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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믿음(히 11:4)
오늘은 아벨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자기 속에서 나온 신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은 우리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모든 역사의 창조자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려면 반드시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예수님을 따르는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실패를 거듭합니까?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넘어지고 쓰러집니까?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나를 낮추시고 나를 시험하사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을 간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자신이 주님보다 앞서지 말고 주님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늘 주목하고 그 뜻앞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의인의 삶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4절에서부터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데 가장 먼저 소개한 사람이 바로 아벨입니다. 왜 아벨입니까? 아벨이 바로 예배에 성공한 첫 번째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바로 제사였습니다. 제사의 본질을 알려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기사가 나오는 창세기를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에 제사가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가 필요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사가 시작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범한 후였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이 바로 제사였습니다. 제사가 무엇입니까? 죄값을 지불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드리는 의식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기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은 바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은 농사꾼이었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였습니다.
어느 날, 제사하는 날이 되어 두 사람이 각각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기사를 보면 가인이 먼저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었음으로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므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성경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은 제사"라는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더 나은 제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아벨은 더 나은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까?
1.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영과 진리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치 않은 예배도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예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드려진 제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히 11:6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배의 기본은 믿음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입니까?
1)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아올 때 이미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나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소부재라는 말을 씁니다. 어디에든지 안계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예배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러 올 때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사실을 믿고 나와야 합니다. 단순히 예배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내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창조자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오실 때 이미 마음으로 준비할 뿐 만 아니라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은 물론입니다. 15분 전에는 와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최선의 옷을 입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예배에 있어 예물도 준비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배에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우리의 예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작든 크든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중심을 담아야 합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나의 감사와 찬양이 담겨 있습니다. 나의 희생을 담아서 하나님께 영과 진리안에서 중심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 응답하시고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상주신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입니다. 운동경기장에서 상받는 일, 얼마나 기분좋습니까? 내가 기도하면 주께서 응답하시고 주께서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불신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기도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의식과 하나님의 상주심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바로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2. 아벨은 양의 첫새끼를 제물로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구약에서 살펴보려면 창 4:3-5을 보아야 합니다. (창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그기름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에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에는 '첫 소산'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벨은 가인보다 휠씬 더 좋은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냥 새끼가 아닌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귀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냥 드렸습니다. 제사 정신 가운데 참 중요한 것은 흠이 없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벨은 참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근원적인 차이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함께 그 기름도 드렸습니다. 그 기름! 그 기름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레위기 3장 16절에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분명하게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기름은 생명을 지속시켜 주는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입니다. 그 제물은 마음의 표현이요, 믿음의 표현입니다.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기름을 태워 바칩니다. 이것은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의식입니다. 다시말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뿐 만 아니라 구약의 제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입니다. 피는 죄사함을 위해 대속제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가 있는 제사를 통해서 죄사함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막혀있던 담이 바로 죄악입니다. 그 죄값을 대신해서 짐승의 피를 드린 것입니다. 마치 아담이 범죄한 후에 그 수치를 가리려고 무화과 나무잎사귀를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하여서 진정으로 수치를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이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짐승이 인간의 죄악의 수치를 가리기위해 대신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제사는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신해서 짐승이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제사를 드릴 때는 흠없는 짐승을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의 피를 대신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이 바로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는 양의 죽음을 통해 죄값을 지불하는 속죄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에는 피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를 왜 받으셨습니까? 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매번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이 대신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속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늘 우리의 예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 가운데서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예배 속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피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가인은 피흘림이 없는 제사, 자기 의에 근거한 제사를 드렸다면 아벨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자기의 죄를 속하기 위해 피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도 많은 분들이 십자가없이 하나님께 자기의 의를 가지고 나아가려고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의 생각과 자기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예배를 드릴 때 그의 예배를 기뻐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벨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양의 첫새끼와 함께 그기름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이 기뻐받으신 것입니다.
3. 아벨은 제물과 함께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창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다는 말은 제물과 함께 아벨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물과 함께 가인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제사는 무엇입니까?
제사를 드릴 때 내 죄값을 담당한 짐승을 친히 자기를 대신해서 죽이고 그 피를 하나님앞에 드려 죄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드릴 때 자기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그 제물의 피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제물만 드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은 그를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 요한은 가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그는 이미 악한 자에 속하여 악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드린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시기해서 동생을 쳐서 죽인 것입니다. 더 정확한 의미는 그는 악한 자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 아우를 죽인 것입니다.
진정한 제사는 제물과 함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짐승의 처절한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죄값을 연상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을 뿐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롬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삶의 제사입니다.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악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예배는 나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살펴본 신명기 말씀에 모세의 기도속에 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신 3:23-24,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주‘라는 말을 7번이나 사용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세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 여호와입니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주권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이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창조하셨고 주님이 나를 구속하셨으므로 주님의 주권하에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악인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아무리 온갖 풍성하고, 거창한 제물을 수없이 드린다 해도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습니다. 이에 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내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잘못된 삶을 회개하지 않은 채 드려지는 희생의 제사,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배의 정신에 비추어서 보면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셨습니까? 가인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그저 예배만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요4:24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영은 중심으로 드리는 것이고, 진리로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에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속에 내 중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그 가사를 내 마음속 깊이 생각하면서 나의 찬송임을 명심하고 찬양을 부릅니다. 기도속에 내 중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헌금을 드리면서도 그 헌금속에 나의 중심을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나의 몸과 함께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벨의 믿음은 제사를 통해서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양과 그 기름, 그 피를 드렸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가장 좋은 양의 첫새끼를 드렸습니다. 그 때 아벨은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앞에 열납되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진정으로 하나됨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이 다 사라지고 진정한 평강을 얻고 있습니까? 우리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신앙에 성공하고 신앙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의 성공을 통해서 영혼의 기쁨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시고 믿음에 성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