화로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굵직한 상을 휩쓸며 연기파 배우 이미지를 굳혔다. 그녀는 현재까지 골든글로브에 3차례, 에미 시상식에 2차례 더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아직까지 추가 수상한 적은 없다.
2000년, 할리 베리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먼저 떠올릴 배역 스톰으로 엑스맨 유니버스에 출연해서 2014년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까지 4편의 시리즈에 같은 역할로 출연했다.
존 트라볼타와 함께한 〈스워드피쉬 Swordfish〉(2001)에서는 그녀의 연기 인생 처음으로 가슴 노출 씬을 소화했다.
같은 해인 2001년 할리베리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 〈몬스터 볼(Monster's Ball)〉[7]에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로 74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때 주디 덴치, 르네 젤위거, 니콜 키드먼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 그녀의 수상은 이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할리 베리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Oh, My God!'을 연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힌 바 있고, 수상소감이 길어지자 프롬프터에 빨리 끝내달라는 문구가 떴는데 할리 베리는 오히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흑인 여성으로서) 74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더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그 상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보여주었다.
오래전 해티 맥대니얼이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아프리카계-미국인 최초로 kkk단의 무력 위협을 받아가며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난 51년 후인 1990년에 우피 골드버그가 《사랑과 영혼》에서 흑인 여배우 역대 2번째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드림걸즈’(2006)의 제니퍼 허드슨, ‘프레셔스’(2009)의 모니크, ‘헬프’(2011)의 옥타비아 스펜서 등, 조연상 부문에서는 띄엄 띄엄 문이 열렸다.
이처럼 흑인 배우에겐 여우주연상을 주지 않던 오스카가 최초로 할리 베리에게 준 것이다. 이는 앞으로 백인이 아닌 배우도 여우주연상 오스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반세기를 넘어 무려 74년이나 걸렸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흑인 배우는 이후에도 할리 베리가 유일하며, 이는 오스카가 백인 배우에게 우호적인 편향성이 드러낸다.
여담으로 할리 베리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이견이 없었지만, 이때 '트레이닝 데이'로 덴젤 워싱턴이 남우주연상을 받아서 아카데미측에서 흑인 배우 공동수상이라는 극적인 연출을 노린 것 아니냐는 평을 받기도 한다. 덴젤 워싱턴은 주연상 감은 아니었다는 평가였는데, 사실 '말콤 X'등 다른 작품으로 진작에 받아야 할 것을 늦게나마 보상 차원에서 받은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같은 해에 SAG 시상식이나 전미비평가위원회(National Board of Review)에서 주는 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인 더 베드룸 In the Bedroom〉(2001)으로 관록의 여배우 '씨씨 스페이식'이 수상했다.
이후, 〈007 어나더 데이 Die Another Day〉(2002),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고티카 Gothika〉(2003)에 출연하는 등 1~2년에 한 번씩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90년대말 ~ 2000년대 초반의 스포트라이트를 상기시킬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영화 인생 가운데 현재까지 최고의 흑역사로 꼽히는 〈캣우먼 Catwoman〉(2004)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이 작품의 출연료로 1250만 달러를 받아 당시 전 세계 여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기록할 만큼 대단한 배우였지만... 제작비로만 1억 달러가 투입된 작품이 북미 지역에서 약 4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데 그쳤을만큼 흥행에 대실패했으며 평단의 평가도 최악이었다.
결국 이 영화로 이듬해 골든 라즈베리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시상식에 참석해서 수상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 시상식에 배우가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직접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 참석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그녀의 대인배스러운 모습. '최악의 배우가 되지 않으면, 최고의 배우도 될 수 없다'는 폭풍간지급 명언을 남겼다. 그녀가 수상소감에서 울먹거리며 충격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 역시 그녀가 진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 받았을 때 한 수상소감의 셀프 패러디다. 뜬금없이 변호사들한테 감사하다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수상 당시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변호사들을 무려 두 번이나 언급했으며 소감이 너무 길다며 자르라는 모니터가 올라왔을 때 '74년이나 걸렸다구!'라며 버럭 화를 내는 모습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아무튼 짜증내도 될 일을 훌륭한 자폭으로 시원하게 웃고 넘어갈 일로 승화시킨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