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바위 틈에서 자란 인왕산 소나무의 말,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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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 거대한 바위산 아래 펼쳐진 수도 서울이 한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싶다.
창의문에서 출발하여 인왕산 등산을 한다.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시인의언덕에 올라 곧바로 한양도성 순성길로 연결된다.
도성길 계단이 만만찮다. 헐떡헐떡 올라 도성에 오르니 옹기종기 부암동 마을이 정겹다. 멀리 보이는 빌딩 숲도 아름답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산성이 용의 몸을 하고 기막히게 따라간다.
한참을 가다 '숲속쉼터'가 나왔다. 쉬었다 갈까? 숲속쉼터는 청와대를 경비하던 군인들이 근무하던 초소였는데 지금은 북카페로 꾸몄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1968년 '김신조사건'으로 수십 년간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2018년에야 전면 개방되었다. 그동안 병사들의 거주 공간이 시민을 위한 쉼터로 재탄생된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쉼터는 월요일 휴관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는데 아쉽다.
한양도성과 오랜 역사가 있는 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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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만난 소나무 연리지. 부부소나무라 이름 지어졌다.
한참을 가다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를 만났다. 안내문에 소나무 두 그루가 합쳐져 부부의 사랑이 연상되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써있다. 뿌리라고도 할 수 없고, 가지라고도 할 수 없는 두 나무가 한 몸으로 이어졌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로 영양을 공급하여 서로 돕고 있는 연결이 기기묘묘하다. 나무도 정이 깊으면 하나로 합쳐지는 걸까? 묘한 조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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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도성이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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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에 쓰인 옥개석. 도성 여장에서 지붕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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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한양도성에 새긴 각자성석.
튼튼한 한양도성. 18km에 이르는 긴 도성을 축성한 기간은 98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동원된 인원이 총 20만명이란다. 놀랍기 그지없다.
도성에 기대여 문득 산을 올려다본다. 인왕산도 가을이 한창이다. 자연이 그린 예술가의 품속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 아래 형형색색이 칠해졌다. 발밑에 떨어진 낙엽도 수북이 쌓여간다. 계절은 그렇게 바뀌는 모양이다.
땀이 겨드랑이에 밴다. 오늘 같은 날은 좀 가벼운 옷을 입고 올 걸! 평평한 바위에 잠시 주저앉아 쉬어가는데 바람이 분다. 가을 바람이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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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한양도성순성길에 핀 개쑥부쟁이. 늦가을까지 피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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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소나무숲길. 호젓하다.
산허리에다 어떻게 이런 예쁜 꽃을 피운 걸까. 하얀 미소를 띤 개쑥부쟁이가 반갑다. 한자리에서 자리를 지키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듯싶다.
어느새 338m 인왕산 정상! 아래에서 볼 땐 그저 그런 산이겠지 했는데, 올라와서 보니 아까 보았던 그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의 바위산이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바위는 닳고 닳았다.
발아래 펼쳐진 수도 서울이 마을을 이뤄 마치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림 속에는 천만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가 주절주절 흘러나오는 것 같다.
가을과 아름다운 인왕산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다. 산을 정복하는 느끼는 기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 나뿐일까? 젊은이들이 바위에 올라 밝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 히잡을 쓴 여인들도 인상적이고, 등산화를 신지 않고 찾은 서양 사람들은 산책하듯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여긴 모양이다. 바위산을 무척 힘들게 올랐다며 내려갈 땐 조심해야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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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이 있는 인왕산은 서울 진산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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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의 아름다운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가을 하늘이 높고 맑다. 가까이 경복궁이 보이고 남산타워까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성을 이 높은 여기까지 쌓았다니! 다시 도성을 끼고 오르던 방향 반대편 사직단을 행해 내려간다. 빽빽하게 들어찬 숲에서 나무들은 몸을 가볍게 비워간다. 바쁘다고 놓쳐버린 가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스스로 그동안 애썼다고 위로를 해보고, 마음자리가 빛을 내는 하루가 지나간다.
한참을 내려오다 커다란 작은 바위틈에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명력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소나무에 메모가 적혀 있다. 인왕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다.
제가 여기서 20년 넘게 살아 인연이 되었어요. 저도 힘들지만, 여러분들이 항상 예쁘게 보아주셔서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 힘내시면서 인왕산을 사랑해 주세요.
ㅡ 한양도성 시민순성관 인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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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 작은 틈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소나무. 20살이 넘는다는 메모가 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 싫다 좋다 마다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귀한 생명에 경외심이 느껴진다. 늦가을에 오른 서울의 진산 인왕산! 너른 품 열어두고 누구라도 기꺼이 맞아준다.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라 걸으며 고대와 현대가 함께 한다. 서울에서 맛보는 색다른 즐거움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