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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 일주문 원문보기 글쓴이: 淸凉法山
시를 말하다문태준 시인 폴 발레리는 지성의 시인, 시학적인 시인으로 흔히 불린다. 자닌 잘라는 폴 발레리의 시 쓰기를 “한편에는 모든 구조와 언어의 건축, 또 다른 한편에는 모음 중복과 단절 위에서 유희하는 글쓰기가 있다. 이것이 발레리의 이중 글쓰기다.”라고 썼는데, 이 지적은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발레리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그가 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기하학자요, 건축가요, 지성인이라는 것에 있다. 발레리가 관심을 보였던 것은 시적 의식의 명확성이었다. 평론가 김현은 이와 같은 발레리 시의 특질을 “우연적인 것이 상당한 중요성을 차지하는 인간의 사고 양태에 있어서, 사고를 엄격히 규제하고 제어하여 가장 의식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심적인 우연이 주는 흥미 있고도 유용한 결과를 의식의 불빛 아래서 다시 발견해 내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의식적인 사고의 궤적”과 “그 궤적의 현재성”을 추구하는 발레리의 성향은 1892년부터 20여 년간 그 스스로를 시 창작의 영역에서 이탈하여 지적 활동에만 전념하도록 했다(발레리의 저작 ‘테스트 씨와의 저녁’,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론 입문’ 등은 이러한 지적 활동의 결과물이었다.) 발레리는 피에르 루이스, 앙드레 지드와 자주 만났고 화가인 드가, 르누아르 등과 교분이 있었지만 그의 시를 ‘지성적인 시’라는 둘레와 범위로 해석할 때 그것은 에드거 앨런 포와 말라르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발레리는 에드거 앨런 포에 관한 글에서 “그는 사물들의 신비로운 울림과 은밀한 조화를 규명하는데, 그 조화는 모든 예술가들의 정신에게, 다시 말해서 적절하게, 난폭한 이상주의자들이 지닌 수학적 관련만큼이나 현실적이고, 그만큼 확실합니다.”라고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 발레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제시한 ‘유추(analogie)’는 에드거 앨런 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겉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발레리가 가장 흠모한 시인은 말라르메였다. 말라르메의 타계 소식을 전해 듣고 발레리는 그 부음을 “마음 가장 깊은 곳을 때리고, 말을 할 힘마저도 부숴 버리는 청천벽력”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특히 그는 말라르메를 “극단적 순수성의 표상”이라고까지 칭송했는데, 그 이유인 즉 “시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조차도 불순함으로 점철되고, 결함으로 뒤섞이며, 장황함으로 약화되는 법”인데, 말라르메는 “단번에 대다수로부터, 당장의 명예와 이익으로부터 멀어진” 성격과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시의 젖가슴에 안겨/ 젖을 빨던 입이/ 깜박 놀람에 엄습되어/ 입술을 뗀다.// -따스한 정 흘러나오던/ 오 내 어머니 지성이여/ 젖이 말라도 가만히 있는/ 이 무슨 소홀함인가!”(‘시’)라고 썼듯이 발레리는 시와 시 창작자의 관계를 어머니와 아이의 관점으로 빗대면서 시적 영혼이 메말라 버린 곤경을 노래했는데, 이 시를 통해서 볼 때도 그에게 말라르메는 고갈되지 않은, 엄밀하게 시적 삶을 살다 간 존앙의 대상이었다. 시에 관한 한 발레리의 유일한 문제는 ‘맑은 의식’에 있었다. “나는 무아 상태에서 번갯불을 기다리느니보다 맑은 정신, 의식적인 의지를 지니고 나의 마음대로 반짝거리는 불꽃을 만들기를 좋아한다.”라고 썼듯이. 그리고 그것은 언어의 조직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라는 예술 장르는 “우주가 음절들로 뒤덮이고, 문장들로 조직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그는 보았다. 발레리 시의 중핵은 신비스러운 자아와 지성을 노래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성스럽고도 관능적인 몸 이미지를 배합했다. 그가 시 ‘꿀벌’에서 “사랑이 죽거나 잠들지 않게끔”, “황금색 꿀벌아, 너의 침이 어떠하건,/ 아무리 날카롭고 아무리 치명적일지라도,/ 나는 내 부드러운 바구니 위에,/ 꿈의 레이스만을 걸쳤을 뿐”이라고 썼을 때에도 그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은 명료한 의식을 갈구하면서 그러한 자극을 소원하는 자신을 얇은 레이스를 걸친, 나체에 가까운 몸과 젖가슴을 빌려서 표현했다. 그러나 지성적인 시를 창작한 발레리에게도 죽음의 이미지가 곧잘 등장하는 것은 다소 의아해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가 시 ‘해변의 묘지’에서 “그대 노래하려나 그대 한줄기 연기로 화할 때에도?/ 가렴!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 나고,/ 성스런 초조도 역시 사라진다!”라고 노래했고, 시 ‘제쳐 놓은 노래’에서 “무엇을 아니? 권태를./ 무엇을 할 수 있지? 꿈꾸는 것을/ 매일 낮을 밤으로 바꾸려고 꿈꾸는 것을./ 무엇을 알지/ 꿈꿀 줄을,/ 권태를 갈아 치우려고.// (…)// 넌 누구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디로 가니? 죽음으로/ 어떤 조치가 있겠는가? 그만두기,”라고 노래한 대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인간의 일생을 관조하되 그것을 부재와 무의 상태로 몰아쳐 가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석류(Les Grenades)’가 실려있는 시집 [Charmes]의 표지 시 ‘석류’는 발레리의 작품 가운데 널리 알려진 단시(短詩)다. 혹자는 이 시를 읽고 세잔느나 마티스의 정물화를 연상하기도 하는데, 이 시는 쉽게 짐작되는 대로 “반쯤 입 벌린 석류”를 보고 쓴 것이다(나는 이 시를 읽는 순간 우리나라 시조 시인 조운의 ‘석류’를 떠올렸다. 참고로 조운의 시조 ‘석류’는 이렇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발레리는 두꺼운 껍질이 툭 터진 석류를 보면서 그것을 “빛나는 파열”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석류 알맹이들을 “즙든 붉은 보석들”이라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발레리의 관심은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의 발견에 있다. 석류의 알맹이들을 바라보듯이 자기 자신의 의식구조 자체를 투시하려는 욕구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 또한 의식적인 사고의 은밀한 구조와 그것을 밝혀내려는 궤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발레리의 묘비에는 그의 시 ‘해변의 묘지’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지적 작업) 다음에 찾아드는 보답이로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묘비의 시구처럼 발레리는 시를 통해 인간의 육체에 깃든 의식의 뚜렷한 불꽃을 발견함으로써 인간 생명을 “불 밝혀진 맹렬한 생명”으로 재인식하려 한 게 아닐까 한다. 그는 “예술의 대상은 위대한 영혼의 공격을 받아서 순수해진다.”라고 믿었는데 이러한 믿음이 그가 그의 시에 대해 품고 있었던 큰 긍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0.30 ~ 1945.7.20) |
첫댓글 요즘~석류가 빨갛게 익어가는 계절~
상큼한 맛을 생각만해도
침이 입안가득하네요.
좋은시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