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작부터 읽으려고 마음먹었지만 도서관 예약을 계속 놓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얼마 전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 후보로 올랐다는 기사를 보고 그냥 책을 구입해 버렸다. 채식주의자도 함께. 읽기는 바로 읽었는데, 리뷰 쓰는 날이 마침 5월 18일이라니. 이걸 의도하고 리뷰를 미룬 것은 아니었는데, 덕분에 한 번 더 518을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2.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크게 선과 악 두 종류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물론 절대선과 절대악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소설 속 주인공인 동호를 비롯한 정대나, 은숙 등의 인물들은 선한 인물로 분류될 것이고, 당시 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과 그 밑의 군인들은 악한 인물로 분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편적인 관점이 아닐까 싶다. 군대라는 집단 특성상 그 모든 군인들을 악한 인물로 분류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궁금하다. 그때 시민들에게, 여자들에게, 아이들에게 총을 쏜 군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을 갖고 살고 있을지. 명령에 복종은 해야 했겠지만, 과연 그들이 한 일이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방패 삼아 그 뒤로 숨을 수 있을지. 당사자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그들은 악한 인물로 분류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어느 정도까지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초를 아무리 태워도 사그라들지 않던 시체 썩는 냄새, 별스럽지 않게 사용하고 있던 모나미 볼펜이 고문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유린 등등.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커져가는 분노와 슬픔을 삭히기 힘들었고, 6장 꽃핀 쪽으로에서 동호 엄마의 목소리로 글을 읽을 땐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3. 슬프고 끔찍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기엔 문장이 매우 정갈하다. 조금도 격앙된 문장을 만날 순 없다. 작가는 그렇게 담담하게 이 일을 전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4. 이것은 분명 허구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주하기엔 힘들지만 잊으면 안 될 역사이나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모습이다.
5. 그리고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이 가족 일인 것 마냥 기쁘다.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아직 채식주의자는 일기 전이지만 이 책 한 권으로도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를 알 것 같다.
17쪽
85쪽
114쪽
117쪽
117쪽
134쪽
189쪽
207쪽
고통스럽게 되살려낸 5월 광주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했던 작품으로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한강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 선정 소식이 잇따르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5월 16일 새벽,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최종 수상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여기에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직전 김창완과 나눈 소설가 한강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그녀의 깊은 인생관과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함께 만나보세요.
지난 1부에서는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작품 <채식주의자>에 관한 한강 작가와 김창완씨의 인터뷰를 보내드렸는데요.
2부에서는 현재 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강 작가의 최신작 <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와 의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김창완: 지금 ‘소년이 온다’ 앞에 좀 보고 있었어요.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언제 쓰신 거예요? 이게 초판이 언제인가요?
한강: 2014년 5월에 나왔고요. 이제 2년 되어가고 있어요. 2012년 12월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해서 3개월 정도 자료를 보고, 1년 정도 쓰고 6개월 다듬어서 나온 책이에요.
관련 책
소년이 온다
- 저자 : 한강
- 발행일 : 2014.05.19
- 출판사 : 창비
- 가격 정가 12,000원보러가기
<소년이 온다> 2014, 한강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그래냈다. 한강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이 돋보이는 장편소설.
김창완: 그러면 이게 그러면 한강씨가 직접 체험해서 쓴 거는 아니고 자료로?
한강: 저는 일단 너무 어려서요. 그 당시에는 서울에 있었고요. 가족하고 같이 서울에 올라온 게 1980년 1월이에요. 만 나이가 제가 그 때 9살이었고 어른들이 이제 목소리를 죽여서 하시는 말씀을 숨어서 들었어요. (제가)중학교 1학년 때는 사진집이 비밀리에 유통되었어요. 그 사진집을 보고서 근원적인 충격을 받았던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고요.
김창완: 얼마나 무서웠을까...그걸 보고...
한강: 굉장히 무서운 경험이었어요. 제가 만약에 나이가 좀 더 많았으면 사회적인 각성 같은 것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워낙 어리다보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아주 무서운 존재구나, 내가 이 인간의 일원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숙제 같은 것으로 저에게 던져졌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이 소설을 결국엔 쓰게 되었어요.
김창완: 뭐... 9살 때면 사실 성장기에 진짜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좀 벅찬 그런 공포였을 수도 있네요, 그 당시에. 생생할 것 아닌가.
한강: 그 당시에 오히려 저희 가족들은 겨우 4개월의 차이로 광주를 떠나와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그 사실에 죄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80년대를 다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서 그 일을 겪으신 분에 비하면 그런 충격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죠.
김창완: 이게 번역도 됐어요.
한강: 영국에서 올해 1월에 출간되었어요.
김창완: 이것도 저기 데보라 스미스 씨가 번역을 하셨네. 데보라 스미스 씨는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한강: 데보라는 한국문학의 번역자가 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운 친구에요. 그 중에서 제 소설을 번역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채식주의자>라는 책의 앞부분을 번역해서 출판사에 보내게 되었고요. 그게 이제 번역이 진행되면서 저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책이 출간 된 다음에 후속작으로 이 책(<소년이 온다>)을 번역해서 내게 되었어요. 사실 반응은 이 소설이 훨씬 더 영국에서는 좋았어요.
김창완: <Human Acts(영국에서 <소년이 온다> 번역본 제목)>가?
한강: 뭔가 영국에도 이런 역사는 있잖아요. 이 소설이 인간의 어떤 근원적인 폭력성과 존엄의 의미를 질문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어요.
김창완: 그런데 이 <소년이 온다>가 여기서는 사뭇 다른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네요?
한강: 네, 뭔가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이라는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이 그토록 반인간적일 수 있고 반인간적인 행동에 맞서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어루만지려고 하는 그 행동도 인간의 행동이니까요. 그래서 그 여러 의미를 담아서 이런 제목을 하게 됐어요.
김창완: 나는 ‘소년이 온다’가 더 재밌는데
한강: 그렇죠? 뭔가 이 소년이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너라고 소년을 부르고요. 각 장마다 세월은 흐르고 80년 5월로부터 5월을 통과하지 못하는 소년을 계속해서 다른 화자들이 너라고 불러요 . 이미 넋이 되어서 부를 수 없는 소년이지만 너라는 존재는 우리가 부르면 거기 있는 존재잖아요.
기억하고 부르고 그래서 뭔가 어둠속에서 떠올라서 우리에게 온 존재? 그런 걸음걸이. 넋의 걸음걸이를 생각하면서 ‘소년이 온다’라고 제목을 붙였고요.
신기하게도 영국판 표지의 이 사진을 찍으신 이 작가는 원제를 모르고 'Human Acts'라는 제목만 가지고 이 소설을 읽은 다음에 작업을 했는데 <소년이 온다>라는 넋의 걸음걸이와 흡사한 이런 비어있는 발 이미지를 했더라고요.
'영혜'와 '소년'은 연결되어 있다
김창완: 영혜(채식주의자)하고 여기 소년(소년이 온다)하고는 닮은 데가 있어요?
한강: 일단 이 소설 이 두 편의 소설들은 아주 많이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내면 깊은 데에서는 연결되어 있어요. 영혜라는 인물은 인간의 폭력이 너무 싫어서 더 이상 인간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서 고기를 거부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그게 자신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죠.
사실은 자신을 이제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에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리고 뭔가 어떤 자신의 몸을 버림으로써 어떤 구원받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고요.
이 <소년이 온다>에서 이 소년은 감당하기 어려운 윤리적 선택을 하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이 소년이 이제 1장에서 하는 일은 그 총상을 입어서 죽게 된 그 시신들을 하얀 천으로 덮어주고 뭔가 그들을 돌보려고 하고 그들의 머리맡에 촛불을 밝혀주는 존재. 계속해서 자기가 총을 맞은 친구 정대를 구하지 못한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을까를 계속 스스로에게 탐문하는 그런 인물이에요.
그래서 전혀 달라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윤리적인 고민을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애 쓰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통한다고도 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이 ‘소년’에게 맡겨진 듯 써내려간 소설
더 이상 내가 열여섯 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서른여섯, 마흔여섯 같은 나이들도 여리고 조그맣게 느껴졌어. 예순여섯, 아니 일흔여섯살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어. 더 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박정대가 아니었어.
...(중략) 하지만 몸 없이 누나를 어떻게 만날까. 몸 없는 누나를 어떻게 알아볼까.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
... (중략)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소년이 온다> P.51
한강: <소년이 온다>는 제가 쓴 것 같지가 않고 그냥 소년이 써준 것 같아요. 뭔가 저는 이 소설을 쓰던 시간만큼의 저의 삶과 감각과 감정은 그냥 빌려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은 생각하면 저만의 소설도 아니고 그냥 간절해요.
한강에게 소설가의 일,
그리고 신작
김창완: 한강 씨는 여행도 잘 안 다니시고 도대체 하는 것은 먹는 것도 대강 먹고 취미가 뭐예요?
한강: 주로 걷는 거 많이 하고요. 운전도 하지 않고요 그리고 의외로 보기와는 다르게 여행을 좋아해요.
김창완: 그래요?
한강: 별로 겁먹지 않고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김창완: 가수가 된다면 이제 뭐 요즘에는 연습생이니 해서 진짜 근 10년 길게는 그렇게 하는 시절이 있거든요. 문학도가 된다는 것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겁니까?
한강: 글쎄요 문학...소설을 쓰는 것은 조금 더 독자적인 일이죠. 그래서 특별히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도제의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어느 순간 책을 쓰고 싶으면 쓰면 되는 거니까요 훨씬 더 독자적이고 동시에 고독한 그런 일인 것 같아요. 혼자 망하고....
김창완: 소설가는 그럼 팔자네
한강: 그러니까 소설이 잘 안되더라도 자기 건강만 조금 해치면 되고 남에게는 그리 피해를 주지 않는...(웃음)
김창완: 요새 제일 관심사는 뭐예요?
한강: 요즘 관심사는 아주 밝은 것? 밝고, 눈부시고 아무리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그런 인간의 어떤 지점 투명함?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6월에 나오는 신작도 그런 이야기 제목은 아직 비밀이에요.
(후에 한강 작가의 신작 <흰>은 5월 25일 출간 예정되었다)
세심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직시하는 작가, 한강!
앞으로도 좋은 소설로 만나뵙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기획: 웹에디터 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