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8장 5절 – 13절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신앙은 날마다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악한 본성은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우리의 삶을 말씀에 따라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금방 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에스겔선지자는 그 당시 거짓선지자들의 폐해를 보았습니다. 그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또 어떤 자들은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조차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축복을 선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따졌습니다. 이런 자들에겐 공통적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백성들의 신앙의 그리고 삶의 성벽을 수축하게 할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수한 예배와 예물을 드림에도 그들의 삶에 억압이 가득한 이유는 성벽이 수축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벽을 수축하는 데로 백성들을 이끌 자들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하나님의 징계 곧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마틴 루터 시대에도 있었고 칼빈이나 그 이후의 웨슬레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성당을 세운다는 이름으로 심판을 면하게 해준다는 증서를 팔았습니다. 이 증서를 사면 이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죄도 사함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속죄와 구원은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증서를 돈주고 산다고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오직 은혜로 라는 하나님의 기준을 선포했습니다. 바로 성벽을 세운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성공회나 장로교는 성도들에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웨슬레가 회심하기 이전에 이미 규치적으로 성경공부를 했지만 그럼에도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에 선교사로 갔지만 성벽을 세울만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모리비안집회에서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을 깨닫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지식은 많았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던 그 자신을 오직믿음으로만 의란 성벽을 세우고 또 영국사회에 성벽을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프랑스처럼 대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박사로 불리웠고 경건한 자들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삶과 신앙에는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위선적인 자세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옳은 자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평토장한 무덤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너져 내린 성벽을 일깨워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기회를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성벽을 세우시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역 중 하나는 바로 이 세상에 성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태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을 말합니다. 이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로마사람입니다. 당시 법은 유대인과 로마인의 접촉을 금했습니다. 로마인들의 유대화를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하인은 로마사람이 아닌데 그럼에도 그 백부장은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서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무슨 병에 걸렸든지 고치신다고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릅니다. 로마인이 유대인을 보고서 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에겐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말하던 유대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에게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에 들어가서 그 아이를 고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당시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백부장은 말씀만 하시면 그 하인이 낫겠다고 합니다. 바로 말씀의 권위입니다. 백부장은 로마군대의 장교입니다. 바로 말의 권위를 아는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으니 말씀만 하시면 병이 치유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어떤 사실에 대한 단순한 동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보았고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있는 그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속죄받고 구원받는 믿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고 주시는 그 믿음을 가진 자만 속죄받고 구원을 받는 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치유를 명하십니다. 바로 그 때 하인의 병은 치유됩니다. 이것은 제자들을 위한 사역이십니다. 바로 성벽을 쌓으시는 사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