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소원
- 황성희
각종 연대와 불우이웃과 부정부패와 다음 정권으로부터
잠시 빠져나와 무엇도 옹호하지 않는 채로 가만있을 때
쓰레기를 버리다 말고 냄새의 밖으로 코가 빠져나올 때
나는 누구이고 무엇의 성분이며 왜 여기에 놓여 있는지
명분과 격노가 빠져나간 고함처럼 내 얼굴이 멋쩍어질 때
누군가 알은체 다가와 이름을 부르며 그게 나라고 할 때
해구 속 아직 학명도 정해지지 않은 새우 모양 생명체가
인간보다 먼저 만나는 것이 플라스틱이 될 것이라 할 때
백악기의 공룡처럼 플라스틱기의 인간이 되어
그림 카드에 인쇄되고 서점 유리창에 붙여지며
멸종의 미스터리를 대물림하는 건가 싶어질 때
채널 서핑 중 ARS 기부를 하는 산만한 연민과
꼭 한 번은 코피를 터뜨려주고 싶던 어머니와
모두에게 참패한 뒤 도망치듯 사라진 아버지와
엔제리너스 파스쿠찌 이벤트 메뉴에서 빠져나와
아파트로 가득 찬 광야의 횡단보도에 멈춰 선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늦은 휴일의 아침 식사에 갇히는 일이었다
간편한 분노 몇 개를 들고 뉴스 앞에 앉아
이 세계에 악착같이 붙어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책상 위의 먼지가 되는 일이었다
ㅡ 『現代文學』(2021,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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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객 김광석의 노래 '먼지가 되어'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현실 속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으로 살아가려 애를 쓰지만 결국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악착같이 붙어 있으려 해도 때로는 털려버리고, 닦여버리며 엉뚱한 곳으로 휩쓸려들어갑니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 갇히고 마는 삶인 것만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자신의 예측도 맞아떨어지기를 바랍니다
먼지의 소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에 딱 달라붙어 있기만 바랄 순 없을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하룻길 걸으렵니다^*^
첫댓글 잭 랜던은 "먼지가 되기 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무덤덤하고 의미 없는 먼지 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하게 불꽃을 태우는 삶이 더 아름다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