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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충성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인생의 진정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충성하며 사는 것이다.
지갑속의 돈
남편이 지갑에서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녀석이 지갑에서 돈 빼간 게 틀림없어!”
“왜 아이를 의심해요? 내가 그랬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남편 말하길,
“당신은 절대 아냐! 지갑에 조금은 남아 있거든...”
아내는 지갑에 있는 돈이란 돈은 다 빼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수년을 아내랑 같이 살아도 아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남자들입니다.
남편의 지갑을 펼쳐보고 돈이 생각보다 많으면 적당하게 빼가기도 하지만, 지갑에 돈이 생각보다 적다 싶으면 남편이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조금 더 보태주기도 하는 게 아내들입니다.
누구보다 더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내요, 누구보다 더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입니다.
부부애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해 주면서 살아가는 부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부부는 배우자의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사랑은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신앙인의 부부가 되어 한 몸, 한 가정, 한 신앙을 이루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삶의 목적, 목표, 의식이 달라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충성하려는 의지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흔히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는 “의리”라는 단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의리는 조직폭력배들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줄 같은 무언가를 제공해 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은 상하 위계질서가 아주 뚜렷하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위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위계질서에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조직폭력배들이 정확하고 명확한 위계질서에 의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어떤 목적 달성을 하고 있다면, 삼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 신앙인들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 신앙인들의 진정한 주인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D4.
①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원이나 결심은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결단코 서원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법도와 규례와 계명을 잘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면 그에 합당한 상급으로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과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굳이 서원까지 하면서 무언가 독특하거나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마태복음 5:33-36에서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맹세, 서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언가 특출한 사람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 맹세를 하거나 서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언가 특출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서원이나 결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서원하거나 맹세하면서 자신이 대단한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표출하기보다는 이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귀담아듣고, 그 말씀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면 그에 상응하는 복과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맹세하거나 서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어느 누군가가 자기 자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특별한 무언가를 행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맹세하거나 서원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맹세와 서원은 지켜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2절에서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서원을 했거나 결심을 했으면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헛된 서원이나 맹세, 결심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을 하겠노라고 헛된 욕망으로 서원하는 척, 결심하는 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존재는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은 아주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 재능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능력자라고 자랑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기를 좋아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허풍이 쎈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탄이 그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으면서 교만하게 만들고, 거만하게 만들고, 오만하게 만들면서 결코 넘어가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이미 마음과 영혼과 의지를 간파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겉으로만 뭐 뭐 하는 척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헛된 서원이나 결심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서원이나 맹세나 결심을 했다면 어떤 경우가 되었든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서원이나 맹세나 결심을 하되 매우 신중하게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서 믿음으로 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라 신중하게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하심에 의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쌓아 올리는 사람이다.
②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남자가 하나님께 서원이나 결심을 했다면 반드시 그 서원이나 결심을 이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지만,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서원이나 결심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에 대하여 정리해 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3-16절까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했을 경우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말씀하고 계신다.
ⓐ 혼인하지 않은 딸이 서원이나 결심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5절에서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혼인하지 않은 미혼의 딸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하겠노라고 서원하여 아버지에게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000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라는 말을 아버지가 들었을 때, 딸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딸의 서원에 대하여 거절한다면 딸의 서원은 무효가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의 서원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딸의 서원을 지지해 주었다면 아버지가 딸의 서원을 허락하는 것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러면 딸은 자신의 서원을 반드시 이행해야만 한다.
ⓑ 혼인한 여인이 서원이나 결심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6-8에서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혼인하여 남편을 둔 여인이 하나님께 서원하였을 때에 남편이 허락하거나 남편이 거절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아내의 서원을 허락한 것으로 인정하여 아내는 그 서원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남편이 허락하지 않고 분명하게 거절하였다면 여인은 자신의 서원을 이행할 수 없다.
12-15절에서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무효하게 하면 그 서원과 결심한 일에 대하여 입술로 말한 것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나니, 그의 남편이 그것을 무효하게 하였은즉 여호와께서 그 부녀를 사하시느니라.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그의 남편이 여러 날이 지나도록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결심한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의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서원한 아내의 남편은 아내의 서원을 취소시킬 수도 있고, 허락하여 그 서원을 이행하게 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 홀로 된 여인이 서원을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9절에서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모든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과부나 이혼당한 여인은 남편이 없기 때문에 과부나 이혼당한 여인의 서원이나 결심을 거절할 수 있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서원을 반드시 감당해야만 한다.
그런데 과부나 이혼당한 여인이 홀로 살지 않고 본래 아버지의 집, 친정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면 다시 아버지가 주인이 되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여인의 서원이나 결심을 이행할 수 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중동지역은 남성 중심의 사회이다.
여성은 남성 속에 포함되어진다.
성경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씀들은 남성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의 숫자도 남자 장정들의 숫자만 기록할 뿐이다.
기록된 남자들 숫자 속에 여성들, 아이들, 어르신들까지, 심지어는 장애인들까지 포함하는 알파(α)를 파악하여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여자의 주인은 남자이다.
남자가 여자의 주인이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반드시 주인인 남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여자의 서원을 감당할 수 있다.
이렇게 여자의 주인이 남자라면 그 남자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남자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남자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남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감동과 허락을 받아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남자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남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서원이나 어떤 결심을 했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서원이나 어떤 결심을 하지 말고, 이미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 율례, 법도, 규례, 규칙을 잘 따라서 순종하면서 살면 그에 상응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그래도 굳이 하나님께 자신의 특출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서원이나 어떤 결심을 했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B4 & L4.
고대 중동지역에서는 여자의 주인은 남자라고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일부의 중동지역 국가에서는 여성의 인권이나 주권이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민족과 국가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여성 스스로 여행할 수 없고, 심지어는 사소한 외출까지도 남성들의 통제를 받으면서 반드시 보호자가 되는 남성이 동반해야 외출이나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 있다고 한다.
이슬람교 지역에서는 여자들은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부르카, 니캅, 차도르를 입어서 다른 남성에게 여성의 몸을 보여주지 않거나, 눈만 보이도록 해야만 외출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슬람 여인들은 적어도 머리에 히잡을 써서 다른 남성에게 머리카락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배경을 지닌 중동지역에서 혼인하지 않은 딸의 주인은 아버지가 되고, 혼인한 여인의 주인은 남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되는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종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다.
종은 반드시 주인의 결정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여자는 종의 신분은 아니지만, 종처럼 반드시 아버지나 남편의 결정에 따라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인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자기 자신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주인일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헌신한 이들의 참된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들 자신이 우리들의 주인이라고 판단되면 인본주의로 사는 사람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주인이라고 판단하면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앙인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가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자기가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들은 삼위 하나님께서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참된 주인이 자기 자신인가 하나님인가에 따라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질과 방향과 목표와 목적의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기본자세는 주인에게 맞추어서 충성하며 살아야 할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이시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종은 주인의 뜻에 맞추어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듯이, 우리 신앙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합당하게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러면 삼위 하나님을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매일매일마다, 순간순간마다 삼위 하나님께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의사결정을 할 때, 내 뜻과 의지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섭리가 최우선 순위로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의 생각이나 의지나 꿈이나 비전을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의지와 섭리를 올려놓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을 결정해야 할 때,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결정하면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 큰 유익을 가져올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결정하게 되면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손실과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판단되더라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막대한 손실과 피해를 감내하면서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신본주의 신앙인이라는 것이다.
가령 주일에 정말 중요한 사업으로 거래처 사장이나 회장이나 직원을 만나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주일에 아주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일에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히 누가 봐도 검고 어둡고 구린내 나는 냄새가 풀풀 나는 사업인데, 그 사업권을 따내기만 하면 대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사업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사업만 할 수 있다면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할 수 있고, 교회의 빚도 갚을 수 있고, 교회당도 새롭게 건축할 수 있겠다. 등등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데, 그 사업이 검은 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경우의 일들을 결정해야 할 때, 신앙인들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그 주인은 어떻게 결정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정말 그 주인이 그 일을 원하고 계실까? 정말 그 일을 하게 되면 주인 되시는 그 분이 진정으로 기뻐하고 인정해 주시는 일이 되는 것일까?를 물으면서 올바른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단지 먹고 마시는 음식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의사결정을 하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신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온 지구촌과 우주계의 주인이 되시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주관하시는 삼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심과 영광을 위하여 결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신앙인들의 일생에 진정한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철저하게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문화와 전통과 의식과 분위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인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것이든 철저하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의식으로 살아가게 되면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마음을 가지든, 어떤 결정을 하든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삼위 하나님이시라면 이 일을 어떻게 결정하실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스스로 체크해 볼 때 우리들 자신은 신본주의로 살아가는 신앙인일까? 인본주의로 살아가는 신앙인일까?
엄밀하게 따지면 인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참된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신앙인이라고 착각하고 가면을 쓴 가짜 신앙인일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신본주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생각 하나하나가, 마음 하나하나가, 꿈과 소망 하나하나가 삼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아닌가를 먼저 따져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마음과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덕을 세워갈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신본주의 의식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내 삶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없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가면을 쓴 가짜 신앙인에 가깝지 않을까 체크해 봐야 하는 것이다.
다시 곰곰이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떤 신앙인일까?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를 자문자답해야 한다.
내가 왕이요 내가 주인이요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요 내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자문자답해야 한다.
잘되어도 내가 잘해서 잘 되는 것이고, 잘안되어도 내가 능력이 없거나 모자라서 잘안된 것이라고 자학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자문자답해야 한다.
하는 일마다 족족 잘 되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하나님의 은혜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요, 지금 잘안되어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와 계획 속에 있다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잘되는 날도 주실 것이라고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잘되면 잘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잘안되면 잘안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는 삶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기본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충성으로 섬기고 의지하며 오직 삼위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②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③ 창세기 이야기 1권, 2권
④ 출애굽기 이야기 1권, 2권
⑤ 레위기 이야기
⑥ 청중마음열기 유머편
⑦ 청중마음열기 예화편
⑧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⑨ 프레임 설교의 이론과 실제 1권, 2권
모두 14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주시면 고맙고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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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오늘 하루도 웃음과 건강이 넘치는 좋은 하루 되세요.💖
주님의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