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탕탕 튕겼다
어떤 목숨 줄이 정해진 행렬 바깥에서
허공을 음각하는 소리
어떤 몸뚱이가 껍질을 벗고
먼지의 켜들을 밝히는 소리
먼 데서 몰려오는 적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온정은 오직 이것뿐
멀리로 사라진 사랑에게 닿을 수 있는
남겨진 흥분의 촉은 오직 그것뿐
소리 사이사이의 침묵에게
대거리해줄 공간을 몸 안에 펼쳤다
새가 날고 햇빛이 어른거린다
너는 그게 죽음 쪽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곡小曲이라 여길 것이리
몸속 가장 낮은 곳의 소리를
우물처럼 퍼올려
소리가 메워 버린 침묵의 구멍을 더 깊게 하였다
소리가 비워진 하초下焦엔
뿌리가 어디인지 모를 꽃들이 수런거린다
나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느릿느릿 코피를 흘리고
더 먼 데로 직립하는 몸의 뿌리로 꽃들을 끌어당겼다
상부의 피가
하부의 정렬을 색깔 입혔다
하부의 파탄이
상부의 치열을 조롱하였다
내 몸은 침묵의 사선에서 수평으로 길게 누워
먼 데서 돌아오는 네가
아무도 듣지 못한 천계의 음률을 조각조각 새겨 넣길 원했다
꽃들이 돌 틈 사이에서
마그마처럼 울었다
나는 먼 곳의 소리가 이승 길을 더듬는
차가운 잿더미의 도판圖板이 되었다
[백치의 산수], 민음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