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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호의 몸을 하고 있는 추혼검마는 자신의 육신이 갇혀 있는 수정관을 부술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교가 시작된 이래 오직 교주의 신분을 얻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한 장소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봉인되어 있던 지하의 용암굴에서 벗어나 이른 곳은 흑목애라 불리는 검은 바위가 늘어서 있는 봉우리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성녀전이라 불리는 부서진 폐허의 건물 안이었다.
"이럴 수가----? 왜 이곳이 이렇게 변해 있는 것이지? 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이곳이 폐허로 변해 있다니---."
추혼검마는 넋을 잃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폐허로 변해버린 건물을 바라보았다. 지붕도 무너지고 벽도 무너져 내려 그가 기억하고 있던 아름다운 성녀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추혼검마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그가 원하는 물건이 없다면 그의 영혼이 세상에 머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몸으로는 그들과 싸울 수가 없었고, 이 몸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시간 또한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폐허로 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 추혼검마는 텅 비어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역시 사라져 버렸군.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죽어도 다시 태어나서 항상 나를 기다려 주겠다고 한 그녀는--? 나와 언제나 함께 있다고 스스로 검이 되어버린 그녀가 사라지다니--."
탄식을 토해내며 말하던 추혼검마는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와, 수정관 속에 누워 있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았다. 그가 수백년의 세월을 기다려 얻은 기회는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가 칠호의 육신을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고, 그것도 벌써 반나절이 사라진 상태였다. 남겨진 시간 안에 자신의 육신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저 수정관을 깨야했다.
"누구냐?"
성녀전이라 불리는 건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는 산기슭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추혼검마는 고개를 돌렸다. 호통을 내지르고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오는 한 인간의 신형을 발견하는 순간 추혼검마는 얼굴에 미소를 드리웠다. 육신은 소멸할지라도 영혼의 자유를 찾을 방법이 생긴 것이다.
마교의 교주 주학은 서둘러 성녀전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달려갔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성녀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기뻐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삼계는 약속을 지켜서 그가 중원으로 보낸 마교의 제자들은 이제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되고 국경과 성을 통과하는 일이 쉬워진 상태였다. 신분증명과 출입허가가 난 서류를 얻는 대가로 그의 자식을 강하게 만들어서 보내준다는 교환 조건은 성사되었고, 그래서 성녀를 찾는 일은 훨씬 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불상사가 끼어 드는 일은 생기지 말아야했다.
성녀전을 기웃거리는 이방인을 절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는 주학은 성녀전 앞에 이르자마자 그대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이 일렁이는 주학의 손이 칠호의 몸에 작렬하는 순간 추혼검마는 자신의 관을 들어올렸다. 주학의 손에 관이 부딪치고, 주학은 손이 얼얼한 감촉을 느끼면서 뒤로 빙글빙글 돌아 땅에 내려서면서 품에서 날카로운 톱니가 달려 있는 두 개의 륜을 꺼내들면서 생각했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관을 무기로 쓰는 놈이라니---. 게다가 시체까지 들어 있잖아?!'
칠호의 몸을 하고 있는 추혼검마는 관을 몸 주위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주학의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일월 쌍륜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앞에서 공격을 퍼붓고 잇는 자는 지금의 교주가 틀림없었다. 일월쌍륜의 날카로움이라면 이 관을 부수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더불어 자신의 육신 또한 소멸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영혼의 자유를 찾아 다시 환생하게 될 것이니--. 몇 번이고 환생을 거듭하다 보면 다시 그녀를 만날 순간이 올 것이다.
두 개의 륜이 무서운 속도로 뱅글뱅글 돌면서 칠호의 몸을 노리고 날아오고 칠호의 몸에 들린 추혼검마의 관과 부딪치면서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주학은 일월륜(日月輪)에 대적할 수 있는 무기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것보다 날카롭고 강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것을 사용해서 펼치는 무공을 대적할만한 것은 소림사의 금강부동신보나 무당파의 태극혜검 정도로 알고 있는 그였기에 놀람은 클 수밖에 없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힘차게 공격을 퍼부어 댔다.
추혼검마의 관에 끊임없이 일월쌍륜이 부딪치면서 수정관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지만, 그 관을 들고 일월쌍륜을 상대하는 추혼검마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면서 추혼검마는 앞을 막고 있던 수정관을 허공으로 집어던지고 그의 가슴 앞으로 교차하면서 날아오는 두 개의 륜을 향해 손을 뻗어갔다. 지금의 마교 교주는 일월쌍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일월쌍륜은 칠호의 손에 붙잡혀서도 회전을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칠호의 손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일월쌍륜을 손에 붙잡은 칠호를 바라보며 주학은 경악한 얼굴로 칠호를 바라보았다.
"잘 보아라. 네가 진정 당대의 마교 교주라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손에 일월륜을 잡고 가슴 앞에 십자로 교차해서 들고 있던 추혼검마는 주학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다음 허공으로 솟구치며 소리쳤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니, 일월의 빛이 멈추지 않고 온 세상을 비추는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개의 륜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허공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려오고 있는 수정관과 부딪치면서 엄청나게 밝은 빛이 허공 높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너무나 밝은 빛에 주학은 소매로 눈을 가렸다.
광채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눈을 뜨고 허공을 올려다 본 주학이 본 것은 수정관이 가루로 변해 허공에 흩어지는 모습과 자신의 무기인 일월쌍륜에 불이 붙은 채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자신과 싸우던 자가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에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주학은 자신의 발 밑으로 떨어진 일월쌍륜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빨갛게 달아올라 바위를 녹이고 있는 그것은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고 이제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고철로 변해 있었다.
"저자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 그 관을 부수려고 한 거지? 어떻게 실전된지 백년이 넘은 일월쌍륜 최후 무공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칠호의 육신을 내려다보며 주학은 의문에 차서 중얼거렸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해의 첫날부터 방화련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년만에 처음으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든 그녀였기에 그녀의 방 근처는 신년 초의 떠들썩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백초당 사람들 모두 그녀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방수련 역시 이날만큼은 악기를 멀리하고 봄이 되면 자신의 신랑이 될 신기서생 정옥을 위한 옷을 만들고 있었기에 백초당의 신년 초하루는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방화련은 계속 자기자신을 향해 그렇게 소리지르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거친 황사가 몰아치는 황야의 끝에 서 있는 그 커다란 대장간에는 수천 개의 칼이 벽에 걸려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그 아래 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화로와 그 속에 달구어지는 하나의 칼이 있었다.
"정녕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화로의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얼굴은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그 옆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 여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 언제나 이이와 함께 있을 거야. 이대로 죽는다해도 이이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게 될 거야.'
화로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속의 외침이 분명히 방화련의 마음속으로도 들려왔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는 허리아래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을 잘라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건내주면서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정말로 행복해서 짓는 미소라는 것을 방화련은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화로 한 가운데 파란 불꽃에 휩싸인 채 둥실 떠올라 달구어지고 있는 칼을 바라보며 서 있는 그녀를 보면서 방화련은 계속 불안감에 휩싸였다.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가 다음 순간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과 요란한 고함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다.
"그들이 오기 전에 검이 완성되어야겠군요."
여자는 옆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남자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그대와 함께 있을 것이오."
남자는 말하면서 여자를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방화련은 그것이 그들 두 사람의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와 호통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면서 그대로 화로 속에 몸을 던졌다.
'안 돼!'
방화련은 비명을 내질렀다. 화로 속에 몸을 던진 여자가 느끼고 있는 고통이 그대로 방화련에게도 느껴지면서,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 방화련의 의식은 끊어져 갔다.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후원에 나온 방종구가 앙상한 나무 위에 쌓인 눈과 저 멀리 산 위로 떠오르고 있는 붉은 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등뒤에 서 있는 양려군 역시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해가 가고 그녀의 나이도 이제 서른이 넘어가고 있었다.
"양매의 나이도 이제 서른이 넘어가는구려. 좋은 사람이 생기면---."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종구 오라버니와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양려군의 말을 들으면서 방종구는 나직이 탄식을 토해내었다.
"이 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오. 게다가 이렇게 흉하게 변한 내 어디가 좋다는 것이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처음에 오라버니를 보았을 때,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오라버니를 꼬셔서 평생 놀고먹는 그런 삶을 꿈꾸는 일도 있었지요. 하지만----."
방종구의 뒷머리를 바라보면서 말하던 양려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붉게 물든 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부하들과 방종구와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겨오던 날들의 기억이 머리 속을 회오리쳤다.
"하지만 남녀간의 애정이란 것이 단지 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 때 그 일이 있은 후 오라버니와 저는 항상 함께 있었죠. 함께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 어느 사이엔가 제 마음속에 오라버니만이 남아 있더군요."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방종구는 양려군의 말을 들으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이 먼저 찾아왔다.
멍하니 해를 바라보고 있는 방종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대로는 정말이지 죽고 싶지 않았다. 그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면서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돌보아 주던 양려군을 방종구 역시 좋아하고 있었지만 감히 청혼할 수 없었다. 몸의 절반이 화상으로 일그러져 흉칙하게 변한 상태에,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지금의 상태에서는----.
양려군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말이 없던 방종구가 입을 연 것은 한참이 흘러서였다.
"양매의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진정으로 양매를 좋아한다면----. 양매의 나이도 벌써 서른이 넘어갔으니 혼기를 놓친 나이--,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죽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몸을 하고 있소. 양매가 항상 내 곁에 있어 주었기에 나는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지만 이제 그대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할 것 같구려----. 양매의 남은 인생이 행복해 질려면 이제 내 곁을 떠나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보는 것이----."
방종구의 말은 끝까지 갈 수 없었다. 화상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방종구의 얼굴에 있는 입술 위에 양려군의 입술이 포개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잠시 후, 다시 입술을 때낸 양려군의 얼굴 위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을 방종구는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떠오르는 해를 향해 시선을 돌린 채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누가 빨리 죽고 누가 늦게 죽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모두가 죽어요. 오라버니도 죽고 저도 죽어요. 오라버니가 바로 다음날이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지요. 병이든 사고이든 다음 순간에 죽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기에 저는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지금의 저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오라버니와 함께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방종구를 바라보며 말하다 무릎을 끓고 방종구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그러니 나보고 떠나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방종구는 자신의 무릎 위에 고개를 묻고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는 양려군의 흩어진 머리결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그대에게 떠나라는 말을 하지 않을 테니 울지 마오."
말을 하는 사이 방종구의 눈에서도 쉬지 않고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방종구는 자신이 살아날 방법을 올해 안에 반드시 찾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 살아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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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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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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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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