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에 가보셨나요?
박원명화
국립현충원에 오신지가 언제던가요?
가족이나 묻혀 있다면 몰라도 가볼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은 데 웬 현충원이냐고요. 하기야 요즘 세상에 구경거리도 많고 관광 길도 넓은데 특별한 일도 없이 현충원에 갈 까닭이 무에 있겠습니까.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니 보훈의 달이나 잠시 생각하는 정도겠지요.
서울에 살면서도 동작동현충원에 가본지가 까마득하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랍습니다. 즐겁게 노는 곳이 아니란 인식이 그곳을 우리와 멀어지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다 있었겠지만 그 또한 무관심이란 우리 사회의 얼룩진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충원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돌봐야 할 곳이라 생각합니다. 고운 무늬로 남겨진 호국영령들의 값진 죽음을 잊어서는 아닐 될 일이기에 말입니다. 얼마 전 ‘청소년 안보의식이 혼란스럽다’라는 신문기사를 읽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25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를 아느냐 는 질문에 ‘안다’가 43.2%, ‘모른다’가 56.8%입니다. 이런 사실은 몇 년 전 어느 신문의 조사에서도 ‘안다’가 46%였습니다. 심지어는 6.25가 북침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니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역사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어 가고 있으니, 이 모두가 이 땅의 어른과 교육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 같아 부모들의 책임이 크다 할 것입니다. ‘있음으로 행복’하고 ‘가짐으로 만족’하다는 삶의 경쟁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질만능추구에만 길들여져 살다보니 자칫 안보에 대한 불감증이 날로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워온 엄마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보다는 영어단어에, 수학문제에 치중하여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경쟁은 입시열풍의 흐름입니다. 한여름 폭염보다 뜨거운 교육열을 따라가자니 가계부는 기울어도 최선을 다해 가르칠 수밖에요.
스포츠 조기 교육 열풍이 올림픽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고 합니다. 올림픽 에서 박태환 선수를 보고, 세계를 주름잡은 피겨요정 김연아를 보고, 수영장과 스케이트장이 선수가 되어 보겠다는 아이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유행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현충원의 태극기는 평온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충원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공존하는 울창한 숲으로 언제 보아도 그 경내가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여름에는 녹음이, 겨울에 설경이, 특히 봄꽃의 찬란한 색체와 가을 단풍은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풍광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막연히 국가 유공자 가족이나 참배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인식입니다. 물론 엄숙하고 정숙해야 하겠지요. 현충원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 외국인 누구라도 언제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굳이 묘소 참배를 하지 않더라도 친근하기 이를 데 없는 오솔길을 산책하며 거닐 수도 있고 고요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정자도 있고 잠시 쉬었다가 갈 벤치도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러운 장소입니다.
행락 철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복잡한 일상을 피하여 자연 속에 잠깐 묻히고 싶으면 언제든지 현충원으로 오십시오. 그 어느 명산보다도 계절의 정조(情調)가 아늑하여 아름답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거진 숲을 보고 있으면 눈도 즐겁고 마음도 느긋해집니다. 거기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경내의 음악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더해 줍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나를 추스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따금 가슴을 후비는 진혼곡은 말 그대로 영령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달래주겠지만 산자의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정화시켜줍니다. 사는 데 바빠 잊고 지낸 인간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지난 잘못도 보이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말이 아니어도 산책하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동작동 현충원에 들어서면 시원한 분수대가 하늘을 향해 그 기세를 뿜어대고 있습니다. 그 앞의 현충탑, 현충문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날씨가 맑은 날이 아니더라도 하늘 위로 우뚝 솟은 현충탑을 보면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구쳐 오릅니다.
오른쪽 병사들의 묘역을 따라 올라가면 무명용사 위령탑이 나오고 조금 더 가다보면 시원한 약수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잠깐 멈춰 생명수 한 사발 들이켜고 호국지장사를 지나면 오른쪽 언덕에 고(故)박정희대통령내외분의 묘소가 나옵니다. 두 분을 추모하는 헌시를 보면 그 분들의 모습이 선연하여 가슴이 찡해집니다. 거기에 올라서 뒤를 돌아서면 한강이 한눈에 유유합니다. 계단을 내려와 왼쪽의 장군묘역에 올라가보면 뒤로 박대통령 묘소가 멀리 보이고 앞으론 한강의 동작대교와 남산타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서울의 조망에 감탄을 외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오늘 날과 같이 생활의 리듬이 빠르다 보면 무엇이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집니다. 차분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지요. 저는 걷기를 좋아하여 현충원 산책길을 자주 찾는 편입니다.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차분한 공간이 더없이 좋습니다. 복잡 미묘한 일들이 얽힐 때, 이 길에 들어서면 무엇인가 가닥이 잡히고 정리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문득 진혼곡을 듣게 되는 날이면 묻혀 있던 헛된 욕망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참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곤 합니다. 현충원은 삶의 의욕을 충전하는 산 자의 복지(福地)이기도 합니다.
-2011. 08월호 한국논단 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