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길은 험하고 멀어도 5-5
이 무렵 중국인들은 북경 천주당을 이마두의 집으로 호칭했으며 북경의 크나큰 관광명소로 등장했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먼 데서 찾아와 자명종이나 망원경을 구경하고 가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다. 특히 중국의 학자들은 그동안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지구가 모가 난 것이 아니라 둥글다는 말에 놀라기도 했다. 마테오리치는 중국인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천주교를 전파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서양에서 갖고 온 문물을 소개했던 것이다. 천주실의를 통해 중국인들도 새로운 서학에 접했고 이 서학은 우리 나라의 실학자들 사이에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천주교 배척자인 이기경(1756~1819) 같은 유학자는 마데오리치의 학설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벽위편을 쓰기도 했다. 벽위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마데오리 치를 공격했다.
『이마두라는 학자는 중국에 와서 수십 종의 책을 저술했는데 천문과 지리를 관찰하여 수를 헤아려 때를 정함에 그 미묘함은 일찍이 중국에 없었던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심히 불교를 배척하면서도 불교와 같이 그의 교가 필경에는 허망함으로 돌아간다는 걸 일찍이 깨닫지 못했다. 만약 천주가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세상에 출현하여 어떤 사람에게만 일러주어 마치 그 사람이 교를 베푸는 것같이 했다면 무수하게 많은 나라의 자비를 받아야 할 자들도 얼마나 원망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한 사람의 천주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교화하고 깨우치니 어찌 수고롭지 않겠는가. 유럽의 동쪽 지방에 유럽의 교를 듣지 못한 곳이 있으니 어찌하여 천주가 그쪽엔 출현하지 않았는가. 마치 유럽의 여러가지 기적과 같지 아니한가. 그러니 유럽에 있었다는 여러가지 기적도 마귀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대체로 실적은 말하고도 형적이 없어지면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데 서양에서는 허황된 것을 말하고 그 형적이 아리숭하니 미혹한 자들은 더욱 미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 야소(예수)가 만민의 죄를 자기가 지고 귀중한 목숨을 버려서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었다고 한다. 이미 상제(上帝)가 친히 강림 하셨다고 하고 또 못 박혀서 수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나 그들의 우매하고 무지하며 모독함이 심하다고 하겠다.』
이기경. 그는 이승훈과 함께 글을 배운 친구였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온 후 받은 서학사를 읽어 보고 천주교에 대해 호의를 가졌으나 나중에는 천주교 박해자로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다.
한편 윤유일은 사마꾼의 일원으로 북경에 갔기 때문에 그곳의 풍물을 일일이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내 신부들이 머물고 있는 관상대를 찾아가 보았다. 관상대는 날씨의 관찰을 하는 곳으로 성 에 붙여지었다. 따라서 성보다 한길이나 더 높았다. 그 아래엔 무지개 모양의 문이 있어서 사람들이 통행하게 돼 있었다. 관상대에 오르기 위해 이곳까지 왔으나 길이 없어서 윤유일은 허둥댔다. 모두가 중국말을 썼기 때문에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손짓 발짓을 해 가까스로 물으니 관상대는 흠천감을 거쳐 올라갈 수 있고 흠천감은 관상대의 네 각 끝에 있다고 했다. 흠천감에 도착하여 대문으로 들어가니 문안에는 정당(正堂)이 있고 액자에「관찰함에 부지런 하라」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동쪽 담장 아래에 구리로 만든 기구가 있었는데 형상이 달걀만한 것이 공중에 있고 그 직경이 넉 자쯤 되었다. 이것이 천주상이다. 문을 나서 관상대 위로 올라가 뒤를 돌아다보니 남북에 각기 혼천의(渾天儀)가 있고 그 중간에 한 기기가 놓여 있었는 데 경도와 위선이 영롱하고 상하 두어 충으로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으며 그 높이는 한 길쯤인데 그것이 무슨 기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2, 3일간 윤유일은 관상대를 비롯해 북경시내를 구경했다. 며칠 후 그는 마침내 이승훈과 권일신 등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갖고 북당의 천주당으로 갔다. 그라몽 신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를 맞은 신부는 윤유일의 아래 위를 훑어보다가, 「그라몽 신부님은 관동으로 떠났습니다. 이곳에는 안계십니다.」 하면서 그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중국인과는 다른 복장이 이상 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말씨도 중국말이 아닌 것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안내인을 불러 윤유일의 신분을 확인하게 했다. 중국인 통역관이 곧 신부에게, 「이 사람은 조선에서 온 사람으로서 신부님에게 드릴 편지를 갖고 왔습니다.」 하면서 해석해 주었다. 윤유일이 다시 중국인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중국인이 매우 호의적인 얼굴로 신부에게 통역을 했다. 그제서야 신부는 윤유일의 손을 잡고 악수를 청했다. 그 이후부터는 중국인을 젖혀두고 신부와 필답으로 주고받았다. 신부는 한자 실력이 뛰어났다. 신부는 자신의 집무실인 사제관으로 그를 안내했다. 간단히 차를 한 잔 마시게 한 뒤 윤유일에게, 「그라몽 신부님을 뵈러 왔다니 안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신부님이 계십니다. 남당 천주당의 구베아 주교님이십니다. 신부 가운데 높은 신부님입니다. 주교님이 모든 걸 친절히 안내를 할 것입니다.」 윤유일은 신부의 말에 따라 북당 천주당을 나와 남당 천주당으로 갔다. 남당 천주당은 주교좌성당이었다. 그러나 구베아 주교는 그라몽 신부와는 달리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이었다. 예수회와 다른 점은 조금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남당 천주당의 정문을 통과해서 천주당 안을 들여다본 윤유일은 이 제까지 상상으로만 그려 왔던 내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엄청난 모습이었다. 이승훈에게 말로만 들었던 것을 막상 와서 보니 그 크기와 웅장함이 엄청났던 것이다. 윤유일은 성당 문을 열고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기도하는 듯한 몇 사람의 신자가 장궤틀에 엎드려 있었다. 천주당의 벽상에는 천주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한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구름 가운데 서 있었다. 천사인 듯싶었다. 곁에는 여섯 사람이 구름을 헤치고 서 있었다. 대천사를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보였다. 일찍이 그는 그와 같은 그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어떤 것은 전신이 드러나 있었으며 어떤 것은 반신만 보였다. 어떤 것은 구름을 헤치고 얼굴만 드리운 것도 있었는데 몸에는 독수리와 같이 양쪽으로 날개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독수리의 날개 처럼 그렇게 억세 보이지는 않았다. 비둘기 날개처럼 선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천사의 얼굴은 무척 예뻤고, 한결같이 지상 사람처럼 욕심이 많은 것 같지 않고 착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코가 오똑하고 눈이 매우 아름다웠다. 눈매와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너풀너풀 날리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천정을 살펴보았다. 높이는 조선 기와집의 열 배나 높은데 거기에 큰 감실이 있고 감실 안에는 운기가 가득했다. 구름 가운데 5, 6인의 천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윤유일은 너무나도 황홀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훌쩍훌쩍 울었다. 너무나도 감동이 되어서이다. 말로만 듣던 천당이란 바로 이런 곳이로 구나 싶었다.
사람의 손으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 다. 이때 천주당의 관리인인 듯한 뚱뚱한 중국인이 윤유일의 행동거지가 수상하다고 여겼는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아래 위를 훑어보다가 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윤유일은 종이에, 「나는 조선 사람인데 남당의 천주당을 구경하고 조선에 돌아가 천주를 믿겠다.」 고 써서 주었다. 중국인은 금방 얼굴에 온화한 표정을 짓더니 역시 한문으로 종이에, 「우리 천주당에는 훌륭한 서양 신부가 몇 분이 있습니다. 구경이 끝 나면 찾아가 보십시오. 내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적어 주었다. 윤유일은 중국인이 합장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했다. 그것이 천주교에서 하는 기도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윤유일은 천주당의 모습을 좀더 보게 해달라고 관리인에게 청했다. 관리인이 그러라고 승낙했다. 윤유일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벽에는 여러 종류의 천사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곁에는 각종 짐승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에덴동산과 같았다. 물고기도 있었고 비단나비, 산벌, 꿀벌 등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벽에 그려져 있었는데 손으로 만지면 모두가 날아갈 것 같았다. 먹의 빛깔과, 가깝고 먼 곳, 그리고 빛과 그림자 등이 그렇게 정밀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조선의 화가들이 어림도 못할 그림 기법들이었다. 그는 천국에 온 듯이 황흘한 기분에 취해 어쩔 줄 몰랐다. 천주당 한가운데 탁상이 한 개 놓여 있었는데 그 위 둥그런 복판에 그린 그림 역시 일품이었다. 오색이 종횡으로 산란하여 어떤 것은 새의 머리 같 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날개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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