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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서류더미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방종구는 여동생이 대리고 온 허름한 차림의 서생을 바라보았다.
"네가 신기서생이라 불리는 정옥인가?"
"그렇습니다."
정옥은 바짝 긴장해서 대답했다.
"소구는 거기 의자에 내려놓고, 수련이 너는 피곤할 테니 먼저 네 방으로 돌아가 있거라."
방수련은 잠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기서생을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종구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오라버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신기서생은 오늘 중으로 청방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거기 탁자 앞에 앉도록 하게."
방종구의 말을 들으면서 신기서생은 자신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소구를 내려놓은 의자 옆에 앉아서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는 방종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는 너에게 수련이가 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겠지?"
첫 질문부터 대답하기 어려웠다.
"신기서생이라 불릴 정도로 똑똑한 머리를 지닌 자가 산중에 처 박혀서 세상에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 일테지---. 게다가 내노라 하는 명문대가에서 꽤 많은 청혼이 들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이 서른이 넘도록 혼인도 하지 않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입을 열던 방종구는 정옥의 갸름하고 하얀 피부를 지닌 얼굴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수련이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그것도 얼굴만 보고?"
신기서생은 방종구의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여기서 방종구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바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신기서생은 진실을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은 거짓을 말할 때가 아니었다.
"제가 원하는 신부감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그리고 저를 찾아온 수련은 충분히 제가 정한 신부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습니다. 면사로 가린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바로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백초당의 셋째 딸 방수련이라는 것을---. 외모는 천하제일미인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우니, 제가 정한 기준에서 더 높은 점수를 가지고 있지요. 게다가 천하제일의 거부라 불리우는 백초당의 여자이니 재력 또한 넘쳐 날테고--, 이것도 제가 정한 기준보다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지요. 가지고 있는 능력 또한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나이가 좀 많다는 것과 성격이 어떤지 제가 파악할 수 없다는 정도이지만--. 그 정도면 제가 원하는 신부감의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지금까지 쌓은 능력을 발휘할 터전을 마련해 주리라는 것이지요. 천하를 경영하는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것이 내가 수련을 보자마자 청혼을 한 이유이고 이 백초당에 온 이유입니다. 아직 젊은 제 마음속에 야망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신기서생의 긴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방종구의 입에서 만족스런 미소가 피어올랐다.
"청방과 백초당을 이용해 천하를 경영해 보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수련이를 진심으로 좋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녀의 모습을 보았는데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가슴에 야망을 품은 남자라면 미녀 그것도 천하제일미녀라 불리는 여자와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인 청방과 백초당을 경영할 기회를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신기서생은 그렇게 반문하고 방종구는 정말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제 자네도 청방의 식구가 되었으니 말을 해 주겠네."
신기서생은 방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모습을 감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암중에 청방을 돕고 있다는 말을 하시려는 것인지요?"
"알고 있었나?"
"이미 청방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것을 알아본 상태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요. 옷과 음식 그리고 머물 집이 없으면 사람은 살수가 없는 법입니다."
"다른 제 문파는 청방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천의 당문 만은 백초당의 일을 하고 있지."
"운룡회와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홍방을 상대하려면 상술만 가지고서는 상대할 수 없는 법이지요. 단지 상인들의 집단으로만 알려진 청방에 무림 고수들이 숨어 있지 않다면 그들과 싸워 이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운룡회 측에는 마도와 사도의 무리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정도 쪽의 인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도의 인물들이 청방쪽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정옥은 전부터 자신이 추측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방종구는 점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낙양의 구석진 곳에 앉아서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는 신기서생이었다. 자신이 죽어도 충분히 청방을 맡길만한 인재라는 것을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은 방종구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군. 내가 청방에 대해 그리고 구파일방에 대해 말하려 한 것은 이유가 있어서이네. 자네도 보다시피 내 몸은 말이 아니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야. 현재는 내가 청방의 머리로 움직이고 있지만 내가 죽으면 복잡한 세력들이 얽혀 있는 청방을 움직일 머리가 없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소속되어 움직이는 백초당의 운영도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난 하루라도 빨리 내 후임을 정하지 않으면---. 그리고 선택되어서 온 게 자네라네."
잠시 말을 멈춘 방종구는 총기가 가득한 눈을 하고 있는 신기서생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내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단지 머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청방의 운영을 맡을 수는 없겠지요. 청방에 관여하는 여러 세력들을 납득할만한 실력을 보여주어야겠지요?"
"그렇네. 내가 민다고 해서 청방의 방주로 등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많은 사람들에게 자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돼."
"제게 시키실 일이 무엇입니까?"
신기서생은 바로 질문했다. 청방의 방주라는 자리는 너무나 매력적인 자리였다. 천하를 앉은 자리에서 주무르는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만 했다.
"일단 자네에게 청방과 백초당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주지. 하루에도 수천 건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니까, 쓸모 있는 것도 있고 별로 필요없는 정보도 있을 것이네. 그것을 가지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해 보게."
"그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래. 자네 정도라면 여러 가지 정보를 토대로 모두가 납득할만한 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 말을 끝낸 방종구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구야, 그만 일어나라. 네게 할 말이 있다."
의자에 앉아 쿨쿨 자고 있는 소구를 바라보는 신기서생 역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낙양에서 이곳 개봉까지 오는 동안 줄곳 잠만 자고 있는 소구의 모습을 보아왔기에 그 역시 이 엄청난 잠꾸러기에 질린 상태였다.
"방주님, 그렇게 하면 깨어나지 않습니다."
"?"
신기서생의 말에 방종구는 의아한 얼굴로 신기서생을 바라보았다.
"소구 도령, 식사시간입니다."
소구의 귓가에 대고 신기서생이 속삭였다.
"밥?!"
그렇게 소리치며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서는 소구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방종구였다.
"자네는 이제 나가보게. 일은 내일부터이니 오늘은 총관 염철이 안내해주는 숙소로 돌아가 쉬도록."
"예,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있겠습니다."
포권하면서 인사하고 신기서생이 나가자마자 고개를 돌린 방종구는 막내 동생을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형,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거야?"
"너에게 아주 큰 일이 생겼구나."
"무슨 일인데요?"
"네 첩들이 돌아왔거든."
"첩? 무슨 소리야 형? 아직 결혼도 안한 나에게 무슨 첩이야?"
"너 어릴 적에 네 시중을 들어주던 두 아이 기억하지?"
"취하와 취앵이 말이야? 십년 전의 화제 때 죽은 거 아니었어? 안 보이길래 죽은 줄 알았는데---?"
방종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어머님이 살아 계실 적에 그 아이들을 대리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신 적이 있다."
"어디?"
"어머님의 친정."
"어디인데 그래, 형?
소구는 어머니의 친정이 어디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넌 어머니의 친정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냐?"
"말을 해 줬어야 알지."
"그렇구나. 네가 너무 어려서 집을 떠나 있었으니---. 어머님의 친정은 북해에 있다."
"북해? 엄청 먼 곳이네."
"그래. 그리고 북해에서도 빙궁이라 불리는 곳이 어머님의 친정이지."
형 방종구의 말을 들으면서 소구는 멍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정말이야?"
"그래. 너도 알지 않니? 어머님이 무공의 고수라는 사실을."
"맞아. 어머님이 무공이 높긴 높았지."
"그런데 왜 내 하녀들이 거기에 간 거야?"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소구는 다시 의자에 앉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가 전설처럼 여겨지는 빙궁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원래 알고 싶었던 것이 자신의 하녀들에 대한 것이었다.
"네 병."
"내 병은 이미 다 나았는데?"
"어릴 적 네 몸은 너무 뜨거워서 취하와 취앵이를 사서 네 하녀로 준 것은 기억하지?"
"그것 때문에 온갖 일을 겪었는데 모를 리가 있어?"
"그래. 소구야. 바로 그, 너의 병 때문에 어머니가 네 하녀들을 빙궁으로 대리고 간 거지. 네 몸에 쌓인 지나친 양기를 조절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네 하녀들의 몸을 아주 차갑게 만들어서 너에게 줄 생각이었는 모양이다. 네가 자라나면 하녀들의 몸에 쌓인 음기를 흡수해서 네 몸의 음양의 조화를 맞춰 주실 생각이었던 모양이야. 중간에 너는 다시 만나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지만---."
"빙궁에 가서 몸을 아주 차갑게 한 모양이네?"
"그래."
"그리고 그 하녀들이 내 첩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없을 때 어머님이 항상 말씀하셨거든. 취하와 취앵이는 네가 자라나면 너의 첩이 될 거라고---."
"지금 어디에 있는데?"
"네 방에 있다."
"그럼 전처럼 둘이 내 시중을 들어주는 거야?"
"그래, 네 거처에는 이제 아무도 가지 못한다. 너 때문에 빙궁에서 십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지낸 아이들이다. 가면 잘 대해 주도록 해라."
"알았어."
소구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이제 내 방으로 가도 되는 거지, 형?"
"그래. 이제 가 봐라."
소구는 기분이 이상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의 하녀 둘이 모두 돌아왔으니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내내 형은 자신을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내 의심스러운 소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온다! 소구 도련님이 이리로 오고 있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던 취하가 침상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 취앵이에게 소리쳤다.
취앵이는 벌떡 일어섰다.
"취하야, 너는 문 쪽을 맡아 나는 창문 쪽을 맡을 테니. 소구 도련님이 들어오면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된다구."
취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구와 반드시 동침을 해야 했다.
자신의 거처로 다가가면서 소구의 고개는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일하는 하인 하나 근처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의 이 냉기는---?
소구는 냉기의 근원이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한 겨울이라지만 이곳은 추워도 너무 추웠다. 한서가 침범하지 못하는 육신의 경지에 이른 소구였다. 아무리 추운 겨울날이라도 추위를 느낄 수 없었던 소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방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소구가 본 것은 얼굴이 죽은 시체인 것 마냥 하얗고, 허리아래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이를 먹지 않았는지 그녀들의 얼굴은 어릴 때의 본 모습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소구는 본 두 하녀의 느낌은 귀신같다는 것이었다.
"도련님, 한참만에 보게 되네요."
"그래, 취하야. 오랜만이로구나."
말을 하면서도 소구의 몸은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구 도련님, 우리 몸이 이렇게 변한 책임이 도련님에게 있다는 것은 아시죠?"
말을 하면서 취하가 재빨리 소구의 등뒤로 돌아서 문 앞을 막아섰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도련님의 뜨거운 몸을 우리가 식혀 주었으니, 도련님이 우리의 차갑게 변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셔야지요."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 취하가 소구의 팔을 붙잡고 침상으로 끌고 가고, 창문 옆에 서 있던 취앵이는 창문을 닫고 옷을 벗고 있었다.
침상까지 취하에게 질질 끌려가는 동안 소구는 취하에게 붙잡혀 있는 팔이 꽁꽁 얼어붙는 것을 느끼면서 어렸을 적에 취하와 취앵이가 자신의 몸을 안고 자던 일을 떠올렸다. 이 얼음보다 수십배는 차가운 몸을 하고 있는 두 하녀와 같은 침상에서 잔다는 것은-----.
"저리가 이 얼음덩어리들아!"
갑자기 소리치면서 소구는 취하에게 붙잡혀 있는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벽에 구멍을 내고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도련님!"
"서요!"
두 마디 여자들의 고함이 터지고, 두 하녀 역시 소구를 따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소구는 이리 저리 하녀들을 피해 도망치고, 두 하녀는 소리소리 지르면서 소구의 뒤를 쫓아다녔다.
'에휴, 이게 무슨 일이냐? 집에서 빨리 떠나야 겠다. 어디든 취하하고 취앵이를 안 볼 수 있는 장소로 도망쳐야 돼!'
도망치면서 소구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즐감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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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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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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