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芝 이희춘 님의 시를 올립니다
▢ 영국 아일랜드 기행 54 / 체스터 대성당Chester Cathedral

꽃 구구 부르면 병아리처럼 모여드는 봄꽃 몇 마리 언제 달아난 적 있는가 눈앞의 저 작은 별들 비에 젖어 붉은 별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이승의 끝에 앉아 |
54. 체스터 대성당Chester Cathedral
유럽 여행은 성당을 찾아가는 여정
거룩한 집을 찾아가 옷깃 여미는 여로
바티칸 대성당・피렌체 대성당・
두오모 대성당・밀라노 대성당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그러하듯
체스터 대성당도 그 가운데 하나
신앙이 있든 없든
그러나 여행자는 불평할 수 없다
유럽문화의 정신바탕이 그러하니 그래야 하리라
그래도 괜찮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바라보는 무엇이나 즐긴다
궁금해서 귀찮을 정도로 물어본다
신성을 모셔 오래된 집은
어딘가 모르게 기품이 짚인다
위용 속에 풍상을 건너온 숭엄한 자취가 풍긴다
체스터 대성당은 과묵한 사람을 닮았다
처음 보면 그저 그렇고
자꾸 보면 신성으로 다가선다
머시아의 왕 울프헤레가 660년에 처음 성전을 지은 후로
1209년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으로
1290년에는 고딕 양식으로 개축을 거듭했으나
1540년 헨리 8세에 의한 수도원 해산 명령으로 폐쇄되고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조지 길버트 스콧 경에 의해
복구공사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 성전의 역사
입장료는 없었다
그러나 입장료는 있었다
받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안내되어 있었으나
내가 본당의 내부 관람을 원했을 때 묵시적으로 받았다
‘알아서 하라’는 묵시적 요구
입장료는 받지 않으나
기부금은 사양하지 않겠다는 뜻
십 달러를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하는 눈치
돈을 지불하고 나는 서럽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전통의 성전이 늘 그러하듯
내부 벽면에 그려진 성화들은 장엄하다
색채가 퇴색되고
표면이 벗겨지고
세월의 부피를 견디지 못해 희미해진 붓자국들
그러나 호기심이 그 모든 약점들을 덮어버린다
복도와 행랑들에 깔린 바닥장식도 화려하고
성전 정면과 찬양대의 의자와 벽면을 장식한
목공예 조각들은 너무나도 정교하다
사람의 손 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와서 간섭했을까
특별히 벽면을 도열해 늘어선
신구약성서들에 기록된 예언과 기적과
믿음의 성화들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그의 자식 이삭을 야훼 신에게 바치는 그림
모세가 시나이아산에서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오는 장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아론과 홀이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려 승전을 점치는 장면 등은
믿음의 밖에 있는 내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
밖은 비가 내려
성전의 안쪽은 관람객이 많지 않다
입장료의 수입 차질로 보면 애석하겠지만
사람이 적으면 나는 살아있는 영혼이 된다
내 안의 상상력이
무한으로 확장되는 것은 이런 적막의 순간들이다
고요해야 보인다
적막해야 들린다
모든 것이 설렌다
성가연습 중인 찬양대의 음성이나
파이프오르간의 느리고 장중한 소리
적막감이 내려누르는 신비감
성전에 바친 인간의 노고와 땀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수많은 열정과 헌신
성전에 자신의 재능을 바친 장인들의 손길
모든 존재는 스스로 꽃이다
존재는 꽃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지금 존재의 꽃을 본다
사바가 꺼져버린 시간들이 침묵 속에 몰려든다
회랑의 한복판에 그저 서 있으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와서 내 등을 어루만진다
바깥으로 나오니 다시 빗방울
조금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씨
거리는 비에 젖어도 내 가슴은 가볍다
신성에 동참하는 것도
정처 없이 거리를 두루 헤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주는 밥 먹고
잠자라는 데서 잠들고
보라는 데서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밖은 여전히 비
나는 낮에는 풀잎을 찾고
밤에는 별을 찾는 사람
비 뿌려 오늘밤은 별이 오지 않으리라
이제부터 코번트리로 가는 세 시간의 여정
시시한 풍경들도 왜 내 가슴을 뛰게 하나
문명의 거리는 내가 잠시 공부하는 시간
자연은 내 영혼이 휴식하는 긴 시간
밤으로의 여로도 내게는 유쾌하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