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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2분 전
나이지리아에서 이집트로...FBI의 내사에 탈출구 없는 도피 |
(지난호에 이어 계속~)
그는 긴 밤이 걱정돼 딜러에게 물었다.
“이 동네에 혹, 하우스 방 없나?”
“길 건너 백인주거 지역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자기들끼리 논답니다. 하지만,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도 백인거주지에 무장단체가 침투해 판돈을 모조리 쓸어 갔데요.”
“알았어.”
모 주방도 딜러에게 1백 달러를 건넸고, 경호원 두 명에게도 1백 달러씩 찔러주었다. 그리곤 달러를 가방에 쓸어 담고 지하 카지노를 나섰다.
경호원들이 객실까지 에스코트해 주겠다며 따라왔고, 승강기에 함께 탔다. 그들 중 키 큰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나이지리아인?”
“아닙니다. 우리는 에디오피아 군 출신입니다. 원하신다면, 객실 밖에서 경호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벌이가 시원치 않지?”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맞아,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헌데, 나도 외인부대 두 곳에서 근무한 경력자야.”
“아, 예.”
“모리타니에서 에디오피아 인과 함께 작전도 했었지. 내 목숨은 내가 지켜 낼 능력은 있어.”
모 주방이 허리춤에서 권총까지 꺼내 보여주자, 그들은 두 말 않고 6층에 닿은 승강기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내려갔다.
이기원 삽화
객실에 들어선 모 주방은 돈 가방을 침대 밑에 쑤셔 넣고, 권총을 허리춤에서 빼 스탠드 탁자 위에 놓았다. 만일에 갱들이 들이닥치면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곤 백에서 수면제 통을 꺼내,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은 뒤 생수를 마셨다.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지만, 약효가 퍼지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
흠!
참, 갑갑하네. 딱히 할 일도 없고. 내일은 무얼 한다. 제기 랄, 차라리 남아공으로 갈 걸 그랬나. 카지노도 저 모양이니 손님이 매일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백인거주지로 원정을 가? 가만, 오늘이 수요일이지. 그나마도 틀렸네. 언제까지 피신해 있어야 하는 거야, 빌어먹을!
그는 벌써부터 조급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 이놈에 나라는 볼 것도 없다지.
모 주방은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가까이서 총소리가 들렸다. 경찰차들이 앵앵거리고 나자, 이젠 아예 콩을 볶는다. 창 밖으로 내다보아도 눈에 띠지 않는다. 입소문대로 백인거주지역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깊숙이 들어왔다. 눈은 떴지만, 침대에서 빠져 나오기가 싫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는 물끄러미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큼직한 선풍기가 돌고 있었지만, 열대 사바나 기후를 식혀 줄 기능은 없다. 그저 후덥지근한 습기를 쫓을 뿐이다.
오늘은 어떻게 소일하지. 흑인창녀를 불러 놀까. 안 돼. 여기 여자들은 자기관리가 부실해 자칫 성병이라도 걸리면 나만 손해지.
하~~
어쩐다. 이렇게 한가해보기도 처음이네. 지하에 내려가서 슬롯머신이나 돌려야겠다.
그 생각이 번득 들자 모 주방은 마치, 약속에 늦은 것처럼 허둥댔고, 객실을 잠가놓은 뒤, 허겁지겁 승강기로 뛰어가 올라탔다.
왜 이리 더딜까.
한 층 내려가는 게 1년은 걸리는 듯했다.
아! 거, 빨리빨리 좀 움직여라, 이놈에 느린 엘리베이터야.
지하 카지노에 닿자, 그는 천국에 들어선 것처럼 기뻤다.
어제 본 딜러는 여종업원들과 잡담을 했고, 경호원들은 멀건이 서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들은 손님을 보자 매우 반겼고, 모 주방은 여종업원에게 소리쳤다.
“슬롯머신 코인을 1천 달러만 가져다 줘.”
“네!”
그녀는 잽싸게 움직였다. 박스에 코인을 잔뜩 담아와 1백 달러지폐 열 장을 받아갔다.
그는 슬롯머신 다섯 대를 전부 차지하고, 각 슬롯머신에 코인을 연신 집어넣고 당겼다. 잭팟을 기대하는 것이지만, 손님이 없는데, 기계가 내놓을 코인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 슬롯머신 이미지
딜러들과 여종업원, 경호원들까지 다가와 구경하고 있었다.
모 주방은 줄담배를 물고, 커피를 마셔가며, 슬롯머신 레버를 힘차게 당기고, 또 당겼다. 하지만, 기계는 대꾸가 없다. 코인을 빨아먹기만 하고, 토해내질 않는다.
그건 당연하다.
빈 슬롯머신에 내어줄 코인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도 터진다는 바람은 하지 않았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자신으로서 사위 벽에 갇혀 있기보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도진 것이다.
그는 호텔 주방에 이태리음식을 주문해 먹고, 또 슬롯머신에 매달렸다. 코인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기계가 전부 먹통인 것도 좋다. 슬롯 바가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오후로 접어들자, 기계가 이제까지 넣은 코인을 고스란히 게워냈다.
모 주방이 넣은 것을 그에게 다시 내주는 격이다. 1, 2, 3, 4, 5번까지 오가며 넣고, 넣고 또 넣었다. 다리가 아프면 의자에 걸터앉아서 레버를 돌리고, 돌렸다. 그러다 해가 졌는데도 객실에 올라갈 생각을 않는 것이다.
카지노 직원들은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그가 거의 미친 듯이 슬롯머신과 씨름하는 걸 목도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시 도박중독자?’
하는 입맞춤이 돌았다.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하고, 당직자만 남아 모 주방의 시중을 들었다.
혼자 떠들고, 웃고, 아쉬워하고, 욕하고, 발길질하고, 신나서 논다.
당직 근무자야 밤샘하려면 심심했는데, 잘됐다 싶다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심하다 싶었다. 벌써 사흘 째, 슬롯머신에 매달려서 지랄을 떨었다. 잠 한 숨 안자고 말이다. 직원들이 도리어 지쳐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면서 그를 말리기 시작했고, 오죽했으면 기계를 꺼버리기까지 했을까.
이제 그만 하고, 객실에 올라가 자라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슬롯머신에 코인이 쌓이면 돈은 벌어서 좋지만, 자칫 사람 다칠까 봐 단속하는 거다. 카지노 팀장이 경호원들을 불러 거의 강제로 끌어내 승강기에 태웠고, 6층 객실 앞에 데려다 주었다.
모 주방은 그 때서야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대낮이라 잠을 자기도 내키지 않았다. 전화기를 들고, 카지노 딜러에게 다시 백인거주지 하우스 방이 어딘지 물었지만, 일전에 말씀 드린 대로 주말에만, 그것도 멤버들이 다 모여야 하니까, 그냥 쉬라고 설득했다.
나이지리아의 지리를 잘 안다면 이 곳, 저 곳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다지 내세울만한 볼거리도 없다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나. 그래서 더 도박에 집착하는 것인지 모른다. 소일거리가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다음 날은 호텔 지하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혼자 했다. 딜러는 흑인여자였고, 직원 모두가 모여 그 게임을 구경했는데, 이유는 카지노가 돈을 따는지, 잃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 룰렛
룰렛은 원형 판에 홈을 파고, 숫자를 넣은 다음, 회전시킬 때 구슬을 던져 테이블에 베팅한 숫자가 맞으면 10배를 주는 게임이다. 물론, 틀리면 카지노가 판돈을 가져간다. 룰렛도 회전판을 조작해 손님들 베팅액수를 전부 빨아드리는 카지노들이 많다. 여기도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워낙 관광객들이 없다 보니, 손을 보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모 주방은 매판마다 숫자 열 개에 10달러씩 베팅 했는데, 열 판 돌리면 겨우 한 번 맞을까, 말까 해도 그냥 놀았다. 질리기 시작한 건 도리어 딜러다. 2시간 이상 서 있으면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였는데,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남자 딜러와 교체했다.
종업원들은 차츰 흥미를 잃었고, 또 시작인가 하는 눈총을 주고받았다. 슬롯머신처럼 일단 게임해, 잃은 돈은 카지노 측 수입원이 되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만이 아니다.
또 2시간이 흘러 딜러가 바뀌었지만, 그는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박이란 게 돈 놓고, 돈 먹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생각했다. 아니, 돈이 얼마나 많아서 한판에 1백 달러씩 깔아놓고, 몽땅 잃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지 참, 별종이다, 싶은 모양이다.
나이지리아 어린이들은 하루 1달러로 겨우겨우 연명하는데 말이다.
카지노 종업원들은 당직자만 남기고, 다 집에 돌아갔다. 손님이라곤 동양 녀석 혼자서 사람 질리게 만든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알 수가 없다. 백인들처럼 유정회사에서 근무하나. 듣기로는 그 것도 아닌데. 진짜 희한한 사람이다. 한국출신인데, 웬 돈이 그렇게 많아? 며칠 전에 세븐카드로 돈을 쓸어가기는 했지만, 벌써 10만 달러를 잃었는데, 미동도 않는다. 운 좋게 한번 걸리면 10% 복구할까 말까 한데 말이다.
빌어먹을 새끼, 갱들한테 저거 치우라고, 귀 뜸할까.
경호원들이 깍듯하게 대하는 걸 보면 예사로운 놈은 아닐 것이다. 하기는 보통 배짱으로는 중부 아프리카에 관광객들이 잘 들어오지 못 한다. 남아공이라면 또 모를까. 국립공원에 야생동물을 보러오는 게 고작이기는 하지만.
새벽으로 접어들자 이제는 딜러도 지치기 시작했고, 적당히 하고 좀 쉬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모 주방은 들은 척도 안 했고, 줄담배에 커피를 물 마시듯 했다. 빨리 돌리기나 하라고, 짜증을 낸 것이다. 딜러는 침묵했지만, 상당히 언짢은 것 같았다.
하! 이 자식 웃기네, 저를 위해 한 마디 한 것인데, 되레 성질을 부려...
그는 한 술 더 떠 ‘네가 뭔데 하라 마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이자, 줄곧 지켜보던 팀장이 재빨리 나타났다. 그만 진정하고, 적당히 하라며, 딜러에게 눈을 찡긋거린 뒤, 전원을 완전히 내려버렸다. 나이지리아는 전기사정이 좋지 않다며, 번번이 정전사태가 벌어진다는 핑계를 댔다. 그리곤 오늘 영업은 더 이상 못한다면서 퇴장을 요구했다. 에디오피아 출신 경호원들도 그가 못마땅한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너 잘못하면 죽는 수가 있다는 낯빛이다.
●역마살.
객실에 올라온 모 주방은 수면제를 털어 넣고 잠을 청했는데,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자 전화벨이 울렸다. 카지노의 딜러였다. 백인거주 지역에서 판이 벌어지고 있다며, 귀 뜸 한 것이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벌에 쏘인 것처럼 돈 가방을 챙기고, 객실을 나섰다. 그리곤 승강기를 타고 1층에서 내려 호텔을 나섰다.
며칠 만에 거리로 나선 건지 기억에도 없다. 도박판에 한번 끼어들면 일주일에서 길게는 보름까지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딜러가 일러준 대로 길을 찾아 나섰고, 번지수를 확인해가면서 백인거주지로 들어섰다. 나이지리아에 진출한 석유회사 임직원들 숙소였지만, 상당히 잘 지은 주택들이었다. 현지인들 집이라곤 벽돌에 양철지붕을 얹은 게 고작인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무를 사방에 대충 박아놓고, 야자수 잎을 얼기설기 엉 그는 게 전부다.
하우스 방이 섰다는 지번에 닿아 벨을 누르자 안에서 흑인경호원이 나왔다.
“어떻게 왔습니까?”
“게임 좀 할까 해서...”
“잠시 기다려 봐요.”
흑인 경호원은 인터폰으로 집 주인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들어가 보라는 고개 짓을 한다.
큰 대문을 넘자 넓은 정원에 잔디가 심어져 있고, 작은 수영장도 있었다. 2층 건물인데 꽤 고급스런 외관을 갖췄다. 현관을 넘어 응접실로 발을 들여놓자, 호화스런 장식들로 치장했다. 하우스 방은 그 건너 테라스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며칠 전, 함께 게임 했던 그 백인들과 초면인 터번 쓴 아랍인 두 명, 그리고 다른 흑인 두 명이 세븐카드를 벌이고 있었는데, 딜러가 낯이 익다 싶으니까, 카지노에서 본 그 여자였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구면이라고, 악수를 청한다. 뒤뜰에 인접한 테라스도 상당히 넓었는데, 거기에 카지노 테이블을 설치한 것이었다. 의자에 앉자 영국인이 게임 룰에 대해 설명한다.
기본은 1달러, 4구부터 풀 베팅이고, 7구에는 두 번 되받아 치기가 허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번 카지노에서 한 것과 똑같은 방법이다.
모 주방은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고, 앞서 진행됐던 게임이 끝나자, 딜러가 패를 돌려주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면, 초장 판세는 별 볼 일없고, 후장에 쓸어 담는 게 더 좋다.
석장은 각 패였는데, 무늬도 숫자도 짝 맞는 게 없었다.
딜러가 오픈 하는 카드에 기대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5구에 접기로 마음먹고, 베팅을 했다. 짐작은 과히 틀리지 않았고, 7구까지 가도 투 페어가 고작일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패가 신통치 않은지 6구째 다 접어서 아랍인이 건식을 했다.
판이 거듭될수록 과열양상을 띠었고, 7구 되받아 치기를 두 번했는데, 네 명이 달라붙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했듯이 딜러의 권유로 차례로 카드를 오픈 했는데, 흑인이 풀 하우스를 잡아, 판돈을 당겼다. 대략 50만 달러는 넘을 것 같았다.
모 주방은 플로시를 잡고도 느낌이 안 좋아 6구에 접었다. 영국인도 플로시여서 따라붙은 건데 말이다. 아랍인 둘은 트리플 이었다. 그들은 게임운영에 좀 둔한 편이다. 전 세계 카지노 판에 꼭 끼는 석유부호들이지만, 돈질을 잘 못한다. 그 정도는 거 져 줘도 아깝지 않다는 투다.
아무튼 모 주방은 마수걸이를 아직 못했다. 모두 7명이 풀 베팅을 해대니까 판돈이 7배로 튀고, 밑천이 딸려 휘둘리기까지 했다. 딜러가 카드를 정리하고, 다시 패를 돌리자 이번엔 제대로 날아왔다.
같은 무늬 석장이다. 플로시를 바라볼 수 있는 패였지만, 에이스가 빠져 있다는 게 찜찜했는데, 같은 족보를 쥔 상대가 있으면 끗수로 따지기 때문이다. 4구는 그의 바람을 져버리고, 스페이드가 떨어졌다. 우선 베팅을 하고 클로바를 기다렸다. 5구 역시 빗나갔다.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베팅을 할까, 말까 머뭇대다가 돈을 밀어 넣었다. 일종에 재수 떼기를 하고 싶었다.
오늘의 운수를 본다고나 할까.
만약, 6구, 7구에 클로바 두 장이 연속 나오면, 기를 좀 세울 수 있고, 후반에 게임이 잘 풀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6구도 빗나갔다. 다이아몬드가 열렸다. 무늬 석 장으로 말라버린 것이다.
흠!
그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고, 카드를 옆으로 밀어 놨다. 7구까지 본 사람은 프랑스인과 흑인이었는데, 되받아 치기에 흑인이 카드를 접었다. 건식인 셈이다.
모 주방은 판이 거듭될수록 카드가 더 마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은 일반 하우스 방에서처럼 7장을 다 갖는 방식이라면, 앞사람이 자기 패를 잘라먹는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석 장 받고, 넉 장은 딜러가 오픈하는 터라 앞, 뒤에 있는 사람이 죽거나, 살아서, 자기 카드를 가로채는 일은 없다. 자기들이 받은 석 장과 딜러가 오픈 한 넉 장을 게임 참여자들이 공통으로 족보를 꿰 맞추는 것이라, 패가 바뀌는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게임이 너무 안 돼, 가져 본 착각이다. 거의 두어 시간을 베팅만 하고, 헛손질을 한 꼴이었다.
그는 딜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빼고 난 뒤, 주방으로 건너가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삽화: 이기원
제기랄! 7구까지 가 본 적이 없네. 괜히 2만 달러씩 보은만 했군.
자리에 돌아온 그는 다른 손님들 게임하는 틈을 타 돈을 얼추 세었는데, 거의 60만 달러가 축나 있었다. 그렇다고 게임을 그만 두고 일어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올 인으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도박판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들이 판을 운영할지는 모르겠지만, 판이 깨지지 않은 이상 남은 돈을 챙겨 들고, 하우스 방을 나서지 못한다. 절대. 그걸 잘 아는 모 주방으로서는 밑천이 더 빨려나가기 전에 한 판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끗발도 얻고, 더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딜러가 다시 왼쪽부터 패를 돌렸다.
석 장이 다 올 때까지 그는 문득 또 머피의 법칙을 떠올렸고, 다른 손님들에게 자리 좀 바꾸자는 말머리를 건네려다 말았다. 그들이 자기의 제안을 받아 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가 맨 끝에 앉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사이 카드는 다 날아왔고, 패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살폈다.
하! 참! 이제야 좀 될 것 같네.
스페이드 3, 다이아몬드 3, 클로바 3이 쪼르륵 눈에 띠었다. 재수 좋으면 포 카드, 그 다음은 풀 하우스인데, 최악인 경우 트리풀로 말라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심장박동이 귓전을 때렸고, 손바닥엔 식은땀이 고였다. 패가 아주 나쁘면 그냥 포기하고, 예의상 5구까지는 베팅을 한 다음, 뱃속 편하게 접으면 그만이다. 헌데, 석 장이 족보로 시작하면 더 초초해지고, 침이 마르며, 머리카락까지 쭈빗 선다. 카드 한 장마다 온 신경을 다 써야 하기 때문이다.
4구는 킹이었고, 5구는 에이스였다.
불길한 예상이 골수를 타고 온몸에 쫙 퍼졌다. 베팅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러다 끝까지 쫓아가 크게 물리는 수도 많다. 6구는 천만 다행으로 다시 킹이 오픈됐다. 풀 하우스가 된 것인데, 안심할 수는 없다. 같은 풀 하우스가 나오면 끗수가 낮아 질 수 있는 것이다. 베팅을 하고, 다른 상대들을 훑어보았는데, 전부 망설이는 듯했다. 맨 왼쪽 흑인 하나가 먼저 치고나왔다. 상황을 읽는 것이다. 누가 되받아 치는지 확인하려 든 거다.
모 주방은 오른쪽 끝이니까, 느긋하게 기다렸다. 두 번째 앉은 아랍인은 카드를 접었고, 세 번째 흑인이 콜만 땄다. 네 번째 프랑스인도 밀어 놨다. 다른 아랍인 역시 콜만 동의했고, 자기 순서에 영국인이 되받아 치기를 해 깜짝 놀랐다. 영국인이 콜만 응하면 자기가 되받아 치기를 할 요량이었는데 말이다. 딜러가 어떻게 할 건지 모 주방을 쳐다보았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되받아 치기에 한 번 더 업자고 외쳤다. 7구까지 판돈은 8만4천 달러였는데, 영국인이 되받아 치고, 모 주방이 그 베팅에 다시 엎어 쳤으니까, 6십7만 달러가 됐다. 그러자 콜만 딴 사람들은 모두 죽고, 영국인은 고민에 빠졌다. 콜을 하느냐, 죽느냐 기로에 선 것이다.
그는 모 주방을 돌아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내 죽을 쑤더니, 객기를 부리나 싶었던 거다. 영국인은 되받아친 게 너무 아까운지 과감하게 콜을 선언하고, 70만 달러 조금 모자라는 베팅을 받은 것이다. 모 주방은 손이 다 파르르 떨렸는데, 느긋한 건 오히려 영국인이었다. 딜러가 오픈을 할 것을 권유하자, 영국인이 먼저 에이스 풀로시라고 알렸다. 모 주방은 풀 하우스를 보여주는 순간 지옥에서 탈출한 느낌이었다. 단, 한 번에 140만 달러를 당긴 것이다. 하우스 방에 들어선 이후 4시간 가까이 허탕만 치고, 밑천도 거의 바닥난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거액 베팅 한 판을 챙긴 이후부터 또 카드가 말랐다. 밤으로 접어들자 밑천은 절반으로 줄었고, 계속 한 끗발로 깨지기를 반복했다. 모 주방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 건, 판을 새벽 2시에 접었다는 것이다.
게임에 푹 빠졌던 그들은 월요일 출근을 염두에 두고, 손을 턴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결국 올 인을 당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영국인은 다른 손님들한테 야간에 움직이는 건 위험하니, 2층 방에 올라가 자고 가라며 안내했는데, 그에게는 네 맘대로 하라는 듯 아예 신경을 끊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몰라도 이 자리에 낀 자체가 언짢은 모양이었다. 카지노에서도 그랬고, 하우스 방에서도 마찬가지로 매너가 안 좋다는 눈빛이었다. 아까, 게임을 진행했던 딜러에게 그의 행태를 들은 것 같았다.
모 주방은 별 수 없이 하우스 방을 나서 대로를 걸었다.
아, 그 자식, 되게 무안하게 만드는군.
길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오가는 행인은 물론, 자동차도 없었다. 간간이 순찰차만 지나갈 뿐이다.
듣기로는 무장단체가 수시로 나타나 외국인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다니, 은근히 겁을 먹기는 했지만, 돈 가방 속에 감췄던 권총을 꺼내 배꼽 밑에 차고, 빠른 걸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오전에 올 때는 가까워 보였는데, 막상 새벽 길을 혼자 갈래니, 무척 먼 느낌이었다. 한 블록을 지나오는데, 마치 10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별 탈 없이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내처 승강기에 몸을 얹어 객실로 올라갔다. 객실문턱을 넘어서자 긴장이 확 풀려 침대에 엎어졌다.
좆만이, 영국인이면 다야. 나이지리아 원유를 착취하는 주제에. 동양인이라고 얕보는 거야, 뭐야.
모 주방은 수면제 세 알을 털어 넣고, 생수를 마셨다. 얼마쯤 그렇게 자신의 천대를 불쾌하게 여기다가 잠이 들었다.
헌데, 묘한 꿈을 꾸었다.
삽화: 이기원
리노에서 만났던 독일여자가 알몸으로 해변을 걷는 것이었다. 태양의 역광 속으로 숨더니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섹스를 격렬하게 하기 시작했다. 리노 카지노 객실에서처럼 말이다.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당신 나랑 살자는 속삭임도 빼놓지 않았다. 모 주방도 싫지는 않다고 했는데, 갑자기 왜 떠났어? 하는 고성이 들렸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했다.
내가 너와 결혼할 처지가 못 된다는 변명도 늘어놨다. 독일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 태양의 역광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화들짝 깨어났다. 창문을 통해 따가운 햇볕이 침대를 덮치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간밤의 꿈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모 주방도 독일여자를 잊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라면, 그녀를 분명 붙잡았을 것이다.
흠!
보고 싶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모델일로 여러 나라 대도시를 전전할 텐데, 무슨 수로 연락을 하나. 젠장!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룸서비스로 아침식사를 한 그는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다.
이 동네는 역시 놀 곳이 못돼.
아직도 18, 19세기 유럽제국의 식민지처럼 백인들 독무대니 말이다. 흑인들이 독립을 선언은 했지만, 여전히 국가를 다스릴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체제도 엉망이고,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뇌물을 받는 것은 예사고, 원유를 팔아 얻은 이익금을 빼돌리니 원.
그나저나 또 어디로 간다. 서울로 들어갈까. FBI의 내사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나. 아무튼 나이지리아를 뜨자.
객실을 나선 모 주방은 승강기를 타고 1층 호텔 프론트로 내려갔다. 그리곤 체크아웃을 한 뒤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에게 라고스로 가자고 행선지를 말한 뒤 침묵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한바탕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 열대 사바나는 지역은 어디를 가나 스콜이 있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새까만 먹구름에 뒤 덥혀 국지성 호우를 뿌린다.
아니나 다를까, 니제르 강을 건너자 우당탕하는 소리가 계속됐다. 길가에 자리 잡은 민가의 양철지붕이 세차게 때리는 스콜에 울리는 것이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크고 작은 지붕을 굵은 빗방울이 리드미컬하게 떨어진 탓이다.
라고스 공항에 이르러 겨우 비가 그치고, 번잡한 도시는 조용해졌다. 국제공항 청사라고 해봐야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충 뼈대를 세우고 석판과 양철로 칸막이를 해놓은 게, 전부다. 국적기도 몇 대 안 되고, 노선도 거의 없다. 이집트항공과 에디오피아 항공이 들어와야 다른 나라로 나갈 수 있다. 서방의 대형 항공사들은 이용객이 없어 취항을 안 한다.
항공사 데스크에서 가장 빨리 뜨는 비행기를 찾았는데, 이집트항공이 1시간 뒤에 이륙한다기에 예약했다. 일단 카이로로 들어가 CIA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싶었다.
국제공항 청사는 오전인데 무척 더웠다. 다른 부대시설 없이 마치, 고속버스 터미널처럼 의자 몇 개와 자판기를 설치한 게, 전부다. 천정에 대형 선풍기가 매달려 있지만, 그마저도 고장 났는지, 건성 멈춰 있다. 에어컨을 바라는 건, 사치다. 매점에서 얼음과자를 사먹는 걸로 대신해야 한다.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권총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카이로 국제공항을 나서기 전에 검색을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삽화: 이기원
그래도 안내방송은 잊지 않아, 공항활주로로 통하는 입구를 열어줬는데, 검은 아스팔트가 달아올라 발걸음을 옮겨 놓는 대로 구두가 쩍쩍 달라붙었다. 비행기 탑승도 롤링 브리지가 아닌 계단을 지붕에 쓴 차량 위를 지나 기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비행기 안은 에어컨이 작동돼 시원했다. 손님이 별로 없는데, 이집트항공은 시간을 끌지 않고, 제때 이륙했다.
카이로에 내린 모 주방은 국제공항 청사를 빠져나오며, 새삼 이집트가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것을 깨달았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이면서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몰랐다. 택시를 잡아탄 그는 엘삼스 호텔로 갔고, 빈방이 있는지 프론트에 문의한 다음, 겨우 객실 키를 얻었다. 하루 방값이 4백만 원하는 스위트룸 뿐이라기에 그거라도 달라한 거다. 관광객들이 많아 예약손님이 아니면 객실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7층 방에 올라와 짐을 던져놓고, 그 동안 못 봤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구경하기 위해, 서둘러 나왔고, 다시 택시에 몸을 실어 기자로 향했다. 카이로에서 13Km로 밖에 떨어지지 않아 30분 만에 도착했다.
호텔을 나올 때 하나 얻은 관광지도를 펼쳐 들고, 운전기사를 대동한 채 쿠프 왕과 카프레 왕 무덤을 보았다. 이어, 곧장 룩소르로 향했다.
사막의 경계지대이자 반 사막 끝에 위치해 무척 더웠다. 택시운전기사는 고대부터 전해 진 이야기를 언급했다. 동쪽이 살아 있는 자의 도시이고, 서쪽은 죽은 자의 도시를 의미한다면서 신전부터 구경시켜줬다. 신전 길목엔 스핑크스 길이 있었는데, 그 뒤엔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다. 안에는 아멘 호텝 3세 코트가 자리 잡았는데, 건축물이 상당히 정교했다.
택시기사는 모 주방의 요구에 따라 카르나크 신전으로 안내했는데, 거대한 탑문을 지나자 투트모세 1세 오벨리스크가 보였고, 그 너머로 투트모세 1세의 신전이 있었다. 주축기둥은 세 사람이 팔을 뻗어야 닿을 만치 굵었다.
운전기사는 이번엔 택시를 서쪽으로 몰아 하트셉수트 여왕신전으로 데려갔다. 엄청난 규모에 놀란 것도 있지만, 상당히 높은 사암절벽 밑을 파서 무덤을 만들었다는 게 불가사의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내부를 보려면, 줄을 서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곤 투탕카멘 무덤과 멤논거상을 돌아보자 어느새 어둠이 내렸다. 이집트정부가 곳곳에 서치라이트를 설치해 야간에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는데, 택시기사의 말은 좀 달랐다. 역사적 유물에 손을 대는 도굴꾼들을 감시하는 기능에 더 비중을 둔 조치라는 거였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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