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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내면화된 흔적들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의 꿈자아는 매우 중요한 행동을 하고 있다. 무섭지만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한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아이의 자원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는 종종 온 세상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든다. 그런데 아이는 눈을 뜨고 본다. 물론 아직 세상이 안전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서지만, 이 행위는 세상에 대한 접촉의 시작이다.
어쩌면 꽃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 꽃잎들은 너를 가두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야. 너를 보호하려고 생긴 거야. 꽃잎의 얼굴 하나하나를 자세히 봐. 너에게 상처준 사람들이 아니야."라고. 꽃잎들이 완전히 펼쳐진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믿게 되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라는 구별이 가능해지는 상태일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일반화된 공포에서, 두렵지 않는 존재에 대한 변별이 가능해지는 자리이다. 트라우마의 핵심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곳은 논리나 해석 이전의 자리이다.
꿈의 중심에 용기 내어 고개를 드는 아이. 아이에게는 상처받았지만, 공포 속에서도 사람들을 확인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 아이에게 학교는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를 연습하는 장이 된다. 학교는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공간이다. 이 아이에게 학교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출석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는 경험을 조금씩 축적해가는 과정이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용기 내어 1교시라도 들어가 있는 경험, 불안해도 교실 문 앞까지 가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수많은 꽃잎들의 보호 속에 아이는 오늘 드디어 등교했다. 아이의 등교를 알려주는 부모님의 문자에서, 침묵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 당장 의미를 만들지 말고, 그 두려움 곁에 머물러 보렴, 아주 잠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