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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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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일식의 주기 / 조용미
동산 추천 0 조회 200 14.11.29 13: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일식의 주기 / 조용미

 

 

   지구가 해를 19바퀴 돌 때 달은 지구 주위를 정확하게

223번 공전한다 이때 해와 달은 하늘의 같은 위치에서

만나게 되는데 해와 달이 겹치게 되는 현상의 주기는

18년 11일 8시간이다

 

   당신과 나의 만남은 사로스 주기와 비슷해서 이 생에

한 번 더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먼 우주에서의 조우처럼

한 순간의 스침을 생의 증표로 기꺼이 받아 몸에 화인처럼

새겨두고 들여다보는 일은,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적인 겹침이 생길지도 모른다

불안을 너는 잘 견뎌내었다 물리적으로 거리는

때로 정적으로 가까운 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달은 지구의 주위를

빙빙 돌며 지켜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 고투하는 그들의 모습이

약간은 아름다웠다

 

   태양을 삼켜버린 어둠은 잠시였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일까 모래바람이 심해 몇 번인가 돌아서며

한의원에서 전철역까지의 타클라마칸을 건너야 했을 때,

어딘들 사막 아닌 곳이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아야 할 때

 

   그 숲에도 같은 바람이 불고 있겠지 당신과의 목마른

인연 탓이 아니라 내 안에 탄맥처럼 숨어 있는 비애가

목을 메이게 한다 달이 당신을 지워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둥그런 암흑의 고리 뒤에 있는 것이 그래도 당신임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 조용미 시집  < 기억의 행성 >  2011

 

 

 

 

 

 

************************************************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조용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에는

이전 시집들과 문맥을 같이 하는 ‘아픈 몸의 현상학’에서

출발해 ‘색과 음의 해석학’을 거쳐 ‘기억과 반복의 존재론’에

이르는 시인의 언어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안에 미묘와 표묘의 경지에 들어가길 갈망하면서

천연함과 처연함을 오가며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점점

또렷해진다.

시인의 시는 풍경을 노래한다고만 말해서는 안된다.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이다.

조용미는 풍경의 탁월한 해석자이지만 그의 예술적 성취는

‘나’를 버리고 ‘너’를 잃어서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미학적 인간의 모람이고 아픔이다.

그런데 보람과 아픔의 길 너머엔 긍정의 길이 있다.

‘너’를 잃어서 아름다움을 얻었다고 말하는 길이 아니라,

‘너’를 잃은 이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길이다.

‘기억’과 ‘반복’이라는 주제를 천착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가장 무게 있는 시들이 우리를 그 아프고

숭고한 길로 데려간다.

 

 

 

 

 

목차

 

제1부

 

가을밤

소리의 거처

물소리에 관한 소고

층층나무의 계단

오후의 세계

초록을 말하다

여름 숲

얼룩

기억의 행성

나의 매화초옥도

어두워지는 숲

적벽에 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자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제2부

 

사이프러스

미학적 인간에 대한 이해

작열하다

봄비

나비 떼의 추락으로 폭우가 멈추었다

탐매행

무릎을 예찬함

능소화

불안의 운필법

곡옥

일주문

 

제3부

 

풍경의 해부

연둣빛 덩어리

분홍을 기리다

송과선, 잠

야위다

정강이論

양귀비를 기르다

맹목의 감각

십일월, 배?을 지나다

강정 간다

물에 비친 버드나무 가지의 그림자

악기들

흰 꽃의 극락

 

제4부

 

터널

일식의 주기

당신의 손

하늘의 무늬

무계동

계단

허공의 악기

생에 처음인 듯 봄이

소리의 사다리

메밀꽃이 인다는 말

冬至

堂自

물속의 빛

 

해설 | 미학적 인간 신형철 

 

 

농(濃)과 담(淡)으로 깊이를 만드는 응시 - 마음으로 이끌어온

묵(墨)과 현(玄)의 세계

 

첨예한 감각으로, 세심한 사유로 생의 표면을 더듬어 이면, 그 본질

까지 읽어내는 시인 조용미.

그녀가 자신의 다섯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으로 돌아왔다.

2007년 발간한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이후 4년 만이다.

사위를 고요하게 만드는 목소리, 평범한 현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시선, 현현한 문장, 이른바 조용미의 시라 이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여전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시인은 존재의 색과 음에 집중하여, 그러나 농담(濃淡)만으로

세계를 살피고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세계는

담담하면서 깊어 결국은 아름답다.

현란과 화려가 넘쳐나는, 그리하여 진짜 아름다움은 뒤로 숨고

가짜의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에, 조용미의 새 시집 『기억의 행성』은

존재의 본질에 놓여 있는 ‘은은’을 통해 우리를 다시, 생의 근원으로

이끌어주는 동시에 아름다운 사람의 탄생을 목도케 할 것이다. 

 

■ 시집 소개

 

조용미의 시는 깊고 투명한 물을 연상시킨다.

바닥까지 찰랑대는 그 깊이의 물속으로 우리는 자꾸 손을 넣어

보고 싶어진다. 그때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물은 아닐 것이다.

투명함과 깊이 그 자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용미의 시에는 그런 것이 있다.

시와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 그렇게 손을 물에 담갔을 때, 그

시리고 푸른 감촉은 경계를 이루면서 경계를 해체한다.

그것은 공감의 가능함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조용미는 시와 우리를 같이 되도록 이끈다.

적어도 우리는 조용미의 시 앞에선 타인이 아니라 주체다.

그녀의 언어가 감정과 감정을 내포하는 감각들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용미의 서정이다.

시인의 ‘고요한 목소리’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 그녀가

가만가만 이르는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시가 보여주는 풍경 안으로 끌려들어간다.

언어로 된 시는 순식간에 감각으로 변하고, 그 감각은

우리의 몸에 달라붙는다.

 

조용미는 몸의 시인이기도 하다.

평론가 신형철에 따르면 조용미의 시는 출발은 “통증”이었다.

통증은 괴로움인 동시에, 감각의 절정이다.

이 절정의 감각은 인식을 끌어온다. 나와 바깥의 차이의

정체, 그것이 통증의 정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통증은 나와 바깥과 그 사이에 대한 ‘절박하고

아찔한’ 감각이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시인이 바라보는 풍경은 한낱 풍경이 아니라, 나로부터

출발하여 나로 돌아오는 경험이다. 이 경험은 고통이고

슬픔이면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아름다움으로 향한다.

몸이 다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것. 조용미의 시가 읽는 이에게

환기하는 정서란 그런 것이다.

 

이런 몸이 쓴 것들이었으므로 그의 풍경의 시들은 그토록

절박했고 집요했던 것이다. [……]

이런 눈과 귀로 그는 여기에 일일이 옮겨 적을 수조차 없는

많은 통찰들을 풍경들로부터 발굴해냈다.

끝내 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구절들도 가끔은 있었지만,

내 몸이 ‘달의 출혈’을 보고 ‘강의 신음’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아파본 적이 없어 그런 것이려니 하게 만드는 힘이

그 시들에는 있었다.
풍경의 얕은 곳에서 안이한 깨달음을 채굴하는 것으로

보였던 세상의 많은 시들이 어째서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시들에도 마음의 통증이야 있었겠으나 몸의 통증은

부족했었던 것이다. 조용미의 예전 시들이 걸어간 길을

‘아픈 몸의 현상학’이라 불러도 좋을까.    

 

- 신형철, 해설 「미학적 인간」

 

시인이 드러내 보이는 마음의 통증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동질감의 슬픔은 제한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눈물은 슬픔을 불러오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아름다움을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그녀의 다섯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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