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도한다.
나는 혼자 아파하다 삶의 끈을 놓아버린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한다.
나는 아무도 교사를 지켜주지 않는
현실을 애도한다.
나는 학교를 생존 싸움터로 만드는
교육정책을 애도한다.
나는 희생자의 피 없이는 변하지 않는
교육제도를 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건너 연대하는
우리를 기대하며 애도한다.
애도 서클에서 만난 마음들
서이초 사건을 만나고 좋은교사운동은 애도 서클을 운영하고 있다. 애도 서클에서 선생님들께서 나눠준 애도문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속에 박힌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배 교사로서 학교의 어려운 업무, 힘든 학급을 맡고 있는 어린 후배 교사들에게 과연 든든한 선배였을까? 나 또한 나 살기 바쁜 또 한 명의 선배였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애도문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걸려 쉽게 내려갈 수가 없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지금의 교육 현실을 참 쉽게도 평가한다. 지난 8월 14일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 시안을 발표했다. 시안은 학생 권리와 교권 간 불균형을 교육 활동 침해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교사가 교단을 떠나고 세상을 떠나는 참혹한 이 시대가 도래한 원인은 학생인권조례 탓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교육 활동 침해 사항의 학생부 기재를 제시했다. 이 상황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나누고, 학생과 교사를 나누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발표한 시안 어느 곳에서도 사과와 애도, 책임의 마음을 찾아낼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나를 지켜줄 사람인지, 버릴 사람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 내가 학급 학생들을 사랑하는 담임인지 아닌지 학생들은 금세 알아차린다. 저 교장 선생님이 나를 지켜줄 분인지 아닌지 교사들은 금방 안다. 교육당국이 교사를 지원하고 학교를 지원해 주는지, 아니면 일만 시킬 것인지 교사는 바로 안다. 성경에서 선한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했는데, 학생도 교사도 선한 목자를 만난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니 내가 잃은 양의 처지가 되었을 때 학교가, 교육당국이 어찌 처신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 많은 교사들이 주말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닐까? 교육부의 이번 시안 발표에서 잃은 양을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악한 목자의 모습을 본다.
법률 마련, 그 너머를 위한 선택
뜨거운 8월이 지나고 교직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동학대 관련 법률의 과도한 적용을 제한하는 다수의 법률이 발의되고, 학교 내 민원 관리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법안들도 다수 발의되었다. 국회 차원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교원단체들은 공동요구안을 작성해 관련 법률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8월, 주말마다 거리에서 외쳤던 선생님들의 절절한 외침이 구체적 입법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법률 마련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법률 마련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학교폭력법이 있어도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으며, 교원지위법이 있음에도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 활동은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 법률이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만들어진 후에는 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시도교육청이, 학교가, 학부모가, 교사가, 학생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이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의 평화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선택한다.
나는 우리가 희망임을 잊지 않고
더불어 함께 걷기를 선택한다.
나는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실천하기를 선택한다.
나는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가르칠 것을
선택한다.
나는 고통의 순간일지라도
모든 교육공동체 구성원이
사랑으로 연결되기를 선택한다.
나는 우리 교육이 한 걸음 나아가고 있고,
그 길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가기를 선택한다.
애도 서클에 참여했던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의 선택이다. 나도 함께 걷기를 선택한다. 힘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힘든 오늘을 걷는 이 옆에서 함께 걸어 주는 이가 되고 싶다.
교육부, 교육청은 어떤 선택을 할까? 학교는 어떤 선택을 할까? 교육당국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나누고, 진보와 보수를 편 가르는 일을 속히 멈추어 주길 바란다. 먼 꿈일지언정 학교는 가르치기를 선택하고, 교육청은 존중과 실천을 선택하고, 교육부는 사랑으로 연결되기를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서이초 사건을 만난 후에는 사랑과 손잡고 더 큰 울타리를 만들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 내일을 열고 싶다.
첫댓글 모든 사람들이 애도와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