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글쓰기」
마녀사냥과 부관참시를 넘어 부활로
숭의중학교 1학년
박채윤
우리는 전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한국 최초의 인물’로만 알고 있다. 더 알고 있다면 아마 ‘납치사건’이나 ‘IMF극복사례’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성공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노벨평화상을 받게 만들어 준 계기나 환경도 중요하다. 우리는 그런 계기나 환경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그 분의 일생도 하나의 중요한 역사인 것이다.
김대중은 편안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행복이 있으면 갑자기 굴곡져 내려가는 힘든 길도 있는 법이다. 편안한 유년기를 보낸 대신 여러 번의 위기가 그를 덮쳤다. 그는 성품은 좋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적이 많았다. 주변에 여러 명의 적이 있으면 위험도 많은 법인데 그는 많은 위협을 겪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 도쿄에서 피랍된 뒤 약 120시간 만에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풀려난 사건인데 마치 007시리즈물을 연상시킬 만큼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사건이다. 그는 납치된 뒤 다행히 풀려나긴 하였으나 그 뒤 가택감금과 정치활동중지를 당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가 그 후에 가려던 일정이 반 박정희파 집회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정치는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길과 같지 않은 길을 가려는 사람은 가차 없이 없애는 시기였다. 이른바 마녀사냥인데 자신과 뜻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던 중세시대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 결코 권력과 힘만으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험난한 파도에도 잘 견뎌낸 김대중은 또 다른 위기에 부딪힌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가 김대중을 포함한 재야인사 20여 명을 사회혼란 및 학생 ․ 노조 배후조종 혐의로 전격 연행한 일이다. 이 때 김대중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모든 일은 신군부가 조작한 일이었으나 김대중은 자신의 잘못된 점 중 인정할 부분은 탄원서에 밝히며 선처를 부탁했다.
‘본인은 그간 본인의 행동으로 국내 외 물의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국가 안보 에 누를 끼친 데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여 진심으로 국민 앞에 미안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다시 돌이켜보고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을 고쳐야할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함으로써 일을 더 나아지는 발판으로 삼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탄원서에 대한 김대중의 회고에서 신뢰에 대한 구절도 엿볼 수 있다.
‘한 안기부의 담당자가 근거가 필요하니 자필 탄원서를 써달라며 절대 언론에는 공개하지 않겠다며 가톨릭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 내용 을 공개했다. 내용은 별게 아니지만, 가톨릭까지 들먹이며 그들이 약속을 어겼다 는 점에서 분노하고 있다.’
사람간의 신뢰는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자신들의 신앙까지 버려가며 그의 탄원서를 공개해야 했을까. 그 이유야 어떻든 사람간의 솔직함은 결국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마 그는 다시는 김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IMF 위기를 극복하고 햇볕정책을 펴는 등 선 굵직은 정책을 펼쳤다. 또 북한의 김정일 국방최고위원장과 회동함으로써 남북 관계를 유화적 분위기 속에서 발전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갔다.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 노력으로 한반도 최초의 노벨 평화상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햇살과 같이 따스한 대통령이 되려 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정치의 살얼음판에서 억압당했던 국민들을 혹독한 독재정치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시기하고 질투하며 김대중과 마음이 맞지 않았던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부관참시’는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꺼내어 다시 한 번 더 토막내는 조선시대의 치욕스러운 형벌이다. 세조의 오른팔이었던 한명회도 죽은 뒤에 죄가 밝혀져 부관참시를 당했다. 부관참시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당사자와 가족에게 최대의 불명예를,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최고의 형벌을 내리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김대중’을 부관참시하는 중이다. 열 조각, 스무 토막으로 난도질하고 있다. 비록 무덤에서 꺼내 토막 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인터넷상에 난무하는 부관참시의 현장을 보면 당하는 대상과 가족에게는 이보다 더 큰 불명예는 없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평화를 빛낸 업적을 존경받는 대상을 심지어 노벨상 비리 의혹까지 들고 나와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은 실로 제 얼굴에 침뱉는 행위라 할 것이다. 오죽하면 노벨평화상위원회가 평화상의 위상과 가치를 훼손하고 불신하는 한국에는 영원히 평화상을 수여하지 않겠다는 공표까지 했을까. 이는 우리나라의 수치이며 자중해야 할 일이며, 누구를 위한 폄하인가 반성할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에 대북 원조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로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자 햇볕정책이 북한의 무력 도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북측에 5억 달러가 송금된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해서도 현대의 대북 7대 사업권 구입을 위한 송금액 중 1억 달러가 정상 회담의 대가로 북측에 현금이 건네진 것으로 밝혀져 햇볕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떤 다른 사람들이 1억 원을 투자하여 북한과의 만남을 성사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어느 누가 북한의 지도자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무력도발을 막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많은 정책을 써도 그 지도자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두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비난할 게 아니라 타산지석 삼아 점검하고 개선해가면 되는 일이다.
내 꿈은 평생 스승으로 추앙됐던 ‘선생 김대중’처럼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박채윤이 하는 말이면 믿어도 돼.” 라고 할 수 있도록 나의 신용도를 100% 쌓아가는 중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신용쌓기는 약속에서부터 시작한다.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잊지 않으며, 언제나 5분 먼저 와 기다린다. 채윤이는 약속을 잘 지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틀을 만들어줌으로써 나 자신의 이미지메이킹을 하고 있다. 이 약속은 나와의 약속에도 해당한다. 내가 설계하고 나와 약속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 내가 선택한 학과에서 에이플러스학점을 맞는 것, 그리고 내 분야에서 프로답다는 인정을 받는 것도 모두 내가 나와 한 약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꼭 지킬 것이다.
그리고 ‘어진 사람 곁에는 적이 없다’는 공자의 말씀을 교훈삼아 어질게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공자는 잠자는 새를 쏘지 말고, 어린 물고기를 잡지 않는 것이 어진 마음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는 측은지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 일은 하면 안 된다고 양심이 말하면 어질게 사는 일 또한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독서와 사색으로 내 양심이 항상 맑도록 노력한다. 양심이 오염되고 탁해지면 선택하는 행동 또한 거칠고 악해질 것이다. 가장 불행한 일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사태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평생토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독서가 김대중’처럼 나 또한 책을 벗하며 살 것이다. 이처럼 항상 인을 생각하고, 주변의 신뢰를 받는 삶을 산다면 그 때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주변과 내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