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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카페 게시글
진리 탐구 스크랩 사도신경내용
겸손100 추천 2 조회 731 14.03.13 20:49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사도신경의 내용

   

전부터 사도신경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몇몇 독립적 침례교회들,그리고 여러 이단들이

사도신경을 거부한다.

거부하는 가장 첫 번째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사도신경과 다른 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사도신경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재확인시켜주는 것이며, 그 내용상에 아무

가 없다.물론 사도신경 자체가 이단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원래 이단을 분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자.

우리가 암송하는 한글 사도신경은 매우 훌륭하게 번역된 것이다. 당연히 우리의 신앙고백으로서 손색

이없다. 사도신경에 대한 비난과 그 문제점을 살펴 보자.

사도신경은 현재 주기도문과 더불어 공식예배의 암송과 회중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1) 초대교회 때에는 없었다는 견해에 대하여

물론 지금과 똑같은 사도신경은 없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때는 "사도신조"라고 하여 세례시 문답을 주고 받던 것이 있었으며,

많은 이단들이 성행하게 되자 이단들을 경계하고 확립하기 위하여,

이 사도신조는 후에 "내가 믿사오며···"라고 하는 사도신경으로 바뀌어 발전되어진 것이다.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이라는 단어에서

원래 ‘신경’(Creed)라는 단어는 CREDO(내가 믿는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이 니케야공의회에서 소위 니케야신조로서 확증된 것이며,

이것을 부정하면 이단으로 분류하는 공식입장을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교단들은, 그러한 용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사상과 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거부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마 여호와의 증인같은 단일신론을 주장하는 이단들과 양태론을 주장하는 이단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으로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핑계를 굳이 돌리면서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래 신조들은 분명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으며,

모든 기독교는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으로서 받아 들이고 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시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모든 시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낳으신 자이시고, 빛으로부터 나온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피조되지 않았고, 낳으셨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분을 통하여 만물은 존재하게 되었음을

믿는다. 그는 우리 인류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육신하시어 인간이 되셨고, 본디오 빌라도 밑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고난받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제3일만에 일어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고,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는 주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발출된 자이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받으시고 영광받으실 분이시며,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분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사면하는 하나의 세례를 고백

한다. 우리는 장차 올 세계에서 죽은 자가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기대한다. 아멘”

(니케야콘스탄티노플신조, 주후 381년).

“거룩한 교부를 따라, 우리는 일치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의 동일한 아들이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친다. 그는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여 참 신이며,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가진 참 인간이다. 신성으로는 성부와 본질이 동일하고, 인성으로는 우리와

본질이 동일하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으시되, 죄는 없으시다'. 신성으로는 창세 전에 성부로부터 출생하였고,

인성으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신의 수태자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 동일한 그리스도, 성자, 주님, 독생자의 양성이 혼합, 변질, 구분, 분리되지 않는

다는사실을 인정한다.

양성의 구별이 연합으로 제거되지 않고, 각 성의 속성들이 한 인격과 한 실재 안에서 보존되고 협력한다.

두 인격으로 분리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동일한 성자, 독생자, 참 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일찍이 선지자들이 이와 같이 증거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우리에게 전수된 교부들의 신앙고백도 그러하다”(칼케톤신조). 게다가 신체적인 부활을 부정하며 영생을

부정하는 이단들도, 몸이 다시 산다(resurrection)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지 못하므로, 사도신경을

거부할 것이다.

 

 

 

2)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에 대하여

이 영어문장은 ‘under Pontius Pilate’ 이다.

다시 말해서 정확한 번역은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사···”가 맞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문장이 틀림을 말하지는 않다.

본디오 빌라도는 그 당시 실질적인 책임자였으며, 모든 것이 그의 통치하(下)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빌라도는 실제적으로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예수에게 채찍질을 하고 고난을 주었으며,

군중들의 압력에 못이겨 바라바를 놓아주는 비열한 인간이었다. 과연 빌라도가 무죄한가? 빌라도가 누

구였는가?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

하니···”(눅 13:1).저희의 우상의 제물을 위하여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를 제물로 바친 자가 바로

빌라도이다. 즉 빌라도가 무죄하다는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예수님이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직접 받은 적이 없으므로,사도신경을 거부한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궤변이 된다.

 

 

 

3) ‘거룩한 공회가 가톨릭교회’라는 견해에 대하여···

사도신경의 가톨릭은 현재의 가톨릭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사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주장이 된다. 그 당시 초대교회는 이단들에 대하여 구별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Catholic Church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의미는 ‘보편적인 교회’

혹은 ‘일반적인 교회’ 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그 당시 이단들이 너무나 성행하였고,

그 이단들의 교회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편적인 교회’ 혹은 ‘일반적인 교회’라고 명칭을 붙였던 것이다.

그 당시 초대교회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을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곳에서 ‘공회’라고 번역된 단어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나 교황권의 공의회를 말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란 헬라어 ‘에클레시아’로서 부르심을 받은 회중을 말하며,

히브리어 ‘카알’로서 ‘하나님의 회’, ‘여호와의 회’라고 이미 성경에 번역되어 있다(렘 23:18, 22).

또한 헬라어로 교회란 ‘에클레시아’로서 에크(···로부터)와 클레시아(불러내다)라는 말의 합성어이며,

즉 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한 ‘성도들의 모임이나 회중’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의미로써 The Holy Catholic Church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한글로 ‘거룩한 공회’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훌륭한 번역이다.

즉 사도신경의 ‘공회’란 회중적 모임, 예배 등을 의미하는 교회의 원래적인 개념이며,

초대교회부터 이단교회와 구별하기 위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 공회가 유대인의 공회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만일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거부한다는 사람이

있다면,초대교회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유로 모든 초대교회들을 거부하여야만 할 것이다.

즉 사도신경의 공회(Catholic Church)는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가리키지 않으며,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큰 착각 내지는 무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영어성경은 The Holy Christian Church 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다.

 

 

 

4)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에 대하여

가톨릭에서는 죽은 사람들에게 성인(Saint)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러나 The Communion of Saint 의 Saint는 ‘죽은 성인’과의 교통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도들의 교제(코이오니아)를 의미한다. 죽은 성인과의 교통이라는 교리를 지지하는 개신교회는 없다.

Saint 라는 단어는 원래 기독교인, 즉 성도를 의미한다. Sunday Saint는 죽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일요일만 기독교인인척 하는 사람이며 The Blessed Saint는 기독교 신자를 말한다.

Saint go march는 죽은 자들의 행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행진을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번역은 매우 훌륭한 번역이 된다.

가톨릭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성인’(Saint)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제도는

사도신조(니케야신조) 훨씬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사도신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가 행하여지는 일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787년 제2차 니케야회의부터였으며,

죽은 사람들을 성인으로 선언한 것은 A.D. 995년 요한15세 교황 때부터였다.

오늘날의 성경에서도 ‘성도’는 영어로 Saint라고 번역되어있다.

 

 

 

5) 원어와 영어성경에 기록된 "He descended into hell".

이 문장이 가장 논란이 된다. 직역하면 예수님이 지옥으로 하강하셨다는 것인데,

한글 사도신경에서는 문제의 여지를 없애기 위하여 생략되어 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해석이 있다.

첫째 견해로는, 다음에 언급되는 ‘He ascended into heaven’(하늘에 오르사)과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서 문학적인 표현방식을 갖고 있다.

‘하늘에 오르사’라는 승천은 영광과 존귀의 의미가 된다.

즉 십자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실감적인 의미로 표현하기 위해

 ‘descended into hell’(지옥에 내려가다)라고 하였다는 견해이다.

즉 descended 와 ascended라는 두 단어와 into hell과 into heaven,

즉 영광과 고통이라는 두 단어를 비교하며 대조시켰다는 견해이다.

또 둘째 견해로는, 예수님이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구절은 벧전·4:18~19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

이라···"(벧전 4:18~19).가톨릭은 이 구절로 연옥에 있는 자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며 후에 면죄부의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전파하다"는 단어는 "유리겔라조"(복음을 전하다)가 아니고, "케루소"(선포하다)

이다.

즉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승리를 널리 선포하신 것이며 그것을 강조한 것이다.

어쨌거나 한글 사도신경은 이 문제를 생략하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

며···”라고 번역함으로써 혹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의 소지를 없애 버렸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글

사도신경을 암송하며, 한글 사도신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글 사도신경은 교리적이나 성경적으로

도 매우 훌륭한 번역을 한 것이다.

 

 

6) ‘고어적인 용어’에 대하여

또 한가지 "저리로서"라는 의미로는 From thence 이며 현재용어로는 from there

즉 “저곳으로부터” 라는 의미로 전혀 이상이 없는 고어체이다. 현대적인 어문으로 이것은 수정됐다.

 

 

 

7) 몸이 다시 사는 것(resurrection of the body)에 대하여

기독교의 부활은 신체적인 부활이다. 성경은 신령한 몸의 신체적인 부활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생전의 육체 그대로 다시 영생한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늙고 병이 들거나 장애를 가진 육체 그대로 영생한다는 것은 고통이 될 것이다.
즉 우리의 부활은 신령한 몸의 부활이며, 영만의 부활이 아닌 전인적인 부활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2~44).

또한 빌립보서 3:21에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체는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기도 하셨던 신체적이시며 가시적인 부활이었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체가 영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려준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이셨으며, 문이 잠겨진 공간에 나타나시기도 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 먼저 나신 자이신 예수님의 부활체가 살과 뼈가 있는 신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부활체도 신체적이 될 것이다.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교회들은 일반 기독교의 논리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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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3.13 22:13

    첫댓글 사도신경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큰 일날 소리입니다. 사도신경은 오늘날 카톨릭과 개신교를 하나로 묶는데 있어서 가장 큰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고백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카톨릭이 만든 고백서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에 있었던 로마신경을 기초로 하여 만들었다고는 하나 로마신경은 아주 간단하였습니다. 거의 뒷 부분이 없었습니다.

    사도신경의 공회, 성도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오류가 있습니다. 공회가 만일 교회를 의미한다면 그것을 믿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입니까? 왜 하나님을 믿어야지 교회를 믿씁니까?
    또 성도가 죽은 자들이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성도들을 의미한다면 왜 성도들이 교제하면 되지 믿는다는

  • 14.03.13 22:19

    고백이 필요합니까? 믿는다는 것은 보지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소리이지 뻔히 보면서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가족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이상한 가족인 것입니다. 교제는 하면 되는 것이지 믿을 필요가 왜 있는 것입니까?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는 카톨릭 원문에 보면 "성인들의 통공을 믿사오며"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인들이란 죽은 성도가운데 교황이 성인으로 추대한 사람들을 말하며, 그들과 영적으로 공을 주고 받는 것을 믿는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즉, 나의 부족한 공을 성자들이 구원받고도 남은 공로를 빌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카톨릭 백과사전에 ...

  • 14.03.13 22:20

    @갈렙 나와 있는 것입니다. 적당히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신경 암송을 하다보면 카톨릭에게 먹힙니다.

  • 14.03.13 23:20

    다른 건 몰라도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는 영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 당한 건가요

  • 14.03.14 02:11

    잘보셨습니다..^^성경은 한번도 빌라도에게 고난받았다고 기록한적 없습니다
    언제나 유대인에게 혹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라고 기록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어쩔수없이 유대인과 장로들이 로마황제에게 말한다고 해서
    협박받아 본의아니게 당시법대로 한것뿐입니다
    그러면서 손을씻고 이사람의 죄에 자기는 아무 관련 없다고 선포했구요
    빌라도 마누라도 꿈에서 여러번 예수님에대해 꿈을 꾸고 계시를받아 놓아주라고 빌라도를 설득했었구요 그래서 서로 헤롯과 빌라도가 서로 관여 안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호송해서 보낸거구요

  • 14.03.13 23:35

    주기도문은 친히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으며, 사도들이 이 기도내용으로 기도했다는 내용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카톨릭에서 만든 것이 맞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가 아니라 내 죄때문에 우리의 죄때문에 고난을 받으사가 맞습니다. 우리죄를 회개하는 걸 사단이 싫어하지요.

  • 14.03.14 10:36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는 성경에 한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을 바꿔가며 내죄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으사가
    정확한 성경의 기록입니다 물론 내죄대문에 주예수님이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03.14 10:42

    사도신경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 말고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거기에 <피로 인한 속죄>가 확실히 나와 있지도 않고, <믿음으로 인한 칭의>도 없고, <주님의 내 안에 계심>에 대한 고백도 없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고백인데도 고집스레 주장하는 것은 지금도 이단과 정통을 구분하기 위한 잣대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카톨릭이 만든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정통이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이단이다!라고 기능할 뿐만 아니라, 이단과 정통을 카톨릭이 결정하도록 정당화 시켜주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14.03.14 09:25

    사도신경은 주술을 외우는 것입니다.
    예배때마다 외우는 것은 본질적인 믿음이 아니라 입으로만 외우는 주술적인 내용입니다.

  • 14.03.14 21:31

    어릴적 천주교를다니며,외울것이 너무많았지만 잘해서 수녀님께 칭찬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다~~기도문..성경은 없었읍니다.

  • 14.03.15 08:45

    수많은 순교자들도 이 신앙을 고백하며 살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아십니다.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를 정죄할 특권이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 14.05.23 01:05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아는 것으로 예배를 드릴때가 왔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정죄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분별할 것은 분별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14.05.23 01:07

    문제는 성경에 맞지 않는 사도신경을 기준으로 판단하고있는 신앙의 행태가 문제입니다.
    이것이 어찌 이단과 정통의 기준이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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