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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물이 맑으면 큰 고기가 없다는 뜻으로,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그 몸을 감출 곳이 없어 그곳에는 살지 않음과 같이, 사람이 너무 똑똑하거나 엄하면 남이 꺼려하여 가까운 벗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水 : 물 수(水/0)
淸 : 맑을 청(氵/8)
無 : 없을 무(灬/8)
大 : 클 대(大/0)
魚 : 고기 어(魚/0)
(유의어)
수청무어(水淸無魚)
수청어불서(水淸魚不棲)
(상대어)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출전 : 후한서(後漢書)
이 성어는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시대(後漢時代) 초엽(初葉), 한서(漢書)의 저자(著者)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아우 반초(班超)의 이야기이다. 반초(班超)는 2대 황제(皇帝)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鄯善國)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漢)나라의 위세(威勢)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功)으로 4대 화제(和帝) 때 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設置)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 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都護)의 직책(職責)은 한(漢)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王子)를 인질(人質)로 보내어 복속(服屬)을 맹서(盟誓)한 서역(西域) 50여 나라를 감독(監督)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防止)하는 것이었다.
영원(永元) 14년(102), 반초(班超)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都護)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西域)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班超)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水至淸卽無魚, 人至察卽無徒.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동지가 없느니라.
반초(班超)는 이 말로 임상(任尙)의 급한 성격을 지적하고, 정치도 너무 엄하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으므로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릴 것을 충고(忠告)했다.
그러나 임상(任尙)은 반초(班超)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妙策)을 듣고자 했던 기대(期待)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상(任尙)은 이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西域) 50여 나라는 임상(任尙)이 다스린지 5년만에 모반(謀反)을 일으켜 모두 한(漢)나라를 이반(離反)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도 폐지(廢止)되고 말았다.
사람이 너무 결백(潔白)해도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때론 사소(些少)한 잘못은 덮어주고 대범하게 처신하라는 말이다. 수청어불서(水淸魚不棲), 수청무어(水淸無魚)와 같은 뜻이다.
전한서(前漢書)의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水淸無大魚(수청무대어)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人至察卽無徒(인지찰즉무도)
사람이 너무 따지고 살피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
심리학(心理學)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완전주의(完全主義)는 인간관계(人間關係)를 파괴(破壞)한다는 구절(句節)들을 만나게 된다.
완전주의(完全主義)는 자기와 관련된 일들을 빈틈없이 완전하게 처리하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약점(弱點)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국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마는 법이다.
그래서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같은 심리학자(心理學者)들은 완전(完全)함보다는 원만(圓滿)함을 추구(追求)하라는 충고(忠告)를 한다. 그것은 동방삭(東方朔)과 반초(班超)의 충고(忠告)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증류수(蒸溜水)처럼 물이 너무 맑으면 먹이도 없고 산소(酸素)도 없다. 또 풀이나 돌이 없으면, 숨을 곳도 없고 알을 낳을 곳도 마땅치 않다.
청수무어(淸水無魚) 또는 수청(水淸)이면 무대어(無大魚)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사람이 결벽(潔癖)할 정도로 너무 맑고 고결(高潔)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맑고 고결(固結)하다는 것이 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도(道)가 지나쳐서 포용력(包容力)이나 인간미(人間味)를 잃어버려서 그릇이 작은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혼자만이 고고(孤高)하고, 깨끗하고, 대단하다고 생각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은 모두가 모자라고 불결(不潔)한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을 평가(評價)할 때 지나치게 비판적(批判的)이나 원칙(原則)만 적용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그러나 포용력(包容力)과 유연성(柔軟性)을 갖는다는 명목으로 과잉(過剩) 적응(適應)이나 동화(同和)가 지나쳐서 썩어버리면 곤란하다. 썩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으니까.
山小면 無獸요, 水淺이면 無魚라.
산이 작으면 짐승조차 살지 않고, 물이 얕으면 물고기 조차없다.
즉 세상살이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세심(細心)한 관찰력(觀察力)과 깊은 포용력(包容力)이다. 세심(細心)한 관찰력(觀察力)이 있어야 세상을 앞서 갈 수 있고, 깊은 포용력(包容力)이 있어야 세상을 집어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들어난 것을 보고 그 뒷면을 바라 볼 줄 알고, 앝은 물속이 아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진 기술(技術), 학문(學文), 사상(思想), 문화(文化)를 구비(具備)했다면 가히 세계를 한주먹에 휘두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비슷한 말씀이 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있다.
水至淸卽無魚, 人至察卽無徒.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
사물을 대함에 너무 외형, 겉모습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사람을 대함에 너무 쫀쫀하지는 않았는지, 일시적으로 팔팔끊는 냄비보다는 천천히 끊는 가마솥같은 마음의 도량(度量)을 가져 본적이 있는가?
제갈량(諸葛亮)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무 쫀쫀하지 말고, 너무 외형에 현혹되지 말라. 내면이 차면 그것이 외형으로 드러난다. 상대방을 야단치지 말고, 장점을 볼 줄 알아라. 숲이 커야 그밑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물이 깊어야 큰 고기들이 산다. 깊이 있은 삶을 살면서, 깊이 있은 일을 계획하라.”
그렇다면 과연 제갈량이 우리에게 외치는 이 말의 의도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과 온갖 짐승들이 전부 들어와서 살아도 남을 만큼 큰 산이 되어라. 세상 온갖 잡동사니를 다 수용하는 물처럼 태평양 같은 포용력을 갖어라는 뜻이 아닐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영화 캐스트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배구공으로 윌슨이라는 친구를 만들어 대화하며 무인도의 막막함과 외로움에서 견디고 있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이렇듯 사람은 사회적동물로 무리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주위에 사람은 있으되 진정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는, 그런 그 고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고독한 삶을 사는 원인이 자기 자신의 허물없음만 생각하고 남을 살피고 배려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임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허물이 적다하여 남의 많은 허물을 심하게 탓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마치 개울에 뱀장어며, 메기 등이 맑은 물에 노는 것이 아니라 수초로 가려진 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남의 허물을 덮어 가려준다면 많은 사람이 내 주위에 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누가 됐든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허물을 가려주기 전에 그 사람의 허물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남의 허물을 고치려 들기전에 먼저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되지 않고 수초부터 걷어 내려 한다면 그 사람은 고기가 떠나듯 내 곁을 떠날 것임을 명심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저 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품을 타고 나지만, 후천적으로 생활환경에 따라서 유순해지거나 억세지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가령 부유(富有)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금자동아! 은자동아! 라며 사랑만 받고 성장하면서 자연히 성품도 여유가 있을 것이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당장 배고픔도 모면하지 못하면서 눈치만 보는 아이로 자라면서 모가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성품은 후천적으로 변천하는 경향은 시시각각 변화에 적응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냇물에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는 것은 먹이가 없는 것이요, 물이 약간 흐릴 때 각종 생물이 서식하면서 물고기도 먹이 사슬로 먹이를 먹으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계도 투명하고 청렴하면 촌지(寸志)를 줄 수도 없듯이 평범한 사람은 인정으로 수수하는 것을 예사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곳은 부유한 인텔리 집단이 사는 곳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살다가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없으니 마음에 맞지 않거나 감정에 거슬리면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기도 한다. 아무리 싸워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다음에 만나면 화해를 하면서 상대방의 상처를 보듬는다.
도시화의 굴레는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괘종시계와 같아서 한치도 소홀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여유가 없으니 마음가짐도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다.
세인(世人)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은 맑은 물에 사는 부류이나 뭇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그래서 너무 완벽주의는 항상 자신을 중심으로 굴레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므로 피곤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조금은 모자란 듯한 삶은 모자란 것만큼 여유가 잇을 것이다. 그래서 가리키면 ‘불효자가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허언이 아니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완벽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개 모자란 듯한 열등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을 향하여 내심 시샘하는 경향도 없잖아 잠재하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삶은 구가할 수 있다.
완벽주의자는 친구가 없고, 조금은 부족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주변에 친구가 많다. 더불어 희희낙락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는 뜻으로, 너무 까다롭게 굴면 사람이 떠난다는 말이다.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 원칙(原則)이다. 조그만 일이나 급한 일이라 하더라도 기본은 지켜야 한다고 '베는 석 자라도 틀은 틀대로 해야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고지식하게 원칙을 지켜야 할까. 링컨이 말했다. '중요한 원칙들은 융통성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사람이 생활하면서 지나치게 원칙을 지키고 똑똑한 체 엄하게 굴면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기 마련이다. 강직한 것도 경우에 따라서 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이 너무 맑으면(水淸), 큰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無大魚)는 말도 이런 교훈을 담았다.
중국 후한(後漢) 초기 반초(班超)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不入虎穴不得虎子)'란 말을 남긴 유명한 무장이다.
학문에 뜻을 두고서는 빈한한 생활을 면치 못한다고 일찍 단념하고 무예를 익혀 흉노(匈奴) 지배 아래 있던 50여 나라를 복속시킨 공을 남겼다.
그의 집안도 화려하여 아버지 반표(班彪)를 이어 형 반고(班固)는 역사서 한서(漢書)를 지었고, 누이 반소(班昭)는 여류시인으로 유명하다.
반초가 서역을 다스리는 도호(都護)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후임으로 가게 된 임상(任尙)이란 사람이 부임 인사차 찾아왔다. 아울러 변경을 잘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를 원했다.
반초는 변방에 나가 있는 사람은 모두 거친 사람들이라 다스리기가 어렵다면서 임상의 조급한 성격이 문제라고 조언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이고, 정사도 너무 엄하게 살피면 아랫사람과 화합할 수가 없다네(水清無大魚 察政不得下和).'
임상은 너무 평범한 조언에 실망하고 안하무인으로 다스리다 5년이 안 돼 모두 지배권을 잃고 말았다.
전한(前漢)의 대덕(戴德)이 편찬한 대대예기(大戴禮記)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至清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이런 좋은 말을 따른다고 너무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제재가 기다린다. 사람을 모은다고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모두 개방해서는 나중에 패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되 경우에 따라 잘 판단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남는다.
▶️ 水(물 수)는 ❶상형문자로 氵(수)는 동자(同字)이다.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물을 뜻한다. 본디 물 수(水)部는 시내의 뜻이었다. 부수로 쓸 때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水자는 ‘물’이나 ‘강물’, ‘액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水자는 시냇물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水자의 갑골문을 보면 시냇물 주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액체’나 ‘헤엄치다’, ‘범람하다’와 같이 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水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氵자나 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水(수)는 (1)오행(五行)의 하나. 방위(方位)로는 북쪽, 계절로는 겨울, 빛깔로는 검정을 나타냄 (2)수요일(水曜日)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물 ②강물 ③액체(液體), 물과 관련된 일 ④홍수(洪水), 수재(水災),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불은 물) ⑤수성(水星: 태양에 가장 가까운 별) ⑥별자리의 이름 ⑦물을 적시다, 축이다 ⑧물을 긷다, 푸다 ⑨헤엄치다 ⑩물로써 공격하다 ⑪평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바다 명(溟),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뭍 륙/육(陸), 불 화(火),빌 공(空)이다. 용례로는 물 속에서 몸을 뜨게 하고 손발을 놀리며 다니는 짓을 수영(水泳), 축축한 물의 기운을 수분(水分),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물을 보내는 통로를 수로(水路), 물의 겉을 이루는 면을 수면(水面), 홍수로 인한 해를 수해(水害), 물에 의해 발생하는 힘을 수력(水力), 물의 깊이를 수심(水深), 저수지에 설치하여 수량을 조절하는 문을 수문(水門), 물의 양을 수량(水量), 물 속에서 자라는 풀을 수초(水草),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깊고 넓은 물에는 큰 고기가 깃듦을 수관어대(水寬魚大), 물이 흐르면 자연히 개천을 이룬다는 수도거성(水到渠成), 물이 흐르면 고기가 다닌다는 수도어행(水到魚行), 흐르는 물과 하늘의 뜬구름이라는 수류운공(水流雲空), 물이 빠져 밑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수락석출(水落石出),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라는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불은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수화불통(水火不通),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등에 쓰인다.
▶️ 淸(맑을 청)은 ❶형성문자로 清(청)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푸른 색깔이나 깨끗이 맑아져 있는 일의 뜻을 가진 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맑고 깨끗한 물(水)의 뜻이 합(合)하여 맑다를 뜻한다. 淸(청)은 물이 깨끗이 맑다, 맑은 물, 맑다, 깨끗이 하다, 상쾌하다 따위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淸자는 ‘맑다’, ‘깨끗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淸자는 水(물 수)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靑자는 우물가에 핀 푸른 초목을 그린 것으로 ‘푸르다’라는 뜻이 있다. 淸자는 이렇게 ‘푸르다’라는 뜻을 가진 靑자에 水자를 결합한 것으로 물이 푸를 정도로 맑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淸(청)은 ①맑다 ②깨끗하다 ③탐욕(貪慾)이 없다 ④빛이 선명(鮮明)하다 ⑤사념이 없다 ⑥분명(分明)하다 ⑦한가(閑暇)하다 ⑧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⑨끝장을 내다 ⑩거스르다 ⑪차갑다 ⑫한랭(寒冷)하다 ⑬맑은 술 ⑭꿀 ⑮뒷간 ⑯청(淸)나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맑을 렬/열(洌), 맑을 담(淡), 맑을 숙(淑), 맑을 호(淏), 물 맑을 식(湜), 물 맑을 영(渶), 맑을 재(渽), 맑을 린/인(潾), 맑을 징(澄), 맑을 철(澈), 맑을 담(澹), 맑을 찬(澯) 맑을 정(瀞) 맑을 류/유(瀏), 물 맑을 형(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흐릴 탁(濁)이다. 용례로는 날씨가 맑고 밝음을 청명(淸明),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는 청양(靑陽), 맑고 아름다움을 청아(淸雅), 부드럽고 맑게 부는 바람을 청풍(淸風), 청백하여 가난함을 청빈(淸貧), 청렴하고 결백함을 청백(淸白), 맑고 순박함을 청순(淸純), 맑고 깨끗함을 청결(淸潔), 맑고 깨끗함을 청정(淸淨), 맑고 바름을 청정(淸正), 깨끗한 정조를 청조(淸操), 성품이 고결하고 탐욕이 없음을 청렴(淸廉), 깨끗이 소제함을 청소(淸宵), 잘못이나 악인을 없애어 맑게 함을 숙청(肅淸), 성품이나 언행이 맑고 깨끗함을 숙청(淑淸), 날씨나 빛깔 따위가 산뜻하고 맑음을 경청(輕淸), 빛깔이 희고 품질이 썩 좋은 꿀을 백청(白淸), 벌집에서 떠낸 그대로의 꿀을 생청(生淸), 산 속에 있는 나무나 돌 사이에 석벌이 친 꿀을 석청(石淸), 물 같은 것이 몹시 맑고 깨끗함을 징청(澄淸), 매우 맑고 시원함을 여청(餘淸), 황하의 물이 맑아짐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하려고 해도 실현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을 하청(河淸),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욕심이 없음을 청렴결백(淸廉潔白),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청빈낙도(淸貧樂道),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함을 청심과욕(淸心寡欲),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는 청탁병탄(淸濁倂呑),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청풍명월(淸風明月) 등에 쓰인다.
▶️ 無(없을 무)는 ❶회의문자로 커다란 수풀(부수를 제외한 글자)에 불(火)이 나서 다 타 없어진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없다를 뜻한다. 유무(有無)의 無(무)는 없다를 나타내는 옛 글자이다. 먼 옛날엔 有(유)와 無(무)를 又(우)와 亡(망)과 같이 썼다. 음(音)이 같은 舞(무)와 결합하여 복잡한 글자 모양으로 쓰였다가 쓰기 쉽게 한 것이 지금의 無(무)가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無자는 ‘없다’나 ‘아니다’, ‘~하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無자는 火(불 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無자를 보면 양팔에 깃털을 들고 춤추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무당이나 제사장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춤추다’가 본래의 의미였다. 후에 無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 되면서 후에 여기에 舛(어그러질 천)자를 더한 舞자가 '춤추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無(무)는 일반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곧 유(有)를 부정(否定)하는 말로 (1)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공허(空虛)한 것. 내용이 없는 것 (2)단견(斷見) (3)일정한 것이 없는 것. 곧 특정한 존재의 결여(缺如). 유(有)의 부정. 여하(如何)한 유(有)도 아닌 것. 존재 일반의 결여. 곧 일체 유(有)의 부정. 유(有)와 대립하는 상대적인 뜻에서의 무(無)가 아니고 유무(有無)의 대립을 끊고, 오히려 유(有) 그 자체도 성립시키고 있는 듯한 근원적, 절대적, 창조적인 것 (4)중국 철학 용어 특히 도가(道家)의 근본적 개념. 노자(老子)에 있어서는 도(道)를 뜻하며, 존재론적 시원(始原)인 동시에 규범적 근원임.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실재이므로 무(無)라 이름. 도(道)를 체득한 자로서의 성인(聖人)은 무지(無智)이며 무위(無爲)라고 하는 것임 (5)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없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없다 ②아니다(=非) ③아니하다(=不) ④말다, 금지하다 ⑤~하지 않다 ⑥따지지 아니하다 ⑦~아니 하겠느냐? ⑧무시하다, 업신여기다 ⑨~에 관계없이 ⑩~를 막론하고 ⑪~하든 간에 ⑫비록, 비록 ~하더라도 ⑬차라리 ⑭발어사(發語辭) ⑮허무(虛無) ⑯주검을 덮는 덮개 ⑰무려(無慮), 대강(大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높고 좋음을 무상(無上), 하는 일에 막힘이 없이 순탄함을 무애(無㝵), 아무 일도 없음을 무사(無事), 다시 없음 또는 둘도 없음을 무이(無二), 사람이 없음을 무인(無人), 임자가 없음을 무주(無主), 일정한 지위나 직위가 없음을 무위(無位),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쉬는 날이 없음을 무휴(無休),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없이 거저임을 무상(無償), 힘이 없음을 무력(無力), 이름이 없음을 무명(無名), 한 빛깔로 무늬가 없는 물건을 무지(無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음을 무자(無子),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을 무형(無形),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하는 것이 없음을 무념(無念), 부끄러움이 없음을 무치(無恥),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음을 무리(無理),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함을 무사분주(無事奔走), 한울님은 간섭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무사불섭(無事不涉), 무슨 일에나 함부로 다 참여함을 무사불참(無事不參), 즐거움과 편안함에 머물러서 더 뜻 있는 일을 망각한다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아무 탈없이 편안함을 무사태평(無事泰平), 재미나 취미나 없고 메마르다는 무미건조(無味乾燥) 등에 쓰인다.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
▶️ 魚(고기 어)는 ❶상형문자로 漁(어)의 고자(古字), 鱼(어)는 통자(通字)이다. 물고기 모양을 본뜬 글자로, 한자의 부수로서는 물고기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글자이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대로 그린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魚자를 보면 물고기의 주둥이와 지느러미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이후 해서에서 물고기의 몸통과 꼬리를 田(밭 전)자와 灬(불 화)자로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魚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魚자는 물고기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활용될 때는 주로 어류의 종류나 부위, 특성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魚(어)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고기 ②물속에 사는 동물의 통칭(通稱) ③바다 짐승의 이름 ④어대(魚袋: 관리가 차는 고기 모양의 패물) ⑤말의 이름 ⑥별의 이름 ⑦나(인칭대명사) ⑧고기잡이하다 ⑨물에 빠져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생선을 가공해서 말린 것을 어물(魚物), 물고기 잡는 그물을 어망(魚網),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데 쓰이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든 유리통을 어항(魚缸), 물고기의 알을 어란(魚卵), 물고기와 조개를 어패(魚貝), 생선 파는 시장을 어시장(魚市場), 물고기의 종류를 어종(魚種), 낚시로 고기잡이하는 데 쓰는 배를 어선(魚船), 물고기를 기름 또는 기른 물고기를 양어(養魚), 말린 물고기를 건어(乾魚), 미꾸릿과의 민물고기를 추어(鰍魚),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청어(靑魚), 멸치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행어(行魚), 퉁가리과의 민물고기를 탁어(馲魚), 은어과의 물고기를 은어(銀魚), 가오리과에 딸린 바닷물고기를 홍어(洪魚), 가물치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흑어(黑魚), 학꽁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침어(針魚),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를 약어(鰯魚), 동자개과에 딸린 민물고기를 종어(宗魚), 잉어과의 민물고기를 타어(鮀魚), 철갑상어과의 바닷물고기를 심어(鱘魚), 제사 상을 차릴 때에 어찬은 동쪽에 육찬은 서쪽에 놓음을 이르는 말을 어동육서(魚東肉西), 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무식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로불변(魚魯不辨), 물고기와 물처럼 친한 사이라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의 친밀한 사이 또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친(魚水之親), 물과 물고기의 관계와 같이 매우 친근한 사이를 일컫는 말을 어수지교(魚水之交), 고기 대가리에 귀신 상판때기라는 뜻으로 괴상 망측하게 생긴 얼굴을 형용하는 말을 어두귀면(魚頭鬼面), 고기가 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목숨이 붙어 있다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을 비유하는 말을 어유부중(魚遊釜中), 잉어가 용으로 화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 양명함을 이르는 말을 어룡장화(魚龍將化),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물고기는 대가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을 어두육미(魚頭肉尾), 물고기 떼나 새 때가 흩어져 달아난다는 뜻으로 크게 패망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어궤조산(魚潰鳥散),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뜻으로 어릴 적에는 신통하지 못하던 사람이 자란 뒤에 훌륭하게 되거나 아주 곤궁하던 사람이 부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어변성룡(魚變成龍),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誤字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용과 같이 위엄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옳은 듯하나 실제는 그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어질용문(魚質龍文)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