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을 설쳤는지 온몸이 찌부둥해서 아침 먹기 전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어요.
도로 건너 앞산이 벌목으로 휑하기는 하지만, 길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어떤 남자 시인의 말에 따라 올라가다 보니 길을 잘못 들어 꼭대기까지는 못 올라가고, 중간에 내려오게 됐어요. 본의 아니게.
여전히 짖는 검정개.
오늘 안으로 꼭 이름을 알아놓아야지.
엊저녁 자동차 넉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제 차 딱 한 대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네요.
가뜩이나 고요한 곳이 더 고요해졌어요.
햇볕 좋아서 이곳에 앉아 책 읽으면 좋겠어요.
제가 머무는 창밖에 드리워진 시래기 커튼.
호랑가시나무인가?
지금은 다 시들어 이렇지만 10월까지는 엄청 예뻤겠지요.
멋진 소나무 밑에 놓여 있는 빨간 의자
표고버섯 재배장
발소리에 몰려드는 닭들- 어쩌나, 손에 든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수탉 한 마리에 나머지는 모두 암탉.
씨앗 가득 품고 있는 칠포백합.(칠포백합은 구근으로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으로 번식한다고 해서, 고성 동동숲에서 몇 가지 얻어왔어요. 근데 씨앗이 좀 덜 여물었는데 가져와서 걱정했는데, 이곳에 오니 사방천지에 칠포백합 씨방이 있네요.)
글을 낳는 집 사진에서 이 백합 보고 반했었는데....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이유가 있었네요.
장독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뒤뜰에도 자태 뽐내며 서 있는 칠포백합 씨방들.
겨울에 더 돋보이는 남천나무.
아침 먹고 또 뜰에 나와 책 한 권 읽고.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냥이들도 어디로 놀러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저 고요하네요.
이번에는 텃밭 구경
텃밭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작은 온실.
마침 문이 열려 있기에 들여다 보았어요.
옹기종기 쌈채소들이 심어져 있네요.
이따 점저에는 요 쌈채소를 먹어야겠어요.(아점과 점저- 두 번만 먹기로 결심)
아침에 사모님이 반찬을 살짝 놓고 가셨는데 오늘은 고등어무조림과 마늘쫑무침, 토란들깨탕.
이런 밭을 보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생명의 힘이 느껴져요.
냉이도 보이고
취도 보이고
블루베리나무도 보이고
얘는 이름을 모르겠어요. 내일 사모님과 마주치면 꼭 잊지 말고 여쭤봐야겠어요.
낮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방울이. 저녁 되니 나타났네요.
온 동네 휘어잡고 다니는 사내 중의 사내.
영광의 상처가 곳곳에 있네요.
요 녀석들 이름도 알아놨어요.
왼쪽은 깜돌이, 오른쪽은 까미.
노견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추워도 달달 떠는 모습이 안쓰러워요.
까미는 제 목소리 듣고 안 짖는데, 깜돌이는 막무가내도 짖어대요.
온실에서 딴 쌈채소와 몇 가지 반찬으로 점저를 먹고
이것저것 자료 살피다가
다시 산책길에 나섰어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대성농장이란 곳.
토종닭과 흑염소 보이시죠.
어제 보았을 때는 아기염소들도 꽤 있었는데 오늘은 안 보이네요. 어디로 갔을까요?
대성농장에서 다시 10분쯤 걸어가니 오른쪽 위에 양식장이 보여요.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풍경만이 맞이해 주는 곳.
위에서 내려다본 양식장 모습
오랜만에 본 풍경이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어요.
수다 떨 사람이 없다는 생각.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어 얼마나 마음 든든한가요.
까미가 반겨주는 글을 낳는 집- 얼마 동안은 여기가 바로 제 집이지요.
아래 사진은 저랑 같은 별채에서 석달 째 머물고 있는 김** 작가가 보내준 것입니다.
김작가의 창문 밖에서는 시래기가 요렇게 보이는군요.
책 읽는 제 모습을 찍어주셨어요.
글을 낳는 집에서는 보통 총 7명의 작가가 머무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김작가와 저 뿐.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고요하고 고요합니다.
고요한 이 밤,
저는 다시 책 속에 빠져들 예정이고요.
이 책들을 보고 또 봐야 시놉을 조금 짤 수 있을 듯합니다.
* 내일은 근처에 화순 아쿠아나라는 온천이 있는데 김작가가 거길 간다고 태워달라고 해서 그리할 예정입니다.
온천 갈 준비가 전혀 안 된 저는 근처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다 다시 김작가 태워올 예정.
다음 주 쯤이면 저도 온천에 갈 수 있겠죠. (온천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ㅋ)
첫댓글 담양오셨군요
너무 산골인데요 ㅎㅎ
깡촌 ㅋㅋ
해남 백련제는 조금 걸음 윤선도 마을(부내 쩌는 도서관에 고택에 전원주택에 까페에)인데 ^^
오로지 자연만 상대하고 불후의 명작을 쓰라는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예, 그런가 봅니다^^
너무 고요해서 가끔 나갔다 오는 분들도 꽤 있어요.
산모퉁이와 뭐가 다른가... 하다가 내 것이 아니라 내 일이 아닌. 그런 거죠?
예, 그렇죠. 여기서는 오로지 글 쓸 생각만 하면 되니까.
고독해야 글이 나오겠지요
예, 너무 고독해서 글만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산모퉁이 풍경과 비슷할거 같아요.
식사 잘 하시고 잘 주무셔요~~
산모퉁이와 분위기가 완전 달라요.
자주 와서 오래 머물다 가는 작가들도 꽤 많다는데 저는 좀 힘드네요. 좀이 쑤셔서....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