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단짝이다시피 했던 묘가수 누나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울....
아아.....구태여 이름까지 뭐 깔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저 울 형의 트레이드마크인 아뵤오오옷 소리나 한번 간만에 들어보시는 게 더 낫겠다 싶습니다.
더불어,
오래 전 사석에서 봤을 때도, 또 지금 생각해도 하하하하 도무지 기잔지 농군인지 분간할 수 없던,
그러나 왠지 모르게 여전히 가슴을 후벼파며 저희 모두를 각성시키기에 충분한 한 사람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결국엔 진실에 이르고야 마는 진정어린 명문과 함께...
龍爭虎鬪, 1973
<내 인생의 영화>
내가 처음 극장이란 델 간 건 일곱살 때다.
신작로에서 놀던 반바지 러닝 바람 그대로 부모를 따라 제천의 어느 극장에서 동시상영하던 왕우의 <돌아온 외팔이>와 유현목의 <공처가 삼대>를 봤다. 이 두편의 영화는 재미있었다는 기억 이상의 자극을 내 뇌의 주름에 남기지 못했다.
내가 처음으로 열광한 영화는 중1 때 본 <용쟁호투>였다.
주연배우는 나만큼 쌍절곤과 괴조음을 잘 구사했고, 성까지 같았다. 이소룡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한 영화 속 나의 영웅이었다. 지금껏 배우의 브로마이드나 팬북을 산 건 그의 것이 유일무이하다. 특히 쌍절곤. 이소룡은 내게, 쌍절곤만 있으면 세상 누구와 맞서도 두려울 게 없을 거란 환상을 심어줬다. 서울 변두리의 유명한 깡패학교를 중·고등학교 합해 6년씩이나 다녀야 했던 나로선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쌍절곤에 머리통 팔꿈치 맞아가며 지성으로 돌렸다. 요즘 더러 흐린 날 팔꿈치가 시려오는 건 혹시 그 때문이 아닐까.
그가 남긴 네편의 주옥 같은 영화에서 압권은 늘 결투 장면이었다. 작은 체구의 내 영웅은 조직이나 집단에 기대지 않고 늘 혈혈단신 적진 한가운데서 상대와 정면대결을 벌였다. 그의 결투 장면은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광기를 뿜어냈다. 미안하게도 내가 성룡이나 이연걸을 ‘졸’로 보는 건, 그들에게선 이소룡에게서 느꼈던 귀기 서린 투사의 숭고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용쟁호투> 다음으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적장자 빌 어거스트의 <정복자 펠레>(1988)였다.
이 영화에서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친척에게 강간당한 철부지 소녀가 알몸으로 하얀 드레스의 선혈을 샘에서 닦는 장면도, 농장 여주인이 바람둥이 남편의 성기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장면도 아니었다. 내겐 막스 폰 시도우가 역을 맡았던 펠레의 아버지 라세가 악독한 농장관리인 앞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을 때의 시퀀스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식의 계급행동주의를 최고의 미덕이라 여겨왔던 당시의 나로선 당연히 피지배계급 라세가 쇠스랑을 움켜쥐고 지배계급의 하수인의 머리통을 갈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계급의식도 없게시리, 라세는 울분과 쇠스랑을 함께 내려놓았다. 그는 관리인의 머리통을 가만 놔두는 대신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것이 차가운 현실이다! 그런 비루함이 삶의 진실이다! 혁명? 계급투쟁? 그건 다 관념이다! 세상은 흑백으로 나뉘지 않으며, 세상을 잿빛으로 만드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 나는 내 눈에서 비늘이 한 꺼풀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정복자 펠레> 다음으로 내게 인상을 남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나를 가장 많이 울린 영화다. 난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볼 때마다 엉엉 울었다. 그 시절 ‘이쪽’에 서 있었든 ‘저쪽’에 서 있었든 그 저주스런 세월을 피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내 남루한 젊은 시절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난 내가 너무 비겁하게 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정복자 펠레>를 보며 “그것이 현실”이라 깨닫고, <박하사탕>을 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한다.
지혜를 깨닫고 옛일에 연민의 눈물을 뿌리는 일은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현실이 잿빛으로 변하고 회색논리가 지혜로 받아들여질 때, 그런 이중성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진작 암세포라도 불러들여 무덤으로 갔다. 아마 <용쟁호투>의 악당 ‘한’도 젊었을 땐 이소룡처럼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맞서려 한 투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순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어느새 거대한 조직을 거느린 보스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우리의 귀는 두 개이고, 세계엔 대개 두 가지 목소리가 흘러다닌다.
하나는 모든 걸 거부하는 부정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걸 포용하는 ‘지혜’의 목소리다. 물론 지혜의 소리가 나쁠 건 없지만, 그건 일쑤 비굴이나 기회주의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부정의 소리 대신 ‘지혜’의 소리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인다는 뜻일 터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도 어쩌면 (철든다는 말로 치장된 이 모호한) 지혜와 회한은 점점 자리를 넓혀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비록 몸은 늙어가겠지만, 정신으로는 부정의 소리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런 까닭에 난 내게 지혜와 통한을 일깨워준 <정복자 펠레>나 <박하사탕>이나 그런 영화보다는, 대신 온몸으로 싸우는 혈투의 정직함을 보여준 <용쟁호투>를 여전히 내 인생의 영화로 기억할 것이다. 아뵤오오우우우∼!
전 한겨레21 이상수 기자
(진짜로 뱉고 싶은 피에쑤 글)
성적인 남자야, 함 보거라.
대충 2년6개월전엔가...
그때 신촌에서 소주 기울이며 물었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기는커녕 왜 매사 자꾸 편협해지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미안하다. 그때 나이만 처묵었지, 너한테 아무말도 해주지 못해서...
실은 그때 살아가면서 종종 되새겨보자며 이 글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노무 술 땜에 다 까묵어버렸다...집에 와서 검색해봐도 도통 찾을 수가 없더라...
얼마전에 이래저래 파일함을 뒤질 일이 있었는데....
우와 웬떡이냐!!! 마침내 눈에 띄더라...
아직도 그 질문이 유효하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 동작 되게 빠르지? ㅎㅎㅎ
그럼, 인간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그밖의 사물에 대해선 예나 다름없이 편협된 시각 꾸준히 더 살려가며
오늘도 후회덜한 행복한 하루, 서로 함 만들어가보자.
수다 다 끝났습니다.
공적장소에서 사적인 피에쑤를 날린 데 이해를 구하며,
사죄를 핑계로 응원가 한곡 마지막으로 나누며 재빨리 토끼겠습니다.
으랏차차~~~~~
다들 오늘도 무사히~~~~~!!!!
Together In Electric Dreams
1984, Human Lea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