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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를 올린 날이었다.
청사초롱 불 밝힌 방에 앉아 있는 홀로 앉아 있는 아름다운 신부는 희미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즐거워야 마땅할 날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지하에 동면해 있는 오라버니 방종구에 대한 생각을 하면 슬프기만 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날 희망이 있다는 것에 그녀는 안도할 수 있었다. 자신의 혼례식 날 가족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혼례복 대신에 상복으로 갈아입는 신부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지금까지 그녀는 혼례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입고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거야?"
그녀는 투덜거렸다. 불편한 혼례복을 입고 신랑이 올 때까지 꼼짝 않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 못내 불편한 그녀였다. 좀이 쑤셔오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방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엄연한 새신부였고 신부복은 신랑이 벗겨주는 것이지 그녀 스스로 벗는 것이 아니었다. 신랑이 오지 않았는데 밖에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하염없이 신방에서 새신랑을 기다리는 새색시의 이빨 사이로 뿌드득 하는 이빨 가는 소리만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의 일은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기서생 정옥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말을 끝냈다. 서로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 타협점을 찾아내고, 앞으로의 청방의 운영에 대한 의견을 조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을 세워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론을 끌어내고 회의를 끝내게 된 정옥은 아직도 신랑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으---, 이게 무슨 꼴이냐? 신혼 첫날밤부터 일복이 터지다니---.'
속으로 투덜거리며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옥은 어서 신방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늦었지만 어서 가서 예쁜 마누라와 자식을 만드는 작업을 할 생각에 몸이 달아 있는 정옥이었지만 아직 일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청방의 새로운 방주로서의 취임식을 해야 하지 않겠소?"
의자에서 일어나던 정옥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거기 모여 있는 청방의 실력자들은 자신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천하제일미인을 아내로 맞은 자신을 질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마누라한테 가는 일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이들은 광분하고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굳이 취임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린 일들이 너무 많은 상태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요."
회의실 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을 끝낸 정옥은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회의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신혼 첫날밤이! 혼인식을 하면 한 한달 정도는 느긋하게 신혼을 즐길 수 있다고 믿었건만-----. 내 첫날 밤 돌려 줘!'
신방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옥은 속으로 비명을 터트렸다.
회의실 안에 남겨진 오대세가의 가주들과 각 성의 청방의 기업을 운영하는 거상 다섯 명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자식을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었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고 청방의 방주직을 맡다니---."
"느끼한 얼굴을 한 저 놈에게 수련 아씨가 시집가다니---."
한마디씩 튀어나오는 말은 하나 같이 심술과 질투가 가득 묻어 있었다.
"저 놈 고생 좀 시켜야겠지요? 머리가 좋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청방과 백초당 그리고 미녀를 얻은 저런 놈은 고생 좀 해야겠지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그들 중 가장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 진호가 입을 열었다. 열 사람의 머리가 한 군데로 모여지고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속삭이면서 신기서생 정옥을 골탕 먹일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정옥은 헐레벌떡 신방을 향해 달려갔다.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지만 자신이 신랑이고 아직 첫날밤의 의식을 치르지 않은 상태였다.
방수련은 침상 위에 신부복을 입은 채로 앉아서 신랑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수련---."
미안한 얼굴로 정옥이 가만히 방수련의 이름을 불렀다. 들어오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벼르던 방수련이었지만, 땀으로 범벅이 되고 피곤이 가득한 얼굴 위에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는 남편의 모습에 그녀의 노기는 눈 녹듯 사라졌다.
방수려의 옆에 앉으면서 신기서생은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오."
단지 그 한 마디뿐이었지만 방수련의 화가 난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그녀는 가만히 자신의 몸을 정옥의 몸에 기대었다.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 신혼 첫날밤의 일을 하지."
정옥이 속삭이고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몸을 더욱 정옥에게 기대었다. '사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방수련의 몸을 가리고 있던 옷은 한꺼풀씩 침상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옥의 몸에서도 신랑의 옷이 사라지고 알몸으로 변해, 침상 위에 둘이 한 몸으로 얽혀 들어갈 때였다.
"수련 누나, 매형!"
둘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소구는 눈을 깜빡이며 침상 위에 알몸으로 엉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구가 물었다.
"둘이 뭐 하는 거야?"
멍하니 고개만 든 채 소구를 바라보던 두 사람 중 정신을 먼저 차린 것은 방수련이었다.
"꺄 아 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소구를 향해 베개가 날아갔다. 소구는 황망 중에 날리는 베개 따위에 맞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고개만 살짝 옆으로 틀었고, 베개는 소구의 귓불을 스치고 뒤로 날아가 방 밖으로 날아갔다. 그 사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정옥이 이불로 자신과 방수련의 알몸을 덮고 소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보게 처남, 지금 우리는 부부만의 일을 하는 중이니 빨리 나가주게."
분노가 가득한 음성으로 말하는 정옥의 말과 이불 속에 얼굴까지 파묻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수련 누나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소구였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했다.
밤이 세도록 잠들어 있는 형의 관 옆을 지키고 있는 소구의 온 몸은 서리가 하얗게 끼어 있는 상태였고 그만큼의 분노가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일이 언제 끝나는데--? 그보다 매형 운룡회에 대한 무슨 정보를 얻은 게 없어?"
"소구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방 밖으로 나가라."
이불 속에서 방수련의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몸은 비록 이불 속에 있지만 그녀의 감각 속에 자신의 방 주위를 감싸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무사들 외에도 다른 사람들도 꽤 많이 방 주위로 몰려든 상태였다.
사태를 수습한 것은 방수련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방화련이었다.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침상 옆에 서 있는 소구의 모습을 발견한 방화련은 황당한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소구야, 어서 나가자."
"왜?"
소구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누나 방화련을 향해 물었다. 소구의 말을 들으면서 방화련은 한 손으로 이마를 치며 비틀거렸다. 나이 일곱 살에 소림사에 들어가고 열살 때부터는 아무도 없는 계곡 속에 갇혀 살게 된 막내 동생은 남녀간의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동생의 하얗게 서리가 낀 옷소매를 붙잡고 무조건 밖으로 끌고 나오면서 소리쳤다.
"이곳에 아무 일도 없으니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일들 해요!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요!"
방화련의 외침에 모두들 아쉬운 얼굴을 하고 신방을 쳐다보다 물러났다. 밥 한끼 먹을 시간 정도가 흘러서야 방수련은 이불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열려 있던 방문은 얌전히 닫혀 있고 주위에 몰려들었던 사람들 역시 모두 떠나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남편이 되어버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신기서생은 황당한 얼굴이 되어 수련을 바라보았다. 이미 흥이 깨어져 버린 상태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처남의 나이가 서른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녀간의 일에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오?"
불쑥 말을 꺼낸 정옥의 말에 방수련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녀석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네요. 신방에 불쑥 들어오다니----."
"흥이 깨지긴 했지만---. 우리가 지금 이 일을 끝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부부만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려."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정옥이 방수련의 몸을 안고 옆으로 몸을 뉘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 속에 갇혀 있을 때부터 난 처녀 귀신이 될 생각이 없었다고!'
그렇게 속으로 소리치면서 그녀 역시 얌전히 다시 몸을 뉘였다. 이제 그들을 방해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방주님! 집무실로 지금 당장 가 주셔야겠습니다. 사천지역의 상인들이 몰려와 방주님을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백초당의 총관 염철의 늙은 목소리가 그들을 방해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 아 악!"
참다못해 드디어 정옥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난 새신랑이란 말이야!"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그렇게 고함을 내지르는 정옥과는 달리 방수련은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안 될 것 같네요. 가서 일보고 이따 밤을 기약하자고요."
가만히 누워 있는 방수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두 손을 하늘에 대고 휘두르며 광분하고 있던 정옥은 문득 동작을 멈추고 누워 있는 아내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여기로 다시 돌아오는 거야. 이러고 있으면 나만 손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상에서 정옥이 내려오자 방수련 역시 일어나 침상 아래로 내려왔다. 남편을 위해 그녀가 직접 만들어 놓은 옷이 있었다.
천잠사라는 희귀하기 그지없는 천으로 만들어진 백색의 옷을 신랑에게 입히고 있을 때, 밖에서는 연신 청방의 방주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준비해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끄응, 신혼 첫날부터 우리는 재수가 없구려."
"어서 가서 일 끝내고 여기로 돌아와요. 저는 이곳에 있으니까."
그녀 역시 아쉬운 얼굴로 말하면서 남편의 등을 밀었다.
신기서생 정옥은 내내 아쉬운 얼굴로 방수련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가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방 안에 서 있던 방수련은 정옥이 나가자마자 재빨리 방문을 닫고 그대로 침상 위에 몸을 던졌다.
"소구 녀석 혼내 줘야 되는데--, 너무 졸립다---. 일단 한 숨 자고 나서-----."
그녀는 침상 위에 엎어진 채 그렇게 중얼거리다 그대로 잠 속에 빠져들었다. 그녀 역시 소구 못지 않은 잠꾸러기였고 단 하루도 잠이라는 행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으니----.
그대로 깊은 잠에서 들어간 방수련이 깨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을 때 소구는 방화련의 방에서 영문도 모른 채 누나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종구 오라버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이니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내가 너에게 벌을 내려야겠구나."
"내가 벌을 왜 받아?"
"이놈아, 신혼 부부의 방에 무조건 쳐들어가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그게 어때서?"
"어이구!"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소구 때문에 그녀는 골치가 지끈거렸다.
"이놈아! 넌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남들이 보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내가 왜 벌거벗고 돌아다녀?! 난 절대로 그런 짓 안 해!"
"어제 수련이가 혼인을 했지 않니?"
"그래서?"
"이제부터는 수련이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돼는 거야."
"왜?"
방화련은 그 일을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여자의 입장에서 부부간의 일을 동생에게 말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세, 무조건 안된다면 안돼는 줄 알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그녀는 불문곡직하고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고 소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그런데--, 아까보니까 매형하고 수련 누나가 벌거벗고 둘이 안고 있던데 왜 그런거야?"
"그것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는 거다, 소구야. 부부간의 일이야. 남들이 봐서는 안돼는 일을 하는 거니까 절대로 수련이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된다.. 정 궁금하면 네 하녀들이 너의 첩이니 네 하녀들에게 물어봐라. 그러면 금방 알려 줄 게야."
"걔들은 너무 차가워서 싫어."
소구의 말을 들으면서 방화련은 이십년만에 다시 찾은 동생의 얼굴이 정말이지 꼴 보기 싫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여튼 내 말 알아들었지?"
"응, 일단 수련 누나의 방에 전처럼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되고, 둘이 벌거벗고 침대 위에서 놀 때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된다는 거지?"
소구의 말에 방화련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래, 하여튼 그러니까 당분간 수련이의 방으로 가면 안된다. 알았지?"
"알았어."
"수련이하고 신기서생하고 둘이서 침대 위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정 궁금하면 기녀원이라도 가봐. 그곳에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줄 테니까---."
"기녀원?"
"그래. 네 하녀들의 몸이 차가워서 싫다면 그곳에 가면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거다."
노파심에서 방화련은 기녀원까지 들먹이며 동생 소구에게 말을 해 주었다. 수련이의 성격 상 또 한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백초당의 모든 건물이 다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구와 마찬가지로 십년이나 갇혀 지내게 된 수련이의 능력 또한 짐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방화련은 알고 있었다. 소구가 몰래 수련이의 방을 엿보고 그것을 수련이가 알게 되면---. 그녀는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제 알았으면 그만 네 방으로 가 봐라. 밤을 세서 졸릴 테고, 아침도 들지 못했을 텐데--."
"그래. 일단 가서 한숨 자고 일어나서 그 기녀원이라는 곳이라도 찾아 가 봐야겠는 걸."
말하면서 소구가 밖으로 나가고 이제 방화련도 그녀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자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중얼거렸다.
"오라버니가 없으니까 별일이 다 생기는 구나. 오라버니가 깨어 있으면 소구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줄 수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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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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