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시비로 얼룩진 상태에서 불명예 퇴진했던 김춘수 감독 시절 부터...
특급 내지 일급의 선수들은 스카우트 하지 못해 6-80 년대 연-고 다음으로 no 3를 유지했던 팀의 명예가..
변방으로 가라 앉나 싶더니..
김춘수-이상영 라인의 코칭 스테프 영향으로 인해..
한양대 농구는 이젠 닥공 농구의 모드를 보여주고 있고..
런앤건의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대학 농구의 돌풍과 과거의 준수 했었던 영광을 되 찾아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양대 농구부 출신들의 특징은...
몇년 주기를 따지기는 그렇지만..
고교때 까지는 특급은 아니었고 큰 주목은 받지 못했어도..
한양대 시절 팀의 the 맨으로써 실업 및 프로에서는 큰 획을 그어주는 선수들의 등장 입니다...
70년대 대학 무대 최고의 테크니션 이었던 한양대-산업은행의 최명용..
70년대 후반 80년대 초 현대에서 리딩 가드로서 삼성과의 라이벌전에 특히 강했었던 이종호..
70년 후반 80년대 초 한양대 농구의 네임드가 가장 높았고 근성+체력+수비력+득점력,,등등 모든
부문에서 최고 였던 삼성전자 소속의 이영근..
특히 고대-현대 시절 이충희의 전담 마크맨으로 이충희가 가장 싫어했고 껄그러워 했었던 최고의 선수 였습니다.
80년대 초반 연-고대의 기라성 같은 모든 스타급의 선수들을 제끼고..
득점 부문에서는 이 선수를 따라 올 적수가 없었던..
군계 일학의 득점 머신 신장 마저 190이 넘는 연대 재학시 전성기 시절의 김동우와 같은 유형 이었던 오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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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부터 중앙대 천하가 시작되며..
스카웃전에서 밀린 연-고대 농구단의 100년 아성이 무너지며..
근근히 no.3의 한양대 농구단 전력도 김성욱의 국민대 경희대에 밀려나는 듯 싶었지만..
김용근 감독이 홀로 벤취를 지키고 있던 한양대 벤취에..
특급 포인트 가드 출신의 코트의 신사 이종호가 코치로 복귀 하며..
195의 센터 이면서 미들 라인에서의 슛이 거의 백발 백중 이었던 김종석과..
3점슛 거리가 가장 길었고 쏘는 타이밍도 빨라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것 잡을 수 없었던 김영철..
다재 다능하고 속공 패스가 일품 이었던 쌕쌕이 김대의..를 주축으로 mbc배와 춘계 전국 체전에서 우승 하며..
모처럼 한양대 농구단이 정상에서는 전성기를 맞이 하기도 하던 시절 이었습니다..
80년대 중 후반 부터..
최희암 감독으로 벤취를 정비한 연대 농구단의 강호로의 복귀가 무섭게 진행되는 과정 중에..
한양대학교는 부산 중앙고의 원투 펀치 중 한명인 추승균을 스카웃 하며..
외곽 포워드 라인을 강화 함과 동시에 에이스 농구의 시대로 접어 들게 됩니다..
한양 대학교는 배구-야구-축구단의 성적은 여타 대학과 비교도 안되는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시기 였지만..
농구단은 그러지 못하던 안타까운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에서의 모습은 용산고 시절의 특급 선수의 모습은 사라졌었지만..
한양대 저 학년 시절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었던 김경석..
그리고 현재 한양대 출신 중 최고의 선수와 kbl 최고의 스타인 용산고 출신의 양동근..
3점 슈터 계보가 끊어진 가운데..
3점 슛 보다는 다양한 득점 루트로 국가 대표 및 소속팀 kt에서 주 득점원의 역활을 맏고 있는 조성민..
작년 신인 시절 대박급의 활약을 펼쳤지만..
2년차 징크스에 약간 시달리고 있는 한양 대학 시절 득점 기계 출신의 차바위..
올해 신인중..
한양대 농구부의 색깔에 가장 맞아 보이는..
달리는 가드 kt의 이재도..
런앤건 농구의 진수를 보여 주는 선수 이기도 합니다..
경희대 3인방과 고대 박재현,,등 워낙에 걸출한 선수가 많기에 그들에 비해 네임드가 떨어져 약간의 관심 밖의 선수로
비춰 졌지만..
아마 시절 한양대 농구부 경기가 열리는 날리면 이재도 농구 하는 맛에 경기장을 찾은 올드팬들도 있었을 정도로 제대로만
성장이 되어 준다면 kt 농구단에 큰 활약을 펼쳐줄지도 모르는 아직은 더 성장해야할 선수라 생각되는 유망주 가드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농구사를 거의 지배 하다시피 했던 연-고대 농구부..
83년 부터 대학 농구의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중앙대 천하를 이루어냈던 정봉섭 감독의 중앙대 농구부..
만년 3-4 인자로..
울면서 서장훈의 연대와 연세대를 이겨 보는게 소원 입니다를 외치며..
경희대 농구부를 오랜 기간 지켜 오며..
김종규-김민구-두경민 트리오를 스카웃 해 오며 드뎌 대학 농구의 1인자 자리를 차지 했었던 최부영 감독의 경희대 농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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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대학 처럼 특출나게 성적이 좋았다거나..
몇몇을 제외하곤 특급의 선수들을 스카웃 하거나 키우지는 못 했지만..
한양대 농구는 이런 것 이다를 보여주며 나름 대학 농구에서 한양대 특유의 매력을 가지고 하며..
한양대 출신 선수들이 프로 각 소속팀에서 더 맨이나 원 맨으로서의 위치는 아니어도 중요 포지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즐거움을 주고 있는 한양대 농구부 만의 매력을 적어 봤습니다..
첫댓글 역사를 잘 정리해주셨네요. 저도 한양대 농구부의 스타일을 참 좋아합니다. 이제는 이상영 코치가 감독이 돼서 이끌고 계시죠. 슬램덩크의 풍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좋습니다. 빠르고 슛 좋으면서 타이트하게 수비를 하기도 하고. 은근히 인재풀이 넓죠. 양동근, 이재도처럼 용산고 출신의 타이트한 수비를 자랑하는 가드들을 데려다가 잘 쓰기도 하고, 송도고, 지금은 화양고로 넘어간 여수전자고, 대전고 등 여기저기서 인재를 잘 끌어모으는 느낌입니다.
김대의... 열심히 심판보고 있던데...
양동인도 있었죠ㅡ고교1위가드였던. . . .
추승균 코치님이 부산 출신이었네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추사마는 부산중앙고 출신아닌가요? 강뱅하고 동문인걸로 아는데
네 저도 부산중앙출신으로 알고 있어요
추승균, 박훈근 고대코치가 부산중앙 동기죠..그때는 서장훈,현주엽의 휘문이 최강이었고요
고려대 진학했던 박훈근과 함께 부산 중앙을 동아로 제가 착각 했습니다..
죄송 스러움 전하며 수정 하겠습니다..^^
마지막 승부세대이기에 70~80년도의 선수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농구에 대한 역사를 한눈에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자료 강추하고 스크랩할께요 ^^
아이디(닉네임) 최고입니다.!!!!
84 LA 올림픽 시절 당시 주전 센터가 조지타운의 유잉 이었습니다..
스페인과의 결승전 경기 지금도 유잉의 그 엄청난 골밑의 위용과 아우라 기억이 생생 합니다..^^
@조지타운 유잉 저도 패트릭의 영원한 팬입니다.
그 시절이 그립네요. 요즘은 센터라고 말할만한 빅밴들이 없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