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편]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 주린 자들로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38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39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40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41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설교]
시편 107편은 여호와의 속량하심을 노래하며, 여호와께 감사를 표하는 시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시편 107편의 후반부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첫째로, 본문 23~32절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원들이 항해 중 풍랑을 만났을 때, 여호와께서 저들을 풍랑 중에서 건지셨음을 노래하는 대목입니다. 이 내용은 제가 지난번 수요기도회 때 충분히 말씀드렸기에, 오늘은 이어진 두 번째 단락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본문 33절부터 43절까지 두 번째 단락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첫째, 본문 33~39절입니다. 시인은 이 일곱 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되, 특별히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자연환경’을 통하여 친히 우리 인생을 주관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3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때 ‘강’이나 ‘샘’은 당연히 ‘물’을 가리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사실상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인 ‘물’을 언급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죠. 물이 변하여 광야가 되고, 물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 인생 가운데 이처럼 우리 생명과 직결된 ‘물’을 거두어가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당할 때, 당장에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종종 괴롭고 답답하고 속이 상하고 마음이 강퍅해질 때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서, 때로는 우리 인생에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기도 하시는데요.
가령 이어진 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이 ‘자연환경’을 바꾸셔서 우리 인생을 교훈하시는가?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줍니다.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 가운데 때론 자연재해를 허락하시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지금 현재 우리가 범하는 악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려주십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사람들은 다 집에 있고, 거리마다 자동차가 줄고, 하늘에는 비행기도 없고 하니까, 그 당시 전 지구 생태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금 잃어버렸던 생기를 찾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은 고통을 겪는 반면, 자연만물은 다시금 생명의 활력을 얻은 것입니다. 비행기가 없는 하늘에는 다시금 새들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없는 해변에는 거북이들과 꽃게들이 다시금 알을 낳고 생명을 잉태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이 고통을 겪으니까, 오히려 탄소배출량이 줄어들어서, 전 지구 대기가 활짝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악이란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고, 또한 우리 삶에 매우 직접적인 문제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은 말합니다. 인류가 맞닥뜨리는 대다수의 자연재해는 결코 우연이 아닌 인재(人災)다! 인재가 무엇이죠?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문제란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연을 파괴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말씀을 경이 여기고 인공적으로 자연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단순히 초자연적인 문제로 축소시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어느 날 기적을 베푸셔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인류가 그동안 자초해온 수많은 악들이 바로 이러한 일들의 원흉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고 경험하는 문제들. 각종 기상이변, 계절의 변화, 대기오염,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 동물/가축들에 대한 여전한 비윤리적인 산업 등.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엮이어, 지금 현재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보다 신자답게 이 문제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이어진 둘째 내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자연환경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인류 가운데 있는 ‘악’에 관하여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본문 40~42절이 그 내용입니다. 앞선 단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왜 자연환경을 변화시키시는지, 우리 인간의 ‘악’을 그 궁극적인 이유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대목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 가운데, 특별히 고관들과 궁핍한 자, 정직한 자와 사악한 자를 각각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핵심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다루실 때, 과연 어떻게 다루시는가? 반드시 ‘공의와 정의’의 방식으로 행하십니다. 가령 악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으시고, 궁핍한 자는 친히 저의 가족을 부양하십니다. 모든 사악한 자는 저의 입을 봉하시고, 정직한 자는 저를 기뻐하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일관되게 ‘공의와 정의’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이 당장에는 우리 삶에 직접 와 닿지 않을 때도 분명히 많습니다. 특별히 악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더더욱 그렇지요. 삶에서 우리가 매순간 마주하는 악인들에 대하여, 왜 하나님께서는 당장에 저들을 심판하지 않으실까? 너무도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혹은 인간적인 마음에서는 돌이켜 화를 내고, 혹은 사람들을 규합시켜 직접적으로 항거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느냐?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처럼, 성경은 늘 우리에게 ‘지혜 있는 자답게’ 우리 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43절,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무엇보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여전히 우리 삶 가운데 가득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비록 우리 삶에는 여전히 여러 악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여전히 무분별하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여전히 악담이 나오고, 저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향한 미움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오늘 시편의 결론처럼,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지혜 있는 자들로서 여전히 우리 삶에 가득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세상의 선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길 위하여, 오늘 이 아침 기도로서 나아가십시오. 세상의 여러 악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상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여러 선한 것들을 바라보며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이 시간 기도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